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정체

‘비선 실세’ 머슴이 주인 잡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이 펼친 포위망이 제1야당 대표를 꽁꽁 묶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 당 대표, 단식투쟁 등 각종 방패가 힘을 못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배경에는 측근의 ‘입’이 있다. 이미 신병이 확보된 측근의 진술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한 검찰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 이 과정서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으로 시작해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첫 단추를 끼운 뒤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으로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거듭된 사법 리스크에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다. 단식투쟁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영 신통치 않다. 

두 번째
구속영장

지난 18일, 검찰은 백현동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으로 이 대표에게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위증교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지난 2월 검찰이 대장동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7개월 만이다. 당시 국회에 회부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민주당서 무더기로 이탈표가 나오면서 가결표가 더 많았지만 출석 의원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 대표는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백현동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4~2015년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서 불거졌다. 이 대표는 민간업자에 각종 특혜를 몰아주면서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이 요구한 특혜를 ‘로비스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가 이 대표와 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게 전달해 관철했다고 봤다. 정 회장과 김 전 대표는 현재 구속 기소 상태다.  

대북송금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였던 2019~2020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통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방북비용 등 800만달러를 북한에 대납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2019년 2월 검사 사칭 사건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아 재판받을 때 김인섭 전 대표의 측근인 사업가 김모씨에게 연락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허위 증언을 요구한 혐의도 있다. 이 대표는 변호사 시절인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사건에 대해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을 취재하던 KBS 최철호 PD와 짜고 검사를 사칭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 150만원을 받았다. 

이후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TV 토론회서 “PD가 검사를 사칭하는데 제가 옆에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그걸 도와줬다는 누명을 썼다”고 말한 게 문제가 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병량 전 시장 비서 출신 김씨에게 위증을 부탁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150쪽 달하는 구속영장 청구서
두 사람 관계 상세하게 기재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150쪽에 육박하는 구속영장 청구서에 등장하는 ‘김인섭’의 존재다. 이 대표가 “백현동 개발사업은 ‘인섭이 형님’이 끼어 있으니 신경 좀 써줘라”는 취지로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에게 말했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김 전 대표를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백현동 의혹의 핵심은 사업 진행 과정서 성남도개공으로 갈 이익이 얼마였는지에 있다. 특혜성 인허가로 성남도개공이 포기한 이익 자체가 이 대표의 배임 혐의액으로 적시되기 때문. 검찰은 지난해 7월 감사원이 내놓은 분석 결과 중 최소 규모를 적용했다. 


당시 감사원은 <성남시의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공익감사청구 감사보고서>에서 사업시행사인 성남알앤디PFV가 백현동서 거둔 분양이익을 2021년 6월 말 기준 약 3142억원으로 추산했다. 

감사원은 “성남도개공이 2014년 민관합동 개발을 검토할 당시 적용한 10% 지분 참여 시 약 314억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었는데도 기회를 일실했다”고 지적했다. 사업에 참여했다면 300억원이 넘는 이익이 성남도개공과 성남시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성남도개공을 찾아 구체적 이익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제시한 4가지 안은 ▲성남도개공이 백현동 사업에 참여해 지분비율에 따라 이익을 정산하는 안 ▲공사가 소액 지분으로 참여해 사업 종료 뒤 R&D센터 부지 6000평을 얻는 안 ▲성남도개공이 소액 지분으로 참여해 사업계획 승인 시 200억원을 확정이익으로 얻는 안 ▲공사와 성남알앤디PFV가 프로젝트 관리(PM) 용역을 맺어 200억원을 용역 대금으로 받는 안 등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도개공이 최소 200억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줬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민간업자에 특혜를 주는 과정서 김 전 대표가 영향을 끼쳤다는 부분이 백현동 의혹의 쟁점 중 하나다. 김 전 대표를 ‘백현동 로비스트’ ‘비선 실세’ 등으로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김 전 대표는 지난 5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2015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백현동 개발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알선 대가로 정 회장에게 77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시에 2017년 10월 5억원 상당의 백현동 사업공장 식당(함바) 사업권을 받은 혐의도 있다. 

‘형님’ 호칭
막역한 사이?

정 회장은 지난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횡령·배임),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는 2013년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공사·용역대금을 과다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행사 아시아디벨로퍼, 영림종합건설, 지에스씨파트너스 등 본인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법인자금 480억원 상당을 횡령·배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경업체 대표로부터 용역 발주 등 대가로 2억원을 수수한 혐의도 있다. 

정 회장의 아시아디벨로퍼는 백현동 부지의 용도 상향을 성남시에 두 차례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2014년 자연녹지를 제2종 일반주거지로 2단계 상향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성남시는 도시기본계획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김 전 대표가 아시아디벨로퍼에 영입되면서 성남시의 태도가 바뀌었다. 부지 용도가 자연녹지서 준주거지로 4단계 상향됐다. 임대주택 비율도 당초 100%서 10%로 축소된 데 이어 성남도개공의 참여도 무산됐다. 약 3000억원에 이르는 수익은 민간업자에게 돌아갔다. 

김 전 대표는 이 대표, 정진상 전 실장과 친분이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 대표와 김 전 대표의 관계를 상세히 서술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이 대표는 2005년 김 전 대표에게 “형님, 제가 내년에 성남시장 출마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김 전 대표는 이 대표의 선거대책본부장이 됐다. 2016년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가 서울 광화문광장서 단식할 때 김 전 대표가 방문한 정황도 영장에 기재했다. 2015년 김 전 대표 장녀가 결혼할 당시 정 전 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성남시청과 그 산하기관 공무원 70명이 축의금을 낸 점도 적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실장은 2014년 초 김 전 대표로부터 “백현동 개발을 하려고 하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후 정 전 실장은 성남시 도시계획팀에 “인섭이 형이 백현동 사업을 하려고 하니 잘 챙겨줘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성남도개공이 백현동 사업에 참여하면 200억원의 확정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이 대표가 정 전 실장을 통해 김 전 대표의 청탁을 듣고 성남도개공 불참을 결정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완전 배제
성남도개공

유 전 본부장이 성남도개공의 백현동 사업 배제 이유를 묻자 “그게 언제적 얘긴데 진상이가 말 안 했느냐? 정 실장과 인섭 형님이 다 얘기하고 그렇게 결정됐는데 못 들었느냐?”고 반문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검찰은 백현동 의혹을 ‘선거 브로커와 불법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범죄를 품앗이한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백현동 사건에 특혜를 주면서 김 전 대표와 김씨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은 위증교사와 관련한 일종의 ‘품앗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김인섭은 이재명과의 관계를 이용해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선 실세로 통했다”며 “김인섭은 이재명의 비제도권 최측근”이라는 김 전 대표 최측근의 진술 내용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이 대표의 ‘원조 친명(친 이재명)’ 인사로 손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표가 2010년대 초반 성남 사송동서 운영하던 횟집은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이재명, 정진상은 각각 약속을 잡을 때도 나로도(김 전 대표가 운영했던 횟집)에 자주 갔고 직원에게도 가서 많이 팔아주라고 했다. 아지트처럼 쓰였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만배씨나 남욱 변호사도 김 전 대표를 ‘실세’로 평가했다. 남 변호사는 검찰에 “(김 전 대표를)백현동 인허가를 다 한 허가방으로 안다”며 “이 대표도 함부로 못하는 성남서 가장 센 로비스트라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 전 대표는 ‘성남시 실세설’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를 도와준 게 전부라는 것이다. 

이 대표 역시 김 전 대표와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됐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2010년 이후 관계가 소원해져 백현동 사업은 김 전 대표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2월 대선후보 TV 토론회서도 “(김 전 대표는)2006년 낙선한 선거 때 선대본부장을 했고 (백현동 개발은)한참 뒤에 벌어진 일”이라며 “지금 저와는 연락도 잘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대표와 이 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두 사람의 관계가 최소 백현동 사업 시기에도 유지됐다는 발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7월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김 전 대표의 알선수재 혐의 3차 공판서 정바울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서로 “관계 소원해졌다” 입장
200억원, 이재명·정진상에게?

백현동 사업의 최대주주인 정 회장은 이날 신문서 검찰이 “김인섭이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이야기를 하며 200억원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물었고 자기가 50%를 먹고 50%는 두 사람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두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이재명과 정진상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고 (검찰 조사에서)답했는데 맞느냐”고 묻자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특정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는데도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을 떠올린 이유에 관해 “성남시에는 두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름을 거명하진 않았지만 여러 사항에 있어서 이재명 시장 등으로 저는 생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전 대표와 정 전 실장이 백현동 사업을 앞두고 100회 이상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1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이 확보한 경기남부경찰청의 김 전 대표 수사 결과 통지서에는 “성남시 정책비서관이었던 정 전 실장이 2014년 4월1일부터 2015년 3월31일까지 김 전 대표와 115회에 걸쳐 통화한 내역이 확인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부정처사후수뢰, 부패방지법 위반,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3년 2월~2020년 10월 성남시 정책보좌관과 경기도 정책실장을 지내며 유 전 본부장을 통해 남 변호사를 비롯한 대장동 개발업자로부터 7회에 걸쳐 2억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대장동 개발 사업자 선정 등 특혜를 대가로 김만배씨 보통주 지분의 24.5%인 700억원(세후 428억원)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유 전 본부장과 나눠 갖기로 약속한 혐의도 있다.

여기에 2013년 7월~2018년 1월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정보를 개발업자에게 흘려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하고 호반건설이 약 210억원의 개발수익을 취득하도록 한 혐의, 2021년 9월 검찰 압수수색을 당한 유 전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지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정 전 실장은 당초 경찰 조사에서 “김 전 대표와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통화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김 전 대표와 100번 넘게 통화한 내역이 드러나면서 이 대표와의 연관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바 있다. 이후 검찰은 소환 조사 등을 진행해 백현동 사업과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윗선’ ‘그분’에 대한 검찰의 칼날은 매섭게 날이 서있다. 소환조사, 구속영장 청구 등 검찰 수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두고 여야는 손익계산에 분주한 상태다. 내년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여야 간 전쟁 이전에 내부 공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함께 몰락했다. 이 대표는 최씨의 비선 실세 논란이 불거질 무렵 촛불집회에 참가해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다. 박 전 대통령 ‘하야’를 외치면서 지지층의 맹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이제 이 대표는 비선 실세로 지목된 김 전 대표와의 고리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결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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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