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숨은 킹메이커’ 신계륜 살벌한 경고

“안전한 길로만 가면 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인으로 겪을 수 있는 흥망성쇠를 다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도 갔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장면마다 지근거리에 자리했다. 지난해 복권돼 8년 만에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신계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탄핵 정국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내릴 판결에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이 달려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면서 탄핵 심판 사건에 또 하나의 변수를 던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변수가 많아 전문가들 사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굴곡 많은
정치 인생

정치권은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출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탄핵 인용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면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신중론을 고수하면서도 장외로 나서는 의원들을 말리진 않고 있다. 그 사이 국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탄핵 정국서 나타난 일련의 정치적 흐름을 읽지 못하면 본선서 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탄핵 반대 세력이 거대해진 점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탄핵 찬성, 반대 집회에 모두 참석해 봤다는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된 신 전 의원은 그해 5월 ‘서울의봄’ 당시 학생들을 이끌고 계엄령 철폐 시위에 나서는 등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1991년 신민주연합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던 그는 14대, 16~17대, 19대 총선서 당선돼 4선을 지냈다.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5대 대선에 나섰을 때는 청년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후보 비서실장으로 역할을 했다. 민주당서 나온 3명의 대통령 가운데 2명의 당선에 기여한 것이다. 동시에 17대 국회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2017년 입법 로비 사건으로 정치 활동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8년 후 신 전 의원은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동안 2008년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 대패 이후 설립한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물밑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몰두했던 그였다. 신정치문화원의 핵심사업인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도 꾸준히 진행 중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신정치문화원 사무실서 신 전 의원을 만났다. 사무실에는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물건이 많이 있었다.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 행사를 하면서 맞춘 조끼가 벽 한쪽에 진열돼있었고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에는 2007년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기념하면서 제작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8년 만에 정치적 메시지

신 전 의원은 “당시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측에서 (시계를)스무 개 제작해 갔는데 북한서 청와대를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다. 이후에 기념으로 받은 것을 걸어뒀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과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망가진 남북 관계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선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조용히 응원하면서도 현재 당내 상황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동시에 탄핵 정국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해 “내가 틀렸다”면서 흥미로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못 내는 소리를 정치 원로인 내가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창당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를 막지 못한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을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터트렸다. 민주당의 탄핵, 입법 폭주에 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느냐는 분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런 생각을 담화, 편지, 헌재 변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했다. 내가 놀란 대목은 윤 대통령의 말에 상당수 사람이 공감을 표했고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물론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사람이 있었지만, 표면화되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이른바 극우 보수 성향을 띤 국민이 전체의 20%는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우리나라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분화를 통해 정치 다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과거 민주화가 간절했던 시기에는 ‘민주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사이에 두고 정권 연장과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충돌했다.

일단 이겨야 다음 행보를 모색할 수 있기에 정당은 ‘승리’에 사활을 걸었다. 빼앗으려는 쪽과 지키는 쪽의 대결은 ‘결집’을 불렀다. 보수진영은 ‘3당 합당’을 감행하면서까지 정권 유지에 매달렸고 진보진영은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몇 번이고 두드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정치 상황은 양당제로 나아갔다.

민주화의 주역
1991년 정계로

신 전 의원은 탄핵 정국이 만들어낸 현 상황이 다당제로 가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소위 합리적 보수 성향의 분들은 국민의힘에 남고 극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창당의 깃발을 꽂으면 된다. 현 상황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가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정치 세력화하기 시작한 극우 보수층 가운데서도 20~30대 남성의 마음을 잡지 못한 부분에 대해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데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전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은 20~30대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 공허하고 구호적인 얘기만 던졌다. 이들은 민주화가 간절한 시대에 살지 않는다. 이미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상태서 ‘나한테 중요한 게 뭔지’를 따지는 세대다. 그들의 손에 민주당이 정말 필요한 걸 쥐어주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이 이런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민주당서 ‘일시적인 현상’ ‘순간적인 반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잘못됐지만 거기까지 몰아붙인 민주당도 잘못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 대통령을 구속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과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꽤 들었다”며 “(민주당이)비상계엄 사태에 너무 놀라 허둥지둥하면서 조급하게 군 부분이 드러났다고 본다. 헌법에 따라, 법에 따라 절차대로 탄핵하고 수사하면 되는데 ‘사형시켜야 한다’는 등 과한 표현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 부분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구속 취소 청구 인용으로 변수가 생겼다”면서도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 배경(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은 인정될 것 같지 않아 결국 탄핵안은 인용될 것으로 본다”고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대통령 경선 현장서 이 대표가 연설하는 걸 처음 봤는데 감탄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버니 샌더스가 떠오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연설은)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직접적이었다. 손에 딱딱 쥐어주는 듯한 연설이었다”며 “연설 이후 이 대표에게 ‘잘 들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고맙습니다, 선배님’이라고 답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를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부정적 인식이 많은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이 대표는 지지하지 않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정부의 집중 표적이 된 점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이 대표가 자초한 부분도 절반은 차지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능력 좋은데
인성은 결격

신 전 의원이 특히 지적한 부분은 ‘인성’이었다. 능력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성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많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측근에 대한 언행이 아쉽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는 “대북 송금 사건을 보자.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사건으로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돼있는데, 이 대표는 이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부분은 법정서 다툰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그들의 상관으로서 ‘내 책임’이라는 발언이 있어야 했다. 이 대표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인물이 연루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죄송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신 전 의원은 “판단이 빠른 건 좋지만 상황에 따라 말이 자주 바뀌는 부분은 좋지 않다. 특히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더니 본인이 연루되자 말이 없어졌다. 이 외에도 이 대표의 말 바꾸기 사례가 참 많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가 좀 더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당헌·당규대로 당원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하면 이 대표 85%, 나머지 후보 15%의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신 전 의원은 ‘일극 체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현재 민주당 상황서도 이 대표가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원 사이서 85%를 득표한다는 것은 사실상 추대나 다름없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본선이다. 수많은 선거를 겪어본 입장서 안전한 길만 찾는 후보는 낙선한다. 국민이 모를 것 같아도 다 알아본다. 어떤 후보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진행할 때는 협상단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약체로 꼽히던 후보다. 여론조사로는 이회창 후보는 물론, 정몽준 후보에게도 지는 걸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탄핵 반대 집회 인원에 놀라
여당은 분립, 야당은 위험천만

이어 “하지만 단일화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은 내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협상에 쟁점이 생겨도 ‘내가 다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곁에서 지켜본 노무현의 리더십은 ‘내던지는 것’이었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 ‘내려놓음’이 상대 후보를 이겨내는 힘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많은 선거를 치러본 신 전 의원은 후보는 가장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누가 봐도 이기는 상황서도 질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힘이 1명의 후보로 단일화를 이뤄내면 대선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내에 다음 대선서 ‘여당’이 되리라는 생각이 팽배한 지금 가장 ‘위험천만’한 때라고 분석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원의 추대만으로는 이 대표의 인성이 야기한 위태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 특히 이런 단기간의 비상시국에는 양보와 희생 없이는 비토 세력을 설득하기 어렵다. 나는 이 대표에 앞서 민주당과 평생을 함께한 정치인이다. 이번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이 주장하는 방식은 ‘오픈프라이머리’, 즉 완전국민경선제다.

그는 “국민의힘 지지자를 거르고 나머지 국민을 대상으로 경선을 치르는 방식을 채택하길 바란다. 무수한 선거를 치러본 입장서 역선택 방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식을 통해 선출된 민주당 후보와 다른 야당 후보가 또 한 번 경선을 치러 최종 후보를 결정하면 더 좋다. 이 대표가 최종 후보로 결정된다면 사법 리스크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은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헌‧당규가 문제가 된다면 비상시국임을 감안해 이 대표가 조치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이 대표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대표에게 열혈 지지자가 아닌 국민의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라고,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국민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 전 의원은 당내 소위 말하는 ‘비명(비 이재명)계’ 정치인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기댄 채 제대로 된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뭔가를 하고 싶으면 나서서 ‘깃발’을 들어야 한다. 깃발도 들지 못한 채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노처럼
던져라

신 전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좋은 상황을 생각하고 선거를 치르는 후보는 바보다.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선거 철칙이다. 과거 이회창 후보는 5년 내내 여론조사에서 1위였다. 그런데 본선에서는 졌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내게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 거기서 오는 감동이 국민의 선택을 좌우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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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상원 모른다”<br> 윤석열 거짓말 포착

[단독] “노상원 모른다”
윤석열 거짓말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이라는 사람 아는 바 없다.”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형사 재판서 한 말이다. ‘경고성 계엄’일 뿐이었다는 기적의 논리에 딱 들어맞는 주장이다. 국군정보사령부 전·현직 간부들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윤 전 대통령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모를 수 없는 정황은 곳곳서 포착된다.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노 전 사령관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정보사 전·현직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수도권 여러 안가서 모였다. “모를 수 없다” 곳곳에 정황들 이 자리에는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군 정보·공작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은 회의서 언급된 내용을 정리해 수첩에 적은 이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했다. 김 전 장관은 이를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9월부터 김 전 장관의 임기가 시작되자 노 전 사령관은 계엄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블랙요원 명단 유출 이전 900여단) 사무실인 B 연구원서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했다. 민간인이었던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에 필요한 인원과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받고 김 전 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정리해 윤 전 대통령에게 알리고 ‘계엄 시기’에 대해 고민했다. 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이 마음대로 정보사를 주무를 수 있었던 이유로는 김 전 장관이 든든한 뒷배로 있었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윤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며 “윤 전 대통령이 노 전 사령관의 계획에 대해 굉장히 흡족해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이 관리한 수사2단은 1·2·3대로 나뉜다. 계엄 사태에 연루돼 업무가 배제된 김모 대령이 1대장을, 노 전 사령관과 햄버거집 회동을 한 정보사 김모·정모 대령이 각각 2·3대장을 맡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조직은 예비역인 노 전 사령관, 국방부 조사본부 출신으로 예비역인 김용군 전 대령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려 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와 선관위 직원 납치·감금·심문이었다. 정 대령은 앞선 조사에서 선관위 장악을 위해 직원들을 케이블타이, 두건, 마스크 등을 사용해 무력 통제한 뒤 특정 장소에 감금하는 방안을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등과 함께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선관위 직원들을 심문하려 할 때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가 쓴 책을 참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간부들에게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이 쓴 책을 숙지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노 미팅·정보사 플랜 윤에 수시 보고 “윤, 흡족…김이 대통령 미팅 제안한 이유” 한 정보사 간부는 검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만약 부정선거에 가담한다면 이 조직, 이 사람들일 것’이라는 취지로 정리해줬다”고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가 노 전 사령관에게 건넨 명단에는 임시 사무소 예산 담당 직원을 비롯해 선관위 전산 시스템 운영 직원, 전산 운영 실무자 등이 포함됐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약 한 달 전 정보사 간부들을 만나 “언론에 특별한 보도가 나면 선관위에 가서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확인해야 한다”며 선관위 직원 30여명 명단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원장은 2022년 대선 당시 윤 전 대통령 캠프서 공명선거·안심투표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원장이 2021년에 쓴 책은 부정선거 의혹 거점으로 임시 선거사무소를 언급한다. 각급 선관위와 임시 사무소 사이 설치된 통신망을 통해 사전투표 및 개표 통신망에 접속해 득표수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책에는 부정선거 의혹 근거로 ‘사전투표지 QR코드 활용’에 문제가 있다고 적혀 있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관계자들에게 “QR코드 증거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관위는 QR코드로 사전투표지에 선거구별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은 일련번호가 찍힌 사전투표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이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 소송에서 4만5000여장 사전투표지 QR코드를 모두 판독한 결과 가짜 투표지는 한 장도 없었다. 노 전 사령관은 신인호 전 국가안보실 2차장과 김 전 장관과는 달리 윤석열 캠프 외곽서 활동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는 “외곽서 활동했기에 노 전 사령관이 윤석열 캠프 출신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현재 군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 전 장관이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칭찬을 윤 전 대통령에게 많이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윤 커넥션 캠프서 시작?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전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 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한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이 윤 전 대통령을 사실 굉장히 보고 싶어했다. 출세욕이 강한 만큼 김 전 장관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을 만나면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도 “성범죄 문제 때문에 윤 전 대통령에게 폐를 끼칠 수 있기에 김 전 장관의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말했다. 주변 인맥 활용 국방사업 개입?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18년 1월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임명된 후 같은 해 10월1일 국군의 날 교육생 신분의 부하 직원을 술자리 등에서 수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역 장성 신분으로 구속된 그는 1심 보통군사법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심서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불명예 전역 수순을 밟은 노 전 사령관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모두 상실했다”는 걸 감형 이유로 댔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을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노, 윤 캠프 외곽 활동해 조언 일부 현실화 ‘김건희 비화폰’ 미스터리 “노와 교집합”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전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건희씨와 노 전 사령관의 소통을 의심한다. 민간인이었던 둘에게 비화폰(안보폰)이 제공됐고 무속이라는 교집합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 같은 의혹 해소를 위해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공관촌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대통령경호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저지 및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연루 혐의 등이 대상이다. 경찰청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는 이날 공지를 내고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대통령실 및 공관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착수했다”고 알렸다. 압수수색 대상은 윤 전 대통령 및 김성훈 경호처 차장 등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관련 비화폰 서버, 대통령실 경호처 사무실, 경호처장 공관 등이다. 또 이 전 행안부 장관의 내란 혐의 관련 대통령 집무실 CCTV도 포함됐다. 다만 경찰은 “이 전 장관의 내란 혐의와 관련한 대통령 안전가옥 CCTV, 비화폰 서버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압수수색 영장을 3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검찰서 불청구했다”고 밝혔다. 김건희 알았나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경호처 내 비화폰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해 왔지만 경호처는 ‘군사상 기밀, 공무상 기밀’ 등을 이유로 협조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씨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이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김 차장도 경호처 내부 반발에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공조본 내부에서는 ‘지금이 기회’라는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