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00일의 기록

탄핵에 잊히고 대선에 묻히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연말을 코앞에 둔 일요일 오전 들려온 비행기 사고 소식에 전 국민이 경악에 빠졌다. 바퀴 없이 활주로에 착륙한 여객기는 길게 미끄러지다가 이내 폭발했다. 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 대형 참사였다. 그로부터 100일이 흘렀다.

지난해 12월 한국 사회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는 탄핵소추, 파면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궐위에 따라 조기 대선이 결정됐다. 전 국민의 관심은 이제 새 대통령에 쏠리고 있다.

진상 규명

문제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탄핵 심판 등 정치 이슈를 제외한 각종 사건이 완전히 매몰됐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정치 블랙홀’에 빠진 모양새였다. ‘제주항공 참사’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해 12월29일 승객 등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철근 콘크리트 소재의 둔덕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사고기는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아 동체로 착륙해 미끄러지다 구조물과 충돌한 뒤 불길에 휩싸였다.

객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사망했다. 제주항공 참사는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국내 항공기 사고로 기록됐다.


지난 7일로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됐다. 사고 직후부터 원인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속 시원한 결론까지는 갈 길이 먼 상태다. 저가 항공의 안전성과 지방 공항 건설 문제 등 사고 외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언급됐지만 큰 변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누리꾼에 의해 음모론이 불거져 유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유가족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가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항공기 사고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블랙박스에 당시 일부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고 사고기가 충돌한 시설의 설치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십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제주항공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는 현장서 수거된 블랙박스와 엔진, 주요 부품 등 사고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성 기록 장치와 비행 기록 장치에 사고 직전 4분7초가량이 기록되지 않아 분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집, 분석 가능한 모든 퍼즐 조각을 모아 종합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는 데 1년~1년 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기가 충돌한 구조물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콘크리트로 기초대를 세운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구조물이 없었다면 혹은 콘크리트가 아닌 부서지기 쉬운 재질로 만들었다면 참사에 이르는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

동시에 이 구조물이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된 경위도 들여다보는 중이다.


무안공항이 개항한 2007년 당시 구조물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2020년 5월 방위각 시설 개량 사업이 진행된 뒤에도 구조물이 그대로 있게 된 경위 등을 파악해 책임자를 가려내겠다는 의도다.

최근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녹취록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기 기장은 당초 구조물이 없는 1번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관제탑의 제안에 따라 19번 활주로로 방향을 변경했다. 관제탑의 제안이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사조위는 블랙박스에 기록되지 않은 사고 직전 4분7초가량의 교신기록 일부를 유가족에게 공개한 바 있다.

사고 직전 4분 기록 안 돼
피해자 특별법 법사위 통과

그러면서 교신기록뿐만 아니라 기록 장치, 랜딩기어 등 부품 정밀 검사, CCTV, 레이더 항적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고 원인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조류 충돌 여부, 기장의 복행 결정 타당성, 엔진 결함 가능성 등 사고 원인으로 언급되는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제주항공 참사 100일을 맞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제주항공 참사 법률지원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가 중심이 된 단체다. 이들은 지난 7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대회의실서 교신기록 등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 증거 보전 등 각종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참사 발생 100일이 됐다. 대형 참사지만 사고 원인은 여전히 안갯속에 묻혀 있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와 유가족은 고통 속에서 조사 결과만 마냥 기다리고 있다. 전남경찰청이 수사 중이지만 아직 사고 책임자 한 명도 입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교신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이기 때문에 진상 규명과 유족의 알 권리 등 공익을 위해서라도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조위가 교신기록 일부를 공개한 방식과 내용에 대해 지적했다.

공개 하루 전에 공지해 유가족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고 조류 충돌 여부 등 의혹을 해소하려면 착륙을 시도한 사고 10분 전부터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는 길이며 진상 규명 없이는 제대로 된 배상도 될 수 없다. 사고 재발 방지책도 나올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새겨서 조사도 속도를 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지난 7일 국회 ‘12·29 여객기 참사 진상 규명과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위원회’서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9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지지부진


특별법은 피해자에게 생활지원금과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고 15세 미만 희생자에 대해 특별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피해자를 비롯해 구조·복구·치료·수습·조사·자원봉사·취재 등에 참여한 사람도 심리상담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원 조성과 기념관 건립 등 추모사업을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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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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