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16 14:39
JTBC <싱어게인4>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실력이 비슷한 두 가수가 대결하면, 약간 더 잘한 가수에게 표가 몰리며 8개 ‘어게인’, 즉 올 어게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순간 역설이 시작된다. 누가 들어도 월등하다고 느끼는 가수가 오히려 올 어게인을 받지 못하고, 6:2나 7:1 같은 절묘한 스코어로 이기거나 심지어는 3:5로 지는 상황이 펼쳐진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의 장인데, 실제 표 흐름은 전혀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셈이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속에서는 아마 ‘어차피 저 사람은 올라갈 텐데, 나라도 덜 유리한 사람에게 표를 줘야지’라는 독백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조용한 마음의 계산 하나가 승부를 바꾸고, 강자의 정당한 우위를 희미하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고 부른다. 경쟁에서 약자에게 동정과 기대를 담은 지지가 몰리는 현상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약자를 응원한다. 승리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따뜻하고, 정의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강자에게 표를 주는 것은 마치 ‘이미 충분한 사람을 더 키
몇 년 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에게 목을 졸려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계기로 경찰의 가혹행위나 지나친 폭력에 대한 전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고, 경찰 예산을 주지 말자거나, 경찰을 아예 폐지하라는 요구까지 나온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경찰 예산이 없어지거나 경찰이 폐지되지도 않았지만, 그로 인한 불똥은 경찰노조로 튀었다. 즉, 경찰노조가 플로이드 사망사건처럼 부적절하거나 심지어 위법하게 행동하는 경찰관까지 부당할 정도로 보호하고, 경찰 활동이나 경찰-지역사회 관계의 개선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경찰노조가 당연시되는 미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쟁은 여전하다. 경찰의 특수성과 공공성이 지나치리만큼 강조되는 한국 경찰의 노조화에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찰을 비롯한 공공 분야 노조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주요 비판을 제기하는데, 하나는 공직자에 대한 임금과 복지를 지나치게 상승시켜서 정부의 비용부담을 증대시킨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노조화와 집합적 협상이 관료적 경화증을 유발해 오히려 경찰의 생산성, 즉 공공안전의 향상을 위한 조직의 혁신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
최근 생중계된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정책 점검의 자리를 넘어, 대통령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외화 불법 반출 검색 가능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성을 높이며 공개 질타했다. “참 말이 기십니다” “옆으로 새지 말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는 표현이 연달아 나왔고, 임명 시기와 임기를 따지듯 묻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같은 날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도 역사 교육에 대해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고 질문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 있잖아요.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질타했다. 이 두 장면은 이 대통령의 통치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송곳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대화는 답변을 요구하는 토론이 아니라, 태도를 점검하는 심문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회의는 정책의 문제를 따지기보다 얼마나 준비했는지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묻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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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박 대표이사 등 쿠팡 고위급 대관 직원들과 식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밀 회동’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 오는 17일 쿠팡 청문회가 예정됐지만 대관에 민주당 출신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어 ‘깜깜이 청문회’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업무보고 자리서 쿠팡을 겨냥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등 경제범죄 제재 방식의 전면 개편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webmaster@ilyosisa.co.kr>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12월이면 거리는 자연스럽게 캐럴로 채워졌다. 특별히 누가 틀자고 정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가게의 문틈에서, 노점의 스피커에서, 시장 골목의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캐럴은 연말이라는 시간 자체를 설명해주는 공기였다. 특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캐럴은 물질이 아닌 분위기로 사람을 위로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연말을 버텨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온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 캐럴을 듣지 못한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저작권’이라고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거리의 캐럴이 만들던 연말의 풍경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12월의 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합창장이었다. 백화점 앞, 재래시장, 동네 가게, 심지어 버스 종점 근처에서도 캐럴은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음질은 거칠었고, 스피커는 낡았지만,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캐럴은 소비를 자극하는 음악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리듬이었다.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도 캐럴은 ‘함께 사
요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묘한 변화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행동이나 사회 현상을 평가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쓰이던 말, “이기주의냐, 이타주의냐”라는 기준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도, 기업 조직에서도, 시민사회의 담론에서도 이 단어는 더 이상 중심적인 개념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마치 오랜 세월 사회를 관통해 온 도덕적 나침반이 어느 순간 조용히 책장에서 치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도덕으로 타인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권리와 구조로 문제를 설명하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가정을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국가 경제를 위해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이타주의는 마치 가장 순수한 미덕처럼 포장됐고, 이기주의는 조직 공동체를 해치는 부정적 낙인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MZ세대가 사회의 중심축으로 올라오면서 “왜 내가 나를 지키는 선택이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워졌다. 이 흐름 속에서 이기주의·이타주의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한 잣대가 아니게 됐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1일,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휩싸이자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귀국길 공항 기자회견을 자처한 후 해당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고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부인했지만, 정부와 부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사의를 선택했다. 장관직 사의가 일견 공직자의 책임 있는 처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단순한 개인적 결단을 넘어 정치적, 제도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번 사퇴와 관련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판적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원칙 뒤흔드는 ‘사퇴 압박’ 혐의를 부인한 상태에서의 사퇴는 법치주의의 핵심 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전 장관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복해 부정하며, 장관직을 내려놓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같은 선택은 공직자가 혐의를 밝히기 전에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장관 본인이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사실상 의혹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사퇴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통일교를 둘러싼 정치권 유착 논란이 여의도 정가를 휘감고 있다. 통일교 한학자 총재를 포함한 관련 인물들이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 집단 입당 등과 관련해 재판받고 있고, 여야 정치인 다수가 금품 수수 의혹에 휘말리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특정 종교단체와 정치권의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범죄 종교집단(법인)에 대한 해산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문체부는 민법 38조에 따라 종교법인 해산 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지 검토했고, 법제처는 “가능하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회신했다. 그러자 통일교는 즉각 내부 공지를 통해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이며, 해산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종교 탄압이자 정치적 입막음이라고 반발했다. 통일교 사태는 정말 ‘종교의 자유’ 침해인가, 아니면 헌정 질서를 침탈한 세력에 대한 적법한 대응인가? 특검이 확보한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통일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반에 접촉 시도 ▲특정 정치인의 측근을 통해 국정·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신도들을 조직적으로 가입시켜 막후에서 당의 민주적 운영을 파괴했고
최근 한국 정치가 다시 큰 파문에 휩싸였다.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은 특정 정당이 아닌 여야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고, 해저터널 청탁과 금품 제공, 정치인 실명까지 거론되며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재소환됐다. 이번 의혹의 중심에 선 것이 기업이 아니라, 종교단체라는 점이 충격을 더한다. 정치가 종교의 조직력·자금에 기대고, 종교가 정치 권력을 활용하는 ‘정교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신천지 논란까지 재부상하며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이미 무너졌음이 드러났고, 통일교 의혹 사건은 여야 모두가 얽히며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다. 정치가 스스로 투명성과 자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돈·조직·동원력’에 의존하는 한 이 같은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경유착에 이어 정교유착까지 끊어내는 새로운 대수술이다. 거센 파문, 통일교 의혹의 실체 통일교 의혹은 처음엔 국민의힘 일부 인사의 금품 의혹으로 보도됐지만, 곧 여야 전반으로 번지며 파문이 커졌다. 전 세계본부장이 실명과 청탁·금품 정황을 진술한 것이 정치권 전체를 흔들었고, 특검이 수개월간 내사만 유지한 점도 의혹을 키웠다
한국 경제에서 문제는 분야별로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환율은 환율대로 흔들리고,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불안하다. 가계부채는 또 다른 위기처럼 따로 떼어 말하지만 사실 이것도 부동산에 엮인 문제다. 부동산 거품과 환율 불안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한국 경제의 모순이다. 한국 원화가 유독 심하게 흔들리는 이유는 한국 경제 내부의 취약한 구조가 외부 충격을 키운다는 데 있고 그 취약성의 중심에는 늘 부동산이 있다. 한국의 자산 구조는 극단적이다.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주택에 묶여 있고, 가계부채는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났다. 경제는 생산보다 부동산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 집값이 흔들리면 금융 시스템부터 불안해진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동산 정책을 ‘실효적으로 조정 가능한 변수’로 놓기 어렵다.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됐다는 얘기다. 부동산 가격이 조정되면 대출 부실이 터진다. 부실이 커지면 금융 불안이 생기고, 금융 불안은 곧바로 환율 불안으로 이어진다. 한국이 금리를 미국처럼 과감하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환율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따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는 순간 부동산시장에 충격이 오고, 과도한 가
가짜뉴스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너무도 분명하다. 허위 정보들이 선거판 전체를 흔들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또는 특정 단체 등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의혹 제기 형식으로 도배되면서 이들이 받는 고통과 피해는 도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가짜뉴스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의해 통과됐다.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불법 또는 허위 조작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법원에서 불법·허위 조작 정보로 판결된 정보를 2회 이상 유통한 경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최대 10억원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명분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와 언론 자유의 근간을 뒤흔드는 방향으로 설계돼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도 공존한다. 이 법이 향하는 방향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아닌 ‘권력이 정
호주가 지난 10일부터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 학계가 동시에 격렬한 논쟁 속으로 들어섰다. 메타는 이미 13~15세 계정 차단 작업에 돌입했고, 유튜브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호주의 이번 사용 금지 결정은 ‘세계 최초’라는 이유만으로도 충격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 뒤에 숨은 시대적 질문이다. ‘디지털 세대의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업의 자유·아동의 자유·부모의 권리는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 실험은 단순히 호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이제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선택의 문제다. 호주 정부가 이 법안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청소년 자살 증가, 알고리즘 중독 문제, 자존감 하락과 불안·우울의 폭발적 증가라는 현실이 자리한다. 애니카 웰스 통신 장관은 “알고리즘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고까지 말하며 강력한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타나 유튜브가 제시하는 논리는 다르다. 이들은 플랫폼 내에서 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며,
배우 조진웅의 <디스패치> 단독 보도로 비판 여론이 들끓던 가운데, 일각에서 옹호 목소리가 나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 SNS에는 찬반 의견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유불리에 따라 해당 매체에 ‘소년법 위반’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거나 ‘굳이 과거를 들춰내 부관참시까지 해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조진웅은 보도 하루 만인 지난 6일, 소속사를 통해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겠다”며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사건의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명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과도한 옹호 여론은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옹호’ 자체가 아닌 근거 없이, 선호 감정에 기댄 채 비판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팬덤적 충성심이 공적 논쟁을 흐리고, 진실 탐구의 과정을 방해하는 전형적인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조진웅이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빈틈없는 캐릭터 해석, 연기력에 대한 평단의 신뢰, 꾸준한 작품 활동은 그에게 탄탄한 팬층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이번 논란에서 ‘면죄부’처럼 작용하며, 그의 행동이나 발언에
지난 9일, 고등학교 동기들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작은 횟집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세월은 누구 하나 비켜가지 않았다. 한때 각이 살아 있던 얼굴의 선들은 둥글어졌고, 철문처럼 단단하던 어깨는 세월의 무게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대부분 은퇴했고, 삶의 속도도 예전보다 한참 느려져 있었다. 그런데 속도만 느려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폭과 깊이도 함께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메뉴를 고르고 술잔을 맞부딪히는 동안 대화는 결국 한 지점으로 모였다. “요즘 기억력이 너무 떨어진 것 같지 않냐”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농담처럼 시작된 말이었지만, 결국 모두가 자신을 향한 진단으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기억력이 약해진 게 아니라, 관심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웃음이 터졌지만, 금세 조용한 동의가 흘렀다. 예전에는 몸이 피곤해도 새로운 기술과 사회 문제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조직에서 벌어지는 변화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은퇴와 함께 일상이 안정되는 순간, ‘알아야 할 이유’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세상과의 연결도 느슨해졌다. 관심이 사라지니 기억도 함께 빠져나간 것처럼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사도세자’를 떠올린다. 사도세자는 왕위를 승계하도록 이미 정해진 세자였지만, 아버지 영조와의 뒤틀린 관계 속에서 신임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쳤다. 사도세자는 비극적 최후 때문에 단점만 강조되지만, 실제 장점도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정치 감각이 뛰어나고 민생 부담을 줄이려는 개혁을 보였으며, 예술적 재능과 개방적 소통 능력도 돋보였다. 물론 감정 기복과 충동성, 측근 정치, 영조와의 갈등이라는 약점도 있었지만, 사도세자는 불안정함과 뛰어난 자질이 동시에 존재했던 복합적 세자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죽음 이후에는 ‘생각할 ‘사(思)’, 그리고 슬퍼할 ‘도(悼)’가 붙어 사도세자라고 불리게 됐다. 제도가 보장한 세자라는 지위도 결국 아버지라는 절대 권력자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 즉 ‘제도의 후계’가 ‘권력자의 마음’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냉혹한 역사적 증거다. 약 5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구조에서도 이와 닮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 유고 시 국가 권력을 승계하는 0순위 공식 후계자다. 제도만 보면 총리는
최근 음주 운전 관련 혐의로 수형 중인 어느 대중가수에게 교도관이 거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여기서 대중들이 관심을 보였던 이유 중 하나는, 물론 당사자가 유명 연예인이기에 그에게 교도관이 그에게 거금을 요구했다는 것일 테지만, 대중들이 궁금해한 것은 그가 수용된 교도소일 것이다. 물론 교도소가 뭐가 궁금할까 하겠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난 교도소는 다른 50여개의 공영 교도소와는 전혀 다른 민영 교도소이다. 민영 교도소가 운영을 시작한 지가 벌써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우리가 민영 교도소를 시작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인지 아직도 우리나라에 민영 교도소는 단 한 곳밖에 없다.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숙하지 않고 낯설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외국,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전체 수형자 수보다 더 많은 수형자가 민영 교도소에 수용돼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이토록 민영 교도소가 범죄자 수용에 있어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이 같은 교정의 민영화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쩌면 다양한 이유와 계기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교정을 비롯한 형사사법이
지난 6일, 배우 조진웅(조원준·49)은 10대 시절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배우 활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겠다. 지난 과오에 대해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이자 도리”라며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매체 <디스패치>의 ‘소년범’ 보도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번 조진웅의 은퇴 선언은 그의 팬들은 물론, 국내 영화 업계에게도 충격이 상당했다. 수십년 전의 과거라 할지라도 그가 대중 앞에 다시 등장할 때마다 피해자나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과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결단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단순한 ‘과거사 폭로→민낯 고백→은퇴’의 공식으로만 끝나기엔 너무 많은 의미를 남긴다. 왜냐하면 이 논란은 우리 사회가 미성년 시절 저지른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한 연예인, 또는 공인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대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단지 개인 한 명의 인생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년범’ 인식, 사법제도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을 둘러싼 성추행 의혹이 일파만파다. 장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고소인 A씨가 지난해 말 저녁 술자리서 추행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장 의원은 ‘무고 맞고소’로 받아쳤다. 아울러 장 의원은 “사태의 본질은 ‘데이트 폭력’”이라고 밝혔다. 당시 술자리에 찾아온 A씨의 남자친구인 B씨의 폭언으로 모두가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이러한 장 의원의 태도를 “2차 가해”라고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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