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15 10:19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지난해 12월26일 국회를 통과한 ‘AI기본법’의 시행령 제정안(하위법령 제정안)을 지난 12일 입법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시정연설에서 “AI 고속도로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말한 지 불과 8일 만이다. 과기부는 내달 22일까지 40일간 대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1월22일부터 공식 시행된다고 밝혔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도 속도를 낼 분위기다. AI기본법 추진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단한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겉으론 한국이 AI 규제 체계를 일찍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막을 보면 다르다. 시민사회는 “무규제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업계는 “그래도 과도하다”고 반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규제도 아니고 진흥도 아닌, 애매한 형태의 시행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논란은 ‘고영향 AI’의 정의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이다. 사람의 생명·신체·기본권에 중대한 위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AI를 특별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시행령은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를 극도로 제한했다. 예컨대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투입된 로봇개 순찰 시스템은 노동자
최근 출간된 박병영의 <손자병법>은 전쟁의 책을 넘어 싸움을 피하면서도 이기는 법, 즉 권력의 흐름과 인간의 시간을 읽는 법에 대한 정치의 책이다. 저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는 이미 구조를 설계한 자”라고 썼다. 정치에 이보다 더 명확한 조언은 없다. 정치학 박사인 박병영은 손자의 전쟁 철학을 현대 정치와 경영에 적용하면서 “형세(形勢)를 만드는 자가 결국 이긴다”고 해석했다.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이며, 이기는 길은 정면충돌이 아니라 형세의 조율이라는 것이다. 명청대전의 서막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장을 잘 새겨야 한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논란, 부산시당위원장 컷오프 파동, 그리고 정청래 대표의 100일 기자간담회 전격 취소까지, 최근 불거진 이 세 가지가 표면적으론 사소한 조율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이재명 대통령 체제와 정청래 대표의 당의 자율성을 둘러싼 긴장이 응축돼있다. 정 대표가 취임 100일 되던 지난 9일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지금은’이라는 말 속엔 “곧 구조의 시간이 온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즉 명청대전(이재명과 정청래 싸움)이 이미 시작됐다는 얘기다. 지금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 이 말은 짧은 한 문장이지만, 지금 대한민국 법무 행정의 핵심 쟁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대장동 사건 1심 판결 이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건넨 이 말은 결국 항소 포기로 이어졌다. 정 장관은 “지시한 적 없다”고 말했고,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은 “법무부 의견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는 이 한마디가 지시냐 조언이냐를 둘러싼 논쟁을 불렀지만, 발언의 본질은 언어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문제다. 논리학에서 “A이면 B다”라는 명제는 전제의 방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A를 고려해 B를 판단하라”는 문장은 결론을 위임하는 형태다. 전자는 명령의 언어고, 후자는 판단의 언어다. 정 장관의 발언은 후자에 가깝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는 말은 결과를 지시하지 않고, 판단의 책임을 되돌려준 명제다. 이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다. 명령의 문법이 작동할 때 조직은 위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리고, 판단의 문법이 작동할 때 조직은 스스로의 책임을 자각한다. 정 장관의 말은 바로 그 구조적 전환을 시도한 셈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임기 중 제한한다(헌법 제84조). 이는 대통령이 형사적 피의자로서 기
대기업 임원 인사 시계가 올해는 한 달 앞당겨졌다. 지난달 30일 SK가 포문을 열었고, 지난 7일 삼성전자가 세대교체 인사를 시작했다. LG는 이달 중순, 롯데는 조기 인사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 시대에는 속도가 경쟁력”이라는 말은 기업 인사의 새로운 격언이 됐다. 그러나 속도는 경쟁력이 될 수 있어도 방향이 되지는 않는다. 2025년의 임원 인사는 단순한 승진 명단이 아니라 각 기업의 철학과 생존 전략을 비추는 거울이다. 올해 임원 인사 신호탄은 SK가 쐈다. 이형희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리밸런싱’과 ‘AI 전환’을 앞세웠다. 각자대표 체제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화했지만, 빠른 변화 뒤에는 ‘사람의 피로’가 남는다. 성과 중심의 개편이 ‘사람 중심의 회복력’을 잃으면 조직은 기계처럼 돌아가지만, 사람은 멈춘다. 인사는 칼이 아니라 나침반이어야 한다. 삼성의 임원 인사는 세대교체와 시스템 복귀를 동시에 품고 있다. 정현호 부회장이 이끌던 사업지원T/F가 ‘사업지원실’로 정식 복귀하며 그룹 컨트롤타워가 부활했다. 신임 실장에는 박학규 사장이 앉았다. AI 반도체, 고대역폭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등 세계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삼성의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오는 10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아마존의 관문 도시 벨렘에서 열린다. 세계는 또다시 지구의 허파(폐)라 불리는 아마존 한가운데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회의장과 카메라가 닿지 않는 숲속에선 나무가 쓰러지고, 강이 말라가며, 수천년을 버텨온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30년 동안 선언과 협약은 반복됐지만, 지구는 더 병들었다. 벨렘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존의 숨결이 시작되는 곳이자,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곳이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세계는 ‘2050 탄소중립’을 약속했지만, 아마존의 숲은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올랐다. 올해만 해도 이탈리아 농민은 48도 들판에서 쓰러졌고, 인도 북부 도시는 53도를 기록했다. 북극의 얼음은 4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고, 한국 일부 지역은 한 달 만에 연간 강수량을 쏟아냈다. 이번 COP30의 핵심은 두 가지로 “누가 더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누가 비용을 낼 것인가”다.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중국과 인도를 향해 탄소 배출 책임을 묻고 있고, 신흥국은 “200년 동안 석탄과 석유로 부를 쌓은 나라들이 왜 우리
2025-11-10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우리 사회는 지금 마치 숫자에 홀린 듯 보인다. 뉴스는 “출산율 0.7명” “지방 소멸” “국가 지속 가능성 붕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반복하고, 정부는 세금과 예산을 쏟아 부으며 아이를 낳아 달라고 읍소한다. 지자체는 집을 주겠다는 포스터를 붙이고, 현금을 주겠다는 현수막도 내건다. 그러나 지금 AI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봤는가”다. AI가 계획하고 로봇이 일하는 시대의 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시작일지 모른다. 인구절벽이 아닌 문명의 전환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단어는 ‘인구절벽’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10월 인구소멸 7개 군을 선정해 주민들에게 매달 15만원씩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추진기로 했다. 지자체도 “인구절벽으로 지방이 사라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며 마치 우리나라가 절벽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도 된 듯 아우성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인구절벽은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다. 바로 ‘사람이 경제를 움직인다’는 전제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엔 이 말이 옳
2025-11-09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한국 경제의 최전선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은행 하나가 있다. 시중은행 간판도 아니고, 영업점도 많지 않다. 그러나 원자재가 끊기고, 수출 시장이 흔들리고, 기업이 해외로 나갈 때 반드시 거치는 은행이 한국수출입은행, 수은이다. 특히 수은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산업은행과 함께 정부가 미국에 전략 투자하는 3500억달러(500조원)에대해 실무를 맡아야 하는 은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은의 수장을 새롭게 맡은 황기연 행장은 지난 6일 취임식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연일 언급하고 있는 3500억달러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숫자보다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그는 3500억달러에 대해 침묵했고, 그 침묵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수은은 일반 은행이 아니다. 정부가 100% 출자한 정책금융기관이다. 이 은행은 자동차 할부금융도, 신용카드도 팔지 않는다. 대신 조선소가 초대형 LNG선을 수주할 때 보증을 서줬고, 기업이 사우디·폴란드에 방산 장비를 수출할 때 금융을 제공했다. 해외 플랜트, 글로벌 공급망, 전략산업 인프라 등 민간은행이 감당하지 못하는 위험과 기간, 금액도 대신 떠안는다. 말하자면 ‘국가의 뒷주
2025-11-08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그러나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되도록 단계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럼 그 사이 공백 기간은 누구의 책임인가? 지금 정년 연장 논의는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니라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공식 간담회를 갖고 65세 정년 연장 논의를 속도감 있게 논의했다. 국민의힘도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디를 향하는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밀어낼지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정년을 65세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 노동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묻는 정치의 시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정년 60세 제도는 이미 현실과 어긋나 있다. 2020년 65세 이상 인구는 약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였고, 올해에는 마침내 1000만명을 넘어 전체의 20%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오는 2030년에는 1200만명, 국민 넷 중 한 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돌입한다. 2040년이 되면 1500만명, 국민 셋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법
2025-11-07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며칠 전, 한 중년 남성이 뇌 CT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침대를 가리켰고, 그는 조심스럽게 누웠다. 하얀 조명 아래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이기보다 어디론가 실려가기 직전의 몸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꼭 누워서 해야 하나요? 이렇게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간호사는 “다들 이렇게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 말은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주체가 아니라, 움직임을 멈춘 대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환자가 눕는 장면은 너무 익숙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피를 뽑을 때, 초음파나 심전도, 혈압 측정을 할 때도 환자는 자동으로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사람은 누우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눈을 감고 누운 모습은 영락없이 ‘죽음의 자세’를 닮는다. 그래서 노인 환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내가 살아 있는 건지, 실려가는 건지 모르겠다.” 필자의 작품 중에 도시의 밤을 ‘죽은 자로 가득한 공동묘지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도시의 밤이 캄캄해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잠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죽
2025-11-06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에서 “AI 고속도로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말했다. 연설 속 ‘인공지능’은 28번 등장했지만 ‘노동자’ ‘존엄’ ‘불안’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래를 설계했지만, 그 미래까지 걸어가야 할 ‘사람의 속도’는 없었다. 기술이 앞서 달리고 있는 시대, 인간의 속도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늦으면 도태된다 기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 기술의 시간은 직선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뻗어나가며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원을 그리며 돌아온다. 상처를 받으면 멈추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용기를 모아야 한다. 로봇은 고장 나면 재부팅하면 되지만, 인간은 다시 걷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24시간 돌아가지만, 사람은 잠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 두 시간이 겹치지 못하면 사회는 균열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바로 그 틈새다. AI는 코드를 짜며, 로봇은 서빙하고, 챗봇은 감정을 흉내 낸다. 플랫폼은 우리의 소비, 이동, 감정까지 설계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의 불안,
2025-11-05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심야 시간인 오전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배송을 중단하자는 택배노조의 요구가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지난달 29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최소한의 수면과 건강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새벽 배송 제한을 공식 선언했다. 과로사, 뇌출혈,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졌던 택배 노동자의 현실을 멈춰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출범시킨 ‘택배 사회적대화기구’로 넘어갔고, 여기서 합의가 나오면 사실상 내년부터 새벽 배송 중단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2000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는 반발한다. 이미 새벽 배송은 편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됐다. 동탄·송도·김해 같은 신도시, 대형마트가 부족한 지역, 늦은 밤까지 아이를 재우고 장을 보는 워킹맘들에겐 생존형 서비스다. 한국노총조차 “새벽 배송 전면 중단은 소득 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노동권과 소비자권, 두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이커머스 업계도 “심야 배송 중단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새벽 배송은 전날 밤 농가와 공장에서 물류센터로 물건이 들어오고, 밤새 분류 작업을 거쳐 오전 7시 전에 배송되기 때문에 오전
2025-11-04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때 조용히 묻혔던 ‘대통령 재판중지법’이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업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자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반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무관하다. 법원이 사실상 확인했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맞섰다. 잠깐 멈춰 있던 법의 시계가 다시 정치의 시계를 흔들어 깨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쟁점은 단순하지 않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되지 않는다”고 규정하지만 그 ‘소추’가 기소 이전만 막는 것인지, 이미 개시된 재판까지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이 틈을 정치가 파고들었다. 지난 6월 서울고등법원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해석상 재판을 진행할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이재명 대통령 관련 형사재판을 잠정 정지했다. 그 순간부터 법정은 멈추고, 정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대통령 재판중지법)은 이 공백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대통령 당선인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절차를 정지한다”는 단 한 문장을 306조에 추가하는 방식
2025-11-03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지난달 마지막 한 주,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이 한반도에 집결한 거대한 국제 무대였다. 특히 한미·미중·한일·한중 정상회담 등 외교 일정이 이어지며 한국은 잠시 세계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가 됐다. 이번 APEC에서 미국은 동맹의 복원을, 중국은 존재감의 회복을, 한국은 균형 외교를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완벽한 만족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협상에서 일부 성과를 얻었지만, 미중 간 패권 경쟁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대화의 문을 열었지만 실질적 돌파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APEC은 결국 균형의 외교 무대였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고, 각자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무대였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외교력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AI 공급망 협력과 기후 연대 구상에서도 한국은 중재자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외교의 시간은 길지 않다. 경주에서 외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내 정치의 시계가 잠시 멈췄지만, APEC이 끝난 후 한국은 다시 정치의 시간으로 복귀했다. 특히 많은 정치
2025-11-02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됐다. 언뜻 들으면 한국이 마침내 ‘핵잠수함 보유국’ 반열에 오른 듯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번 승인은 핵연료 공급을 허용하겠다는 수준일 뿐, 잠수함의 건조 장소와 핵심 기술의 주도권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핵연료는 주되, 건조는 미국에서 하라는 조건이 붙은 셈이다. 겉으론 한국의 해양 작전 능력 강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기술 의존 심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핵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은 이름 그대로 핵(원자력)을 추진력으로 쓰는 잠수함이다.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로 프로펠러를 돌린다. 디젤엔진 잠수함이 2~3일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를 흡입해야 하는 반면, 핵잠수함은 수개월 동안 물속에서 작전할 수 있다. 연료 한번 주입으로 20년간 운항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며, 장시간 잠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만 핵잠수함이라는 말이 곧 핵무
2025-11-01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지난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해공항 공군기지 의전실인 ‘나래마루’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두 정상의 만남은 짧았다. 시진핑 주석은 오전 10시30분 김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장으로 향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오후 1시경 곧바로 미국행 전용기에 올랐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각각 1박2일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들이 동시에 머문 시간은 고작 150분이었다. 그 중 100분이 회담 시간이었다. 두 정상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물렀다. 이례적으로 시진핑은 한국 정부의 공식 환영식 없이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했고, 트럼프는 회담 직후 곧장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올라 떠났다. 이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교 무대에서 ‘시간’과 ‘공간’은 종종 언어보다 더 정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트럼프에게 김해는 단순한 회담 장소였을 뿐이다. 그는 경주 APEC 일정을 건너뛰고, 귀국 직전 시진핑과의 단독 회담만을 위해 경주와 가까운 김해를 택했을 것이다. 반면 시진핑은 한국 도착 직후 곧바로 한미 정상회담에 임했고, 이후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한국을
2025-10-31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글을 쓰는 일은 종종 책상 위에서 세상을 재단하는 일과 닮아 있다. 작가의 의도와 지식, 그리고 모니터 속 자료와 키보드만으로 완성되는 문장은 깔끔하다. 그러나 현실의 분위기는 빠져 있다. 필자는 새벽에 칼럼을 쓰고 원고를 핸드폰으로 옮긴 후, 퇴고는 일부러 전철이나 커피숍에서 한다. 사람 속, 소음 속, 그리고 광고판과 스마트폰 화면 사이에서 읽으면 문장이 달리 보인다. 책상 위에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대중 속에선 낯설게 보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때 비로소 독자의 언어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결국 공간의 언어를 통과해야 생명력이 살아난다. 책상 위의 문장은 논리의 산물이고, 거리 위의 문장은 체감의 산물이다. 후자가 훨씬 더 감동적이고 진실에 가깝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현장에 가야 한다. 회의실이나 SNS 정보만으론 민심을 읽을 수 없다. 요즘 정치인들은 현장을 말하지만, 실제는 현장감이 부족하다. 현장은 발로 밟아야 한다. 냄새를 맡고, 눈빛을 보고, 소리를 들어야 한다. 책상 위의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도 시장에서 만난 상인의 한숨 한번이 더 정확한 현실을 알려준다. 그 한숨이 정책의 첫 문장이 되고 핵심이 돼야
2025-10-30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10월 마지막 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가 다시 한번 역사의 중심이 됐다. 천년 고도가 이번엔 세계의 외교무대가 된 것이다. APEC 참가자 숫자도 미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정상과 장관급 인사, 언론, 경제계 대표단 등 약 2만여명이나 된다. 지난 27일부터 시작된 APEC 정상회의 주간은 ‘경주 슈퍼위크’로 단순한 국제행사 기간이 아니다. 한미·미중·한일·한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한반도가 다시 세계 질서의 시험대에 오르는 기간이다. 필자는 경주 APEC에서 한국 외교가 ‘처음처럼, 지금처럼, 나중처럼’의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처럼’은 외교의 근본이다. 한국 외교의 뿌리는 한미동맹, 자유무역, 그리고 다자 협력의 세 기둥 위에 서 있다. 이번 APEC의 주제 ‘연결, 혁신, 번영’은 그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선언과도 같다. 그래서 의장국으로서 한국은 근본적인 외교 차원에서 APEC 정상회의에 임해야 한다. AI 협력, 인구 구조 변화 대응 등 이번 APEC 의제는 기술과 사람을 동시에 잇는 새로운 다자 질서의 모색이다. 세계가 블록화와 보호무역으로 흔들릴수록 원칙은 더
2025-10-29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최근 사회 전반에서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친환경 소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 ‘탄소 중립’ ‘친환경 경영’ 같은 기업들의 홍보 문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동시에 근거가 부족하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친환경을 내세우는 ‘그린워싱’ 행위도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효과가 없는 제품을 광고·홍보로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녹색 거짓말’을 뜻한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은 지난 23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최근 5년간 부당한 환경성 표시·광고 행위인 그린워싱 1만3122건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린워싱 폭증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린워싱 사례가 폭증했다는 것은, 지속 가능성을 외치며 성장한 기업이 사실상 ‘위선의 기술’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켰다는 의미로, 이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우리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윤리경영이 아닌 이미지 경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홍보할 땐 “2050 탄소중립 달성” “지
2025-10-28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겉으로 보기엔 훈훈한 정책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은 농어촌에 매달 15만원씩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은 농어촌 살리기의 상징처럼 들린다. 연천, 정선, 청양, 순창, 신안, 영양, 남해 등 7개 군이 그 실험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 사업이 정치적 상징과 정책적 실효성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문제는 매달 15만원, 1년 180만원. 그 돈이 지역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현금이 아니라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비도 어렵다. 지역 상권에 돈이 돌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질적 구매력은 제약된다. 현금 대신 쿠폰을 쥐어준 격이다. 매달 15만원은 하루에 5000원 꼴로 농어촌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인구 유출이나 소멸 위기를 막기엔 더더욱 미약하다. 재정 구조의 불균형도 문제다. 국비는 전체의 40%뿐이고, 나머지 60%는 지방비다. 이번에 선정된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10% 내외로 매우 열악하다. 즉 추가 지출은 곧 다른 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25-10-27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