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실버산업, 돌봄에서 창업으로

고령화 사회 외면한 가장 큰 산업 주체

대한민국은 이미 노인 1000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1.21%를 기록했고, 전체 주민등록 세대의 42%에 달하는 1인 세대 가운데 70대 이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아직도 노인을 ‘대상’으로만 본다.

우리나라의 노인 정책은 노인을 ‘보호 대상’, 실버산업을 ‘돌봄 산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이미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65세는 인간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65세가 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노동 능력을 상실하거나 사회적 역할에서 자동으로 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60·70대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시장 경제의 실전 경험을 모두 통과한 세대며, 이들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에 가깝다.

국가적인
자원 낭비

65세는 은퇴선이 아니라 재출발선= 우리나라 제도에서 65세는 상징적인 나이다. 연금, 노인복지, 각종 감면 혜택이 시작되는 기준선이다. 동시에 이 나이는 일을 내려놓는 시점이라는 기준이 암묵적으로 규정돼 왔다. 정책은 이 순간부터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설정하고, 경제 활동의 주체 목록에서 제외한다.

그러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긴 사회에서 65세 은퇴는 지나치게 이르다. 실제로 65~75세 연령대 중 상당수는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없고, 지적 판단력과 사회적 감각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회이며, 기회를 설계하지 않는 제도의 부재다.

국가는 이 구간을 ‘여생’이 아니라 ‘제2의 활동기’로 재정의해야 한다. 은퇴 이후 10년은 쉼의 시간이 아니라 전환의 시간이다. 이 전환을 제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노인은 의존으로 밀려나고 국가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 손해다.

실버산업은 왜 돌봄에 갇혀 있는가= 현재 실버산업으로 분류되는 영역을 보면, 요양, 간병, 의료, 복지 기기, 실버타운 등 모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노인은 소비자이자 관리 대상일 뿐, 생산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노인의 역량이 제도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구조는 고령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족 돌봄이 붕괴되면서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프레임이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환경은 바뀌었는데 정책 방향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노인 1000만명 시대…65세 이상 21%
산업·민주화·시장 경제 실전 경험

실버산업의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재정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노인이 늘어날수록 비용만 증가하는 구조라면, 이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돌봄만 남은 실버산업은 결국 복지의 다른 이름일 뿐, 산업의 역할을 끝내 수행하지 못한다. 구조 전환 없는 성장은 없다.

청년산업과 실버산업의 결정적 차이= 청년산업을 보면 정부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청년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육성 대상이며, 동시에 산업의 주인공이다. 일자리 지원뿐 아니라 창업, 기술사업화, 스타트업 육성까지 정책의 중심에 놓인다. 실패를 전제로 한 도전이 제도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실버산업에는 창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노인은 일할 수는 있지만,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체 가능성이 배제돼있고, 실패 가능성만 과장된다. 그 결과 도전의 통로 자체가 닫혀 버렸다.

이 차이는 단순한 행정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가능성의 존재’로 보고, 노인은 ‘위험의 존재’로 본다. 그러나 위험을 이유로 기회를 차단하는 정책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과 다르지 않다. 관리만 남고 성과는 사라진다.

키즈산업은 ‘대상’ 실버산업은 ‘주체’= 키즈산업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다. 이린이는 소비의 중심이지만, 사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프리미엄 전략, IP 확장, 테크 결합이 핵심이 된다. 보호자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가치와 브랜드가 경쟁력이 된다. 이 구조는 산업 논리상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버산업은 다르다. 노인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공급자가 될 수 있다. 경험, 기술, 관계, 신뢰라는 자산을 이미 보유한 계층이다. 단순 소비층이 아니라 역할과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점에서 실버산업은 키즈산업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지속 가능
안정성 높아

그럼에도 정부는 두 산업을 동일한 ‘대상 중심 산업’으로 묶어버렸다. 키즈산업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실버산업까지 그렇게 묶는 순간 산업의 절반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주체를 지운 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정책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65~75세 실버 창업, 왜 가능한가= 실버 창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 연령대는 이미 한 번 이상의 직업 경로를 끝까지 경험했다. 실패의 비용과 성공의 조건을 몸으로 알고 있으며, 무모한 확장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업 안정성이 높다. 이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 실버 창업은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역 기반 서비스, 전문 경험형 사업, 소규모 네트워크 중심 모델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잉 자영업 문제와도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자영업 구조를 대체·보완하는 질적 전환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실버 창업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노인은 덜 아프고, 덜 고립되며, 덜 의존적이다. 이는 복지 지출 감소로도 직결되며, 세대 간 부담을 완화한다.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크다.

실버 창업에 적합한 사업 이미 많아= 노인이 할 수 있는 사업은 제한적이지 않다. 퇴직 공무원의 행정 컨설팅, 기술자의 현장 자문, 교육자의 코칭 사업, 자영업 경험자의 소상공인 멘토링 등은 이미 수요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이들 사업은 속도보다 신뢰, 규모보다 정확성이 경쟁력이다.

지역사회에서는 돌봄 연계 서비스, 생활 관리, 공공 중재 역할 등 새로운 영역도 열려 있다. 이는 단순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며, 고령자에게 특히 적합한 형태다. 지역 공동체의 회복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더 정교한
제도 설계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다. 실버 창업의 경쟁력은 확장이 아니라 지속성이며, 마케팅보다 관계다. 이 신뢰는 오랜 사회 경험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자산이며, 단기간에 모방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버 창업은 다른 창업과 구별되는 독자적 산업 영역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별과 설계= 실버 창업을 무작정 확대해서는 안 된다. 청년 창업 실패의 교훈은 분명하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개인에게 빚을 남기고, 사회에 비용을 남긴다. 실버 창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단순한 장려가 아니라, 처음부터 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핵심은 선별이다. 건강 상태, 기본 역량, 사업 이해도를 기준으로 한 테스트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통과한 노인에게만 단계적 창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실패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다.

정부의 역할은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관리하고 성공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다.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창업은 개인의 모험으로 남고, 정책은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산업 정책이어야 한다.

실버산업의 정의 다시 써야=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실버산업은 더 이상 ‘노인이 대상이고, 노인을 돌보는 산업’이 아니다. ‘노인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산업’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고령화 시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며, 앞으로의 모든 논의를 가르는 기준선이 된다. 이 전환 없이는 어떤 대책도 임시방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을 계속 쉬게만 하는 국가는 결국 재정에 짓눌린다. 반대로 노인을 다시 세우는 국가는 경험이라는 자산을 회수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벌어진다. 선택은 이미 눈앞에 와 있고, 미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결점이자 책임 회피다.

환경 바뀌었는데 방향 제자리
역할 기반 사업 긍정적 효과

실버산업의 미래는 요양원이 아니라 창업 현장에 있다. 보호에서 참여로, 대상에서 주체로. 실버산업의 정의를 바꾸는 순간,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며, 실행하지 않는 정부는 고령화의 비용을 스스로 방치하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6·3 지선, 실버산업단지는 선택 아닌 해법=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고령화와 지역 소멸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적 기회다. 지방정부가 실버 창업을 전제로 한 산업을 발굴하고, 이를 한데 모은 ‘실버산업단지’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지역 생존 전략이 된다.

실버산업단지는 요양시설의 확장이 아니다. 행정·기술·교육·중재·지역 서비스 등 65~75세 고령층이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창업과 역할 중심 산업을 묶는 공간이다. 이는 청년 유입을 기다리는 소극적 전략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남아 있는 노인을 다시 세우는 적극적 전략이다. 지방 인구 붕괴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지방정부가 이 구조를 설계한다면 효과는 즉각적이다. 고령 인구의 경제 참여가 늘어나고, 지역 내 소비와 관계망이 살아난다. 복지 예산은 줄고, 지역 공동체의 유지 비용은 낮아진다. 실버 창업을 산업단지 단위로 묶는 순간, 고령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두 위기는 동시에 관리 가능한 정책 의제가 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실버 창업을 여전히 복지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이제는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고령 인구의 경험과 역량을 묶어 두는 국가는 경쟁력을 스스로 봉인하는 셈이다.

선진국일수록 고령 인구를 ‘관리 비용’이 아니라 ‘생산 자산’으로 분류한다. 일본과 독일이 고령 기술 인력의 재고용과 소규모 창업을 전략 산업으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산업구조를 버티게 하는 안전판이다.

관리 비용?
생산 자산!

실버 창업은 고령화 사회에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재정 부담만 키우고, 이를 활용하는 국가는 성장의 또 다른 축을 만든다. 실버산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곧 그 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가르는 문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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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