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실버산업, 돌봄에서 창업으로

고령화 사회 외면한 가장 큰 산업 주체

대한민국은 이미 노인 1000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1.21%를 기록했고, 전체 주민등록 세대의 42%에 달하는 1인 세대 가운데 70대 이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아직도 노인을 ‘대상’으로만 본다.

우리나라의 노인 정책은 노인을 ‘보호 대상’, 실버산업을 ‘돌봄 산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이미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65세는 인간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65세가 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노동 능력을 상실하거나 사회적 역할에서 자동으로 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60·70대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시장 경제의 실전 경험을 모두 통과한 세대며, 이들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에 가깝다.

국가적인
자원 낭비

65세는 은퇴선이 아니라 재출발선= 우리나라 제도에서 65세는 상징적인 나이다. 연금, 노인복지, 각종 감면 혜택이 시작되는 기준선이다. 동시에 이 나이는 일을 내려놓는 시점이라는 기준이 암묵적으로 규정돼 왔다. 정책은 이 순간부터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설정하고, 경제 활동의 주체 목록에서 제외한다.

그러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긴 사회에서 65세 은퇴는 지나치게 이르다. 실제로 65~75세 연령대 중 상당수는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없고, 지적 판단력과 사회적 감각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회이며, 기회를 설계하지 않는 제도의 부재다.


국가는 이 구간을 ‘여생’이 아니라 ‘제2의 활동기’로 재정의해야 한다. 은퇴 이후 10년은 쉼의 시간이 아니라 전환의 시간이다. 이 전환을 제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노인은 의존으로 밀려나고 국가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 손해다.

실버산업은 왜 돌봄에 갇혀 있는가= 현재 실버산업으로 분류되는 영역을 보면, 요양, 간병, 의료, 복지 기기, 실버타운 등 모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노인은 소비자이자 관리 대상일 뿐, 생산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노인의 역량이 제도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구조는 고령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족 돌봄이 붕괴되면서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프레임이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환경은 바뀌었는데 정책 방향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노인 1000만명 시대…65세 이상 21%
산업·민주화·시장 경제 실전 경험

실버산업의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재정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노인이 늘어날수록 비용만 증가하는 구조라면, 이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돌봄만 남은 실버산업은 결국 복지의 다른 이름일 뿐, 산업의 역할을 끝내 수행하지 못한다. 구조 전환 없는 성장은 없다.

청년산업과 실버산업의 결정적 차이= 청년산업을 보면 정부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청년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육성 대상이며, 동시에 산업의 주인공이다. 일자리 지원뿐 아니라 창업, 기술사업화, 스타트업 육성까지 정책의 중심에 놓인다. 실패를 전제로 한 도전이 제도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실버산업에는 창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노인은 일할 수는 있지만,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체 가능성이 배제돼있고, 실패 가능성만 과장된다. 그 결과 도전의 통로 자체가 닫혀 버렸다.


이 차이는 단순한 행정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가능성의 존재’로 보고, 노인은 ‘위험의 존재’로 본다. 그러나 위험을 이유로 기회를 차단하는 정책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과 다르지 않다. 관리만 남고 성과는 사라진다.

키즈산업은 ‘대상’ 실버산업은 ‘주체’= 키즈산업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다. 이린이는 소비의 중심이지만, 사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프리미엄 전략, IP 확장, 테크 결합이 핵심이 된다. 보호자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가치와 브랜드가 경쟁력이 된다. 이 구조는 산업 논리상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버산업은 다르다. 노인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공급자가 될 수 있다. 경험, 기술, 관계, 신뢰라는 자산을 이미 보유한 계층이다. 단순 소비층이 아니라 역할과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점에서 실버산업은 키즈산업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지속 가능
안정성 높아

그럼에도 정부는 두 산업을 동일한 ‘대상 중심 산업’으로 묶어버렸다. 키즈산업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실버산업까지 그렇게 묶는 순간 산업의 절반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주체를 지운 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정책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65~75세 실버 창업, 왜 가능한가= 실버 창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 연령대는 이미 한 번 이상의 직업 경로를 끝까지 경험했다. 실패의 비용과 성공의 조건을 몸으로 알고 있으며, 무모한 확장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업 안정성이 높다. 이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 실버 창업은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역 기반 서비스, 전문 경험형 사업, 소규모 네트워크 중심 모델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잉 자영업 문제와도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자영업 구조를 대체·보완하는 질적 전환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실버 창업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노인은 덜 아프고, 덜 고립되며, 덜 의존적이다. 이는 복지 지출 감소로도 직결되며, 세대 간 부담을 완화한다.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크다.

실버 창업에 적합한 사업 이미 많아= 노인이 할 수 있는 사업은 제한적이지 않다. 퇴직 공무원의 행정 컨설팅, 기술자의 현장 자문, 교육자의 코칭 사업, 자영업 경험자의 소상공인 멘토링 등은 이미 수요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이들 사업은 속도보다 신뢰, 규모보다 정확성이 경쟁력이다.

지역사회에서는 돌봄 연계 서비스, 생활 관리, 공공 중재 역할 등 새로운 영역도 열려 있다. 이는 단순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며, 고령자에게 특히 적합한 형태다. 지역 공동체의 회복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더 정교한
제도 설계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다. 실버 창업의 경쟁력은 확장이 아니라 지속성이며, 마케팅보다 관계다. 이 신뢰는 오랜 사회 경험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자산이며, 단기간에 모방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버 창업은 다른 창업과 구별되는 독자적 산업 영역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별과 설계= 실버 창업을 무작정 확대해서는 안 된다. 청년 창업 실패의 교훈은 분명하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개인에게 빚을 남기고, 사회에 비용을 남긴다. 실버 창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단순한 장려가 아니라, 처음부터 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핵심은 선별이다. 건강 상태, 기본 역량, 사업 이해도를 기준으로 한 테스트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통과한 노인에게만 단계적 창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실패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다.

정부의 역할은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관리하고 성공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다.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창업은 개인의 모험으로 남고, 정책은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산업 정책이어야 한다.

실버산업의 정의 다시 써야=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실버산업은 더 이상 ‘노인이 대상이고, 노인을 돌보는 산업’이 아니다. ‘노인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산업’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고령화 시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며, 앞으로의 모든 논의를 가르는 기준선이 된다. 이 전환 없이는 어떤 대책도 임시방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을 계속 쉬게만 하는 국가는 결국 재정에 짓눌린다. 반대로 노인을 다시 세우는 국가는 경험이라는 자산을 회수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벌어진다. 선택은 이미 눈앞에 와 있고, 미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결점이자 책임 회피다.

환경 바뀌었는데 방향 제자리
역할 기반 사업 긍정적 효과


실버산업의 미래는 요양원이 아니라 창업 현장에 있다. 보호에서 참여로, 대상에서 주체로. 실버산업의 정의를 바꾸는 순간,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며, 실행하지 않는 정부는 고령화의 비용을 스스로 방치하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6·3 지선, 실버산업단지는 선택 아닌 해법=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고령화와 지역 소멸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적 기회다. 지방정부가 실버 창업을 전제로 한 산업을 발굴하고, 이를 한데 모은 ‘실버산업단지’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지역 생존 전략이 된다.

실버산업단지는 요양시설의 확장이 아니다. 행정·기술·교육·중재·지역 서비스 등 65~75세 고령층이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창업과 역할 중심 산업을 묶는 공간이다. 이는 청년 유입을 기다리는 소극적 전략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남아 있는 노인을 다시 세우는 적극적 전략이다. 지방 인구 붕괴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지방정부가 이 구조를 설계한다면 효과는 즉각적이다. 고령 인구의 경제 참여가 늘어나고, 지역 내 소비와 관계망이 살아난다. 복지 예산은 줄고, 지역 공동체의 유지 비용은 낮아진다. 실버 창업을 산업단지 단위로 묶는 순간, 고령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두 위기는 동시에 관리 가능한 정책 의제가 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실버 창업을 여전히 복지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이제는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고령 인구의 경험과 역량을 묶어 두는 국가는 경쟁력을 스스로 봉인하는 셈이다.

선진국일수록 고령 인구를 ‘관리 비용’이 아니라 ‘생산 자산’으로 분류한다. 일본과 독일이 고령 기술 인력의 재고용과 소규모 창업을 전략 산업으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산업구조를 버티게 하는 안전판이다.

관리 비용?
생산 자산!

실버 창업은 고령화 사회에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재정 부담만 키우고, 이를 활용하는 국가는 성장의 또 다른 축을 만든다. 실버산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곧 그 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가르는 문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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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