‘총선 빅매치’ 이재명 VS 원희룡 전면전 시나리오

대장동이냐 양평이냐…외나무서 만날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이재명 저격수가 돌아왔다. 대장동 리스크서 자유롭지 못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해 맹공을 퍼붓는다. 문제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 본인도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으로 허우적거리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원 장관이 이 대표의 지역구로 출마해 맞붙는다면 ‘누가 덜 더럽느냐’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살아남으면 유리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임기를 마쳤다. 윤석열정부 첫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받고, 1년7개월 동안 국토부를 이끌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정부 스타 장관으로 불리는 인물로 차기 총선을 위한 행보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후임 국토부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끝까지 소임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돌아온
장관님

원 장관의 퇴임 이유는 차기 총선 출마다. 일찍부터 원 장관의 총선 출마는 정해져 있었다. 몸값이 오를대로 오른 원 장관은 출마 지역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역대 국토부 장관 중 가장 존재감이 큰 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원 장관은 일처리 때 직접 현장으로 나가 소통했다. 윤정부와도 엇박자 없이 노조 강력 대응, 광역교통망 추진 등에 있어 막힘없이 나아갔다. 그동안 장관이 직접 나서지 않았던 사안에도 발 벗고 나서면서 강력한 말들을 쏟아냈다. 부동산서도 청년 세대의 호응을 이끌어낼만한 정책들을 발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쉴 틈 없이 여러 정책들이 발표됐고, 주말에도 상황을 점검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스타 장관 반열에 오르기 충분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여의도로 돌아온다. 원 장관은 첫 행보로 기독교 집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귀 첫 스텝으로 보수 표심을 다지러 간 모양새다. 전 목사는 원 장관이 간증을 잘 한다며 치켜세웠다. 

이 자리서 원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우회적으로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거듭 이 대표와 대결이 준비돼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맞대결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전 목사와 원 장관이 만났다는 점이다. 앞서 원 장관은 보수 대통합에 전 목사 세력은 포함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껏 거리를 둬왔던 전 목사와의 만남이 이뤄져 즉시 논란이 발생했다. 원 장관은 간증 요청을 받았고, 대기실서 잠시 마주쳤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치 모임은 더욱 아니라며 짜맞추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오히려 민주당을 공격하는 모습이다. 

복귀 시작부터 논란이 발생하며 원 장관이 전 목사를 만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는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딛어야 할 인물이다. 한 장관 못지 않게 원 장관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만큼 당내서도, 당외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사실 지난 대선 때 원 장관의 존재감은 미미한 편이었으나 4위로 컷오프를 통과했을 때부터 관심도가 상승한 인물이다.

원, 몸값 급상승 국힘 차기 대권주자
고속도로 특혜 의혹 해소부터 급선무


이후 윤 대통령에게 선택받은 뒤부터는 몸값이 크게 뛰었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해체된 이후에도 살아 남았고, 국민의힘이 활용한 유튜브 쇼츠서도 윤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와 함께 등장해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캠프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선거 일선서 뛰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대장동 1타 강사로서 줄곧 이 대표 저격수 역할을 해왔다. 윤 대통령의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도 원 장관은 기획위원장을 맡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윤정부 첫 내각이 구성될 때 원 장관은 국토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원 장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일단 중도 낙마 없이 국회로 돌아왔다. 당내서 원 장관이 역할을 맡는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국민의힘이 위기의 국면을 맞을 때마다 한 장관과 함께 소환됐던 바 있다. 

앞선 경기도지사 선거서도 원 장관의 차출론이 있었고, 당내서 불협화음이 발생했을 때 늘 원 장관이 무언가 맡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번에는 비대원장설까지 돌았다.

혁신위가 더 이상 동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비대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뒤 대안으로서 원 장관을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인 위원장과 원 장관은 이미 만남도 가졌었고, 원 장관도 혁신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몇 차례 연출해준 바 있다. 

총선 국면에서는 선대위원장설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경선 4위서 단숨에 대권주자까지 입지를 키운 원 장관이 정책본부장 때처럼 총선을 지휘하겠다는 구상이다. 

원 장관을 필두로 총선서 승리한다면 원 장관은 대권주자로서 압도적인 입지를 구축하는 게 가능해진다. 

내년 총선은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대결구도다. 현재는 정권심판론이 약간 우세한 편이다. 이런 탓에 윤정부와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절실한
대표님

앞서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에 힘입어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당이 나서 전국 유세를 펼쳤음에도 역부족이었다. 17%p가 넘는 표 차로 국민의힘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 총선 역시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원 장관이 이 대표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찍부터 이재명 VS 원희룡의 대결로 구도를 설정하기 위함이다.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구도가 이어지면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 대표의 몸값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원 장관은 이 대표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인천 계양구을 출마설까지 나온다. 이 역시도 원 장관의 의도된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표가 자리한 계양을은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금까지 치러진 7번의 국회의원 선거서 민주당이 6번 승리를 가져간 곳이다. 

원 장관은 당에서 요구하는 험지 출마와 민주당의 대권주자를 잡았다는 것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이 대표를 잡지 못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손해볼 장사는 아니다. 

차기 대선주자가 맞붙어 민심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기도 하다. 문제는 원 장관에게도 의혹이 적지 않은 편이라는 점이다. 

원 장관은 국토부 장관직을 역임하던 중 한 가지 악재가 터졌다. 바로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등에서 원 장관은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자신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대안 노선 지시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게 원 장관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원 장관은 민주당의 가짜 뉴스로 몰아갔다. 오히려 오랜 기간 추진해온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해 여론전을 펼쳤다. 

민주당이 원 장관을 옥죄어 오자, 오히려 실무진에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은 원 장관에게는 큰 걸림돌이다. 현재 민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안과 관련해 국정조사를 추진 중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뭔가를 정확히 발견해내기는 어렵지만, 이는 윤 대통령과 원 장관을 한 데 묶어 공격할 수 있는 거리다. 


서울양평고속도로와 관련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리스크가 될까 우려해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 정쟁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정쟁에만 몰두한다”며 협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원 장관 입장에선 ‘매도 먼저 맞자’는 심정으로 이제는 자신에게 양평 이슈를 끌고올 것으로 분석된다. 

단두대 대결
민심 가늠자

대선에 나서기 전 총선서 양평 의혹을 빨리 해소시키기 위함이다. 실제로 원 장관은 국토부 기자단과의 마지막 정례간담회서 “(국정조사가)지연되는 이유가 정치적 공방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 장관은 양평 의혹을 털어낼 경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이 대표를 연일 공격하는 이유도 자신의 리스크를 감추면서 중도와 보수의 결집을 이뤄내기 위함이다. 원 장관은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원 장관이 최근 띄운 게 바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끌어안기다. 원 장관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보수 통합과 중도 확장을 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 장관이 전면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원 장관이 한 장관과 함께 ‘간판’으로 벌써부터 나서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이유에서다. 빠른 이미지 소비로 총선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이 원 장관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는 탓이다. 원 장관은 차기 당 대표가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안고 있는 당 대표 리스크처럼 원 장관도 서울양평고속도로로 끊임없이 괴로운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 장관의 대결구도가 성사될지는 이 대표에게 달렸다. 이 대표는 여전히 대장동의 그늘서 벗어나지 못해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한 주변인물의 불리한 진술도 나온다. 최근에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사장이 재판에 나와 “이 대표가 실질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빼곡한 재판 일정…마무리는?
줄줄이 잡혀가는 측근들 살얼음판

이 대표의 대장동 의혹은 거의 족쇄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앞서 나가려 하면, 대장동으로 도무지 나아갈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최근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심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차츰 대장동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이 유죄판결을 받기 시작하자, 이 대표의 메시지가 사라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또다시 그의 리더십 문제가 제기된다. 총선 국면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재차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검찰의 수사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법원의 판단은 여권에는 희소식일 수밖에 없는 반면, 이 대표에게는 치명적이다. 조만간 총선을 지휘해야 할 이 대표와 지도부가 당내서 힘을 받기 어려워지는 형국에 놓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이 대표에 대한 법원의 체포동의안이 기각된 뒤 검찰은 수세에 몰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어느 정도 털어낸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 이 대표를 옥죄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대로 원 장관과 맞붙는다면 불리한 인물은 이 대표다. 그는 이변이 없는 한 자신의 현재 지역구에 재출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다른 지역구로 옮길 경우, 원 장관을 기피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 당시에도 이 대표는 여러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닦아놓은 지역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연고도 없어 뜬금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그는 막판에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에게 추격을 허용하며 전국 유세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 선택과 집중하지 못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표가 최악의 경우 비례대표로 출마해 뒤에서 선거를 지휘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기면 
대선행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원 장관과 이 대표 모두 큰 리스크를 앓고 있다. 이 대표의 경우 재판까지 버티면 된다는 심정일 것”이라면서도 “반면 원 장관의 리스크는 확전될 수 있다. 역할을 맡았다가 리스크가 커져 총선서 패배하면 윤정부의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동훈 시너지?

국민의힘은 총선 승리가 간절한 만큼 간판으로 내세울 인물이 중요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가장 먼저 국민의힘으로 돌아왔는데 이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원 장관, 한 장관, 김기현 대표를 3축으로 삼두체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물론이 중요한 만큼 당의 사정을 잘 아는 김 대표가 뒤에서 총선을 지휘하고, 원 장관과 한 장관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한 장관을 향해 연일 손짓 중이다. 이 같은 체제로 국민의힘이 총선 정국을 헤쳐나갈 전략을 세웠다고 읽힌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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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