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의 착각

특별재판부가 아닌, 판결 구조 바꾸는 개혁이어야

요즘 사법개혁 논의의 중심에는 ‘특별재판부 설치’가 있다. 특정 사건과 정치적 사안에 대응해 전담 재판부를 만들자는 요구가 반복되지만, 사건이 터지면 재판부를 바꾸고 여론이 흔들리면 제도를 덧붙일 뿐, 판결의 질이 왜 흔들리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특별재판부는 공정성을 강화하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법부를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구조이기도 하다. 누가 그 재판부에 들어가느냐, 왜 그 사건이 특별 취급을 받느냐는 논쟁이 판결 전부터 시작된다.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하지만, 구조 설계부터 의심받는 순간 판결의 권위는 약해진다.

의심받는 순간
약해지는 권위

진짜 사법개혁은 재판부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꾸는 것이다. 법 조문에 대한 숙련보다 사건 작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판결의 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사법개혁은 반복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특별재판부가 개혁처럼 보이는 이유= 특별재판부 논의는 늘 정의감에서 출발한다. 기존 사법 시스템으로는 공정한 판단이 어렵다는 불신이 쌓일 때, 정치권과 여론은 별도의 장치를 요구한다. 물론 그 요구는 설득력이 있다. 기존 재판부가 부족하다면, 더 강한 재판부를 만들자는 논리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해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전가한다. 판결의 질이 흔들리는 원인을 제도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판사가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재판부 명칭과 구성 변경으로 덮으려 한다. 이는 증상을 치료하지 않고 간판만 바꾸는 처방이다.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책임만 이동시킨다.


특별재판부가 늘어날수록 사법부는 더 정치적으로 보인다. 어떤 사건이 특별한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정치가 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구조에서 나오지, 특별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특별함은 오히려 의심을 키운다. 그 순간 재판은 판결 전에 이미 구성 논쟁으로 심판대에 오른다.

판결은 법이 아닌 현실을 번역하는 작업= 판결은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위가 아니다. 현실에서 벌어진 복잡한 사실을 법의 언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이다. 이 번역이 실패하면, 판결은 합법일 수는 있어도 납득되지는 않는다. 시민이 판결에 분노하는 지점은 대개 이 지점이다. 판결문이 길어질수록 이해는 멀어지고, 불신은 깊어진다.

논의 중심에 특별재판부 설치
판결의 질에 대한 질문은 빠져

현대 사회의 분쟁은 단순하지 않다. 기술, 조직, 시스템, 이해관계가 중첩돼 하나의 사건 안에 공존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판사는 서류의 일부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 결과 판결은 형식적으로는 완결돼 보이지만, 현실과는 어긋난다. 시민은 판결에서 현실의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판결의 질은 법 지식의 양이 아니라, 구조 이해의 깊이에서 갈린다. 법리는 마지막 단계고, 그 이전의 해석이 판결의 방향을 결정한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결론을 좌우하며, 이 해석 능력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사고의 훈련에서 길러진다. 사법의 전문성은 여기에 있다.

쿠팡과 플랫폼 사건이 던진 질문= 쿠팡과 같은 플랫폼 사건은 전통적인 법 분류로 설명되지 않는다. 민사인지, 노동인지, 공정거래인지, 행정인지 하는 분류가 한 사건 안에 섞여 있다. 계약서만 보면 중개자고, 현장을 보면 지배자다.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판결은 필연적으로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틀의 선택이 곧 결론이 된다.

플랫폼의 핵심은 구조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책임이 어떻게 분산되는지, 위험이 어디로 이전되는지를 읽어야 한다. 이를 모르면 판사는 가장 정제된 문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에 끌려간다. 구조를 읽지 못한 판결은 언제나 말이 많은 쪽이 이기도록 한다. 침묵하는 구조는 패소하고, 포장된 논리가 승소한다.


그래서 플랫폼 판결은 늘 논란이 된다. 법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 흔적이 판결문 곳곳에 남기 때문이다. 시민은 판결문에서 결론보다도 “이 재판부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를 먼저 읽는다. 그 판단은 빠르다. 판결의 설득력은 선고 순간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시험 점수 아닌
사고 훈련부터

산업병 판결서 반복되는 오판의 구조= 산업병과 산재 판결은 구조 이해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산업병은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누적, 확률, 환경, 조직이 동시에 작용한다. 이를 개인의 질병 이력이나 단기 인과관계로 환원하면 판결은 왜곡된다. 구조는 사라지고 개인만 남는다. 책임은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그럼에도 많은 판결은 “직접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는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다. 산업병은 애초에 그렇게 입증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이 사실을 외면한 판결은 반복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판결은 안전보다 증명을 요구하고, 증명은 늘 개인에게 불리하다.

판사가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 결과에 종속되거나 보수적 판단으로 도망친다. 그 결과 정의는 서류 속에서 사라진다. 피해자는 패소하고, 시스템은 유지되며, 위험은 다음 노동자에게 이전된다. 판결은 끝났지만 문제는 남는다. 사법은 종료됐지만, 산업 현장은 그대로다.

판사는 산업이 아니라 사건 구조에 특화돼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별 판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특정 산업에 오래 노출된 판사는 무의식적으로 그 산업의 논리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문화가 아니라 동화의 위험이다. 판결은 독립을 잃고 관행을 닮아간다.

그래서 필요한 특화는 산업이 아니라 사건 구조다. 시스템 사고형 사건, 고난도 인과관계 사건, 기술 판단이 개입되는 사건 등 유형별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는 판사의 중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판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구조를 아는 판사는 주장보다 작동 원리를 본다. 보이는 쪽이 아니라 작동하는 쪽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속도의 문제?
이해의 문제!

판사는 업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해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해관계자의 주장 뒤에 숨은 작동 원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사법 전문성의 핵심이다. 이것이 사법 전문화의 올바른 방향이다. 판결은 설명이 아니라 해부여야 한다.

로스쿨과 경력 논쟁의 허점= 로스쿨 제도는 판사의 경험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경험이 곧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 경력이 길수록 사건을 의뢰인 중심으로 보는 습관이 굳어질 수 있다. 재판은 그 습관을 내려놓는 자리다. 익숙한 시선은 공정한 판단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재판은 변론의 연장이 아니다. 양쪽 주장을 동일한 거리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오히려 선입견이 적은 신입 판사가 구조를 더 정직하게 읽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험은 방향이 맞을 때 힘이 된다. 방향 없는 경험은 판단을 왜곡한다.

문제는 경력의 유무가 아니라, 그 경험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축적됐느냐다. 이 점을 무시한 채 경력만 강조하는 사법개혁은 방향을 잃기 쉽다. 경력은 조건이지, 보증수표는 아니다. 판결의 질은 이력서가 아니라 사고 방식에서 나온다.


전문성 부재가 재판 지연을 만든다= 최근 재판 지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건은 접수됐지만, 첫 변론까지 시간이 걸리고, 쟁점 정리만으로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흔히 인력 부족이나 사건 폭증이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그 이면에는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판사가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플랫폼, 산업병, 기술·금융 사건처럼 구조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판사는 관련 산업과 시스템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과 자료 제출이 반복된다. 쟁점은 늘어나고, 변론은 길어지며, 재판은 자연스럽게 지연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재판은 신중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늘어진다.

결국 재판 지연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다. 사건 구조에 대한 기본적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는 판결을 미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조 전문화는 판결의 질만 높이는 장치가 아니다. 재판을 제때 끝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판사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법은, 정의뿐 아니라 시간에서도 시민을 배반한다.

이해관계자들 주장 뒤에 숨은
작동 원리 읽어내는 능력 핵심

의사는 분야를 나누는데, 판사는 왜?= 의료 현장에서 의사는 결코 하나의 직군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내과, 외과, 소아과, 심장, 신경, 응급의학 등 분야는 세분화돼있고, 환자는 자신의 증상과 구조에 맞는 의사를 만난다. 이는 능력 차별이 아니라 판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의료는 오진의 대가를 알기에 전문화를 선택했다.

물론 판사와 의사는 역할이 다르다. 의사는 치료까지 책임지지만, 판사는 판결로 역할이 끝난다. 그러나 둘 다 판정을 내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고, 판사는 죄를 다룬다. 무게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다. 판정의 오류가 남기는 상처는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사법부는 여전히 모든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는 의료에서는 이미 포기한 발상이다. 판사를 산업별로 고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사건의 구조에 따라 판단 역량이 축적되는 설계는 필요하다. 의료가 전문화로 신뢰를 쌓아왔듯, 사법도 구조 전문화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법만이 예외일 이유는 없다.

판사 직능 개편이 사법개혁의 핵심= 진짜 사법개혁은 판사 직능을 다시 설계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판사를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관리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사건 구조별 역량 축적이 가능한 인사와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이 판결의 질을 끌어올린다. 제도는 판사의 성장을 설계해야 한다.

플랫폼 사건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판사, 산업병 사건에서 인과관계 판단에 강한 판사, 기술 감정을 검증할 수 있는 판사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다. 재판부 단위의 경험 축적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경험의 누적이 우연이 아니라 설계가 돼야 한다.

특별재판부는 일회성 처방이지만, 직능 개편은 판결의 체질을 바꾼다. 개혁의 무게중심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개입은 계속된다. 정치는 빈 구조를 파고든다. 사법이 스스로 설계하지 않으면, 설계자는 언제나 바깥에서 들어온다.

사법개혁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 순간은 판결이 틀렸을 때가 아니다. 이 재판부는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질 때다. 법적 논리는 시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판결은 권위를 잃는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복구가 어렵다. 판결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법개혁의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판결이 현실을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가, 구조를 이해한 흔적이 남아 있는가,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다. 절차의 공정성만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판사가 구조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개혁이다. 그것이 쿠팡 이후의 플랫폼 사회, 산업병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법부가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이 기준이 서지 않는 한, 사법개혁 논쟁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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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