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숨은 킹메이커’ 신계륜 살벌한 경고

“안전한 길로만 가면 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인으로 겪을 수 있는 흥망성쇠를 다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킹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도 갔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장면마다 지근거리에 자리했다. 지난해 복권돼 8년 만에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신계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탄핵 정국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내릴 판결에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이 달려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면서 탄핵 심판 사건에 또 하나의 변수를 던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변수가 많아 전문가들 사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굴곡 많은
정치 인생

정치권은 변수가 등장할 때마다 출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탄핵 인용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면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신중론을 고수하면서도 장외로 나서는 의원들을 말리진 않고 있다. 그 사이 국론은 완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탄핵 정국서 나타난 일련의 정치적 흐름을 읽지 못하면 본선서 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탄핵 반대 세력이 거대해진 점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탄핵 찬성, 반대 집회에 모두 참석해 봤다는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된 신 전 의원은 그해 5월 ‘서울의봄’ 당시 학생들을 이끌고 계엄령 철폐 시위에 나서는 등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1991년 신민주연합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던 그는 14대, 16~17대, 19대 총선서 당선돼 4선을 지냈다.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15대 대선에 나섰을 때는 청년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후보 비서실장으로 역할을 했다. 민주당서 나온 3명의 대통령 가운데 2명의 당선에 기여한 것이다. 동시에 17대 국회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2017년 입법 로비 사건으로 정치 활동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8년 후 신 전 의원은 다시 정치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동안 2008년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 대패 이후 설립한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물밑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몰두했던 그였다. 신정치문화원의 핵심사업인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도 꾸준히 진행 중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신정치문화원 사무실서 신 전 의원을 만났다. 사무실에는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물건이 많이 있었다. ‘걸어서 평화 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 행사를 하면서 맞춘 조끼가 벽 한쪽에 진열돼있었고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에는 2007년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을 기념하면서 제작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신정치문화원 이사장으로
8년 만에 정치적 메시지

신 전 의원은 “당시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측에서 (시계를)스무 개 제작해 갔는데 북한서 청와대를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다. 이후에 기념으로 받은 것을 걸어뒀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신 전 의원의 정치 인생과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망가진 남북 관계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선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조용히 응원하면서도 현재 당내 상황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동시에 탄핵 정국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해 “내가 틀렸다”면서 흥미로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못 내는 소리를 정치 원로인 내가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창당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를 막지 못한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을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터트렸다. 민주당의 탄핵, 입법 폭주에 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느냐는 분노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런 생각을 담화, 편지, 헌재 변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했다. 내가 놀란 대목은 윤 대통령의 말에 상당수 사람이 공감을 표했고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물론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사람이 있었지만, 표면화되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이른바 극우 보수 성향을 띤 국민이 전체의 20%는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우리나라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분화를 통해 정치 다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과거 민주화가 간절했던 시기에는 ‘민주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사이에 두고 정권 연장과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충돌했다.

일단 이겨야 다음 행보를 모색할 수 있기에 정당은 ‘승리’에 사활을 걸었다. 빼앗으려는 쪽과 지키는 쪽의 대결은 ‘결집’을 불렀다. 보수진영은 ‘3당 합당’을 감행하면서까지 정권 유지에 매달렸고 진보진영은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몇 번이고 두드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정치 상황은 양당제로 나아갔다.

민주화의 주역
1991년 정계로

신 전 의원은 탄핵 정국이 만들어낸 현 상황이 다당제로 가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소위 합리적 보수 성향의 분들은 국민의힘에 남고 극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창당의 깃발을 꽂으면 된다. 현 상황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가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정치 세력화하기 시작한 극우 보수층 가운데서도 20~30대 남성의 마음을 잡지 못한 부분에 대해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데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전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은 20~30대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 공허하고 구호적인 얘기만 던졌다. 이들은 민주화가 간절한 시대에 살지 않는다. 이미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상태서 ‘나한테 중요한 게 뭔지’를 따지는 세대다. 그들의 손에 민주당이 정말 필요한 걸 쥐어주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이 이런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민주당서 ‘일시적인 현상’ ‘순간적인 반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잘못됐지만 거기까지 몰아붙인 민주당도 잘못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 대통령을 구속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과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꽤 들었다”며 “(민주당이)비상계엄 사태에 너무 놀라 허둥지둥하면서 조급하게 군 부분이 드러났다고 본다. 헌법에 따라, 법에 따라 절차대로 탄핵하고 수사하면 되는데 ‘사형시켜야 한다’는 등 과한 표현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 부분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구속 취소 청구 인용으로 변수가 생겼다”면서도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 배경(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은 인정될 것 같지 않아 결국 탄핵안은 인용될 것으로 본다”고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대통령 경선 현장서 이 대표가 연설하는 걸 처음 봤는데 감탄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버니 샌더스가 떠오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연설은)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직접적이었다. 손에 딱딱 쥐어주는 듯한 연설이었다”며 “연설 이후 이 대표에게 ‘잘 들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고맙습니다, 선배님’이라고 답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를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부정적 인식이 많은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이 대표는 지지하지 않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정부의 집중 표적이 된 점도 원인 중 하나겠지만 이 대표가 자초한 부분도 절반은 차지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능력 좋은데
인성은 결격

신 전 의원이 특히 지적한 부분은 ‘인성’이었다. 능력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인성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많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측근에 대한 언행이 아쉽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는 “대북 송금 사건을 보자.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사건으로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돼있는데, 이 대표는 이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부분은 법정서 다툰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그들의 상관으로서 ‘내 책임’이라는 발언이 있어야 했다. 이 대표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등 주변 인물이 연루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죄송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신 전 의원은 “판단이 빠른 건 좋지만 상황에 따라 말이 자주 바뀌는 부분은 좋지 않다. 특히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더니 본인이 연루되자 말이 없어졌다. 이 외에도 이 대표의 말 바꾸기 사례가 참 많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신 전 의원은 이 대표가 좀 더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당헌·당규대로 당원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하면 이 대표 85%, 나머지 후보 15%의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신 전 의원은 ‘일극 체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현재 민주당 상황서도 이 대표가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원 사이서 85%를 득표한다는 것은 사실상 추대나 다름없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본선이다. 수많은 선거를 겪어본 입장서 안전한 길만 찾는 후보는 낙선한다. 국민이 모를 것 같아도 다 알아본다. 어떤 후보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신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진행할 때는 협상단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약체로 꼽히던 후보다. 여론조사로는 이회창 후보는 물론, 정몽준 후보에게도 지는 걸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탄핵 반대 집회 인원에 놀라
여당은 분립, 야당은 위험천만

이어 “하지만 단일화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은 내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협상에 쟁점이 생겨도 ‘내가 다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곁에서 지켜본 노무현의 리더십은 ‘내던지는 것’이었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 ‘내려놓음’이 상대 후보를 이겨내는 힘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많은 선거를 치러본 신 전 의원은 후보는 가장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누가 봐도 이기는 상황서도 질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힘이 1명의 후보로 단일화를 이뤄내면 대선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내에 다음 대선서 ‘여당’이 되리라는 생각이 팽배한 지금 가장 ‘위험천만’한 때라고 분석했다.

신 전 의원은 “민주당원의 추대만으로는 이 대표의 인성이 야기한 위태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 특히 이런 단기간의 비상시국에는 양보와 희생 없이는 비토 세력을 설득하기 어렵다. 나는 이 대표에 앞서 민주당과 평생을 함께한 정치인이다. 이번에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이 주장하는 방식은 ‘오픈프라이머리’, 즉 완전국민경선제다.

그는 “국민의힘 지지자를 거르고 나머지 국민을 대상으로 경선을 치르는 방식을 채택하길 바란다. 무수한 선거를 치러본 입장서 역선택 방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식을 통해 선출된 민주당 후보와 다른 야당 후보가 또 한 번 경선을 치러 최종 후보를 결정하면 더 좋다. 이 대표가 최종 후보로 결정된다면 사법 리스크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국민은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헌‧당규가 문제가 된다면 비상시국임을 감안해 이 대표가 조치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은 이 대표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대표에게 열혈 지지자가 아닌 국민의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라고,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국민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 전 의원은 당내 소위 말하는 ‘비명(비 이재명)계’ 정치인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기댄 채 제대로 된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뭔가를 하고 싶으면 나서서 ‘깃발’을 들어야 한다. 깃발도 들지 못한 채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노처럼
던져라

신 전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좋은 상황을 생각하고 선거를 치르는 후보는 바보다.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선거 철칙이다. 과거 이회창 후보는 5년 내내 여론조사에서 1위였다. 그런데 본선에서는 졌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내게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 거기서 오는 감동이 국민의 선택을 좌우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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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