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정세현이 보는 커지는 한국 역할론

“미·중·러 삼극 시대
미들 파워 역할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박형준 기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보다 길다”며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면서 관세 등 미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 될 건 없다”고 전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민의정부·참여정부 등 2회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북한 관계자와 만나는 등 대표적인 협상주의 성향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일요시사>는 설을 앞두고 동북아 국제 정세·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미국은 9·11 테러 발생과 테러와의 전쟁 이후 군비 감축을 추진했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이해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중국은 지난 2010년 G2로 올라섰다. 능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멱살잡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라왔다. 미국도 더는 군사력으로 중국을 누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관세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고 본다. 영국·독일도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미국 일극 체제가 30여년 만에 무너지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러시아도 아직은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즉, 미국·중국·러시아 삼극 체제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가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삼극 체제가 행사하는 슈퍼 파워가 될 순 없어도 바로 밑 미들 파워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의 밑에 들어가는 미들 파워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가 자국 중심 성격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운 좋게 다가오고 있다.


-관세·그린란드 등에 대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선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이 많은데….

▲우리에게 대미 투자 조기 집행을 요구하는 등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쉽게 항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들도 이 대통령의 지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29년 1월까지고, 이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30년 6월까지다. 미국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면,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후 미국의 압력을 상쇄하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보유가 주한미군 감축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동안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유력한 경고 카드로 사용했다. 이젠 주한미군 감축 시도가 미국이 우리를 통제하는 수단이란 사실이 많이 알려졌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대로라면, 미군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 상황은 우리가 전시 작전 통제권을 찾아오기 위해 빅딜을 시도할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관세·투자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킨 후 북한 핑계를 대면서 미국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을 받아왔다.

-일본도 원잠 보유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이 군대를 가진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데….


▲일본이 원잠을 갖게 될 가능성은 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얼마든지 허용해 줄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원잠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가 가질 원잠의 위력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본에선 군대 보유·헌법 개정 반대 여론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최근 중일 관계는 대단히 안 좋고, 러시아도 일본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해서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잠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한국·일본이 원잠을 보유하면, 북한·중국·러시아는 어떻게 대비할 것으로 보이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북한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기념관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희생을 잊지 말고,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에 대한 원조를 끊으면 안 된다는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러시아에 잠수함 저소음 기술·원자로 소형화 기술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가 그렇게 쉽게 내줄 것 같지 않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전작권 반환 빅딜 기회”
“북·중·러 뭉친다? 한·미·일 동맹 추진 윤 정부 주장”

북·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연하장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최근엔 한중 관계가 가까워지니까 북한은 이를 불편해하면서 <로동신문>에 시 주석이 보낸 연하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은 1950~1960년대 중국·소련 분쟁 당시 양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을 얻었다. 주체사상은 당시 북한 상황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논리였다. 북·중·러는 한 덩어리가 못 된다. 중국·러시아는 여전히 자존심 경쟁을 하고 있다.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동시에 성립될 순 있어도, 중·러 관계는 성립되기 어렵다.

북·중·러가 뭉칠 수도 있단 논리는 한·미·일 삼국 동맹 결성에 참여하길 원했던 윤석열정부가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중·러가 뭉쳐 우리의 대북 억지력을 약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가 돼 달라면서 스스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다. 남·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될 가능성이 있는 건가?

▲아직은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생각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킨 후 그 틀 안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뒷바라지를 자처한 것이다. 북미 관계를 개선해 동북아를 작은 평화의 마당으로 만든 후 그 평화의 아스팔트 위에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겠단 구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진행한 후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조율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뒤집어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직접 설득할 수 없으니, 페이스 메이커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UN 제재 해제 등 보따리를 들고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END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측면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과 비슷해 보이는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입구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출구에서 거둘 수 있는 목표들을 연결했다. 그래서 이를 지적했더니, 위 실장은 이 목표들이 상호 작용을 하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가 지난해 9월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 특임교수는 자신의 유럽 출장 경험을 소개했다. 문 교수는 우리 대통령이 직접 UN 총회에 참석해 END 구상을 소개했기 때문에 이를 우호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종말론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가 END는 한반도 냉전 종식을 의미한다고 얘기해도, 북한·제3국은 북한 체제 종말 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9·19 군사 분야 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을 얘기했고, 곧 있으면 6개월이 돼가는데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실행을 위해선 준비할 게 많고, 미국이 안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미적거리는 장성들을 강하게 지적해야 한다. 민주당도 지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때문에 정신없다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을 뒷받침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설치됐던 이유는 뭔가?

▲개성공단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마산 수출 자유 공단을 토대로 설치됐다. 우리가 인건비를 보태주는 식으로 노동 집약적 산업부터 시작해 북한의 수출 능력과 자생력을 키우려는 취지로 설치됐다. 아울러 현대의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북한의 관광 산업 성장을 도우려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북한에도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북한의 국민 소득을 높여야 이들이 우리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 2020년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설치됐다.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각종 합의 조치를 이행하지 못하자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미국은 남북 간 수많은 합의 조치를 접한 후 매우 놀랐다.

한미 워킹그룹도 족쇄가 됐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미의 모든 일이 결국 북핵 문제와 연결되고,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할 땐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KTX 부설 등 각종 합의 이행 조치들이 한미 워킹그룹에서 나온 미국의 반대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자 북한에선 남한과의 합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연락사무소도 필요 없다면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2023년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론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024년 주장한 두 국가론의 공통점·차이점은?

▲노태우정부에서 통일원 장관을 지낸 이홍구 전 총리는 지난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수립을 주도하면서 1단계 남북 연합 체제를 제안했다. 2개의 국가가 연합해 공존하자는 주장이었다. 남북은 지난 1991년 9월 UN에 동시 가입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엔 남북 기본합의가 당시 정원식 총리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 명의로 체결됐다.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면서 한반도 내 두 국가가 됐다.

“END 구상? 입구 없이 출구서 거둘 목표만 제시”
“남북은 이미 UN 동시 가입…1991년부터 두 국가”

임 전 실장은 남북이 30여년 넘게 두 국가로 살아왔단 것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보수 언론에서 이를 두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인정한 것처럼 보도했다. 임 전 실장은 ‘적대적’이란 단어를 빼고, 두 국가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북한 정권을 공식 대화 상대로 인정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적당히 구슬려 흡수통일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당 기간 두 국가로 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후계자들이 결정하도록 하자는 이야기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평화적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후 남북 대화가 바늘구멍만큼의 가능성을 뚫고 성사되면, 적대적 두 국가란 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보장해 두 국가 관계를 유지하면, 남북 연합으로 못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해·협력 → 남북 연합 → 통일 국가 완성이란 3단계 통일론을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도 김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과 연계되는 건가?

▲이 전 총리가 이미 당시 3단계 통일론을 초기 구상했다. 이 전 총리가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를 만나 3단계란 개념을 받아들여 3단계 통일론이 완성됐다. 사실상 여야가 합의한 통일 방안이었다. 문민정부가 주장했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도 결국 같은 주장이었다. 이를 다시 실현해 남북 연합으로 가자는 게 평화적 두 국가론의 철학적 뿌리라고 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평양 주둔을 제안한 이유는?

▲김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있어 믿을 수가 없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남북이 손을 잡은 후 미군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중국이 함부로 우리 강토를 넘보지 못한다면서 미군을 이용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야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 전 대통령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황원탁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김 전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김 위원장에게 <로동신문>은 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인민이 아직 그걸 알면 안 된다’면서 ‘공개적으로 표명된 정책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외교의 세계는 원래 그렇다.

-비무장지대 안엔 태봉국 철원성이 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공동 조사·발굴을 합의했다.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북한은 이를 남한의 대북 공격 시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리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 복원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은 남한이 장난칠 것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남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비무장지대를 들락거리면서 무슨 짓을 할지 안심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구상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얘기하는 거다.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정치인·공무원에겐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평양에 무인기를 띄워 12·3 내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내란 잔당이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내란 잔당을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인사 조처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도 처음부터 삐라를 뿌렸던 게 아니다. NED(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는 냉전 시대에 CIA의 비밀 지원을 받던 반공 활동의 대안으로 설립됐다.

NED는 지금도 미국 의회의 승인·국무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강경 탈북자 단체를 지원한다. 그래서 삐라를 묶은 풍선 안에 미화 1달러 화폐를 넣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정보사령부·미국 내 반 북한 세력과 연결돼있었다. 내란 잔당은 매우 넓고 깊게 분포돼 있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설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면?

▲<일요시사>는 정치·경제 등 우리 국민의 일상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를 놓고 정확한 보도를 해왔다. <일요시사>의 사세가 커질 수 있도록 많이 구독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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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