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8 10:35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그러나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되도록 단계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럼 그 사이 공백 기간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금 정년 연장 논의는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니라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공식 간담회를 갖고 65세 정년 연장 논의를 속도감 있게 논의했다. 국민의힘도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디를 향하는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밀어낼지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정년을 65세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묻는 정치의 시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정년 60세 제도는 이미 현실과 어긋나 있다. 2020년 65세 이상 인구는 약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였고, 올해에는 마침내 1000만명을 넘어 전체의 20%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오는 2030년에는 1200만명, 국민 넷 중 한 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돌입한다. 2040년이 되면 1500만명, 국민 셋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법
며칠 전, 한 중년 남성이 뇌 CT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침대를 가리켰고, 그는 조심스럽게 누웠다. 하얀 조명 아래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이기보다 어디론가 실려가기 직전의 몸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꼭 누워서 해야 하나요? 이렇게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간호사는 “다들 이렇게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 말은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주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멈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환자가 눕는 장면은 너무 익숙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피를 뽑을 때, 초음파나 심전도, 혈압 측정을 할 때도 환자는 자동으로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사람은 누우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눈을 감고 누운 모습은 영락없이 ‘죽음의 자세’를 닮는다. 그래서 노인 환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내가 살아 있는 건지, 실려가는 건지 모르겠다.” 필자의 작품 중에 도시의 밤을 ‘죽은 자로 가득한 공동묘지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도시의 밤이 캄캄해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잠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죽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에서 “AI 고속도로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말했다. 연설 속 ‘인공지능’은 28번 등장했지만 ‘노동자’ ‘존엄’ ‘불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미래를 설계했지만, 그 미래까지 걸어가야 할 ‘사람의 속도’는 없었다. 기술이 앞서 달리고 있는 시대, 인간의 속도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기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기술의 시간은 직선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뻗어나가며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원을 그리며 돌아온다. 상처를 받으면 멈추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용기를 모아야 한다. 로봇은 고장 나면 재부팅하면 되지만, 인간은 다시 걷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24시간 돌아가지만, 사람은 잠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 두 시간이 겹치지 못하면 사회는 균열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바로 그 틈새다. AI는 코드를 짜며, 로봇은 서빙하고, 챗봇은 감정을 흉내낸다. 플랫폼은 우리의 소비, 이동, 감정까지 설계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의 불안, 외로움, 존엄은 코드로
심야 시간인 오전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중단하자는 택배노조의 요구가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지난달 29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최소한의 수면과 건강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새벽 배송 제한을 공식 선언했다. 과로사, 뇌출혈,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졌던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멈춰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출범시킨 ‘택배 사회적대화기구’로 넘어갔고, 여기서 합의가 나오면 사실상 내년부터 새벽 배송 중단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200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는 반발한다. 이미 새벽 배송은 편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동탄·송도·김해 같은 신도시, 대형마트가 부족한 지역, 늦은 밤까지 아이를 재우고 장을 보는 워킹맘들에겐 생존형 서비스다. 한국노총조차 “새벽 배송 전면 중단은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노동권과 소비자권, 두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커머스 업계도 “심야 배송 중단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새벽 배송은 전날 밤 농가와 공장에서 물류센터로 물건이 들어오고, 밤새 분류 작업을 거쳐 오전 7시 전에 배송되기 때문에 오전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때 조용히 묻혔던 ‘대통령 재판중지법’이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업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자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무관하다. 법원이 사실상 확인했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맞섰다. 잠깐 멈춰 있던 법의 시계가 다시 정치의 시계를 흔들어 깨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쟁점은 단순하지 않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되지 않는다”고 규정하지만 그 ‘소추’가 기소 이전만 막는 것인지, 이미 개시된 재판까지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이 틈을 정치가 파고들었다. 지난 6월 서울고등법원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해석상 재판을 진행할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이재명 대통령 관련 형사재판을 잠정 정지했다. 그 순간부터 법정은 멈추고, 정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대통령 재판중지법)은 이 공백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대통령 당선인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절차를 정지한다”는 단 한 문장을 306조에 추가하는 방식
2025-11-03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지난달 마지막 한 주,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이 한반도에 집결한 거대한 국제 무대였다. 특히 한미·미중·한일·한중 정상회담 등 외교 일정이 이어지며 한국은 잠시 세계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가 됐다. 이번 APEC에서 미국은 동맹의 복원을, 중국은 존재감의 회복을, 한국은 균형 외교를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완벽한 만족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협상에서 일부 성과를 얻었지만, 미중 간 패권 경쟁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대화의 문을 열었지만 실질적 돌파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APEC은 결국 균형의 외교 무대였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고, 각자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무대였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외교력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AI 공급망 협력과 기후 연대 구상에서도 한국은 중재자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외교의 시간은 길지 않다. 경주에서 외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내 정치의 시계가 잠시 멈췄지만, APEC이 끝난 후 한국은 다시 정치의 시간으로 복귀했다. 특히 많은 정치
2025-11-02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됐다. 언뜻 들으면 한국이 마침내 ‘핵잠수함 보유국’ 반열에 오른 듯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번 승인은 핵연료 공급을 허용하겠다는 수준일 뿐, 잠수함의 건조 장소와 핵심 기술의 주도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핵연료는 주되, 건조는 미국에서 하라는 조건이 붙은 셈이다. 겉으론 한국의 해양 작전 능력 강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기술 의존 심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핵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은 이름 그대로 핵(원자력)을 추진력으로 쓰는 잠수함이다.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로 프로펠러를 돌린다. 디젤엔진 잠수함이 2~3일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를 흡입해야 하는 반면, 핵잠수함은 수개월 동안 물속에서 작전할 수 있다. 연료 한번 주입으로 20년간 운항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며, 장시간 잠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만 핵잠수함이라는 말이 곧 핵무
2025-11-01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지난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해공항 공군기지 의전실인 ‘나래마루’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두 정상의 만남은 짧았다. 시진핑 주석은 오전 10시30분 김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장으로 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오후 1시경 곧바로 미국행 전용기에 올랐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각각 1박2일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들이 동시에 머문 시간은 고작 150분이었다. 그 중 100분이 회담 시간이었다. 두 정상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물렀다. 이례적으로 시진핑은 한국 정부의 공식 환영식 없이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했고, 트럼프는 회담 직후 곧장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올라 떠났다. 이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교 무대에서 ‘시간’과 ‘공간’은 종종 언어보다 더 정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트럼프에게 김해는 단순한 회담 장소였을 뿐이다. 그는 경주 APEC 일정을 건너뛰고, 귀국 직전 시진핑과의 단독 회담만을 위해 경주와 가까운 김해를 택했을 것이다. 반면 시진핑은 한국 도착 직후 곧바로 한미 정상회담에 임했고, 이후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한국을
2025-10-31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글을 쓰는 일은 종종 책상 위에서 세상을 재단하는 일과 닮아 있다. 작가의 의도와 지식, 그리고 모니터 속 자료와 키보드만으로 완성되는 문장은 깔끔하다. 그러나 현실의 분위기는 빠져 있다. 필자는 새벽에 칼럼을 쓰고 원고를 핸드폰으로 옮긴 후, 퇴고는 일부러 전철이나 커피숍에서 한다. 사람 속, 소음 속, 그리고 광고판과 스마트폰 화면 사이에서 읽으면 문장이 달리 보인다. 책상 위에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대중 속에선 낯설게 보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때 비로소 독자의 언어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결국 공간의 언어를 통과해야 생명력이 살아난다. 책상 위의 문장은 논리의 산물이고, 거리 위의 문장은 체감의 산물이다. 후자가 훨씬 더 감동적이고 진실에 가깝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현장에 가야 한다. 회의실이나 SNS 정보만으론 민심을 읽을 수 없다. 요즘 정치인들은 현장을 말하지만, 실제는 현장감이 부족하다. 현장은 발로 밟아야 한다. 냄새를 맡고, 눈빛을 보고, 소리를 들어야 한다. 책상 위의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도 시장에서 만난 상인의 한숨 한번이 더 정확한 현실을 알려준다. 그 한숨이 정책의 첫 문장이 되고 핵심이 돼야
2025-10-30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10월 마지막 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가 다시 한번 역사의 중심이 됐다. 천년 고도가 이번엔 세계의 외교무대가 된 것이다. APEC 참가자 숫자도 미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정상과 장관급 인사, 언론, 경제계 대표단 등 약 2만여명이나 된다. 지난 27일부터 시작된 APEC 정상회의 주간은 ‘경주 슈퍼위크’로 단순한 국제행사 기간이 아니다. 한미·미중·한일·한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한반도가 다시 세계 질서의 시험대에 오르는 기간이다. 필자는 경주 APEC에서 한국 외교가 ‘처음처럼, 지금처럼, 나중처럼’의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처럼’은 외교의 근본이다. 한국 외교의 뿌리는 한미동맹, 자유무역, 그리고 다자 협력의 세 기둥 위에 서 있다. 이번 APEC의 주제 ‘연결, 혁신, 번영’은 그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선언과도 같다. 그래서 의장국으로서 한국은 근본적인 외교 차원에서 APEC 정상회의에 임해야 한다. AI 협력, 인구 구조 변화 대응 등 이번 APEC 의제는 기술과 사람을 동시에 잇는 새로운 다자 질서의 모색이다. 세계가 블록화와 보호무역으로 흔들릴수록 원칙은 더
2025-10-29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최근 사회 전반에서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친환경 소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 ‘탄소 중립’ ‘친환경 경영’ 같은 기업들의 홍보 문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동시에 근거가 부족하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친환경을 내세우는 ‘그린워싱’ 행위도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효과가 없는 제품을 광고·홍보로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녹색 거짓말’을 뜻한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은 지난 23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최근 5년간 부당한 환경성 표시·광고 행위인 그린워싱 1만3122건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린워싱 폭증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린워싱 사례가 폭증했다는 것은, 지속 가능성을 외치며 성장한 기업이 사실상 ‘위선의 기술’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켰다는 의미로, 이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우리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윤리경영이 아닌 이미지 경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홍보할 땐 “2050 탄소중립 달성” “지
2025-10-28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겉으로 보기엔 훈훈한 정책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은 농어촌에 매달 15만원씩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은 농어촌 살리기의 상징처럼 들린다. 연천, 정선, 청양, 순창, 신안, 영양, 남해 등 7개 군이 그 실험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 사업이 정치적 상징과 정책적 실효성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문제는 매달 15만원, 1년 180만원. 그 돈이 지역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현금이 아니라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비도 어렵다. 지역 상권에 돈이 돌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질적 구매력은 제약된다. 현금 대신 쿠폰을 쥐어준 격이다. 매달 15만원은 하루에 5000원 꼴로 농어촌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나 소멸 위기를 막기엔 더더욱 미약하다. 재정 구조의 불균형도 문제다. 국비는 전체의 40%뿐이고, 나머지 60%는 지방비다. 이번에 선정된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10% 내외로 매우 열악하다. 즉 추가 지출은 곧 다른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25-10-27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1979년 10월 26일, 역사는 그날을 결코 잊지 않는다. 당시 궁정동 안가의 총성은 한 지도자의 생애를 마감한 사건이자,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그림자는 여전히 대한민국 현대사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46년이 지난 지금, 그 중심에 있던 김계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이름이 다시 법정에서 불리고 있다. 그는 10·26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핵심 인물이자, 그 후 ‘역사의 방관자’로 기록돼온 인물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삶과 역할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1980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 미수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8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이후 그는 공직이나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고, 세상과 거리를 둔 채 “나는 그날 이후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는 말을 남기며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은 당시에도 명확한 물증보다 ‘정치적 책임’의 무게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직접 총을 쏜 것도, 음모를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자리에 있었고, 침묵했다는 이유로 죄인이 됐다. 유족은 그가 사망한 이듬해 “당시 민간인 신분임
2025-10-26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열흘,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의 처방이 약이 될지 또 다른 불안을 키울지 아직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10·15 부동산 대책은 6·27 대출 규제와 9·7 공급 대책에 이어 나온 이재명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 출범 이후 넉 달 만에 세 번의 부동산 정책이 나왔다는 건 정부가 그만큼 현재 부동산 시장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 중심으로 아파트값 상승, 거래량 증가, 갭투자(전세 낀 매매)의 재확산 징후가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그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지정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이익을 기대한 수요가 여전히 살아있어 이번에 역풍선효과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10·15 부동산 대책의 골자는 서울 25개 구와 경기도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동시에 지정해, 사실상 3중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는 갭투자 구조 차단 목적으로 주택 매매 시 실거주 2년을 의무화했고, 매매 전 구청장 허가를 득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수도권 고가주택(15
2025-10-25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 오는 29일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이튿 날엔 트럼프와 시진핑이 미·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반도가 국제 정치의 한복판으로 소환된 셈이다. 이번 만남의 표면적 주제는 ‘세계평화와 관세 협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패권과 선택’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균형의 외교 시험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늘 강대국의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잡아야 했다. 냉전의 대립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자유와 시장을 내세우며 동맹의 결속을 강화하고, 중국은 공존과 상생을 외치면서도 사실상 영향권 유지를 노린다. 그 사이에서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으로 줄타기를 해왔다. 하지만 모호함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선택의 시대에 들어섰고, 기술·안보·경제의 경계가 모두 무너진 복합 패권의 전장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관망할 여유가 없다.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다. 미국은 관세 협상을 빌미로 친미 기술 블록을 강
2025-10-24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행정지도는 1914년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 조선의 13도를 통·폐합해 경상·전라·충청·강원·제주로 나누고, 시·군 지명을 일본식 행정체계에 맞춘 것이다. 그 후로 무려 111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지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산업 구조가 변했으며 인구가 대거 이동했고, 교통망도 확장됐는데, 지명과 행정구획은 일부 변경된 걸 제외하곤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틀에 묶여 있다. 지명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비전을 만들어가는 나침반이다. 그런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은 지역의 정체성과 비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전북의 중심은 전주에서 군산과 새만금 산업지대로 옮겼고, 경남의 경제 축은 진주가 아니라 창원·거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명은 그대로다. 지도 속 지명이 과거에 멈춰 있는 동안 현실은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그 결과 행정지도와 생활지도가 따로 돌아가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지명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도·광역시·특별시 그리고 시·군·구 지명을 그 지역의 특색에 맞게 바꿔야 한다. 그래야 지명에 걸맞는 지자체가 돼, 지명이 지자체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름은 사회
2025-10-23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파기환송심이 지난 21일, 서울고법 가사1부에 배당됐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6일, 최 회장의 상고를 받아들여 SK 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을 전제로 한 2심 판단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 액수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새롭게 결정하게 된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 핵심은 단순히 액수가 아니라, ‘노 관장의 자산 형성 기여도’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기여를 폭넓게 봤다. 결혼 후 30년 동안 SK그룹의 내조자로서 재계 인맥을 관리하고, 사회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해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1조38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정황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비자금은 불법자금으로, 재산 형성의 기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노소영이라는 한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은 다시 법의 언어 속에서 지워졌다. 이 판결은 단지 재벌가의 가정사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2025-10-22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정치의 온도는 여론조사보다 이름에서 먼저 읽힌다. 요즘 정치권을 뒤흔드는 두 이름은 김현지와 김민수다. 공교롭게도 이 둘의 이름 끝자는 ‘지’와 ‘수’다. 상명대 경제학과와 상지대 법학과 출신의 쌍김(상김)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정치 지수’의 주인공이 됐다. 김현지는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출신으로 현재 제1부속실장이다. 최근까지 총무비서관 외 공식 직책도, 명확한 개인 정보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대통령 주변에서 인사와 행사 실무를 맡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급부상한 인물이다. 특히 국정감사 출석 문제를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그의 이름은 단숨에 ‘정권의 투명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은 ‘개인 신상’이라며 방어에 나섰지만, 국민에겐 아직까지 국감 출석을 하지 않고 있는 김현지가 비선의 그림자로 비치고 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KT 자료를 근거로, “김 실장이 국감 첫날인 지난 13일 기존 사용하던 아이폰14 휴대전화를 아이폰17로 교체했고, 대장동 의혹이 불거졌던 때도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했다”며 “김 실장이 이 대통령의 대장동 의혹 관련 결정적 순간
2025-10-21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알부민은 우리 몸의 피 속에서 혈액이 새지 않도록 삼투압을 유지하고, 약과 영양분을 필요한 장기로 정확히 운반하는 단백질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약을 복용했을 때 알부민은 눈에는 눈약을, 위에는 위약을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몸은 균형을 되찾고, 생명은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엔 알부민 역할을 하는 정치인이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필요한 곳에 전달하고, 여야의 갈등 사이를 중재하며, 사회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치인이 없다.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고, 소통은 안 되고, 정당은 병들다보니, 정작 여론을 흘려 보내야 할 정치는 정쟁의 벽에 막혀 제자리에서 썩어간다. 정치는 본래 소통과 순환이 핵심이다. 국민의 요구가 국회로, 국회의 결정이 현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삼투압이 작동되지 않아 정보는 한쪽으로 몰리고, 비판만 난무하고, 책임은 떠밀고 있다. 서로의 필요를 읽고 연결해주는 알부민형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민심은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데, 대화의 통로가 막히고, 권력은 위로만 모이고 있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여야는 서로의 논리만 내세우고, 국민의 삶은 정체된 체액처럼 무거워진다. 정치의 삼투압이란 권력과 책임의 균형,
2025-10-20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