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우연을 만난다. 길을 걷다 오랜 친구를 마주치고, 생각하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며,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넘긴다. 그러나 어떤 순간들은 단순한 확률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정교하게 맞물린다.
그때 우리는 묻게 된다. 이것이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연결의 결과일까?
지난 19일 저녁, 필자는 선배와 종로3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채 걷다가 육회 간판이 눈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일행이 들어왔다. 그들 역시 육회를 먹기 위해 그 식당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들어온 일행 중 한 명이 필자의 선배와 아는 사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됐다. 알고 보니 그들은 강미향 국제어싱협회 회장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던 두 개의 만남이 한 공간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우연이 겹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맞물려 있었다. 그 시간에 그 길을 걸은 선택, 눈에 들어온 간판, 같은 목적을 가진 또 다른 일행, 그리고 오래된 인연까지.
각각은 따로 존재해 온 시간의 결과였고, 그 선들이 한 점에서 교차했다.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동시성’이라고 부른다.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지만 의미로 연결되는 사건들의 일치다. 겉으로 보면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경험과 선택, 관계가 축적된 흐름이 특정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성은 ‘지금’의 사건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이 현재에 모습을 드러낸 결과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필자의 시집 제목인 <멀리서 다가오는 당신에게>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떤 만남을 갑작스럽다고 말하지만, 그 만남은 결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저편에서 이미 시작된 흐름이 서서히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동시성은 바로 그 과정이 한 시점에서 겹쳐지는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동시성은 순간의 기적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놀라지만, 그 결과는 이미 과거의 수많은 선택과 관계가 만들어낸 것이다. 눈앞의 사건은 시작이 아니라 도착점이다. 그래서 동시성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도달한 순간’에 가깝다.
이 개념은 예정설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의 삶을 단절된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관점이다. 물론 하나는 신의 계획으로, 다른 하나는 의미의 연결로 설명된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우리의 삶은 점이 아니라 선이며, 사건은 흩어져 있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인식이다.
종로의 그 식당에서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강미향 회장의 고희는 단순한 생일이 아니다. 7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쌓인 인연과 선택, 경험이 한 자리에 모인 결과다. 그리고 필자가 그 자리에 합석한 일 역시 그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교차점일 수 있다.
그날 함께한 선배는 장영실기념사업회 이사장이다. 이 또한 의미 있는 연결이다. 장영실은 시간과 하늘의 움직임을 통해 질서를 읽어낸 인물이다. 그의 발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보이는 장치’였다. 자격루가 시간을 드러내듯, 동시성은 보이지 않던 관계의 흐름을 드러낸다.
장영실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사건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늘의 움직임과 인간의 삶은 하나의 리듬 안에 있다. 동시성 역시 그 리듬의 한 표현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서 출발한 사건들이 같은 박자에서 만나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동시성의 본질이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도 종종 ‘우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선택 역시 과거의 경험과 관계, 판단이 축적된 결과다. 인생의 방향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 쌓인 흐름이 어느 순간 결정으로 드러날 뿐이다. 정치도, 경제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은 순간이지만, 만들어진 것은 시간이다.
그래서 동시성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연결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것을 우연으로 부르지만, 그 안에는 이미 충분히 축적된 시간이 있다. 낯설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순간은 시간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다. 보이지 않던 흐름이 한 점에서 교차하며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결과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시간의 구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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