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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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늘 새 출발을 말한다. 새 정부, 새 여당, 새 국정 기조라는 언어는 정권 교체기의 필수 문장처럼 반복된다. 출범 초기의 메시지는 강하다. 과거와의 단절과 전 정부와 다른 방식, 국민 체감 중심의 국정 운영이 약속된다. 새로운 권력은 언제나 “이번은 다르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다. 6개월 전 출범한 이재명정부와 여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국민이 체감하는 장면은 묘하게도 낯설지 않다. 언어는 달라졌지만, 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전 정부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움의 선언 뒤에서 반복되는 대응 구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낯익음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 실패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 즉 같은 대응을 반복하며 누적되는 불신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를 설명하는 데 수학의 개념 하나가 유용하다. 바로 ‘레퓨닛 수(repunit)’다. 반복은 작게 시작…‘1’로 보이는 정치의 착시 수학에서 레퓨닛 수는 숫자 1이 반복되어 만들어지는 수다. 1, 11, 111, 1111처럼 구조는 단순하다. 그러나 자리수가 늘어날수록 그 크기와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반복은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되지만, 누적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무
현대는 기억을 가장 많이 저장하는 시대이자, 기억을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시대다. CCTV와 휴대전화 영상, 각종 로그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이 요약한 기록과 영상 정보는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그러나 기록과 영상이 늘어날수록, 사람이 경험한 기억은 오히려 더 자주 의심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흔히 “기록과 영상이 있으니 명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명확함이 과연 사람의 경험 전체를 대변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드라마 속 회상 장면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이제 기술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판단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드라마 속 회상, 왜 늘 제3자의 시선인가 드라마에서 회상 장면은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극중 인물이 과거를 떠올리면, 시청자는 이미 한 차례 방영된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회상의 주체는 인물이지만, 시선은 언제나 외부에 있다. 이 방식은 이해를 돕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은 과거를 장면 전체로 저장하지 않는다. 감정과 인식이 엮여 기억을 이룬다. 회상을 사실의 재생으로 처리하는 연출은 기억을 기록과 영상으로 동일시하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 결과 기억이 지닌 왜곡과
하루 동안 국내 언론이 보도하는 기사 수는 ‘과잉’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업계 추산으로 하루 평균 3만~4만건의 기사가 인터넷 공간에 쏟아지고, 이 가운데 6000~8000건이 네이버 뉴스에 노출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매일 기사를 훑어보는 뉴스 소비자의 체감은 다르다. 뉴스는 많으나 전반적이지 않고, 다양해 보이나 균형이 부족하다. 속도는 빠르나 맥락이 남지 않는다. 정보는 넘치는데 이해는 축적되지 않는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뉴스를 보는 국민이다. 뉴스 넘치나,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뉴스는 정치·경제·사회·생활문화·IT과학·세계라는 여섯개의 카테고리로 정리돼있다. 형식만 놓고 보면 세상을 고르게 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갖춘 듯 보인다. 각 영역을 나눠 배치한 구조는 정보의 균형을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순간, 이 질서는 빠르게 흔들린다. 주제는 여러개인 듯 보이지만, 시선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같은 인물, 같은 발언, 같은 갈등이 반복되며 뉴스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채 닮아간다. 겉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실제로 다뤄지는
2025년 한반도는 “자연은 고요하되, 정치와 외교는 폭풍”이라는 역설 속에 놓여 있었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비정상적 확장으로 실제 태풍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는 16년 만에 찾아온 극히 드문 기후 현상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침묵이 오히려 더 불안한 신호였는지, 정치·외교·경제에서는 연중 내내 태풍급 충격이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전국을 흔든 조기 대선, 정권 교체, 그리고 트럼프의 관세 폭풍까지 겹치며 한반도는 자연이 만들어낸 태풍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거대한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풍이 오지 않았다는 단순한 기상 통계는 올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태풍 없는 자연의 고요가 준 것은 평온이 아니라, 정치의 소용돌이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 풍경이었다. 16년 만에 태풍 0개가 남긴 기후 이례성 올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은 0개였다. 지난 1951년 기상 관측 이후 단 세 번뿐인 기록이고, 16년 만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정적은 자연의 자비도, 우연의 선물도 아니었다. 북태평양고기압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이례적으로 확장됐다. 평년에는 8월 말이면 물러나는 고기압이 9월 내내 한반도 남쪽을
2025-12-19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2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김 전 위원이 장동혁 지도부의 ‘강성 기조’ 행보를 비판하며 했던 발언들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호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장은 김 전 위원의 발언이 당을 극단적 체제에 비유하고, 당 운영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표현했으며, 국민의힘을 북한 노동당에 비유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밝혔다. 또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과 장동혁 대표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도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당무감사위는 김 전 위원의 행위가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자기 정치를 일삼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당무감사위가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2년 정지’를 권고하면서 당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장 대표는 김 전 최고위원의 징계를 통해 당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김 전 최고위원 징계는 국민의힘 내홍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친한(친 한동훈)계'의 반발과 당내 갈등은 당의 통합을 저해하고, 향후 정치적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은 이 같은 갈등을 해결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25-12-18 김명삼 대기자
커피숍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당연하게 제공되던 일회용컵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니게 됐다. 정부가 지난 17일부터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커피숍의 일회용컵 무상 제공을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회용컵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매장에 100~200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플라스틱 일회용컵 가격을 얼마나 받을지 가가게 자율적으로 정하되, 100~200원 정도는 되도록 생산원가 등을 반영한 ‘최저선’은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일회용(플라스틱컵) 시장 가격은 50~100원, 식음료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가격은 100~200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부 매장에서는 컵을 유상으로 판매하거나 텀블러 사용을 사실상 강제해야 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 취지는 이해하나 일회용컵 무상 제공 금지 정책이 과연 환경을 위한 합리적 대안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행정 편의적 규제이자 소비자 부담 전가에 불과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정책은 ‘환경 문제의 책임을 지나치게 개인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회용컵 사용이 늘어난 원인은 소비자의 도덕
2025-12-18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플랫폼 기업의 책임과 정보보호 체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사건의 규모와 파급력을 감안하면, 유출 원인과 사후 대응의 적절성을 엄정하게 따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다만 논의의 방향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비판이 기업 전체와 최고경영자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흐름으로 확장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흐려질 수 있다. 쿠팡 사태는 정보 유출이라는 단일 사안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하나의 잘못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를 되묻게 한다. 사건 및 쟁점은 명확하다 쿠팡에서 약 3700여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이다. 플랫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개인정보 보호 실패는 단순한 관리 소홀을 넘어 공공적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질문도 분명하다. 유출 경로는 무엇이었는지, 보안 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피해자 보호와 사후 조치는 충분했는지다. 이는 기술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책임을 중심으로 한 검증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명확한 질문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논의는 곧바로 쿠
2025-12-18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계약의 당사자는 당사자 일방이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거나 이행하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면, 상대방은 그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우리 민법은 제536조 제1항에서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해서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계약상 관계에 따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라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공평의 관념과 신의 원칙에 입각해 각 당사자가 부담하는 채무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고 관련되는 경우에 그 이행에 견련관계(상호의존관계)를 인정,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거나 이행의 제공을 하지 않은 채 당사자 일방의 채무 이행을 청구할 때에는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53899 판결 등 참조). 아파트 임대차가 종료함에 따라 발생하는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 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는 민법상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 따라서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도 임차인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해 임차건물을 계속 점유해 온 것이라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 반환 의무를
2025-12-17 홍경원 변호사
JTBC <싱어게인4>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실력이 비슷한 두 가수가 대결하면, 약간 더 잘한 가수에게 표가 몰리며 8개 ‘어게인’, 즉 올 어게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순간 역설이 시작된다. 누가 들어도 월등하다고 느끼는 가수가 오히려 올 어게인을 받지 못하고, 6:2나 7:1 같은 절묘한 스코어로 이기거나 심지어는 3:5로 지는 상황이 펼쳐진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의 장인데, 실제 표 흐름은 전혀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셈이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속에서는 아마 ‘어차피 저 사람은 올라갈 텐데, 나라도 덜 유리한 사람에게 표를 줘야지’라는 독백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조용한 마음의 계산 하나가 승부를 바꾸고, 강자의 정당한 우위를 희미하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고 부른다. 경쟁에서 약자에게 동정과 기대를 담은 지지가 몰리는 현상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약자를 응원한다. 승리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따뜻하고, 정의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강자에게 표를 주는 것은 마치 ‘이미 충분한 사람을 더 키
2025-12-16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몇 년 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에게 목을 졸려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계기로 경찰의 가혹행위나 지나친 폭력에 대한 전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고, 경찰 예산을 주지 말자거나, 경찰을 아예 폐지하라는 요구까지 나온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경찰 예산이 없어지거나 경찰이 폐지되지도 않았지만, 그로 인한 불똥은 경찰노조로 튀었다. 즉, 경찰노조가 플로이드 사망사건처럼 부적절하거나 심지어 위법하게 행동하는 경찰관까지 부당할 정도로 보호하고, 경찰 활동이나 경찰-지역사회 관계의 개선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경찰노조가 당연시되는 미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쟁은 여전하다. 경찰의 특수성과 공공성이 지나치리만큼 강조되는 한국 경찰의 노조화에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찰을 비롯한 공공 분야 노조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주요 비판을 제기하는데, 하나는 공직자에 대한 임금과 복지를 지나치게 상승시켜서 정부의 비용부담을 증대시킨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노조화와 집합적 협상이 관료적 경화증을 유발해 오히려 경찰의 생산성, 즉 공공안전의 향상을 위한 조직의 혁신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
2025-12-16 이윤호 교수
최근 생중계된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정책 점검의 자리를 넘어, 대통령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외화 불법 반출 검색 가능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공개 질타했다. “참 말이 기십니다” “옆으로 새지 말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는 표현이 연달아 나왔고, 임명 시기와 임기를 따지듯 묻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같은 날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도 역사 교육에 대해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고 질문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 있잖아요.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질타했다. 이 두 장면은 이 대통령의 통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송곳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대화는 답변을 요구하는 토론이 아니라, 태도를 점검하는 심문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회의는 정책의 문제를 따지기보다 얼마나 준비했는지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묻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정
2025-12-15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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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 김홍기 화백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박 대표이사 등 쿠팡 고위급 대관 직원들과 식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밀 회동’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 오는 17일 쿠팡 청문회가 예정됐지만 대관에 민주당 출신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어 ‘깜깜이 청문회’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업무보고 자리서 쿠팡을 겨냥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등 경제범죄 제재 방식의 전면 개편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webmaster@ilyosisa.co.kr>
2025-12-15 글·구성 정치부/사진 사진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12월이면 거리는 자연스럽게 캐럴로 채워졌다. 특별히 누가 틀자고 정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가게의 문틈에서, 노점의 스피커에서, 시장 골목의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캐럴은 연말이라는 시간 자체를 설명해 주는 공기였다. 특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캐럴은 물질이 아닌 분위기로 사람을 위로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연말을 버텨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온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 캐럴을 듣지 못한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저작권’이라고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거대한 합창장 ▲거리의 캐럴이 만들던 연말의 풍경=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12월의 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합창장이었다. 백화점 앞, 재래시장, 동네 가게, 심지어 버스 종점 근처에서도 캐럴은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음질은 거칠었고, 스피커는 낡았지만,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캐럴은 소비를 자극하는 음악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리듬이었다. 특별한 종교를
2025-12-14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요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묘한 변화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행동이나 사회 현상을 평가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쓰이던 말, “이기주의냐, 이타주의냐”라는 기준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도, 기업 조직에서도, 시민사회의 담론에서도 이 단어는 더 이상 중심적인 개념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마치 오랜 세월 사회를 관통해 온 도덕적 나침반이 어느 순간 조용히 책장에서 치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도덕으로 타인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권리와 구조로 문제를 설명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가정을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국가 경제를 위해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이타주의는 마치 가장 순수한 미덕처럼 포장됐고, 이기주의는 조직 공동체를 해치는 부정적 낙인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MZ세대가 사회의 중심축으로 올라오면서 “왜 내가 나를 지키는 선택이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워졌다. 이 흐름 속에서 이기주의·이타주의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한 잣대가 아니게 됐
2025-12-13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1일,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자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귀국길 공항 기자회견을 자처한 후 해당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고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부인했지만, 정부와 부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사의를 선택했다. 장관직 사의가 일견 공직자의 책임 있는 처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단순한 개인적 결단을 넘어 정치적, 제도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번 사퇴와 관련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판적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원칙 뒤흔드는 ‘사퇴 압박’ 혐의를 부인한 상태에서의 사퇴는 법치주의의 핵심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전 장관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복해 부정하며, 장관직을 내려놓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같은 선택은 공직자가 혐의를 밝히기 전에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장관 본인이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사실상 의혹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사퇴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2025-12-12
통일교를 둘러싼 정치권 유착 논란이 여의도 정가를 휘감고 있다. 통일교 한학자 총재를 포함한 관련 인물들이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 집단 입당 등과 관련해 재판받고 있고, 여야 정치인 다수가 금품 수수 의혹에 휘말리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특정 종교단체와 정치권의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범죄 종교집단(법인)에 대한 해산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문체부는 민법 38조에 따라 종교법인 해산 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지 검토했고, 법제처는 “가능하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회신했다. 그러자 통일교는 즉각 내부 공지를 통해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이며, 해산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종교 탄압이자 정치적 입막음이라고 반발했다. 통일교 사태는 정말 ‘종교의 자유’ 침해인가, 아니면 헌정 질서를 침탈한 세력에 대한 적법한 대응인가? 특검이 확보한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통일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반에 접촉 시도 ▲특정 정치인의 측근을 통해 국정·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도들을 조직적으로 가입시켜 막후에서 당의 민주적 운영을 파괴했고
2025-12-12 김명삼 대기자
최근 한국 정치가 다시 큰 파문에 휩싸였다.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은 특정 정당이 아닌 여야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고, 해저터널 청탁과 금품 제공, 정치인 실명까지 거론되며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재소환됐다. 이번 의혹의 중심에 선 것이 기업이 아니라, 종교단체라는 점이 충격을 더한다. 정치가 종교의 조직력·자금에 기대고, 종교가 정치 권력을 활용하는 ‘정교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신천지 논란까지 재부상하며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이미 무너졌음이 드러났고, 통일교 의혹 사건은 여야 모두가 얽히며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다. 정치가 스스로 투명성과 자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돈·조직·동원력’에 의존하는 한 이 같은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경유착에 이어 정교유착까지 끊어내는 새로운 대수술이다. 거센 파문, 통일교 의혹의 실체 통일교 의혹은 처음엔 국민의힘 일부 인사의 금품 의혹으로 보도됐지만, 곧 여야 전반으로 번지며 파문이 커졌다. 전 세계본부장이 실명과 청탁·금품 정황을 진술한 것이 정치권 전체를 흔들었고, 특검이 수개월간 내사만 유지한 점도 의혹을 키웠다
2025-12-12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