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들어간 이재명 운명

윤보다 먼저…피 말리는 데스위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여의도발 지라시만 난무하는 가운데 헌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제 정국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3월’ 마지막 주에 이 대표의 운명이 달렸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지난 21일에 이어 선고의 분수령이었던 지난 19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예상보다 기일 발표가 늦춰지고 있다. 헌재는 지난달 25일 변론종결 후 거의 매일 평의를 열고 사건을 심리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좀처럼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굳게 닫힌
헌재의 입

국민의 모든 시선이 헌재에 쏠리면서 여야 정치인들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탄핵 인용’과 ‘탄핵 각하’ 집회도 각각 힘을 받아 목소리를 키우는 형국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선고가 늦춰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탄핵 인용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의 절반에 달하는 의원들은 지난 11일부터 헌재 앞에서 탄핵 심판 각하를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말이었던 지난 15일 열린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에도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집회에는 나경원·강명구·구자근·장동혁·윤상현 의원 등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각하를 외쳤다.

이날 나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이 자유의 방파제’라고 했다”며 “자유의 파도를 더 거세게 만들어보자. 그 시작은 윤 대통령이 탄핵 무효·각하로 직무 복귀하는 그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윤 의원은 “우리는 7∼8년 전 우리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어리석게 탄핵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두 번 다시 이런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각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탄핵 반대 측은 탄핵 ‘기각’에서 ‘각하’로 문구를 바꾸기도 했다. 당초 이들은 비상계엄은 내란죄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아닌 만큼 탄핵 심판 절차를 거쳐 청구인 측 패소로 판결해야 한다는 기각 여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석방된 이후 극우 세력이 강하게 결집하고 스피커를 키우면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절차가 위법이었기 때문에 심판이 불성립한다는 ‘각하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여러 가지 절차적 위반과 합쳐진다고 하면 각하 가능성이 종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밝혔다.

탄핵 정국 초기 ‘탄핵 찬성파’로 분류됐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고가 늦어지는 것은 이상징후다. 각하나 기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라고 힘을 실었다. ‘탄핵 찬성파 아니냐’는 질문에는 “오해”라며 “탄핵소추를 하되 당론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를 탄핵 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행진, 삭발, 단식 총동원했는데…
안갯속 헌재 점점 힘 빠지는 야

민주당은 거리로 나가 맞불을 놨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석방된 다음날인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석방이 헌법재판소서의 탄핵 기각은 아니다”라며 여당의 들뜬 분위기를 누르면서 헌재의 조속한 선고를 촉구했다. 최근에는 국회서 광화문까지 걷는 ‘윤석열 파면 촉구 도보 행진’을 비롯해 단식농성, 삭발 등으로 헌재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기일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 “이번 주를 넘기면 국민의 원망이 헌재로 간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KBS라디오 <전격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선고가 늦어지면서 여당 내에서 각하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에 “헌재가 심리를 11번을 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각'을 넘어 각하를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공세”라며 “자기들 세력을 묶고 단결하려 하는 일종의 공작 발언”이라고 비판하면서 “각하도 있을 수 없고 기각도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지난해 12월3일 있었던 친위 쿠데타의 위헌·위법적 행위는 분명하고, 우리는 당연히 탄핵 인용을 확신한다”며 “지금 헌법재판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나오는 것은 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예상 날짜보다 심판 선고기일이 2주가량 늦어지면서 민주당에서는 플랜 B를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재조준하면서 흩어진 광장 민심을 다시 끌고 오는 데 집중했다.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김건희 여사 의혹 상설특검안’과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안’을 야당 주도로 의결했다.

김 여사 의혹 상설특검안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명품가방 수수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구명 로비 ▲대통령 집무실 이전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등을 담고 있다.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안은 경찰이 마약 밀반입을 도운 혐의로 세관 직원들을 수사하려 하자 대통령실이 나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골자로 한다. 두 안건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소위를 통과했고, 이튿날인 20일 역시나 야당의 주도로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코너 몰린 야
꺼낸 카드는?

한동안 접어뒀던 최상목 탄핵 카드도 다시 꺼내면서 민주당은 윤석열-최상목 투트랙 압박에 나섰다.

이 대표는 서울 광화문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직무유기 현행범’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든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몸조심하라”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여권에선 즉각 반발이 터져나왔지만 민주당은 “과격한 표현”이라면서도 국민의 분노를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최 대행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단숨에 높였다. 이날 오후 민주당은 심야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을 당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했고, 이튿날인 20일 탄핵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다만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이후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데 이어 최근 최재해 감사원장·검사 3인 탄핵안이 줄줄이 기각된 만큼 민주당이 짊어질 부담이 적지만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지금은 탄핵 심판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추가 탄핵안을 발의하면 한곳에 모여야 할 에너지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며 “힘의 분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만큼 지도부서도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단일대오를 형성해 최 대행과 심우정 검찰총장을 모두 내려야 한다”며 “물론 역풍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최 대행의 거부권 남발은 도가 지나쳤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몸조심하라” 발언을 화제 삼으며 연일 맹공에 나섰다. 민주당이 현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무리수를 뒀다는 주장을 선두로 “탄핵 각하의 명백한 증거”라고 해석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 대표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재명 대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를 돕는 X맨(?)” 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윤 의원은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저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명 가를
단 하루

이어 “이 대표가 정부의 수장을 얼마나 경시하고 억압하고 있는지 그 실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헌법재판관들도 이 대표의 실체를 똑똑히 봤을 것”이라며 “12·3 비상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이유로 이 대표의 협박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와 기각의 정당성을 더욱 높여 줬다고 할 수 있다”며 “이 대표에게 고마운 부분”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이 마 후보자의 추가 임명을 재차 촉구하는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헌재가 윤 대통령 선고일을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과 민주당이 최 권한대행의 탄핵을 언급하는 것을 두고 “탄핵 각하·기각 의견인 재판관이 적어도 3명 이상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탄핵 인용 가능성이 적어지니 진보 성향을 띠는 마 후보를 넣어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탄핵 각하”를 외치면서도 이와 관계없이 윤 대통령의 선고기일이 늦춰지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일이 오는 26일로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됐다. 만일 2심과 대법원 판결서 동일한 형이 확정될 경우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이 대표는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 대표를 앞세워 조기 대선을 준비했던 민주당에 있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이후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표의 2심 선고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보다 빨리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간 우려됐던 것은 헌재서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을 내린 후 법원이 이 대표와 민주당 권력의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정상적 재판 운영이 전제된다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이 대표의 선고와 같거나 늦어질 전망이니 법원은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따라 외부 압력 없이 공정한 판결을 내릴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24일 한, 26일 이, 28일 윤?
꼬인 선고 4월로 미뤄질까

조기 대선 출사표를 던진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헌재가 통상 금요일에 탄핵 심판을 선고한 것을 고려하면 이달 21일 또는 28일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28일이 더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 갈등이 심각한 상황서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다면 헌재가 26일 예정된 이 대표의 2심 판결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일 이 대표의 2심서 1심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된다면 이를 기점으로 여권은 물론 비명(비 이재명)계 대권 잠룡까지 이 대표를 사정없이 흔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진행 중인 5개 재판 결과가 다 나온 다음 무죄를 다 받으면 그때 출마하라”고 직격했다.

안 의원은 SBS 유튜브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에 출연해 “(이 대표가)오는 26일 공직선거법 2심 선고를 받는다. 만약 그때 선거법 위반이 나오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선거제도라는 게 무엇인가. 유권자들이 여러 후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취합해 그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그 후보자 중 한 분이 대법원 판결이 유죄가 나올지 무죄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서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장기전에 대비해 완급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 야당으로서 각종 탄핵 카드를 쥐고 있지만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며 양쪽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전략을 택하겠단 것이다.

일각에서는 4월18일 문형배·마은혁 헌재 재판관의 임기 종료 직전 탄핵 심판 결과를 선고하고 헌재가 문을 닫아버린다는 ‘3말4초 판결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헌재가 결정문 작성을 신중히 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선고가 길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4월까지
질질∼?

또 다른 일각에선 24일,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 결과가 선고된 만큼 윤 대통령의 선고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선고 발표가 길어질수록 굉장한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게 국가를 위한 도움”이라며 “24일 한 총리 선고에 이어 26일 이 대표 선고, 그리고 같은 주에 윤 대통령 선고까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친기업 광폭 행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나 “삼성이 잘 돼야 투자가 잘 된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친기업적 행보를 부각시키며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일 이 대표는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SSFY)’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긴 한데 결국 우리 역량으로 잘 이겨낼 것”이라며 “모두를 위한 삼성이 될 수 있고, 경제 성장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역할을 잘해주시라”고 당부했다.

이에 이 회장은 “바쁜 와중에 이 대표님과 민주당 의원님들 삼성을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SSFY는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 미래를 위해서 단순한 사회 공헌을 떠나서 미래에 투자한다는 목표로 지금까지 끌고 왔다”며 “대한민국 AI(인공지능)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기를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배너

관련기사

3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