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아니면 말고’ 선 넘은 음모론

유족들 가슴 후벼 파는 ‘펌프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역대 국내서 발생한 항공사고 중 가장 피해가 큰 최악의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탑승객 181명 중 꼬리칸에 있던 승무원 2명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이후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음모론이 확산됐다. 특히 ‘무속’ ‘북한 공작’ 등 참사와 연관되지 않은 키워드도 등장하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대형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는 상관없이 여론 몰이하는 모습이 또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속?  
공작?

지난달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분께 전남 무안군 망운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서 태국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랜딩기어를 펼치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어 시설물과 정면 충돌,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기체 동체는 후미(꼬리)만 형체를 남기고 활주로 주변 곳곳에 파편으로 튀거나 모두 탔다. 소방 당국은 중앙119구조본부·소방항공대, 소방 헬기·소방차 등을 동원해 충돌 사고 43분여 만에 불길을 잡았다. 사고 여객기에는 탑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이 타고 있었다. 탑승객 중 태국인 2명을 제외한 179명이 한국인이었다.

12시간여에 거친 구조·수습 작업에도 불구, 최종 사망자는 179명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형체가 남았던 기체 후미 비상구 쪽에 있던 남·녀 승무원 2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기는 당초 이날 새벽 태국 현지 방콕공항서 출발해 오전 8시30분 무안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항공 사고 원인 규명을 도맡은 국토부는 사고 직전 관제탑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주의보” 교신을 한 지 얼마 안 돼 조종사가 긴급구조신호 ‘메이데이’를 선언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관제탑은 오전 8시54분 착륙허가를 내렸고 오전 8시57분 조류 회피 주의 조언(Caution Bird activity)을 했다. 이후 8시59분 사고 항공기 기장이 메이데이(긴급구난신호) 선언을 했고, 오전 9시3분 사고가 났다.

메이데이 선언 직후 복행(재착륙을 위해 다시 떠오르는 것)하지 않고 당초 착륙 방향이 아닌 19 방향(반대 방향)으로 착륙하려다 활주로를 지나 담벼락까지 충돌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당국의 조사로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참사를 둘러싼 음모론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음모론자들이 참사에서 이상하다고 꼽은 것은 ▲사고 전날 나무위키에 작성된 사고 관련 글 ▲사고 이틀 전 제주항공 급매로 인한 주가 급락 ▲MBC 제보 영상서 제보자의 일반인답지 않은 침착함 ▲버드 스트라이크라기엔 너무 큰 엔진 폭발 ▲MBC 속보 방송 중 노출된 ‘탄핵 관련: 817’이라는 문구 등이다.

음모론자들은 이를 두고 사고가 아닌 북한의 테러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진행했다.

사고 영상도 너무 침착?
테러 배후 의심 글 넘쳐


무안 참사가 예견된 사고라는 음모론은 ‘나무위키 사고 글’ ‘제주항공 주가 급락’ ‘영상 제보자의 침착성’ 등을 근거로 한다. 해당 음모론은 구독자가 백만명에 달하는 자유통일당 성창경 수석대변인의 영상으로 퍼져나갔다. 

성 대변인은 지난 29일 ‘충격! 전문가 충격 의혹 제기, 촬영자, 나무위키에 하루 전 사고 예고, 항공사 주가 폭락 등 음모론 확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지난달 30일 오전 기준 약 40만회에 달했다.

성 대변인은 “무안공항 사고와 관련해 나무위키서 미리 (관련 내용이)나와있었다. 구글서 검색하면 사건 발생 시간보다 17시간 정도 일찍 나무위키에 사건 내용이 떴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의혹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해당 문서의 생성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달 29일 오전 9시33분 15초에 처음 생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 검색 화면에서는 마치 해당 문서가 참사가 일어나기 이전에 작성된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구글 본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어 한국 시각보다 캘리포니아 시각이 17시간 빨라서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사고 발생 직후 네이버 카페에선 ‘주식 대량 매도설’까지 제기됐다. 사고 직전 평일인 지난달 27일 제주항공 주식 대량 매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작성자는 주식 그래프를 첨부해 “오후 1시 소름 돋는 대량 매도는 누구냐”라며 “돈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데”라고 썼다.

기업 내부자가 사고 발생을 미리 알고 사고 이전에 대량을 매도했다고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거래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면 ‘대량 매도’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전해진다. 먼저 지난달 27일 제주항공 주식 하루 전체 거래량은 12만7126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0억4000만원 수준이었다.

“충격 의혹”
예견된 사고?

문제가 제기된 오후 1시경 매도 금액도 이 중 일부에 불과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경의 거래량은 약 1만5000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억20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시가총액 6621억원 규모를 고려할 때 당일의 거래대금 10억4000만원은 매우 적은 규모다. 이는 특정 세력의 조직적인 매도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고 당시 영상을 두고 계획된 테러라는 주장도 계속 나왔다. 성 대변인은 앞서의 영상서 “MBC가 사고 당시 영상을 찍은 것을 보면 비행기가 벽에 부딪힐 때까지 아주 담담하게 촬영했다”며 “한 전문가가 저에게 ‘계획 테러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요일 아침에 폭발 장면을 일반인이 완벽하게 촬영했다는 것”이라며 “근처 낙지 공판장 직원이나 어부의 촬영이 아니다. 촬영 위치도 너무 잘 지켰고 촬영 각도와 높이 등도 사전 조사 후에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착륙하는 지면을 쭉 이어서 부딪히는 방면까지 촬영한 것이다. (촬영자가)아주 실력자”라고 강조했다.

현재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는 구독자 94만 유튜브 채널 운영자 이봉규씨도 “누가 이렇게 (촬영을 위해)위치해서 사고를 어떻게 처음서부터 끝까지 이렇게 찍을 수 있느냐는 의혹이 있다”며 “착륙해서 사고가 날 때까지 그런 장면을 어떻게 그런 각도서 찍었냐 이게 좀 의문된다. 나중에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촬영자 두고
또 다른 의심

해당 영상을 촬영한 인물은 무안공항 바로 옆에서 낙지 직판장을 운영하는 이근영씨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서 “식당 안에 있었는데 (비행기가)내리기 전부터 밖에서 ‘쾅쾅쾅’ 소리가 나서 밖을 쳐다 보니까 비행기가 내렸다”며 “원래대로라면 비행기가 착륙해야 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위험하다 싶어서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찍게 됐다”면서 성 대변인과 같이 ‘사고 장면을 너무 완벽하게 촬영했다’는 음모론에 대해 “그 사람들 진짜 너무하다. 평소 이쪽 일반 주차장서도 공항이 다 보인다. 더군다나 이상을 느꼈기 때문에 옥상에 올라가서 찍게 된 것”이라고 촬영 경위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참사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누리꾼은 한 방송사의 사고 중계 화면에 1초간 ‘탄핵 관련: 817’이라는 글자가 보였다며 이를 북한의 대남 공작 지침인 ‘817 방침’과 연결지었다.

구독자 157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신혜식씨는 지난달 29일 “무정부 무안 참사!”라는 제목의 영상서 MBC가 참사를 보도하던 중 순간 ‘탄핵 관련: 817’ 등의 문구가 적힌 화면이 잠시 방송에 노출된 것에 대해 ‘북한의 대남공작 지령인 817 지령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를 소개했다.

신씨는 “817 지령이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인 문화교류국이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면서 “이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만하다. 저는 실수로 보지만 그래도 굉장히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이 817은 뭐냐, 한번 좀 자세히 우리가 의미를 파악을 해 봐야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신씨가 소개한 기사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에 ‘817 지령에 뭐야’라고 질문하자 “1987년 8월17일 북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정책으로, 주로 대남공작 관련 지침을 담고 있다”고 답변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드론으로 엔진 격추?
내란 지시 받은 블랙요원 짓? 

이 같은 북한 연루설에 박차를 가한 것은 ‘버드 스트라이크 답지 않게 충돌 이후 엔진서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일반적으로 버드 스트라이크가 엔진서 발생해도 폭발이 일지는 않는다”며 “마치 자동차 보닛에 길고양이가 들어갔다고 자동차 엔진이 폭발하지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조류 모형을 한 드론에 폭탄을 실은 후 조종해 엔진 하나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번 참사가 무속과 관련돼있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이를테면 “무속인과 그 신도들이 국가를 장악했는데, 항공기 사고도 우연치곤 이상하다”는 식이었다. 대통령 일가가 건진법사 등 ‘무속인’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두고 사태를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은 블랙요원들이 공항을 폭파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도 나왔다.

이 같은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기자가 챗GPT에 숫자를 바꿔 ‘OOO 지령이 뭐야’라고 묻자 신씨가 소개한 기사와 비슷한 답변을 반복했다. 또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고 반박했다.

김규왕 한서대 비행교육원장은 “운항 중에 새들이 엔진으로 들어가면 엔진은 완전히 망가진다”며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장 위험한 상황은 새와 기체의 충돌이 아니라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들어가 엔진 내부를 망가뜨리고 엔진을 태우는 것이다. 사고 영상을 보면 이런 정황이 잘 나와 있다”고 조류 드론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한편 무안공항 참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협박 이메일이 법무부에 발송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경찰에 따르면 법무부 한 직원은 이날 오전 8시50분쯤 “‘제주항공 사고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받았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 이메일에는 지난달 31일 밤 한국 도심 여러 곳에 고성능 폭탄을 터뜨릴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소행’
협박 이메일

이 메일은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으로 발송됐으며, 일본어와 영어 등으로 작성됐다고 한다. 이 이름은 지난해 8월 국내 공공시설 여러 곳을 상대로 폭탄 테러를 하겠다고 협박했던 이메일의 발신자와 같다.

당시 실제 이름이 ‘가라사와 다카히로’인 일본의 변호사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내 이름이 허락 없이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번에 신고가 접수된 이메일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기존 사건들과 병합 수사 중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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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