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실버산업, 돌봄에서 창업으로

고령화 사회 외면한 가장 큰 산업 주체

대한민국은 이미 노인 1000만명 시대에 들어섰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1.21%를 기록했고, 전체 주민등록 세대의 42%에 달하는 1인 세대 가운데 70대 이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아직도 노인을 ‘대상’으로만 본다.

우리나라의 노인 정책은 노인을 ‘보호 대상’, 실버산업을 ‘돌봄 산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이미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65세는 인간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65세가 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노동 능력을 상실하거나 사회적 역할에서 자동으로 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60·70대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시장 경제의 실전 경험을 모두 통과한 세대며, 이들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묶어두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에 가깝다.

65세는 은퇴선이 아니라 재출발선

우리나라 제도에서 65세는 상징적인 나이다. 연금, 노인복지, 각종 감면 혜택이 시작되는 기준선이다. 동시에 이 나이는 일을 내려놓는 시점이라는 기준이 암묵적으로 규정돼 왔다. 정책은 이 순간부터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설정하고, 경제 활동의 주체 목록에서 제외한다.

그러나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긴 사회에서 65세 은퇴는 지나치게 이르다. 실제로 65~75세 연령대 중 상당수는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없고, 지적 판단력과 사회적 감각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회이며, 기회를 설계하지 않는 제도의 부재다.


국가는 이 구간을 ‘여생’이 아니라 ‘제2의 활동기’로 재정의해야 한다. 은퇴 이후 10년은 쉼의 시간이 아니라 전환의 시간이다. 이 전환을 제도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노인은 의존으로 밀려나고 국가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손해다.

실버산업은 왜 돌봄에 갇혀 있는가

현재 실버산업으로 분류되는 영역을 보면, 요양, 간병, 의료, 복지기기, 실버타운 등 모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노인은 소비자이자 관리 대상일 뿐, 생산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노인의 역량이 제도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구조는 고령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족 돌봄이 붕괴되면서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프레임이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환경은 바뀌었는데 정책 방향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실버산업의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재정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노인이 늘어날수록 비용만 증가하는 구조라면, 이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돌봄만 남은 실버산업은 결국 복지의 다른 이름일 뿐, 산업의 역할을 끝내 수행하지 못한다. 구조 전환 없는 성장은 없다.

청년산업과 실버산업의 결정적 차이

청년산업을 보면 정부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청년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육성 대상이며, 동시에 산업의 주인공이다. 일자리 지원뿐 아니라 창업, 기술사업화, 스타트업 육성까지 정책의 중심에 놓인다. 실패를 전제로 한 도전이 제도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실버산업에는 창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노인은 일할 수는 있지만,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체 가능성이 배제돼 있고, 실패 가능성만 과장된다. 그 결과 도전의 통로 자체가 닫혀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행정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가능성의 존재’로 보고, 노인은 ‘위험의 존재’로 본다. 그러나 위험을 이유로 기회를 차단하는 정책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과 다르지 않다. 관리만 남고 성과는 사라진다.

키즈산업은 ‘대상’ 실버산업은 ‘주체’

키즈산업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다. 이린이는 소비의 중심이지만, 사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프리미엄 전략, IP 확장, 테크 결합이 핵심이 된다. 보호자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가치와 브랜드가 경쟁력이 된다. 이 구조는 산업 논리상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실버산업은 다르다. 노인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공급자가 될 수 있다. 경험, 기술, 관계, 신뢰라는 자산을 이미 보유한 계층이다. 단순 소비층이 아니라 역할과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점에서 실버산업은 키즈산업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럼에도 정부는 두 산업을 동일한 ‘대상 중심 산업’으로 묶어버렸다. 키즈산업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실버산업까지 그렇게 묶는 순간 산업의 절반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주체를 지운 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정책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65~75세 실버 창업, 왜 가능한가

실버 창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 연령대는 이미 한번 이상의 직업 경로를 끝까지 경험했다. 실패의 비용과 성공의 조건을 몸으로 알고 있으며, 무모한 확장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창업 안정성이 높다. 이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 실버 창업은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역 기반 서비스, 전문 경험형 사업, 소규모 네트워크 중심 모델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잉 자영업 문제와도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자영업 구조를 대체·보완하는 질적 전환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실버 창업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노인은 덜 아프고, 덜 고립되며, 덜 의존적이다. 이는 복지 지출 감소로도 직결되며, 세대 간 부담을 완화한다.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크다.

실버 창업에 적합한 사업 이미 많아

노인이 할 수 있는 사업은 제한적이지 않다. 퇴직 공무원의 행정 컨설팅, 기술자의 현장 자문, 교육자의 코칭 사업, 자영업 경험자의 소상공인 멘토링 등은 이미 수요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이들 사업은 속도보다 신뢰, 규모보다 정확성이 경쟁력이다.


지역사회에서는 돌봄 연계 서비스, 생활 관리, 공공 중재 역할 등 새로운 영역도 열려 있다. 이는 단순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며, 고령자에게 특히 적합한 형태다. 지역 공동체의 회복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다. 실버 창업의 경쟁력은 확장이 아니라 지속성이며, 마케팅보다 관계다. 이 신뢰는 오랜 사회 경험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자산이며, 단기간에 모방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버 창업은 다른 창업과 구별되는 독자적 산업 영역이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별과 설계

실버 창업을 무작정 확대해서는 안 된다. 청년 창업 실패의 교훈은 분명하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개인에게 빚을 남기고, 사회에 비용을 남긴다. 실버 창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단순한 장려가 아니라, 처음부터 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핵심은 선별이다. 건강 상태, 기본 역량, 사업 이해도를 기준으로 한 테스트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통과한 노인에게만 단계적 창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실패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다.

정부의 역할은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관리하고 성공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다.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창업은 개인의 모험으로 남고, 정책은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산업 정책이어야 한다.


실버산업의 정의 다시 써야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실버산업은 더 이상 ‘노인이 대상이고, 노인을 돌보는 산업’이 아니다. ‘노인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산업’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고령화 시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며, 앞으로의 모든 논의를 가르는 기준선이 된다. 이 전환 없이는 어떤 대책도 임시방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을 계속 쉬게만 하는 국가는 결국 재정에 짓눌린다. 반대로 노인을 다시 세우는 국가는 경험이라는 자산을 회수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벌어진다. 선택은 이미 눈앞에 와 있고, 미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결점이자 책임 회피다.

실버산업의 미래는 요양원이 아니라 창업 현장에 있다. 보호에서 참여로, 대상에서 주체로. 실버산업의 정의를 바꾸는 순간,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며, 실행하지 않는 정부는 고령화의 비용을 스스로 방치하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6·3 지선, 실버산업단지는 선택 아닌 해법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고령화와 지역 소멸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적 기회다. 지방정부가 실버 창업을 전제로 한 산업을 발굴하고, 이를 한데 모은 ‘실버산업단지’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이는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지역 생존 전략이 된다.

실버산업단지는 요양시설의 확장이 아니다. 행정·기술·교육·중재·지역 서비스 등 65~75세 고령층이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창업과 역할 중심 산업을 묶는 공간이다. 이는 청년 유입을 기다리는 소극적 전략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남아 있는 노인을 다시 세우는 적극적 전략이다. 지방 인구 붕괴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지방정부가 이 구조를 설계한다면 효과는 즉각적이다. 고령 인구의 경제 참여가 늘어나고, 지역 내 소비와 관계망이 살아난다. 복지 예산은 줄고, 지역 공동체의 유지 비용은 낮아진다. 실버 창업을 산업단지 단위로 묶는 순간, 고령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두 위기는 동시에 관리 가능한 정책 의제가 된다.

실버 창업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실버 창업을 여전히 복지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다. 이제는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고령 인구의 경험과 역량을 묶어 두는 국가는 경쟁력을 스스로 봉인하는 셈이다.

선진국일수록 고령 인구를 ‘관리 비용’이 아니라 ‘생산 자산’으로 분류한다. 일본과 독일이 고령 기술 인력의 재고용과 소규모 창업을 전략 산업으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산업구조를 버티게 하는 안전판이다.

실버 창업은 고령화 사회에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재정 부담만 키우고, 이를 활용하는 국가는 성장의 또 다른 축을 만든다. 실버산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곧 그 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가르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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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뻥뻥 터지고 있다. 지명 직후 국민의힘을 두 쪽으로 가르더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혼란에 빠트렸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고심이 깊다. 인사청문회까지 몇 개의 고비가 남았을까?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전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중진 보수 정치인이다. 오랜 기간 보수에 몸담은 인사를 초대 경제 부처 수장으로 지명한 만큼 ‘경제·민생 통합’이란 이재명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속전속결 손절 치기 이날 이 수석은 이같이 밝히며 “이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실무에 능통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불공정 거래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며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도록 해 미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은 휴일임에도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자당 소속인 이 후보자를 제명 조치했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오후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당헌·당규에 따라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앞두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병행함으로써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하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이 유독 거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 후보자가 자당 출신인 점은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윤 어게인’과 결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강성 행보를 보였다. 배신자 VS 외연 확장 보수 가르더니… 자진 사퇴 VS 일단 중립 진보도 두 쪽 후보자 지명 이틀 만에 국민의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기회주의자’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이혜훈 배신자 프레임’을 띄우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며 분열하는 양상을 띤 것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후보자에 대해 “당의 지원을 받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단물을 빼먹은 분”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이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자리를 구걸하고 있다. 그것을 탕평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글삭튀 이혜훈, 소신도 없이 이재명에게 러브레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보수 전사인 척하더니 자리를 넙죽 받았다. 이혜훈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보편 복지, 수요 억제 부동산 정책을 가장 세게 까왔다”고 말했다. 이는 내정 직후 이 후보자가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는 대목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범보수인 개혁신당은 이 후보자의 ‘배신자론’이 과하다며 오히려 보수 때리기에 나섰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 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이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며 “누군가 등을 돌렸다면,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지 떠난 사람을 저주해서 무엇을 얻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보수 담론이 저급해진 원인은 상대를 감옥에 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검찰주의적 사고방식에 있다”며 “정책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결국 상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만 몰두했고,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 남은 것은 저주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도 파도 끝이 없네 여러 의미로 ‘파격 인사’인 만큼 이 후보자의 지명을 놓고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세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경제 총알받이’ ‘국민의힘 분열’ 등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지명했다는 설이 있었다”며 “겨우 그런 걸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리스크를 떠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라는 시한폭탄이 여당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강선우·김병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사나운 민심의 파도를 건너던 도중 이 후보자를 둘러싼 ‘초대형’ 갑질 의혹이 터지면서 전직 관계자들의 폭로전이 시작됐다. 2017년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던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직원에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등 질책하는 내용의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이후 이 후보자가 보좌직원에게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지우게 하거나 직접 반박 댓글을 달게 하고, 상호 감시를 지시하거나 구의원들에게 집회에서 삭발을 강요했다는 등의 증언이 잇달아 나왔다. 하루 간격으로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수박 배달’ 등 자잘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결국 이 후보자의 갑질 논란은 어느 새 고발전이 됐다. 지난 2일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 후보자를 협박·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권력 우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약자인 인턴 직원에게 모욕적 언사를 반복하고, 공적 직무와 무관한 개인 주거 공간의 프린터 수리를 지시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직권 남용”이라며 “이 대통령은 즉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땅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후보자의 배우자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 전인 2000년 1월 초 인천 중구 중산동의 잡종지 약 200평(6612㎡)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후보자의 과거에 제출한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땅은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에 39억2100만원에 수용됐다. 6년 사이 약 세 배의 시세 차익을 번 것이다. 그래도 품어야 주 의원은 “서울 사는 이혜훈 부부가 인천 잡종지 2000평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며 김씨가 땅 투기를 통해 재산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이 후보자의 청문회 날짜가 오는 19일로 확정됐다. 국민의힘은 19~20일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 간의 조율 끝에 충분한 질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이같이 정해졌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우선 청문회를 통해 이 후보자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제명까지 당하면서 이정부와 함께하길 택했다. 지금 자진 사퇴하면 정치 인생은 끝”이라며 “만일 지명 철회를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생명 다 걸고 온 사람한테 해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쫓아내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모양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역시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들과 만나 “청문회에서 다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민주당인 만큼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42%로, 긍정 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당에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모양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해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42%로 집계됐다.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35%, 모름·무응답은 23%로 드러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8.2%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결국 민주당 내에서도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도저히 방어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권했다. 이 지명 부정 평가 42% 그래도 버티는 이유 뭐? 장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여당이기 때문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방어도 해 줘야 하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조승래 사무총장이 ‘언급 자제령’을 내렸다. 이 후보자가 위태롭고 고립돼있다는 걸 정말로 증명하는 말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적절치 않으니 본인이 결단을 하는 게 맞다”며 “이미 만신창이지만 청문회를 버텨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검증을 통해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부 인사는) 불완전한 상태로 국민께 추천을 드리는 단계가 있고, (지금은) 그런 보도가 되면 언론이 검증을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제도적으로 그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최종 점검하는 것이 검증 절차”라며 “국민과 함께 검증하는 청문회 과정까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문회를 통한 검증 이후 최종 판단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며 “적어도 국민적 정서에 맞는가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제가 이 후보자라면 잘못한 말·행동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철저히 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갖출 비전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맞추겠다고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청문회 당일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어필하면 청문회를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 결정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가) 다 마음에 들어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결정이 잘 된 결정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즉각 제명하고 비난하다 보니 국민의힘 쪽으로는 갈 수도 없다. 이쪽(민주당)에서 더 잘해야 한다. 파이팅하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거센 비판 속에서도 청와대가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기류도 읽힌다. 믿는 구석 통할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발 갑질 논란에도 의원들이 끝까지 버틴 이유는 폭언·갑질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원직 사퇴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상 버티고 보는 것이다. 강 전 의원은 ‘1억 자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탈당했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 법적으로 걸릴 게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덕성 차원에서는 큰 타격을 입겠지만 끝에 가서는 결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민감한 소재인 갑질 의혹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곱절이 됐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왼쪽으로 넘어온 이혜훈 누구?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은 1964년생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레스터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치는 등 경제 분야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자로 서울 서초 갑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으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보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중구·성동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자에게 패배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자의 국민의힘 당 대표 추대를 촉구하는 209인의 전직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