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방중·방일 외교, ‘손자병법’ 작동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이 대통령의 1월 외교

이재명 대통령의 1월 외교를 두고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두 나라를 모두 방문했느냐’였다. 나아가 ‘어떻게 한쪽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쪽을 만날 수 있었는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외교 수사나 개인적 친화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답은 병법에 있는데 바로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서로 알려졌지만, 그 본질은 ‘충돌을 관리하는’ 책이다. 손자는 싸움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는 구조,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배치하는 기술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최근 출간된 <손자병법>의 저자 박병영은 병법이란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와 오판을 막는 설계라고 설명한다.

이번 외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읽힌다.

중국과 일본은 구조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역사와 영토 문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두 나라는 언제든 긴장 상태로 돌아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국가의 지도자가 양국을 잇따라 방문하는 것은 자칫하면 ‘선택’이나 ‘편 가르기’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1월 외교는 그런 오해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손자병법>의 원칙을 따른 결과다.

손자는 “불가승자, 수야(不可勝者 守也)”라고 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는 공격하지 말고 지키라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중재자나 조정자의 위치에 서지도 않았다. 대신 한국이 그 갈등의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배치했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병법이었다.

이 대통령의 방중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진행됐다. 일정의 중심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일본을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을 배제하지도, 일본을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대신 “2026년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메시지를 통해 관계의 방향을 구조적으로 제시했다.

시 주석 역시 ‘한중 새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고 화답했다.

<손자병법>의 ‘허실(虛實)’ 개념은 이 지점에서 분명히 작동했다. 안보·진영 문제처럼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의제는 전면에 두지 않고, 경제·산업·공급망이라는 중국이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 의제를 중심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중단됐던 한중 경제 협의 채널 복원, 공급망 안정화 논의 재개, 통상 분쟁 관리에 대한 상설 소통 필요성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오갔다. 성과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였다.

방중 일정의 폭 역시 의미심장했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뿐 아니라 국회의장 격인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 중국의 ‘경제 사령탑’인 리창 국무원 총리를 연이어 만났다. 상하이에서는 천지닝 당서기와의 만찬, 한중 벤처 스타트업 서밋 참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방문을 소화했다.

이는 한중 관계를 정상 간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경제·민간으로 분산된 다층 구조로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신뢰 회복을 전면에 놨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혐중·혐한 정서가 한중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에 양국 지도자의 인식이 일치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북한 문제와 관련해 대화 재개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서해 구조물 문제와 해상 경계 획정에 대해서도 실무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립을 봉합하지 않고, 관리의 틀로 옮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자는 “군형상수, 적형상동(軍形常數 敵形常動)”이라고 했다. 나의 형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상대의 형만 변하게 하라는 뜻이다. 중국을 상대하는 자리에서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음으로써, 외교의 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이후 13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방일 외교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중국을 거론하지 않았다. 중국을 견제의 대상으로 삼지도,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관계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청와대가 이번 방일의 최대 성과로 꼽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두 정상 간에 구축된 개인적 친분과 신뢰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이번 정상회담은 세 번째로, 경주 APEC 정상회의, 남아프리카공화국 G20 정상회의를 거치며 축적된 신뢰가 이번 방일에서 확인됐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밝힌 것처럼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지금 구축한 우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자”는 공감대가 회담 말미에 자연스럽게 오갔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싸우기 전에 이미 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실질 협력도 뒤따랐다. 양국은 경제 안보와 과학기술, 인공지능, 지식재산권 보호 등 교역 중심을 넘어선 포괄적 협력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일 경제·통상 협의 재가동, 실무 협의 지속 역시 합의됐다. 과거사 문제에서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유해의 DNA 감정 추진이라는 구체적 진전이 나왔다.

명분은 흐리지 않되, 실리는 조용히 챙긴 전형적인 병법적 전개였다.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정책 공조 역시 확인됐다. 일본 수산물 문제, CPTPP 가입 논의처럼 민감한 사안도 정면 충돌이 아닌 실무 협의의 틀로 넘겼다. 손자가 말한 것처럼, 적을 직접 말하지 않고 지형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가 이번 외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어느 쪽에서도 ‘상대국을 활용하지 않았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위험한 전술은 한 적을 상대하면서 다른 적의 이름을 빌리는 것인데 이번 외교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다.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손자병법>은 중국 책이지만, 이번 외교에서 <손자병법>답게 활용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그것도 중국식 권모술수가 아니라, 박병영을 통해 한국 현실에 맞게 재해석된 병법이었다.

외교는 말의 양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대통령의 방중·방일 외교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줬다.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고, 상대를 비교하지 않았으며, 갈등을 중재하려 들지도 않았다. 대신 신뢰를 축적했고, 구조를 만들었으며, 선택지를 제한했다.

외교는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누적된 신호의 결과다. 이번 외교에는 즉흥이 아니라 설계가 있었고, 선언이 아니라 병법이 있었으며,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산의 밑바닥에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다시 살아난 박병영의 <손자병법>이 작동하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그것이 이번 외교의 핵심이었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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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