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군정보사령부는 12·3 내란 이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는 계파 싸움을 넘어 직원들끼리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분위기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은 역대급으로 조직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 ‘정보사 개혁’을 단행할 적절한 시기라고도 했다.
내란 특별검사팀(조은석 특별검사)에 이어 2차 종합특검팀(권창영 특별검사)이 닻을 올렸다. 과거 특검팀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조직은 국군정보사령부가 유일하다. 정보사는 현재 소극 공작만 하고 있을 정도로 위축돼있다. 직원 대부분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까 노심초사 중이다. 일각에서는 수십년간 지속된 정보사 내부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망가진
정보망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정보사 전·현직 관계자들과 소통해 왔다. 1년이 넘는 설득 끝에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에 이어 복수의 정보사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 요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휴민트 요원들은 보안을 숙명으로 삼는다. 외부인에게 내부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들은 지금껏 배운 대로 내부절차를 밟아 윗선에 쓴소리와 변화를 요구했으나 헛수고였다고 한다.
정보사 A 여단은 국군에서 유일무이한 조직이다. 영관급 장교인 B씨는 “지금까지 변화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2018년과 2024년 내부 요원 명단 유출 사건과 2024년 내란 가담까지 일개 조직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때가 변화와 혁신의 기회였다”고 주장했다.
정보사는 국가정보원과 같이 매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인원과 작전 위험도로 따지면 국정원보다 소수 정예로 움직인다. 그만큼 인원을 뽑을 때도 최고의 엘리트 인원들을 선발해야 한다.
B씨는 “전 세계 어느 정보기관들을 보더라도 우수한 인재를 모집하려 노력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국정원, 방첩사도 서류심사, 필기시험, 면접 그리고 연수 기간을 통해 인원들을 선발한다. 하지만 정보사 A 여단은 다르다. 아니 틀리다. A 여단은 820 선발 차원에서 이런 선발 과정이 아닌 서류심사, 면접으로 이뤄지고 선발된 인원들은 소정의 연수 과정을 끝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애초 선발할 때 똑똑한 사람들을 뽑아도 모자라다. 현실에서 해외 체류 경험이나, 어학 능력 수준과 기본소양만 보고 선발한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점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B씨는 “정보기관, 그리고 100여단에 적합한 인원을 선발해야 한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정원이나 방첩사처럼 확실한 기준을 갖고 우수한 인재들만 선발해야 하는데, 과거부터 인력이 부족하니 대거로 채용해서 채워넣기에 급급하다”고 토로했다.
휴민트, 해외 경험·소양·어학만 보고 선발?
필드 경험 전무한 지휘관들 “대외공작 몰라”
정보사의 이런 채용 방식은 채용 인원 대비 진급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지는 문제점을 낳는다. 진급 대상자는 수십명에 달하는데 진급 자리는 고작 10명도 되지 않는 형국이다. 군대라는 특성상 계급 정년과 나이 정년이 있기에 제때 진급하지 못하면 전역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막 들어온 신입 직원들은 A 여단에 전입하면 짧게는 1년, 길면 2~3년 내 소령 진급을 바라본다.
또 다른 정보사 영관급 장교 C씨는 “위관급들끼리 진급 경쟁을 시작하는데 무슨 경력으로 진급할 수 있겠나. 이제 막 들어와 내부 분위기 파악에 적응 기간을 지나고 나면 진급 시즌이 수차례 지나간다. 필드 활동으로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실적보다는 인맥 쌓기, 힘든 데스크 포지션을 수행하면서 주로 진급 자리만 노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부에 좋지 않은 성품을 가진 이들도 있다. 개인 노예 부리듯 시도 때도 없이 후배들에게 사적 심부름을 시킨다. 진급을 위한 상납금 등 예산을 남용하거나 직장 내 갑질을 부리기도 한다. 어린 친구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수긍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절대 명령, 절대 복종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A 여단 대부분의 대위에서 소령 진급자들이 이런 식으로 진급한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정보사에는 현재 현장 필드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필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휘관이기에 현장 요원들을 제대로 감독하거나 지도할 수 없고 공작 계획도 부실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데스크
포지션
정보사 HID 원사 출신인 D씨는 “우리 조직은 수집기관이다.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로 인해 정보사는 지금 행정조직에 가깝게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12·3 내란 때 A 여단 직무대리였던 대령이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사림이었다”고 말했다.
경력을 쌓지 못한 장교들은 다수 진급에 실패한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도 없는 인원은 윗선으로부터 ‘차라리 참모직으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사 참모직 중 대표적인 부서가 ‘특수사업처’다. A 여단의 공작 계획을 관리·감독하는 부서로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이끌게 되면 말 그대로 공작 진행이 초기 단계부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C씨는 “정보기관은 어느 조직보다 혁신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한다. 방첩사는 군사교육 성적 상위 10%, AI 면접 등 우수한 인재 선발을 위해 노력하는데, A 여단도 그래야 한다”며 “수집 활동에 적합한 인원을 선발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과 적합성을 보고 채용해야 하는데, 만약 충족되는 인원이 없으면 채용하지 않아야 한다. 수집성과가 우수한 인원들을 위주로 진급시키고 지휘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A 여단은 매년 보험회사처럼 실적을 기준으로 연말에 전 인원의 수집 성과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다. 지난 10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매번 비슷한 인원들만 상위권에 든다. 나머지는 그저 안일하게, 편하게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B씨는 “필요하다면 조직을 축소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A 여단에는 정말 능력이 탁월한 인원들이 있다. 이들을 위주로 조직을 축소시켜 실력 있는 사람만이 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게 수집기관의 사명이다. 대한민국은 매우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분단국가라는 특성을 안고 살아가는 국가”라며 “이런 현실 속에서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전장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직 남은
특검 수사
아울러 “이번 군 정보기관의 개혁만이 대한민국 군 정보의 올바른 방향과 미래 지향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 덧붙였다.
정보사는 내란 특검팀에 이어 2차 종합특검팀의 수사를 받게 된다. 어쩌면 내란 특검팀보다 강도 높은 수사로 인해 지금보다 조직의 사기가 더욱 떨어질 수도 있다.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은 종합특검팀 수사로 내부에서 부정한 공작과 악행을 일삼는 이들을 솎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과거 특검팀 수사에서 솔직하게 진술하지 않은 인원이 적지 않다. 한 장교는 비상계엄 다음 날 증거인멸까지 했는데 이 부분이 수사되지 않았다. 물론 입을 다물고 있는 직원들에 대해 특검팀이 ‘라포 형성’을 하면서 진술을 끌어내는 방식도 필요하지만 노상원의 경우 이 방법이 실패하지 않았나”라며 “아예 묵비권만 행사하는 직원들에 대해선 확실한 물적 증거를 잡았다면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내란 특검팀 수사에서부터 협조하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씨의 재판에서도 납득하기 힘든 진술뿐이었다. 오는 항소심 재판에서 이른바 ‘노상원 수첩’ 내용의 진위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증거로 인정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먼저 내란 특검팀은 지난달 27일 윤씨 등 8명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한 이래 구체적인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특검법상 항소하고 7일 이내 항소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경력 못 채운 장교는 진급하려 참모직으로
엘리트 인재 지원 규모 해마다 줄어 인력난
내란 특검팀은 12·3 비상계엄은 ‘우발적 조치가 아니라 2023년 10월 이전부터 기획되고 장기간 준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노 전 사령관이 자필로 작성한 70쪽 분량의 수첩을 제시했다.
해당 수첩에는 이 사건 비상계엄 및 그 후속 조치와 관련된 단계적 내용이 다수 적혀있었다. 수첩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2일 만인 2024년 12월15일 노 전 사령관 모친 주거지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다.
1심은 노상원 수첩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성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고 내용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윤씨가 계엄을 결심한 시점을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인 2024년 12월1일로 특정했다.
수첩의 신빙성을 입증할 핵심 단서는 노 전 사령관의 증언이다. 노 전 사령관은 특검팀 수사 초기 일정 부분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1심 재판 과정에서 증언을 모두 거부했다.
종합특검팀도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필요하다. 종합특검팀 수사 대상 가운데 노상원 수첩에 기재된 국회 해산, 비상 입법기구 창설, 별도 수사단 구성 및 집결 계획 등이 포함됐다. 다만 수첩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점이 종합특검 수사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부터 내란 특검팀의 조사를 받은 정보사 관계자들 전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앞서 박 전 여단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보사 현직 요원들이 특검팀 조사에서 솔직하게 말하겠나. 부담감이 클 것이다. 나 같아도 현직이었다면 먼저 대놓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휴민트 상급 요원들은 상당수 내란 준비 및 실행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말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처벌 피하려
소극적 협조?
검찰 특수본 조사를 받았던 한 정보사 관계자는 “검사가 묻는 것에 대해서만 답했다. 공작이 어떻게 진행되고 언제부터 비상계엄을 알았는지, 주로 누구와 연락했는지는 답했지만 주로 내가 어떤 임무를 하고 향후 작전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판단되는 건 답변을 거부하거나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건 나 말고 다른 요원들도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노상원과 만났던 이들은 대부분 기소되거나 파면됐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입을 좀 더 열어야 한다고 본다. 정보사를 망쳤다면 마지막에라도 옳은 선택을 하는 게 맞지 않나.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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