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음란행위 ‘게이 사우나’ 정체

남자끼리 만나는 ‘24시간 성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남성 전용 사우나에서 집단 음란행위를 벌이던 남성들이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에는 현직 경찰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해당 사우나는 일부 이용객들 사이에서 ‘게이들의 성지’로 불려온 곳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필 사우나를 찾는 걸까?

서울 금천경찰서는 지난달 22일 금천구의 한 남성 전용 사우나를 순찰하던 중 수면실에서 음란행위를 하던 남성 6명을 적발했다. 해당 사우나는 ‘남성 전용’ ‘24시간 영업’ 간판이 걸린 시설로, 내부에는 ‘수시 순찰 구역’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실서
경찰까지
 

경찰은 순찰 과정에서 수면실에서 벌어지고 있던 음란행위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관련자들을 붙잡았다. 적발된 남성들 가운데에는 인천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50대 경찰관 A씨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단속 상황에서 현장을 벗어나려다 붙잡혔으며, 6명 가운데 유일하게 공연음란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목격자는 “그 사람이 체격이 왜소했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사우나는 이전부터 음란행위와 관련한 신고가 반복적으로 접수돼 경찰의 수시 순찰 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알려졌다. 수면실 입구에는 “경찰 수시 순찰 구역”이라는 안내와 함께 “수면실 이용 시 반드시 속옷이나 가운을 착용하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고 한다.

시설 관계자 역시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설명했다. 사우나 관계자는 “이걸 우리가 홍보할 수도 없고 이용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서로 연락해 찾아오는 것 같다”며 “이야기하기도 낯 뜨거운 문제”라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도 해당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자영업자는 “직원들이 사우나를 다녀온 뒤 ‘거기가 좀 이상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A씨는 경찰서로 인계돼 조사를 받은 뒤 당일 귀가 조치됐다. 이후 입건 사실은 곧바로 소속 기관에 통보됐으며, 해당 경찰서는 수사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성 전용 사우나나 수면시설에서 음란행위가 벌어지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 사우나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해당 시설에서는 불과 몇 시간 사이 두 차례 경찰이 출동했다. 첫 번째 사건은 오전 9시경 수면실에서 발생했다.

40대 남성이 20대 남성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고 해당 남성은 성추행 혐의로 임의동행 조치됐다. 이어 약 두 시간 뒤인 오전 11시30분 무렵 같은 사우나 시설에서 또 다른 신고가 접수됐다.

‘남성 전용’ 은밀한 만남
수시 순찰 구역으로 지정

이번에는 30대 남성 두 명이 서로 신체접촉을 하며 음란한 행위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공연음란 혐의로 임의동행했다. 한 시설에서 짧은 시간 사이 음란행위 신고가 잇따르자 이용객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이 있었다.

2012년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남성 전용 사우나 업주가 동성 간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경찰 조사에 따르면 해당 업소는 남성 이용객들이 사우나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서로 호감을 느끼면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실상 방치하거나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주는 인터넷을 통해 해당 업소를 남성 전용 사우나이자 동성 간 만남이 가능한 장소로 홍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업소 내부에 콘돔과 젤 등을 비치한 채 영업을 이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또 해당 업소가 목욕장이나 숙박업 신고 없이 운영되면서 수년 동안 약 2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공중위생업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업주를 입건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마약까지 투약하며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서울 강남 일대의 남성 전용 수면방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투약한 일당이 적발됐다. 당시 경찰은 홍콩에서 필로폰이 밀반입되고 있다는 첩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해당 마약이 성소수자 관련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통해 거래된 뒤 남성 전용 수면시설에서 투약되는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필로폰 약 70g과 신종 마약, 현금 등을 확보했고 마약 밀반입자와 유통책, 투약자 등 10여명을 검거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해당 수면시설이 숙박 공간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모여 마약을 투약하거나 성관계를 맺는 장소로 활용됐다는 정황도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남성 전용 사우나나 수면시설에서 성소수자들의 음란행위가 벌어지는 일은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들은 주로 사우나나 휴게텔, 찜질방 등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르고
갔다가…
 

이 같은 공간은 이른바 ‘게이 사우나’ 또는 ‘수면방’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설이고 일반 이용객들도 입장료만 내면 이용할 수 있어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사우나를 선택하는 것일까? 사우나와 찜질방과 같은 대부분의 시설은 별도의 객실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 수면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용객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마주치거나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된다. 음란행위를 나눌 타깃을 물색하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또 내부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공간이 많다. 이 같은 이유로 리스크 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된다.

실제 온라인 상에는 게이 사우나를 이용하게 된 사람들의 후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평범한 남성 전용 사우나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예상과 다른 분위기를 경험했다는 내용이다.

이용자 B씨는 서울 강남의 한 남성 전용 사우나를 방문했던 경험을 온라인 게시글로 남겼다. 그는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평범한 사우나처럼 보였다”며 “건물 입구에도 ‘남성 전용 사우나’라는 간판이 걸려 있어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탈의실과 목욕탕, 휴게 공간 등이 있는 일반적인 사우나 구조였다고 한다.  

그는 “탈의실에는 신문을 보거나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시설도 오래된 목욕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목욕탕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고 했다. 그는 “탕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계속 주변을 살피는 느낌이 들었다”며 “목욕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계속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탕 안에서 다른 이용객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는 경험도 적었다. B씨는 “샤워를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수건을 던지거나 말을 걸 듯한 행동을 했다”며 “직접적인 말은 없었지만 뭔가 관심을 표현하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자리를 옮겨야 했다.

CCTV 없고
묘한 분위기

목욕탕을 나온 뒤 휴게 공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휴게 공간에는 TV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탈의실 근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탈의하거나 옷을 입는 동안에도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며 “일반 사우나에서는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는 이후 수면실로 이동했다. 수면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었고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일부 이용객은 수건을 두른 채 누워 있었고 일부는 앉아 있거나 주변을 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수면실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며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 자리를 옮기거나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적었다.

수면실 안에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사람들이 계속 오갔다”며 “어떤 사람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켜고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며 “결국 오래 머무르지 않고 수면실을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 C씨 역시 비슷한 경험담을 온라인상에 남겼다. 그는 우연히 사우나를 찾았다가 내부 분위기에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하철이 끊겨 잠깐 쉬려고 사우나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평범한 남성 사우나라고 생각했다”고 기술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탈의실과 목욕탕이 있었고 시설도 오래된 목욕탕과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목욕탕 안에서 C씨는 몇몇 이용객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탕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목욕을 하면서도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샤워를 마친 뒤 휴게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C씨는 “휴게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며 “자리를 옮기거나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이 계속 움직였다”고 했다. 이후 그는 수면실로 들어갔다.

“자다가 보니 옆에서 성행위”
사건 후 충격 목격담 쏟아져

수면실에는 여러 사람이 누워 있었고 일부는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C씨는 “수면실 안에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며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계속 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였던 그는 “처음에는 누군가 뒤척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신음 비슷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고 언급했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수면실을 나왔다. C씨는 “처음에는 평범한 사우나라고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며 “결국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수면실 입구에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안내문에는 동성 간 부적절한 행동이나 다른 이용객의 수면을 방해하는 행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C씨는 “수면실 입구에 그런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번에 적발된 금천구 남성 전용 사우나를 이용했다는 일부 방문객들의 후기도 올라와 있었다. 실제 사우나 리뷰에는 “여기는 사실상 게이 사우나다. 자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깼는데 남성 두 명이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글이 게시돼있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남탕에서 남성 두 명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아이와 함께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적기도 했다. 많은 방문객이 일반 사우나와는 다른 분위기를 경험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처럼 남성 전용 사우나에서는 오래전부터 성소수자들의 음란행위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단속이 쉽지가 않다. 특히 수면실이나 휴식 공간 등에는 카메라 설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시설 내부 상황을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해도
다시 모여

공동 이용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머무는 구조인 만큼 문제가 발생해도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사우나 운영자를 처벌할 수도 없다. 업주가 직접 성행위를 유도하거나 알선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단속과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해외에도 게이 사우나?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남성 전용 시설에서 수백명의 남성이 한꺼번에 단속에 걸리는 사건도 있었다.

현지 매체 <더스타> 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경찰과 연방직할지 이슬람종교국(JAWI)은 지난해 11월28일 오후 8시께 쿠알라룸푸르 라자 라우트로에 있는 한 웰니스 센터를 합동 단속했다.

해당 시설은 체육관과 사우나, 스파, 수영장, 휴게실 등을 갖춘 남성 전용 건강 시설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남성 간 성행위가 이뤄지는 장소로 이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단속 당시 현장에서는 19세부터 60세까지 남성 202명이 적발됐다.

이들 가운데에는 의사와 검사, 교사, 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말레이시아 현지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독일 등 외국 국적 이용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업소는 등록비 10링깃(약 3500원)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 뒤 방문할 때마다 35링깃(약 1만2000원)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됐다.

시설은 퇴근 후 휴식을 원하는 남성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오후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영업했고 SNS 등을 통해 홍보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방식의 운영은 약 8개월 동안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당국은 ‘남성 이용객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2주 동안 정보 수집과 감시를 진행한 뒤 해당 시설을 급습했다.

경찰은 이들을 말레이시아 형법 제377조(비자연적 성행위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체포했다.

말레이시아 법은 남성 성기가 타인의 항문이나 입에 삽입되는 행위를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동성 간 행위뿐 아니라 이성 간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동성애 관련 사건에 주로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나무호 폭발’ 시험대 오른 한미 관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경제는 물론 외교까지 흔들고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의 초조함이 우리나라에 불똥으로 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에 도움 되는 ‘실용 외교’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낮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공습의 여파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폭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응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거셌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오가는 물류 허브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방법으로 응수했다. 끝날 듯 안 끝나는 원유 이동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폭등했다. 주가가 출렁였고 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하는 등 협박에 가까운 말로 압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주변국에도 폭탄을 투하하는 등 확전 태세를 보였다. 지난 2월28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이어지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달 초 미국과 이란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이라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만큼 계속 주도권을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 자유 항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 양상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통행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선박을 멈춰 세운 이란에 반발해 군사작전을 기획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의 탈출을 돕는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착수 첫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무력을 행사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불똥은 우리나라 선박에도 튀었다. 지난 4일 오후 8시40분경 호르무즈 해협의 아랍에미리트 움알쿠와인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옛 현대상선) 소속 선박 나무호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 해협서 선박 사고 “이란 공격” VS “관련 없다” 폭발과 화재 당시 우리나라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HMM에 따르면 나무호는 예인선을 통해 두바이항으로 옮겨졌다. 두바이 현지의 한국선급 지부 인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속 조사권, 소방청 감식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조사 결과 5월4일 미상의 비행체가 HMN 선미를 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CTV 영상에 해당 비행체가 포착됐으나 발사 주체, 정확한 기종 및 물리적 크기 등을 확인하기에는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체 엔진 잔해 등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나무호 폭발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동맹의 전쟁 참여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포함해 관련 없는 국가들을 공격했다”며 “이제는 한국이 이 작전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호 폭발과 관련해 사고 원인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때문이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반면 이란 측은 나무호 사건에 선을 그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피해 사건에 이란군이 연루됐다는 모든 의혹을 강력히 거부하며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언급했다. 이란대사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발령된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지정된 항로를 따르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관계 당국과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격이냐 결함이냐 또 “군사 및 안보적 긴장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선포된 요구사항과 작전상의 실태를 무시할 경우 의도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며 “이 같은 고려 사항을 무시한 채 해당 구역에서 통행이나 활동을 진행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미묘하게 우리나라 선박 측으로 책임을 돌리는 듯한 뉘앙스다. 정부는 지난 6일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이 종료됐기 때문에 (참여) 검토는 꼭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그동안 ‘해양 자유 구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고 프로젝트 프리덤에 대해서도 검토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나무호 사건은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요구가 또다시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글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은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큰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직접 호위 작전에 나서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군함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도 못 돼 또 한 번의 ‘트럼프발 호르무즈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신중한 정부 넘겨 왔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말이 지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동맹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 각국에 관세 폭탄을 던질 때부터 시작된 균열이 아직까지 봉합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혈맹’이라고 불리던 한미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거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관세 문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놓고 화두로 올렸다. 관세를 부과하고 분담금을 더 내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압박했다.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 돈으로 보상하라고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말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정 장관이 지난 3월6일 국회에서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구성을 언급했다.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식 확인한 영변과 강선 외의 장소다. 국민의힘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따르면,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은 4월 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일부 제한했다. 정 장관은 구성이 과거 미국 싱크탱크나 국내 언론 보도 등으로 이미 언급됐던 장소라며 정보 유출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정 장관의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고 두둔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정쟁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정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면서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고 국가 안보의 금도를 넘어섰다”며 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은 “안보 사안에 대해 숭미주의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맞섰다.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자동 폐기됐다. 트럼프 노골적 참전 요구 청구서 받아든 이 선택은?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 사법 체계를 흔드는 듯한 행보도 잇따라 나왔다. 김범석 쿠팡 의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관련 논란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3300만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로 조사를, 방 의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미국 정계에서는 다양한 경로로 쿠팡 ‘감싸기’를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게 골자다. 수사 대상에 오른 김 의장의 안전을 보장해야 안보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중단하라는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면서 한미 간에 감정싸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지금까지 쿠팡의 동일인은 법인이었는데 김 의장(개인)으로 바뀌면서 법적 책임이 대폭 늘었다. 실제 쿠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시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중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 김 의장이 미국 국적자인데 그를 한국법상 총수로 지정한 것은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방 의장을 비롯한 하이브 관계자 3명의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 경찰청에 오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하이브 상장 과정에서 방 의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보완 수사를 이유로 반려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이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어떤 이유로든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사를 받는 인물에 대해 특정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택 기로 앞으로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방향은 ‘국익’ ‘실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등 안보 독립을 외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는 오랜 시간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이뤄졌다. 결국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합류일까, 관망일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