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혼자 싸우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외롭지만 영광스러운 고독”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낙연 전 총리는 전라남도지사를 시작으로 국무총리와 5선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아버지부터 2대에 걸쳐서 민주당 사람이었다”는 이 전 총리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 20년 넘게 몸담았던 민주당을 떠나 새미래민주당(구 새로운미래)을 꾸렸다. 최근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일까?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좌우서 벗어난 다른 시각으로 정치판을 보고 있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모두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요시사>는 이 전 총리와 만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다음은 이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

-지난 4·10 총선 이후 새미래민주당(이하 새민주) 지도부 총사퇴를 결심했다. 그동안의 근황은?

▲북한 대학원대학교서 북한을 공부하고 또 중국 문화원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지냈다. 지금은 강연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밤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어벙했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가 TV서 군인이 나오는 걸 보고 심각성을 알아챘다. 잘못된 계엄이라는 걸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가 계엄 사태 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 내 생각을 꾸준히 발표하는 게 내 역할이다. 다른 사람과 꼭 똑같아야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는 예상 못한 일이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미친 비상계엄으로 사회적 충격이 컸고, 빠른 수습이 필요했다. 그래도 정치권과 수사기관은 절차적 정당성과 합법성을 확보하면서 대처해야 했다. 법원 결정문이 지적했듯이 절차의 명확성과 수사 과정의 적법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 법원의 구속 취소가 나왔다. 공수처에 수사권이 있느냐 등을 미리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 공수처 수사권 유무는 앞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다고 한다. 민주당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구속 취소도 즉시항고 포기도 매우 드문 일이어서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법리적으로는 검찰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특히 구속집행정지나 보석 사건서 즉시항고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결정이 있었던 것을 검찰이 고려했다고 한다.

검찰이 헌재 결정을 존중했다면 그것을 탓하기는 곤란하지 않겠나? 구속 취소를 결정한 법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만 문제 삼는 것도 이상하다.

-윤 대통령 구속 취소로 정국이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지?

▲혼란을 줄이는 길은 먼저 각 기관이 법적 절차에 따라 차분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여야 정당도 극단적 주장으로 때로는 음모론까지 동원해 지지자들을 선동하지 말고 헌재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헌재와 법원의 판단이 국민에게 더 잘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 때문에 조급증을 보이고 있고, 윤 대통령은 헌재의 공기를 휘저어 놓으려고 무리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은 취소됐지만 헌재 탄핵 심판은 인용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용이든 아니든 정치 사회적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헌재의 판단이 무엇이건 승복하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좋겠다. 두 사람에 대한 재판도 지연시키거나 흔들지 말고 법원에 협조해 법원의 판단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지자들을 설득하기 바란다. 그것이 혼란을 줄이는 가장 좋은 길이다.

-윤 대통령보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이 먼저 나왔다. 헌재의 결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한 총리 탄핵 심판 선고가 윤 대통령보다 앞서 나오게 된 진짜 이유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해석은 가능할 것 같다.

첫째,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시간이 당초 계획보다 많이 걸리게 됐기 때문에 한 총리에 대한 선고를 윤 대통령과 동시 선고로 마냥 미루기는 어렵게 되지 않았을까?

둘째, 민주당이 최상목 부총리까지 탄핵소추해 직무 정지 상태로 만들면 국정 공백이 너무 커진다는 우려가 생기지 않았을까?

셋째, 한 총리를 앞세운 선고 순서가 윤 대통령과 한 총리에게 각각 어떤 선고를 할지와 관련이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호사가들은 이러쿵저러쿵 추측하겠지만⋯

“민주 조기 대선 이재명으로 안 된다”
“출마? 무엇이 국가에 보탬일지 고민”

-지난해 2월, 20년 넘게 몸 담아온 민주당을 탈당해 새민주를 창당했다. 창당에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직도 자금도 없고, 언론의 관심도 적어서 이슈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국민이 양당제에 익숙한 것도 우리로서는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의 굴레서 벗어나 객관의 눈으로 국가의 위기를 직시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된 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서 진영을 넘어 국가를 위해 바른 말하는 세력이 우리 말고는 없지 않은가. 외롭지만, 영광스러운 고독이다.

-창당해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진 순간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진영에 속해 있을 때 자기를 객관화하려는 본능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한 쪽으로 가게 되면 스스로 제동이 걸리고 그랬다. 당에 있을 때도 많이 공격을 받곤 했다. 정치인이라는 건 진영에 속해 있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또 그게 편하다. 그러나 나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그래서 큰 땅에 속해 있을 때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땅을 벗어나서는 훨씬 더 자유롭게 객관의 눈을 갖게 됐다.

-민주당을 탈당한 것을 후회한 적 없는지?

▲국회의원을 사퇴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할 자신이 없다. 특히 유권자들한테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고 종로 구민들한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탈당은 거의 불가피한 단계까지 몰려갔다. 민주당은 생각해야 할 걸 빼놓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할 무렵에 느닷없이 당내서 제명 처분이라는 게 나왔고 7만명 정도가 동참했다. 그 누구도 그걸 말리지도 않았고 말리는 척도 안 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여기가 내가 돌아갈 나의 집이다”라는 생각이 들까? 누구든 간에 자신이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식의 태도는 어른스럽지 못하다.

-야권 잠룡으로 불리는 이들의 이 전 총리에 대한 입장이 제각각이다. 박용진 전 의원은 “힘을 합치자”고 했고 김경수 지사는 “너무 멀리 갔다”고 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또, 조기 대선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그들에게 ‘사람을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버리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생각과 방식을 갖고 사는 법이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경시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민주당이 이 대표 이외의 좋은 후보를 내면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이미 밝혔다.

그 밖의 연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건, 두 가지의 원칙은 지키려 한다. 첫째는 국가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것, 둘째는 내가 살아온 방식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에 대해 가장 활발히 주장하고 있다. 개헌 시 역대 대통령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은 불행을 막을 수 있을까? 권력 구조 개편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책임총리에게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극한 투쟁의 정치를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바꾸려면 선거법을 고쳐 다당제를 실현해야 한다.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정당법을 고쳐 당수의 제왕적 권한을 없애거나 약화해야 한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불행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지도자의 도덕성과 절제력 같은 품성이 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도 개선은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헌정회를 비롯한 원로들과 대선주자 대부분이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당과 이 대표만 개헌에 소극적인 태도다. 왜 그렇다고 보는지?

▲이 대표도 2022년 대선서 개헌을 공약했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도 지금 개헌에 소극적인 것은 본인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빨리 대통령이 돼서 사법 리스크를 권력으로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본인의 그런 계산에 유리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대선판 흔드는 개헌? 제왕적 권력분산 필수”
“한 총리 빠르게 복귀해 트럼프와 소통해야”

따라서 개헌 논의로 지금의 판이 흔들리거나, 조기 대선에 차질이 생기거나, 다음 대통령의 임기가 줄어드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분열과 혼란에 따른 사회적 긴장을 낮추는 것이 그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과 민주당 후보 교체를 주장하지만 민주당에 현실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인데

▲동반 청산은 단순히 ‘대안이 있느냐 없느냐’로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 호불호의 문제도 아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이 시기에 두 사람의 정치를 청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면 그 두 사람보다 국가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대안부재론은 기득권자들의 거짓 논리일 뿐이다.

-조기 대선 상황이 온다면 대선에 출마할 건가? 한다면 독자 출마와 연대 중 어떤 쪽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이 국가에 보탬이 될지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이 좋은 후보를 낸다면, 당연히 협력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른 연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당의 노선을 당 대표의 한마디 말로 정할 수는 없다. 지금 민주당에 노선보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위기다. 대표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침 말과 저녁 말이 다르게 오락가락하면 신뢰가 생길 수 없다.

-민주당이 중도를 끌어안을 방법은? 중도는 ‘무엇’ 때문에 ‘어떻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생각하나?

▲중도가 아니더라도 국민을 끌어안으려면 진정성과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도층은 억지와 극단을 싫어하고 상식과 합리를 중시하는 집단이다. 민주당이든 누구든 중도층의 신뢰를 얻으려면 억지와 극단을 버리고 진정성 있게 상식과 합리를 추구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에 반대한 합리적 보수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당의 긴 역사를 보면 진보를 끌어안는 것이 더 나중이었다. 합리적 보수를 껴안는다는 건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이른바 보수 잠룡으로 불리는 인물들은 어떻게 평가하시나?

▲인물평은 사양하겠다. 다만 누구든 계엄 선포 같은 윤석열의 정치나 장외 극단 세력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고, 명태균 스캔들 같은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뒤에 대선에 임하기 바란다. 관계 정리는 그쪽 당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기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 대표를 비난할 자격도 없어진다.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폭탄과 이민자 배척,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미국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제와 안보가 모두 위태로운 시기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함께 탄핵소추돼 정부가 정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총리가 빨리 업무에 복귀해 정부 각 부문이 제대로 대응하도록 챙기고 민간의 협력도 구하기를 바란다. 미국통으로 정평이 난 총리가 트럼프와 소통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국이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도록 총리가 나서면 좋겠다.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호적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게 어렵더라도 최소한 안정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북한도 중국도 대한민국과의 안정적 관계가 중요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뭔가를 해보고 싶어 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때는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미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 대한 미련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미련을 가질 때 우리가 할 일이 생기는데, 미련을 갖지 않으면 할 일이 없어진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우선 미국과의 ‘노딜’ 경험도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라고 하는 뒷배가 튼튼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의 경우 미국의 견제도 있을 것이고, 미중 관계 자체도 예민한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우리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혜가 필요한 때다.

-끝으로 국민에게 한마디.

▲우리는 늘 지도자보다 국민이 더 훌륭했다. 그리고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먼저 나서서 국가를 구했던 전통이 있다. 이번에도 이 위기를 국민의 지혜와 용기로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단지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우리가 참아야 하느냐,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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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