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물 만난 김상욱 의원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7.21 14:18:33
  • 호수 15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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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함께 하니
웃음이 절로 나요”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의원은 국민의힘 친한계에서 축출당한 계기를 설명하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친윤계와 손잡으려고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실수해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면, 더 강력한 극우 독재를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상욱 의원을 두고, 일각에선 “일부러 밝아 보이려는 것 아니냐”거나 “과장된 쇼를 한다”고 평가한다. <일요시사>는 김 의원을 만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약 7개월 동안 달라진 그의 삶과 세간의 평가에 대한 그의 심경을 들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12월7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할 당시 “울산에서의 안정적인 미래가 무너지고, 고초를 겪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저는 국민의힘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에게 욕을 할 정도로 아주 강경한 탄핵론자였다. 선배들이 저를 야단치면, 저는 “비상계엄 해제에 나서지 않은 선배들은 역사의 죄인들이니, 부끄러운 줄 알라”고 싸웠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모든 걸 당에 맡기겠다”고 선언했고, 한동훈 당시 대표의 입장은 계속 바뀌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울면서 “네가 탄핵을 몰라서 그런다. 탄핵은 국가 이익에 반하고, 국민을 더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국가를 무너트린다. 혼란이 커진다”고 말했다. 저는 “비상계엄은 총을 시민에게 겨누고 민주주의를 부수는 일이니, 용납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 의원은 “나도 윤 대통령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한다”면서도 “탄핵이 아니라, 혼란이 적고 빨리 정리될 수 있는 질서 있는 퇴진이 낫지 않느냐. 이번만큼은 선배들을 믿고 따라오라. 윤 대통령도 모든 걸 맡기겠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 다 밥은 먹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실 저는 용산 대통령실과의 충돌이 잦았다. 추 전 원내대표는 제게 “조용히 선배들 하는 대로 따라오라. 뭐가 이득인지 멀리 보라”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여러 중진 선배들도 “네 지역구를 보라. 너는 이미 초선이 아니다. 5선 이상도 할 수 있고, 이미 차기 울산시장이다. 너는 배우는 단계니, 네 주장을 세게 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저는 정치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지자의 성에 갇힐 것이 아니라, 가치의 깃발을 들고 길을 열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지난 2월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대화방에서 “광주에 가서 전한길씨가 주도한 탄핵 반대 시위를 사과하자”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에서 퇴출당했단 것은 사실인가?

▲한 친한계 의원은 제게 “친한계 외엔 너를 지켜줄 세력은 없다. 네가 광주에 가면 우리는 너를 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게 한동훈 대표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만 공개적으로 저를 두둔했고, 비공식적으론 김예지·박정하·한지아 의원이 저와 함께 행동했다.

한 전 대표가 제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그분들도 저와 같이 친한계 행사에 갈 순 없었다. 가더라도 다른 친한계 의원들은 제게 “네가 사진에 찍히면 안 되니 나가라”고 쫓아냈다.

-한 전 대표가 “광주와 보수 정당의 악연을 털고 가자”는 생각은 못했겠는가?

▲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 전 대표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한 전 대표는 정치적인 지향점이 아닌 계산을 토대로 정치를 하려 했던 것 같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친윤(친 윤석열)계와 손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해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그들이 저를 매장하려고 했던 이유는 “광주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황당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입당을 제안했다. 개혁신당이 아닌 민주당에 입당한 이유는?

▲ 이 의원의 정치는 늘 사회 갈등과 혐오에 기반한다. 그건 보수 정치가 아니다. 모든 정치 세력에 대한 혐오·갈등을 일으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 의원은 선동한 후 자기 세력을 만든다. 이건 극우 정치다. 그래서 거절했다.

-최근 김상욱 의원에 대해 “너무 일부러 밝아 보이려고 애쓰는 것 아니냐”거나 “왜 과장된 쇼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즐겁게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는 국민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저는 힘들다. 하지만 저를 보고 한 번 더 웃으셨으면 좋겠다. 제가 힘들다고 해서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하면, 그건 공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국민 앞에 나설 땐 때로는 밝고 편안한 모습을, 때로는 진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역효과가 일부 나는 것 같다.

▲당연히 개인적으론 너무 힘들다. 국민의힘이나 강성 보수는 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간다. 그들은 제게 “대통령을 잡아먹고, 너 혼자 살면 다냐. 어딜 웃고 다니느냐”고 말한다. 제가 웃으니까 그들은 더 약이 오르는 거다. 민주당도 제가 입당하기 전엔 저를 예뻐했겠지만, 입당한 지금은 또 다를 것이다.

일부러 밝아 보이려고 애쓴다?
“저 보고 한 번 더 웃으셨으면”

“김상욱이 내 자리를 뺏을까” 의심하는 분들도 있고, 시기·질투를 느끼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의 문제다. 국민께 함부로 전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민주당 입당을 일컬어 ‘철새 행각’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이익을 따라 움직인 적은 없다. 민주당에 입당할 때도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입당 후에도 제 이익을 주장하지 않았다. 저는 국익과 양심 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개혁신당은 젊은 극우 정당일 뿐, 보수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통합과 책임감 있는 정치를 한단 보수의 원칙은 민주당이 지킨다.

-지난 대선 당시 선거운동에 참여해 춤춘 것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비난 여론이 있었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은 욕할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은 칭찬할 텐데, 그런 건 다 감내해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그게 옳은 일이고, 국민을 위한 거라면 갈 수 있어야 한다. 명예욕을 채우거나 칭찬받길 원한다면, 그건 잘못된 포퓰리즘이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을 향한 ‘진짜 보수’ 등 칭찬을 불편해한다.

▲이 대통령은 부산 방문 당시 “한국산업은행을 부산에 이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가장 보수주의자라고 본다. 안 되는 걸 되는 것처럼 주장하면 안 된다. 보수는 사회의 틀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도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 중 그 누구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가장 보수의 원칙에 충실하다.

-“이 대통령은 비리 의혹이 많은 사람인데, 왜 보수주의자가 그를 칭찬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예전엔 “이 대통령은 범죄자 아니냐”는 생각을 했는데 저도 수사기관으로부터 탈탈 털리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변호사 출신이라서 검찰이 어떻게 누명을 씌우는지도 너무 잘 안다. 이 대통령을 털 듯이 털면,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 성향이 강한 일부 검사는 “국민이 아무리 검찰개혁을 주장해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최종 결정은 우리가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검찰이 무서워서 손을 잡는다. 검사들은 손잡으면 다 봐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끝까지 저항한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상세히 알아보면서 “다 뒤집어쓴 것”이란 생각을 했다. 대장동 사건도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들이 주도하던 작업이었다.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들로부터 비공식적인 얘기를 들어보면, 난리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상욱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변호사 시절이나 지금이나 당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의원들과도 다 친하게 지낸다. 그들 중 박주민·김용민 의원과 호흡이 잘 맞는다. 다만 울산 내 민주당에선 문제가 좀 있다. 저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선거운동을 막은 사람도 있다. 거기도 기득권이 있는 건 다 똑같은 것 같다.

-일각에선 민주당을 일컬어 “운동권 순혈주의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김상욱 의원도 운동권과 거리가 있다.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부분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다. 다만 재밌는 현상은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이었던 분들은 젊은 세대에 대해 “너희가 그때를 아느냐”는 생각을 한다. 저에 대해서도 “너는 인정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언더 찐윤 도움 많이 받았다?
“들어가 보니 서로 사리사욕만”

-국민의힘 내 친윤계 의원들과 관련해 ‘언더 찐윤’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그들을 고발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면?

▲국민의힘은 계속 혐오 정치·갈등을 유발하고, 진영 정치로 버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실수해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면, 더 강력한 극우 독재를 시도할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을 탄생시킨 문화와 뿌리를 정확히 짚고 고쳐야 한다. 민주당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저는 누구를 일컬어 언더 찐윤이라고 규정하진 않는다. “행태가 잘못됐으니 스스로 돌아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리사욕 때문에 국민을 속이면서 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가 윤 전 대통령을 등장시켰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중국에선 세습정치 구조가 자리 잡았다. 언더 찐윤이 세습 정치를 시도할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제 지역구(울산 남구갑)도 원래 원로 정치인의 아들에게 세습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계속 해 먹는 것이다. 그들은 어둡고 습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원칙과 깨끗함을 싫어한다. 이권에 항상 발을 딛고 싶어한다. 그래서 ‘언더’에 있어야 한다. 지역만 확실히 잡으면 되고, 다 뒷돈을 받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 비싼 쇠고기를 먹는다. 당비로 현찰 계산하고, 영수증을 안 받는다.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오겠는가?

-일각에선 “김상욱 의원이야말로 언더 찐윤의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저는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이들은 국민께 총을 겨누고 사리사욕만 채운다. 그래서 같이 못 하겠다. 내란까지 일으킨 당과 같이 가는 것은 나를 뽑아준 울산시민에 대한 불명예”라고 말한다. 국민의힘을 나온 이유는 국민께 충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들과 함께 국민께 같이 총구를 겨눈다면, 그게 배신 아닐까?

-국민의힘의 모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가 나온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김 전 대통령께서 독재 세력을 청산하셨다고 생각했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찾아뵙고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김 이사장도 “아버님께서 만들어 놓은 걸 그자들이 다 무위로 돌려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 언더 찐윤 때문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한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옳고 그름에도 관심이 없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앞으로 하고 싶은 정치는?

▲솔직히 정치를 하겠단 생각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 정치인으로 거듭난 시기는 지난해 12월3일 이후였던 것 같다. 건강한 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해 국민께서 너무 힘드시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정치 때문에 우리의 장래가 어두워졌기에, 보수와 진보의 기능을 되살려 미래를 열어야 한단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정말 좋은 곳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분단도 극복하지 못했고, 진영 갈등만 키워왔다. 이를 극복해서 민주주의 원칙이 뿌리내리고, 개방적·진보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북한으로 철도가 이어지고, 유라시아와 연결돼 우리가 물류 거점이 된다.

그때부터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두보가 된다. 대륙의 많은 자원을 당겨 쓸 수 있다. 제조업의 본질은 AI와 로보틱스 혁신 이후 물류와 관세가 됐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제조업의 메카로 거듭날 수도 있다.

평화가 만들어지면, 문화·제조업·물류·교육의 중심이 되고, 세계의 평화가 다 이루어진다. 우리의 후세도 크게 번영할 수 있다. 번영하지 못한 채 갈등·대립을 이으면, 우리는 미·중 갈등에 영향을 받아 30년 안에 대리전이 발생하는 위험한 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갈림길에 있단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이어 지난해 12월3일 이후엔 정치를 제대로 해야 한단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김상욱 의원을 응원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모두 국민이다. 국회의원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선 민주주의가 탄탄해야 한다. 남북의 분단과 대립도 권력자가 권력 수호를 위해 악용해 온 측면이 크다. 또 대한민국은 진영 정치 때문에 너무 멍들었다. 경제력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 순위가 20위권 밖으로 말려 나면, 미·중 대리전이 발생하는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이 커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이 대통령의 주장처럼 우리나라를 싸울 이유가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 기틀은 민주주의 확립이다. 우리 안의 갈등이 해결돼 화해가 이뤄져야 하고, 화합하는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정말 민주적이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과 대화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번영하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나라서 감히 대리전을 치르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중심이 된다. 그래야 우리의 후세가 번영한다. 국민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인의 선동에 절대 휩쓸리지 마시고, 누가 바르게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 참여를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의 참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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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