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 세계 질서의 한 축이 멈췄다.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관세가 아니라 권력이 멈춘 것이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문제였고, 통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권한의 문제였다. 이 소식은 무역 뉴스가 아니라, 대통령 권력의 한계를 다시 긋는 사건이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간단하다. 트럼프가 상호 관세와 기본 관세를 밀어붙일 때 근거로 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이 명시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세는 원칙적으로 의회 권한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은 “수입을 규제할 수 있다”는 문장을 “관세를 때릴 수 있다”로 확장해버린 행정부 논리를 끊어냈다.
즉, 비상사태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의회의 관세 권한까지 가져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대법원 표결은 6대 3이었다. 보수 우위 구도에서 나온 판결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위법 쪽에 섰다. 이는 정치 성향이 아니라 헌법이 그은 권한의 경계를 따랐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한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어도, 의회의 과세 권한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권력은 세지만, 헌법의 선은 더 세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대법원의 구조를 봐야 한다. 미국 연방 판사는 헌법상 ‘good Behaviour(종신 재직)’, 즉 사실상 평생 임기 구조로 설계돼있다. 임기 경쟁이 아니라 권력 분립의 브레이크가 되도록 만든 장치다. 한국과 같은 임기·승진·인사 구조와 결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 대법원도 정권의 기류가 아니라 헌법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제 ‘시간’이다. 속보는 시간표로 읽어야 한다. 판결은 미국 현지 20일(동부시각) 발표로 보도됐고, 한국은 같은 시각 21일 오전 12시부터 속보로 받았다. 동부시각과 한국시각은 겨울 기준 약 14시간 차이다. 예컨대 미국이 20일 오전 10시에 움직이면, 한국은 21일 오전 12시에 흔들린다.
그 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이지만 이런 중대한 판결이 예고된 날이라면, 정부는 잠들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매뉴얼은 무엇이어야 했나? 정답은 뻔하다. 청와대는 비상근무에 들어가야 했다. 산업·외교·기재·금융당국 라인이 동시에 깨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판결은 단순히 “관세가 내려갈 수도 있다”가 아니라, 한미가 관세 인하와 맞물려 쌓아 올린 합의 구조(투자·안보·공급망)의 변수를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약속한 대미 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는 단순한 경제협력이 아니라 관세 인하를 전제로 설계된 구조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부담을 낮추는 대신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거래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관세의 법적 기반이 흔들리면 그 거래의 토대도 재검토 대상이 된다.
미국이 플랜B를 준비한다면 한국도 투자 조건과 집행 속도를 재정렬하는 대응 시나리오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
실제로 정부 반응은 21일 새벽에 나왔다. 청와대는 “판결 내용 및 미국 정부 입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밝혔다. 하지만 속보성 위기에서 검토는 공백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은 검토가 아니라 시그널을 원한다. 청와대는 21일 오전 비상 국무회의(또는 관계장관회의)를 열 것이다.
늦었지만 ‘국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
더 까다로운 대목은, 이 판결이 트럼프 관세의 종말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측은 이미 플랜B를 시사해 왔고, 대체 수단으로 무역확장법 232조(국가안보), 무역법 301조(불공정), 122조(일시 관세) 등이 거론된다. 즉, IEEPA가 막혀도 관세를 부과할 다른 길은 남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길어지고, 그 시간만큼 한국 기업의 투자·수출 의사결정이 얼어붙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환급’이다. 미국 내 수입업체들이 대규모 환급 소송에 나설 경우, 이는 단순한 미국 내부 문제가 아니다. 관세 부담이 가격과 계약을 통해 공급망 전반에 전가돼 왔다면, 환급 과정에서도 다시 정산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시장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한국 기업들도 계약 재조정과 가격 협상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환급은 미국의 행정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으로 번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지금은 망설일 시간이 아니다. 당장 네 가지를 결단해야 한다.
첫째, 투자 3500억달러 패키지를 전면 재검토가 아닌 조건부 재정렬로 관리해야 한다. 관세가 무효화됐다고 즉시 손을 빼면, 안보·공급망 협력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대신 “어떤 법적 근거의 관세가 어떤 품목에 어떤 시점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투자 집행의 속도·우선순위·트리거를 다시 짜야 한다.
둘째, 플랜B 대응 전담팀을 청와대-산업부-외교부-기재부-금융위로 묶어 즉시 가동해야 한다. 무역확장법 232조가 나오면 상무부 조사 대응과 동맹국 공조가 핵심이 된다. 반면 무역법 301조가 적용되면 통상 분쟁과 보복 관세 국면으로 전환된다. 법적 근거가 달라지면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부터는 ‘관세율’이 아니라 ‘관세의 법적 트랙’을 읽어야 한다.
셋째, 산업별 시나리오를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해야 한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로봇·의약품 등은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이 거론될 때마다 시장이 먼저 반응한다. 정부가 한 발 늦으면 기업은 두 발 늦는다. 그러면 고용과 투자 결정이 뒤로 밀린다. 속보 국면에서 정책은 ‘완벽함’이 아니라 ‘속도와 방향’이 신뢰를 만든다.
넷째, 사법 리스크를 외교·통상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미국 내부에서도 관세 권한은 의회라는 선을 재확인한 사건이다. 한국은 향후 협상에서 행정부 약속의 지속 가능성을 더 냉정하게 따질 명분을 확보했다. 말하자면, 한국이 더 까다로워질 수 있는 정당성을 미국 대법원이 깔아줬다. 그것을 외교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판결은 남의 나라 뉴스로 끝난다.
트럼프는 판결 직후 강하게 반발했다. 실망, 수치, 대체 수단 등의 메시지는 앞으로 더 거칠어진다는 예고다. 그렇다면 한국의 답은 감정이 아니라 체계여야 한다. 21일 새벽의 속보가 말한 건 하나다. 관세는 정책이 아니라 권력이고, 권력은 언제든 법을 우회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가는 ‘비상 운영’을 준비해야 한다.
청와대의 보도자료는 시작일 뿐이다. 이제 ‘비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관세를 멈추는 힘이 시장이 아니라 법정에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날 새벽 목격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논평이 아니라 체계다. 세계가 흔들릴 때 한국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재정렬할지, 그 우선순위를 정부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세계가 법으로 멈췄을 때, 한국은 전략으로 움직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