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카지노 황제 비참한 말로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11.27 08:37:08
  • 호수 15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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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저축은행 그 남자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전북지역 최대 서민금융기관이었던 전일저축은행이 파산으로 사라진 지 10여년이 지났다. 원인 제공자인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겸 전 라마다 프라자 호텔 제주 카지노 회장 은인표는 거물을 꿈꿨다. 그의 심복으로 불린 정모씨가 카지노를 장악하기 전까지 말이다.

은인표는 2000억원대 부실·불법 대출, 교도관 뇌물, 연예기획사 특혜 대출로 징역 7년6개월형이 확정된 뒤 복역하다가 지난 2019년 출소했다. 그 이후에는 그를 둘러싸고 ‘법인 서류 위조’와 ‘자격 도용’, 카지노 영업권을 둘러싼 ‘주주 사칭’ 의혹까지 새로 불거졌다.

정치권과
주먹 세계

전일저축은행(이하 전일저축) 사태는 ‘한 사람의 탐욕과 감독 부실이 결합할 때, 서민금융이 어떻게 사금고로 전락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전형적인 표본이다. 은인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 금융과 정치권 등에 로비를 통해 카지노 왕국을 설립하기를 꿈꾼 남자로 해석된다.

전일저축은 한때 자산 1조2000억원 규모를 자랑하던 전북지역의 최대 저축은행이었다. 그러다 2009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1.13%까지 추락하며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후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부실 저축은행 정리 방식으로 ‘가교저축은행(브리지 뱅크)’ 모델을 택한다. 전일저축의 자산과 부채 상당 부분을 새로 만든 예나래저축은행으로 넘기는 계약이전 방식이었다.


2010년 4월엔 예금보험공사가 전일저축 일부 자산과 5000만원 이하 예금을 예나래저축은행으로 계약 이전하고 영업을 재개했다. 예나래저축 영업 개시 첫날인 그해 4월12일엔 6만여명에 달하는 5000만원 이하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창구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5000만원 초과 예금 및 후순위채 투자자들의 돈은 파산재단으로 넘어가 ‘언제, 얼마나 돌려받을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았다.

2011년 매체에 따르면 전일저축은행에 예금자 보호 한도(5000만원)를 초과해 돈을 맡긴 고객은 3550명, 후순위채 피해액은 162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전일저축은 더 이상 ‘서민 금융기관’이 아니라, 누군가의 대담한 도박이 남긴 잿더미로 남겨졌다.

‘연예계·카지노 사업가’였던 은인표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금융권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그는 ‘연예계 대부’이자 제주도 호텔·카지노 사업을 벌이던 사업가로 유명세를 탔다. 호텔 카지노를 인수·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전일저축을 개인금고처럼 활용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300억 불법대출 179억 기획사 특혜
징역 7년6개월 살고 야인으로 지내

은인표는 2006년 6~8월 사이 호텔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업체 두 곳의 명의를 빌려 전일저축에서 총 189억여원을 대출받으면서 차명 대출 혐의를 받게 됐다. 현행 상호저축은행법은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및 우회(차명) 대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주주인 은인표는 자신과 관련된 리조트·카지노 법인을 위해 은행 자금을 동원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연예계 대부 은인표의 저축은행 인수자금은 어디서 나왔는가”라는 의문은, 결국 ‘저축은행 안에서 나왔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들어 수사망이 본격적으로 좁혀지면서 검찰은 ▲2006년 제주 리조트 인수 과정에서 대주주 지위를 이용해 전일저축에서 300억원대 불법 대출을 일으켜 은행에 손해를 끼친 혐의 ▲2008~2011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은인표가 편의 제공 대가로 교도관에게 약 8900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자신이 소유한 연예기획사(외주 제작사 등)에 적정 담보나 심사 없이 불법 대출을 지시해 전일저축에 179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은인표에게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등에 징역 4년, 뇌물공여에 징역 2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에 징역 3년을 각각 선고, 총합 중형을 내렸다.

항소심에서는 일부 불법 대출 금액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단이 내려져 유죄 인정액이 약 300억원대로 줄었지만, 전체 형량은 징역 7년6개월로 정리됐다.

이후 2016년 5월24일, 대법원 3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 및 법리 오해가 없다”며 이 판결을 확정한다. 이렇게 전일저축을 무너뜨린 은인표에 대한 형사 책임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중국에
먹히다

은인표를 둘러싼 정치·종교·정관계 인맥에 대한 로비 의혹도 제기됐다.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파렴치한 금융사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인표는 제주지역 유력 인사와 정·관계, 그리고 종교계(특히 일부 불교계 인사)를 연결고리로 삼아 사업 확장과 수사 국면 타개를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2008년 사기 혐의로 수감된 이후, 보석과 석방을 위해 수십억원대 변호사 비용을 쓰고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그가 불교계 고위 인사들을 매개로 정관계 인맥을 쌓아왔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로비 자금 규모나 최종 법적 책임까지 모두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은 ‘지역 저축은행이 정·관·종교권력과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전일저축 사태의 진짜 피해자는 은인표도, 금융당국도 아니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겼던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들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5000만원) 이하 예금자 약 6만명은 예나래저축은행으로 계약 이전돼 원리금을 일정 부분 보호받았다.

전일저축 피해자들은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였지만, 파산재단 자산 및 배당률을 감안하면 원금 회수율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했다. 이는 2011년 이후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전반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전국 24개 저축은행에서 2만3000여명의 투자자가 8170억원 규모의 불완전판매 피해를 입었지만, 파산재단을 통한 실제 보상은 평균 배당률 28.2%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이 있다. 전일저축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은행은 사라졌고, 대주주는 형을 살았지만, 피해자들의 상처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은인표는 2019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이름은 또 다른 사건에서 다시 등장했다.


출소 후
2라운드

2022년 11월경 과거 카지노를 운영했던 A 법인과 관련해 자격모용사문서작성, 자격모용사문서행사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2022년 3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은인표는 A 법인의 등기임원·주주가 아님에도 A 법인의 주주명부·인감신고서·위임장 등을 위조해 법원등기소에 변경등기신청서를 제출, 등기 변경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A 법인의 대표 정씨는 과거 은인표의 동업자로 알려졌다.

이후 스스로를 A 법인의 사내이사로 등재하고 법인명까지 바꾼 뒤, 실제 주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은 “대표할 권리나 자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A 법인 실제 주주들은 은인표를 고소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가 수사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이미 저축은행 불법 대출로 중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인물이, 타인의 자격을 도용해 법인 지배권을 노린 혐의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이다.

지인들은 “은인표가 징역을 살고 있을 때 정씨가 대신 카지노를 관리했는데, 정씨가 카지노를 중국 사업가에게 팔아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호텔명이 ‘더케이 제주호텔’로 바뀐 라마다 프라자 호텔 카지노의 경우 중국인 1명이 지난 2014년 하순쯤 30% 지분을 매입하면서 2대 주주가 됐다. 제보자는 “은인표가 이 사실을 알고 정씨를 죽이겠다고 찾아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일저축 사태와 은인표 사건은 대주주 견제 장치의 실효성과 가교 저축은행·파산 정리 방식 한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상호저축은행법은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하지만, 은인표는 차명과 특수관계인을 동원해 300억원대 대출을 끌어냈다.

감독 당국은 왜 이를 제때 포착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예나래저축은행 설립과 계약 이전은 5000만원 이하 예금자를 신속히 보호하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들의 피해는 상당 부분 방치했다.

출소 후 법인 서류 위조하고 자격 도용
재조명되는 전일저축 사건···당국 주시

출소 이후 재범 위험 관리도 주목된다. 중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금융사범이 다시 법인 서류 위조와 자격 도용 사건에 연루된 것은, 금융·법인 등기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드러낸다. 상장·비상장 여부를 막론하고, 일정 규모 이상 법인에 대한 ‘실질 지배자’ 등록·공시를 의무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은인표는 이미 형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언론과 사법 기록에 이름을 깊이 새긴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일저축 붕괴는 단지 한 대주주의 일탈이 아닌 감독기관의 사전 경고 시스템 실패, 정·관·종교 권력과 결탁한 로비 구조, 가교 저축은행·파산 정리 제도의 한계, 서민·투자자 보호 체계의 허술함이 낳은 결과다.

한편, 한국금융연구원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일저축은행 파산배당률과 실제 회수율은 약 25%로 알려졌다. 지역저축은행 정리 과정에서 ‘찾아가지 않은(미수령) 파산배당금 및 예금보험금’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있다(6만1676명, 약 139억원).

5000만원을 초과한 예금자 및 후순위채 투자자들은 파산재단을 통한 배당절차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다. 배당률이 낮았던 만큼 실질 원금 회수율은 매우 낮고, 배당이 완료되지 않은 재단은 여전히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특히 전북지역이라는 지역성·저축은행이라는 영업 구조가 결합돼 피해자들의 집단 구제 및 실질 배당 시행에 있어 압박이 크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1년 2월 부산저축은행 등의 여러 상호저축은행이 집단으로 영업정지된 사건이 있다. 이후 대주주의 비리와 마감 시간 후 VIP 고객들에 대한 사전 인출 등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주된 원인은 부동산 등 리스크가 큰 사업들에 대해 제대로 된 심사 과정 없이 캄보디아 개발사업(캄코시티) 등에 프로젝트 파이낸스 형태로 무분별하게 불법적인 대출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부실채권을 떠안은 저축은행의 사업 운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피해는
진행형

‘서민 금융기관’으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중심의 자금 유출이 문제가 됐던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 제도적 책임과 감독 당국의 사후관리도 중요한 쟁점이다. 전일저축의 해체·파산 과정에서 예금자 보호는 제도상 일정 부분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임정빈 판사는 자격모용사문서작성 및 동행사 혐의로 기소된 은인표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임 판사는 “피고인은 누범 기간 중 자숙하지 않고 재차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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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