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그 나라 말과 그 나라의 글은 그 나라가 홀로 섬의 특별한 빛이라.”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1910년 <보중친목회보> 창간호에 실은 ‘한나라말’에서 남긴 말이다. 한 나라의 말과 글이 그 나라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이룬다는 의미다. 우리말과 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한글날이 올해로 제정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가갸날’로 처음 기념된 뒤 한 세기가 흐른 것이다. 한글날의 바탕이 된 훈민정음은 세종이 1443년 창제한 뒤 1446년 세상에 반포됐다. 국립한글박물관에 따르면 기본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획을 더해 글자를 확장했으며, 기본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형상화했다. 누구나 쉽게 익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자였다. 1443년 세종 창제 이를 기념하는 날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480년 뒤였다. 1926년 11월4일,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8회갑을 맞아 서울의 요릿집 ‘식도원’에서 축하회를 열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는 이날 행사에 4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가갸’라는 이름은 당시 한글을 익힐 때 사용하던 글자 학습표의 첫머리
[일요시사 취재2팀] 강주모 기자 = 10월9일이면 어김없이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는 언론 보도들이 쏟아진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기리고,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설명하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독창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되풀이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만들었고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행됐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이 백성이 쉽게 익히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한글날에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과연 한글을 잘 쓰고 있느냐’다. 문자를 가진 것과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가갸날이 출발점 한글날의 역사부터가 한글이 결코 저절로 살아남은 문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29일을 ‘가갸날’로 기념한 것이 한글날의 출발점이었다. 1928년 명칭이 ‘한글날’로 바뀌었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기록을 토대로 현재의 10월9일이 한글날로 정착했다. 해방 이후 한글날은 국가적 기념일로 자리 잡았고, 1949년 법정공휴일이 됐다. 하지만 19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국경일로서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한글날이 제정된 지 100주년, 10월9일은 한글이 세상에 알려진 날이자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580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언어 생활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끝을 흐리는 모호한 화법이 만연하고, 방송 언어의 오용도 심심찮게 들린다. 반면 일상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즐기는 언어의 진화도 일어난다. 인공지능 시대 도래 여기에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며 한글은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현대 한국인의 언어 습관과 AI 시대의 한글을 조명해 본다. “이번에 금메달을 따게 돼 정말 기쁜 것 같아요.” “날씨가 참 좋은 것 같네요.” 최근 뉴스 인터뷰나 일상 대화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투 중 하나가 바로 ‘~인 것 같아요’다. 자신의 감정이나 명백한 객관적 사실 앞에서도 명확하게 단정 짓지 않고 추측성 어미를 사용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정보가 넘쳐나고 소통이 즉각적인 현대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단정적인 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검찰과 경찰을 내세운 정치권의 대리전에 국민의 삶이 볼모로 잡혔다. 법 제정 이후 70년 넘게 유지된 체계가 한순간에 바뀌면서 국민이 감내해야 할 후폭풍은 가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인수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탄했다. “검찰청 폐지, 수사‧기소 완전 분리 등은 중립에서 보면 사법 체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가 개혁인지, 개악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부분입니다. 이미 법안은 통과됐고 정책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국민 피해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예상되는 후폭풍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인수 전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부위원장을 만났다.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29회)에 합격한 이후 31년8개월 동안 공직생활을 하다가 2017년 권익위 부위원장(차관급)직을 마지막으로 ‘자연인’이 됐다. 인터뷰 동안 여러 차례 스스로 ‘시민’이라고 칭했지만 김 전 부위원장은 퇴직한 지 10년이 지난 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손에 쥔 대한민국 검찰은 오랜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녀 왔다.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젠가 썩듯이 수사의 공정성 문제가 되풀이됐다. 대상에 따라 수사의 칼날을 선택적으로 가누는 행태도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어두운 과거는 검찰개혁과 검찰청 폐지를 이끈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그동안 검찰을 향한 국민의 시선은 반신반의였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핵심 기관으로서 범죄를 단죄하고 법치를 수호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표적 수사부터 제 식구 감싸기까지, 오로지 권력 기구로 군림해 왔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강약약강 대한민국 검찰 흑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도왔지만 2008년 탈세 및 비리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자 진술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다.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통하여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검찰은 “권양숙 여사가 박 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표적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 등 검찰이 남긴 ‘흑역사’는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묻힐 뻔한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고 정치권과 재벌의 비리를 파헤친 ‘백역사’도 존재한다. 78년 만에 퇴장을 앞둔 검찰의 빛났던 순간들을 되짚어봤다. 검찰청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948년 출범한 검찰청은 오는 10월2일 폐지되고 기존 검찰이 맡아왔던 수사와 기소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나뉜다.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었던 검찰 중심의 형사사법 체계도 78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뒤집힌 결론 검찰의 긴 역사에는 성과만큼이나 적지 않은 논란과 과오도 함께했다. 정치적 중립성 논란부터 과잉·표적 수사, 피의사실 공표와 제 식구 감싸기까지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둘러싼 논쟁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되풀이됐다. 그렇다고 78년의 역사를 온통 ‘흑역사’로만 채울 수는 없다. 수사기관이 내린 결론을 다시 확인해 놓친 범죄의 실체를 밝혀내고, 복잡하게 얽힌 돈의 흐름을 추적해 거대 기업과 정치권의 비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검찰이었다. 때로는 한번 내려진 판단을 스스로 뒤집으면서까지 사건의 진실을 다시 좇기도 했다. 검찰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948년 문을 연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대중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작으로 문재인정부의 ‘검수완박’을 거쳐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청 폐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겠다는 목적으로 달려왔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78년 동안 이어진 대한민국 검찰개혁의 잔혹사와 거대한 제도의 변천 과정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검찰이 수사·기소·영장 청구 권한을 독점한 구조가 만들어진 건 1962년 제5차 개헌 당시다. 영장 청구의 주최를 검사로 규정함으로써 검찰이 수사 주도권을 쥐는 헌법적 근거가 됐다. 부작용 보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9년 김대중정부 시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지방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어 관리하고, 경찰을 지자체 소속으로 전환해 지역 특성에 맞는 독립적 치안 활동을 펼치겠다는 구상이었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자치경찰제가 공론화됐다. 먼저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주장했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자치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검찰이 한 살림을 차린 지 78년 만에 수사와 기소로 갈라서게 됐다. 검찰청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소만 전담하는 공소청과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 중대범죄수사청이 대신할 예정. 형사사법을 둘러싼 모든 플레이어가 새로운 룰로 짜인 판에 놓였다. 검사, 변호사, 판사, 고소·고발인, 경찰은 어떻게 달라질까? 다음 달 2일이면 1948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최근까지 이어지던 검찰 체제가 막을 내린다. 검사의 수사 개시권을 규정하던 형사소송법 제196조가 법문에서 완전히 삭제되면서다. 이제 수사와 기소를 맡고, 재판도 끌고 가던 검찰 원스톱 서비스가 사라진다. 대신 수사 따로, 기소 따로인 분업 체제로 바뀐다. 공소청은 법무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검수완박 검찰은 종전에 부패나 경제범죄 등 특정 중요 범죄에 대해 검사가 직접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피의자를 불러 수사를 개시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모든 범죄의 직접 수사가 경찰,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특별사법경찰관 등 전문 수사 기관으로 넘어간다. 조직 구조도 완전히 바뀐다. 경찰과 중수청 사건을 심사하고 사법 통제하는 ‘불송치사건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78년간 형사사법 절대 권력으로 군림했던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수사만 맡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기소만 맡는 공소청으로 갈라선다. 정작 새살림을 차릴 주인공은 냉담하게 반응한다. 인력 충원도 쉽지 않고, 장기 미제 사건이 증가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개혁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내세웠음에도 ‘제2 공수처’가 되는 게 아니냐는 회의감이 곳곳에서 표출된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다음 달 초면 대한민국 형사사법 역사는 검찰청이라는 단일 거대 기관의 종언을 맞이한다. 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공소 유지권을 동시에 갖던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기소를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조직을 전면 개편한다. 실패 구조 판박이 법조계 안팎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깊다. 출범 초기부터 인력 난항과 법 정당성 논란에 시달리는 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잔상이 중수청과 공소청 위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위험 신호는 현장 인력이 보이는 극심한 기피 현상이다. 중수청 이관 신청 마감 결과, 최종 충원율은 61.3%로 곤두박질쳤다. 현직 검사 중 중수청 근무를 희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검찰이 정권의 도구로 쓰였던 과거에 대해 “분명히 개혁해야 할 문제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해법은 조직을 없애는 게 아니라 대통령 인사권을 제한하고 기관 간 견제 장치를 세우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형사사법제도가 복잡해질수록 그 비용은 결국 변호사를 쉽게 선임하기 어려운 평범한 국민과 범죄 피해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의원이 바라보는 ‘개혁 이후의 사법 정의’는 무엇일까? 한국 형사사법 체계는 다음 달 2일부터 큰 전환점을 맞는다. 판사·검사·변호사를 모두 지낸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새로운 체제가 국민의 권리 구제와 수사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했다. <일요시사>는 조 의원을 만나 형사사법 체계 개편 이후 벌어질 변화와 정치권의 과제를 물었다. -수사·기소의 엄격한 분리라는 대원칙이 실제 형사사법 체계에서 현실성이 있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수사를 왜 하는가? 죄가 있는지 따져보고, 죄가 있으면 기소해서 처벌하려고 하는 거다. 그러니 수사와 기소는 분리할 수가 없다. 검사는 수사부·공판부로 나뉜다. 공판부 검사는 기록을 보고 공소 유지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기후는 공공재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고 모두가 더럽힐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80억 인구는 ‘기후 위기’의 가해자인 셈이다. 하지만 다 같이 저지른 일이니, 책임 소재는 흐릿해지고 죄책감은 옅어진다. 문제는 그 여파다. 체감 속도는 다를지언정 반드시 겪게 될 후폭풍을 인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과거 30년간의 기상 평균을 기후라고 정의한다. 기후가 변했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분포의 기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과학계는 기후 변화라는,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용어를 사용하다가 2010년대 들어 ‘기후 위기’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이제 ‘변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전 지구에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이 생긴 시기다. 기술은 있다 최형식 한국환경연구원 기후대기전략연구본부 탄소중립에너지연구실장은 “2019년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됐다. 더 진보적인 언론에서는 기후 붕괴, 기후 가열이라는 개념도 쓴다”고 설명했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기관으로 1993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문가들은 기후 문제가 ‘티핑 포인트’를 향해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티핑 포인트는 작은 변화가 쌓이다 어느 한순간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뜻한다. 폭발적인 반응과 거대한 변화가 뒤따른다. 기후 문제에 대한 인류의 노력은 지구 온도가 그 지점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한 사투에 가까워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와 지구의 온도는 비례한다. CO₂ 농도가 늘면 온실효과가 커져 더 따뜻해지는 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구의 기후는 1만년 전부터 안정화됐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급변했던 기후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바뀌면서 인류는 정착하게 됐고 동시에 사회 발전이 시작됐다. 중요성 알지만 산업혁명은 역사의 변곡점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류의 삶은 팽창했다. 하지만 기후 시스템으로 봤을 때는 위기의 시작점이었다. 1만년 동안 안정기를 유지했던 기후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이제 인류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추세다. 위기감을 느낀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5년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를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아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심화돼 가까운 미래에 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게 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미래 한반도 평균기온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은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극한의 날씨를 마주한 2040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일요시사>가 예측해 봤다(본 기사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Climate Change 2023:AR6 Synthesis Report)’와 기후에너지환경부·기상청이 공동으로 주관한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를 기반으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가 작성한 AI 시나리오임을 밝힌다). 2040년 초여름, 대한민국의 한 아파트. 아직 새벽이지만 실외 온도계는 이미 28.5℃를 가리킨다. 밤사이 기온이 2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경고한 대로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면서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8월 중순에나 잠깐 오던 폭염이 이제는 6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석 달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잿더미만,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침수 흔적만 남는 게 아니다. 불이 꺼지고 물이 빠진 뒤에는 어김없이 ‘청구서’가 날아온다. 그 규모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재난을 막기 위한 예방비까지 더해지면서 ‘영수증’은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재난이 지나간 뒤에는 피해 현장만큼이나 복잡한 계산이 시작된다. 무엇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피해액을 산정하고, 도로와 하천·주택 등 무너진 시설을 다시 복구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짠다. 이 과정에서 실제 피해 규모보다 복구에 들어가는 돈이 더 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배보다 배꼽 지난해 발생한 대형 재난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경북·경남·울산을 덮친 대형 산불의 피해액은 1조8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정부가 확정한 복구비는 1조8809억원으로 피해액보다 약 8000억원 많았다. 주택과 농·임업시설 등 사유시설 복구뿐 아니라 산림 복원과 공공시설 정비 등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집중호우가 남긴 계산서는 더 길었다. 7월16일부터 20일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1600호 특집에서 왜 기상청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기상청 관계자가 기자에게 물었다. 날씨 예보를 자주 틀린다는 뜻에서 생긴 오명 ‘구라청’도 그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가끔 중요한 일과를 앞두고, 혹은 매일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르면서. 다들 일기예보에 목을 매면서도 쉽사리 믿지 못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정말 기상청은 날씨를 잘 못 맞히는 걸까? 지난달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만에 경남 거제에 900㎜ 비가 쏟아졌다. 정점은 17일 새벽. 오전 1시32분부터 딱 한 시간 동안 124.5㎜가 내렸다. 1972년 거제에서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 시간당 강수량 기준 최다 기록이다. 기상청은 이 1시간 강수량을 분석해 “2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비”라고 평가했다. 5분의 3 확률 곧장 기상청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실제 강수량은 애초 예보보다 약 4배 많았다. 당일 직전까지도 기상청은 과잉 예보로 비판을 받아왔다. 광복절 연휴, 정작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는 오히려 너무 적게 예보했다. 200㎜짜리 재난과 900㎜짜리 재난은 대비 태세부터가 다르다. 옥포동에서는 산사태로 아파트 1층이 토사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비를 맞아도 그 무게는 다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보여준 반지하 침수 장면은 기후로 인한 빈부격차를 극단으로 보여준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에게 있어 폭우는 삶의 터전을 앗아간 재난이지만, 호화로운 단독주택에 사는 연교(조여정)에게는 그저 하룻밤 소동이었다. 오히려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던 연교는 천진난만하게 기택에게 말한다.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 비 안 오면 어쩔 뻔했어?” 유엔(UN)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발간한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적고 기반 시설이 미비한 지역일수록 기후 위기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기후 불평등’은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극화 2022년 기후 이상 현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서울과 경기 수원시 등은 사상 처음으로 ‘6월 열대야’를 맞이했고 8월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성인 허리만큼 차오른 빗물은 가장 먼저 사회적 약자를 덮쳤다. 그해 여름,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침수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기후 위기는 한때 공짜였던 자원에 가격표를 붙이며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열었다. 생수는 물론 깨끗한 공기까지 돈을 내고 사는 시대. 이제는 그 누구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옛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는다. 대신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고 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술 발전에 기꺼이 돈을 투자한다. 공장 굴뚝이 뿜는 탄소를 자원으로 바꾸고, AI로 기상 예측을 고도화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인간이 만든 위기를 인간의 기술로 되돌릴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큰 코’가 있다. 숨을 쉴 때마다 공기 중의 탄소를 빨아들인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6년간 50만톤, 아마존은 10년간 25만톤 분량 탄소 제거 크레디트를 이미 계약해 뒀다. 완공도 안 된 시설의 탄소 제거 실적에 두 회사가 자본을 나눠 예약했다. 탄소 잡는 기술 세계에서 가장 큰 코의 정체는 스트라토스(Stratos). 퍼미안 분지에 지은 직접공기포집(DAC) 시설이다. 스트라토스는 올해 2분기 가동을 목표하고 있었다. 최종 점검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설비 하나가 말썽을 부렸다. 핵심 기술은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가동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외웠던 ‘지역 특산물 지도’를 다시 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구 사과’ ‘동해 오징어’처럼 지역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 앞에서는 오랜 지역 특산물도 영원하지 않았다. 추위를 좋아하는 사과는 더 서늘한 북쪽을 찾아 올라가고, 망고는 한반도에 새 주소를 얻었으며, 따뜻해진 동해에는 새로운 물고기들이 자리 잡았다. 뜨거워진 땅과 바다를 따라 식재료는 고향을 떠나기 위해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는 어느새 우리 밥상 앞까지 와 있었다. 한때 대구는 ‘사과의 고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사과 재배지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사과 재배면적은 1993년 3만6021ha에서 2023년 2만151ha로 44%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강원은 483ha에서 1679ha로 247% 증가했다. 강원 지역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사과 재배면적은 2005년 144ha에서 2024년 1748ha로 12배 이상 늘었다. 과거 영남에 집중됐던 사과 생산 기반이 점차 강원 등 북부 지역으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달라진 먹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유엔이 기후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1988년 이후 약 40년이 지났고, 그사이 기후 재앙은 인류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의 경고는 무의미하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가며 예측한 기후 이상 현상은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됐다. 시작은 ‘지구 온난화’였다.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늘었고 이는 기온 상승 추세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기후변화였다. 온도 상승을 넘어 폭염, 폭우, 가뭄 등 기상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이어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대두됐다. 무너진 방어선 유엔이 기후 위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시점은 1988년이다. 당시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는 전 세계 과학자들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지구 온난화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던 시절,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국제 규범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경각심을 깨우치기 위해 ‘기후 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다른 쪽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다. 여름은 길어지고 밤은 식지 않으며, 산은 타고 바다는 뜨거워졌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 가뭄과 산불은 단순한 날씨의 변덕일까. 숫자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기후 위기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최근 대한민국의 날씨는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한쪽에서는 짧은 시간 강한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이어진다. 기상청은 지난 7월 기후 특성을 분석하면서 ‘지역 양극화’가 뚜렷했다고 평가했다. 언제부터 이상? 이번 여름도 이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남부지방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등 같은 시기 한반도 안에서 정반대의 기상현상이 동시에 발생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강도, 지속 기간과 지역별 편차다. 장기간 축적된 관측 자료에서도 기온과 강수, 해수온을 비롯한 여러 기후 지표가 과거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후는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매년 여름 체감하게 되는 ‘더위’다.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