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 꽃길 걷는 이재명 대세론 굳히기

여의주 문 잠룡 승천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성난 민심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비참하게 무너진 권력을 뒤로한 채 이제 모든 시선은 조기 대선을 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 예열 중이던 대선 열차의 브레이크를 풀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전원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헌정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다. 이야기만 무성했던 조기 대선 시나리오가 대통령 궐위에 따라 현실이 됐다.

숨 가쁜 60일
일정 보니…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은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의 탄핵 결정 선고 10일 이내에 대선일을 공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선일은 5월24일부터 6월3일 사이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하게 된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뒤 60일을 꽉 채운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열렸다. 과거 사례로 미뤄볼 때 이번에도 마지막 날인 6월3일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기 대선을 치르기 위해 당마다 후보 경선을 치르고 선거운동 등의 시간을 고려하면 선거일을 최대한 늦추는 게 효과적이라는 해석이다.

60일간의 숨 가쁜 레이스가 8년 만에 재현될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각 정당은 곧바로 대선후보 경선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력 주자였다.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2주 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모아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밖에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최성 고양시장 등 네 사람이 출사표를 던졌다.

경선 결과 문 전 대통령이 57.0%로 최종 후보에 올랐다.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도 목소리를 키웠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당내 기반이 약했던 터라 21.2%에 그쳤다. 안희정 후보는 21.5%를 득표했다. 문 전 대표는 경선 통과와 동시에 재빠르게 조기 대선 대비 체제에 돌입했다.

2025년인 지금은 이 대표가 대권주자 1위로 우뚝 섰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이전부터 경제, 민생, 안보 등 각종 분야서 두루 메시지를 내온 만큼 ‘여의도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숨 가쁜 대선…견고한 ‘확대명’ 아성
하나 마나 경선 패스하고 곧바로 추대?

큰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가 경선을 거쳐 최종 후보로 나설 전망이다. 당내 확고한 입지를 쥐고 있는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야말로 앞날에 꽃길이 깔렸기 때문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을 넘어 ‘확대명(확실히 대통령은 이재명)’이란 줄임말까지 생겼다.

이 대표의 입지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전날인 지난 3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이 대표가 33%로 1위를 기록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9%로 2위에 올랐으며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각각 4%를 기록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p, 응답률은 22.4%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로 인해 경선 없이 이 대표를 추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전당대회서 지지율 85%를 얻은 이 대표를 꺾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60일 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 만큼 하나 마나 한 경선을 생략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 대새론이 굳어짐에 따라 야권 잠룡들의 활동 반경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두관 전 의원 등이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록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김 전 지사는 윤 전 대통령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서 14일 동안 단식을 이어왔다. 윤 전 대통령 선고기일이 발표된 지난 1일에는 “광장서 탄핵 심판을 촉구해 온 시민들의 힘”이라며 “예상보다 지연된 선고가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숙론의 과정이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열두 글자가 꼭 필요하다”며 “헌법재판소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의로운 판결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내리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안 보이는
이 대항마

김 지사 역시 지하철역 등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조속한 파면을 요구했다. 지나가던 시민이 맥주캔을 던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윤석열을 파면한다’. 국민은 이 여덟 글자를 기다린다”며 마지막까지 탄핵 인용 결정을 촉구했다.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김 전 의원은 탄핵 인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당연히 파면을 예상하고 기원한다. 이번 선고를 계기로 헌법과 법령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잠룡들은 입 모아 윤석열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대권주자로서의 파급력은 약하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4일 전까지는 윤 전 대통령 파면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어 한 갈래의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라며 “문제는 이들이 대선주자로서 튀려고 존재감을 키울수록 ‘이재명 흔들기’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야권 분열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가 경쟁 상대인 만큼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호감도 만큼 비호감도도 높다. 전형적인 ‘스타 정치인’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중도 확장에 있어서는 걸림돌이 되기 쉽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의 행보가 점차 우클릭에 가까워질 것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조기 대선이 가시권에 접어들기 전부터 이 대표는 금투세와 “중도 보수” 발언 등 진보 진영과 다소 거리가 있는 해법을 내놨는데, 극우로 쏠려 있는 국민의힘을 대신해 합리적 보수를 흡수하고 중도층까지 챙기기 위함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이를 의식한 여권 잠룡은 너도나도 입 모아 ‘이재명 저격’에 나섰다. 모든 칼날이 이 대표를 향하면서 오히려 그가 존재감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이재명을 상대할 사람은 나”를 강조하며 저마다 조기 대선 출마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뛰다가
넘어질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서 “이 대표를 이기려면 중도 확장성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극명하게 차이를 낼 수 있다”며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나 안철수만이 이 대표를 이길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후보 중 중도확장성이 제일 크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의 2심이 무죄가 나온 것과 관련해 “오히려 잘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차기 대선을 각종 범죄로 기소된 사람과 하는 게 우리로서는 더 편하게 됐다”며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비꼬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전국민 25만원 지원금’을 언급하며 “급한 불 끄자며 물통 들고나오더니 선거 포스터부터 적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탄핵 선고 전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던 민주당은 이날을 기점으로 제대로 된 조기 대선 상태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꾸준히 끌고 가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거부한 상법 개정안과 소득세 개편 논의를 동시에 띄웠다.

당과 지도부가 “정권교체까지가 윤정부 심판”을 강조하는 사이 이 대표는 민생에 힘을 실으며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전략이다.

사법 리스크를 어느 정도 걷어낸 이 대표의 적은 이재명 본인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이재명-윤석열 두 사람은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이야기가 돌 만큼 서로의 실책에 기대 반사이익 효과를 누려왔다. 만일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과 동시에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한다면 이 대표는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한 채 60일을 달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극우 세력의 결집력도 여전히 단단하다.

눈만 뜨면 ‘이’ 찾는 여권 잠룡들
지지율 합쳐도 반…존재감만 키웠다

이에 따라 차기 대권주자 선출 과정서 윤심(윤 전 대통령의 의중)을 계승한 후보가 이 대표의 대항마로 나선다면 오히려 민주당에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시점부터 민주당은 조기 대선 승리를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유튜브 ‘터치다운 더300’에서 “탄핵 정국이란 시대정신에 비춰봤을 때 국민의 선택은 명료할 것”이라며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은 1%도 없다”고 힘줘 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할 명분도, 내용도, 실력도 없다. 많은 선거를 치러봤지만 이렇게 하면 선거 이길 수 없다”며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내란 종식, 민주주의 회복, 경제 회복, 민생 보호 등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서 봐도 내란 세력이 다시 국정을 책임지는 일이 있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대해 만약 국민의힘이 사과부터 하고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호소했다면 국민이 쳐다봐 주기라도 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동조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애정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런 점들이 최근 중도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분위기에 휩쓸려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며 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교만한 태도”라며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옹호한 정당이 배출한 후보에 대한 심판도 하시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지고 국민께 선택을 받을 수 있는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며 “앞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미래고 이것(선거)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 겸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팽팽한
긴장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정치인들의 말이 관용어처럼 굳어졌다. 이 대표가 대권주자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시시각각 요동치는 여의도에서는 그 누구도 100%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탄핵 정국의 끝을 향해가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결승선까지 확대명을 지킬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  날린 민주당 다음은 한덕수·최상목?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한 야당의 압박 수위가 낮아질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찬대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한 총리는 7번, 최 부총리는 9번의 거부권을 쓰며 국회가 처리한 법안을 가로막았다”며 “막중한 범죄 행위, 국회 무시,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국가적 피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직격했다.

앞서 지난 2일 최 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야당의 주도로 국회에 보고됐지만 표결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의 탄핵소추안을 헌법재판관을 압박용으로 해석한 만큼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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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