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물 만난 김상욱 의원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7.21 14:18:33
  • 호수 1541호
  • 댓글 1개

“국민과 함께 하니
웃음이 절로 나요”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의원은 국민의힘 친한계에서 축출당한 계기를 설명하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친윤계와 손잡으려고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실수해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면, 더 강력한 극우 독재를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상욱 의원을 두고, 일각에선 “일부러 밝아 보이려는 것 아니냐”거나 “과장된 쇼를 한다”고 평가한다. <일요시사>는 김 의원을 만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약 7개월 동안 달라진 그의 삶과 세간의 평가에 대한 그의 심경을 들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12월7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할 당시 “울산에서의 안정적인 미래가 무너지고, 고초를 겪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저는 국민의힘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에게 욕을 할 정도로 아주 강경한 탄핵론자였다. 선배들이 저를 야단치면, 저는 “비상계엄 해제에 나서지 않은 선배들은 역사의 죄인들이니, 부끄러운 줄 알라”고 싸웠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모든 걸 당에 맡기겠다”고 선언했고, 한동훈 당시 대표의 입장은 계속 바뀌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울면서 “네가 탄핵을 몰라서 그런다. 탄핵은 국가 이익에 반하고, 국민을 더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국가를 무너트린다. 혼란이 커진다”고 말했다. 저는 “비상계엄은 총을 시민에게 겨누고 민주주의를 부수는 일이니, 용납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 의원은 “나도 윤 대통령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한다”면서도 “탄핵이 아니라, 혼란이 적고 빨리 정리될 수 있는 질서 있는 퇴진이 낫지 않느냐. 이번만큼은 선배들을 믿고 따라오라. 윤 대통령도 모든 걸 맡기겠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 다 밥은 먹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실 저는 용산 대통령실과의 충돌이 잦았다. 추 전 원내대표는 제게 “조용히 선배들 하는 대로 따라오라. 뭐가 이득인지 멀리 보라”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여러 중진 선배들도 “네 지역구를 보라. 너는 이미 초선이 아니다. 5선 이상도 할 수 있고, 이미 차기 울산시장이다. 너는 배우는 단계니, 네 주장을 세게 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저는 정치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지자의 성에 갇힐 것이 아니라, 가치의 깃발을 들고 길을 열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지난 2월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대화방에서 “광주에 가서 전한길씨가 주도한 탄핵 반대 시위를 사과하자”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에서 퇴출당했단 것은 사실인가?

▲한 친한계 의원은 제게 “친한계 외엔 너를 지켜줄 세력은 없다. 네가 광주에 가면 우리는 너를 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게 한동훈 대표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만 공개적으로 저를 두둔했고, 비공식적으론 김예지·박정하·한지아 의원이 저와 함께 행동했다.

한 전 대표가 제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그분들도 저와 같이 친한계 행사에 갈 순 없었다. 가더라도 다른 친한계 의원들은 제게 “네가 사진에 찍히면 안 되니 나가라”고 쫓아냈다.

-한 전 대표가 “광주와 보수 정당의 악연을 털고 가자”는 생각은 못했겠는가?

▲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 전 대표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한 전 대표는 정치적인 지향점이 아닌 계산을 토대로 정치를 하려 했던 것 같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친윤(친 윤석열)계와 손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해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그들이 저를 매장하려고 했던 이유는 “광주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황당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입당을 제안했다. 개혁신당이 아닌 민주당에 입당한 이유는?

▲ 이 의원의 정치는 늘 사회 갈등과 혐오에 기반한다. 그건 보수 정치가 아니다. 모든 정치 세력에 대한 혐오·갈등을 일으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한다. 이 의원은 선동한 후 자기 세력을 만든다. 이건 극우 정치다. 그래서 거절했다.

-최근 김상욱 의원에 대해 “너무 일부러 밝아 보이려고 애쓰는 것 아니냐”거나 “왜 과장된 쇼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즐겁게 바라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는 국민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저는 힘들다. 하지만 저를 보고 한 번 더 웃으셨으면 좋겠다. 제가 힘들다고 해서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하면, 그건 공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국민 앞에 나설 땐 때로는 밝고 편안한 모습을, 때로는 진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역효과가 일부 나는 것 같다.

▲당연히 개인적으론 너무 힘들다. 국민의힘이나 강성 보수는 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간다. 그들은 제게 “대통령을 잡아먹고, 너 혼자 살면 다냐. 어딜 웃고 다니느냐”고 말한다. 제가 웃으니까 그들은 더 약이 오르는 거다. 민주당도 제가 입당하기 전엔 저를 예뻐했겠지만, 입당한 지금은 또 다를 것이다.

일부러 밝아 보이려고 애쓴다?
“저 보고 한 번 더 웃으셨으면”

“김상욱이 내 자리를 뺏을까” 의심하는 분들도 있고, 시기·질투를 느끼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의 문제다. 국민께 함부로 전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민주당 입당을 일컬어 ‘철새 행각’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이익을 따라 움직인 적은 없다. 민주당에 입당할 때도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입당 후에도 제 이익을 주장하지 않았다. 저는 국익과 양심 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개혁신당은 젊은 극우 정당일 뿐, 보수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통합과 책임감 있는 정치를 한단 보수의 원칙은 민주당이 지킨다.

-지난 대선 당시 선거운동에 참여해 춤춘 것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비난 여론이 있었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은 욕할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은 칭찬할 텐데, 그런 건 다 감내해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그게 옳은 일이고, 국민을 위한 거라면 갈 수 있어야 한다. 명예욕을 채우거나 칭찬받길 원한다면, 그건 잘못된 포퓰리즘이다.


-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을 향한 ‘진짜 보수’ 등 칭찬을 불편해한다.

▲이 대통령은 부산 방문 당시 “한국산업은행을 부산에 이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가장 보수주의자라고 본다. 안 되는 걸 되는 것처럼 주장하면 안 된다. 보수는 사회의 틀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도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 중 그 누구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가장 보수의 원칙에 충실하다.

-“이 대통령은 비리 의혹이 많은 사람인데, 왜 보수주의자가 그를 칭찬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예전엔 “이 대통령은 범죄자 아니냐”는 생각을 했는데 저도 수사기관으로부터 탈탈 털리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변호사 출신이라서 검찰이 어떻게 누명을 씌우는지도 너무 잘 안다. 이 대통령을 털 듯이 털면,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 성향이 강한 일부 검사는 “국민이 아무리 검찰개혁을 주장해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최종 결정은 우리가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검찰이 무서워서 손을 잡는다. 검사들은 손잡으면 다 봐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끝까지 저항한다. 이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상세히 알아보면서 “다 뒤집어쓴 것”이란 생각을 했다. 대장동 사건도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들이 주도하던 작업이었다. 국민의힘 출신 정치인들로부터 비공식적인 얘기를 들어보면, 난리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상욱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변호사 시절이나 지금이나 당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의원들과도 다 친하게 지낸다. 그들 중 박주민·김용민 의원과 호흡이 잘 맞는다. 다만 울산 내 민주당에선 문제가 좀 있다. 저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 선거운동을 막은 사람도 있다. 거기도 기득권이 있는 건 다 똑같은 것 같다.

-일각에선 민주당을 일컬어 “운동권 순혈주의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김상욱 의원도 운동권과 거리가 있다.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부분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다. 다만 재밌는 현상은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이었던 분들은 젊은 세대에 대해 “너희가 그때를 아느냐”는 생각을 한다. 저에 대해서도 “너는 인정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언더 찐윤 도움 많이 받았다?
“들어가 보니 서로 사리사욕만”

-국민의힘 내 친윤계 의원들과 관련해 ‘언더 찐윤’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그들을 고발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면?

▲국민의힘은 계속 혐오 정치·갈등을 유발하고, 진영 정치로 버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실수해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면, 더 강력한 극우 독재를 시도할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을 탄생시킨 문화와 뿌리를 정확히 짚고 고쳐야 한다. 민주당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저는 누구를 일컬어 언더 찐윤이라고 규정하진 않는다. “행태가 잘못됐으니 스스로 돌아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리사욕 때문에 국민을 속이면서 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키는 정치가 윤 전 대통령을 등장시켰다”는 얘기를 했다.

-일본·중국에선 세습정치 구조가 자리 잡았다. 언더 찐윤이 세습 정치를 시도할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제 지역구(울산 남구갑)도 원래 원로 정치인의 아들에게 세습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계속 해 먹는 것이다. 그들은 어둡고 습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원칙과 깨끗함을 싫어한다. 이권에 항상 발을 딛고 싶어한다. 그래서 ‘언더’에 있어야 한다. 지역만 확실히 잡으면 되고, 다 뒷돈을 받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 비싼 쇠고기를 먹는다. 당비로 현찰 계산하고, 영수증을 안 받는다.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오겠는가?

-일각에선 “김상욱 의원이야말로 언더 찐윤의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저는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이들은 국민께 총을 겨누고 사리사욕만 채운다. 그래서 같이 못 하겠다. 내란까지 일으킨 당과 같이 가는 것은 나를 뽑아준 울산시민에 대한 불명예”라고 말한다. 국민의힘을 나온 이유는 국민께 충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들과 함께 국민께 같이 총구를 겨눈다면, 그게 배신 아닐까?

-국민의힘의 모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가 나온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김 전 대통령께서 독재 세력을 청산하셨다고 생각했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찾아뵙고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김 이사장도 “아버님께서 만들어 놓은 걸 그자들이 다 무위로 돌려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 언더 찐윤 때문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정치를 한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옳고 그름에도 관심이 없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앞으로 하고 싶은 정치는?

▲솔직히 정치를 하겠단 생각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 정치인으로 거듭난 시기는 지난해 12월3일 이후였던 것 같다. 건강한 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해 국민께서 너무 힘드시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정치 때문에 우리의 장래가 어두워졌기에, 보수와 진보의 기능을 되살려 미래를 열어야 한단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정말 좋은 곳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분단도 극복하지 못했고, 진영 갈등만 키워왔다. 이를 극복해서 민주주의 원칙이 뿌리내리고, 개방적·진보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북한으로 철도가 이어지고, 유라시아와 연결돼 우리가 물류 거점이 된다.

그때부터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두보가 된다. 대륙의 많은 자원을 당겨 쓸 수 있다. 제조업의 본질은 AI와 로보틱스 혁신 이후 물류와 관세가 됐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제조업의 메카로 거듭날 수도 있다.

평화가 만들어지면, 문화·제조업·물류·교육의 중심이 되고, 세계의 평화가 다 이루어진다. 우리의 후세도 크게 번영할 수 있다. 번영하지 못한 채 갈등·대립을 이으면, 우리는 미·중 갈등에 영향을 받아 30년 안에 대리전이 발생하는 위험한 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갈림길에 있단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이어 지난해 12월3일 이후엔 정치를 제대로 해야 한단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김상욱 의원을 응원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모두 국민이다. 국회의원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선 민주주의가 탄탄해야 한다. 남북의 분단과 대립도 권력자가 권력 수호를 위해 악용해 온 측면이 크다. 또 대한민국은 진영 정치 때문에 너무 멍들었다. 경제력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 순위가 20위권 밖으로 말려 나면, 미·중 대리전이 발생하는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이 커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이 대통령의 주장처럼 우리나라를 싸울 이유가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 기틀은 민주주의 확립이다. 우리 안의 갈등이 해결돼 화해가 이뤄져야 하고, 화합하는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정말 민주적이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과 대화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번영하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나라서 감히 대리전을 치르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중심이 된다. 그래야 우리의 후세가 번영한다. 국민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인의 선동에 절대 휩쓸리지 마시고, 누가 바르게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 참여를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의 참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ctzx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