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이재명 정해진 운명

‘출구 없다’ 감방 말고 병원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검찰이 또다시 마주 앉았다. 이 대표의 앞길에는 헤쳐나갈 난관이 까마득하다. 단식투쟁이라는 최후의 패는 이미 써버렸다. 앞으로 여론과 민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게 될지 민주당의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2일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18일에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민주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에 따른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역시 조만간 국면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구속 시기는?
단식 한계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요청으로 2019년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 사업비’ 500만달러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의 방북비 30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를 북측에 대신 건넸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제3자뇌물 혐의로 입건됐다.

이 사건을 두고 지난 2년 동안 검찰과 이 대표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긴 시간 끝에 검찰 측은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막바지 단계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이 대표가 돌연 단식투쟁을 선언하면서 시나리오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단식 중단 조건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을 비롯한 국정 쇄신 및 개각 등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방탄 단식’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 조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단식을 시작하는 것은 동정 여론을 끌어내겠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당 대표가 식음을 전폐하고 투쟁하고 있는데 검찰이 끌고 가서 무리한 조사를 했다’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지 의심할만하다”며 “당의 내부 갈등을 반짝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법 리스크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가 취임한 이후 검찰에 소환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6번째다. 지난 9일, 수원지검서 진행된 1차 조사는 8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 대표 측이 건강상 이유로 조사가 어렵다고 밝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날 이 대표는 스마트팜이나 대북사업에 아는 바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기도가 북한에 물품을 지원하기로 한 공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에 서명을 거부한 채 귀가했다. 조사 당사자의 서명이 없는 피의자 신문 조서는 재판 과정서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 이 대표 측은 진술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서명날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힘 받는 체포영장 가능성
방탄 스크럼 짜는 친명계


반면 검찰은 “이 대표가 조서 열람 도중 자신의 진술이 누락됐다고 억지를 부렸다”며 “정작 어느 부분이 누락됐는지는 답하지 않은 채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퇴실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출석을 통보했다.

두 번째 조사는 사흘 뒤인 12일 이뤄졌다. 이날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는 “두 번째 검찰 출석인데 오늘은 대북송금과 제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검찰이 제시하는지 한 번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2년 동안 변호사비 대납, 스마트팜 대납, 방북비 대납 등 주제를 바꿔가면서 검사 수십명, 수사관 수백명을 동원했다”며 “증거라고는 단 한 개도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사는 약 1시간50분 만에 종료됐다. 조사를 마친 직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형식적인 질문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소환해서 신문하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이 짜놓은 범죄 프레임에 민주당 대표를 끼워 맞추기 위한 시나리오일 뿐,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방북비 대납과 관련한 의혹을 줄곧 부인해왔다. 이 대표는 “북한에 방문해서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생면부지 모르는 조폭 불법 사채업자 출신의 부패 기업가에게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북한에 내주라고 하는 중대 범죄를 저지를 만큼 제가 어리석지 않다”고 일축했다.

제3자뇌물 혐의에 관해서는 “아무 관계없는 혐의를 엮으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뒤집을 핵심 중 하나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다. 그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연일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 6월 검찰 조사에서 쌍방울과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던 기존 입장을 일부 번복했다. 쌍방울에 경기도지사 방북 추진을 요청했으며, 쌍방울의 대납 사실을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해당 진술을 이 대표와 쌍방울 대북송금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가 “검찰의 압박에 따른 허위진술”이라고 전면 부인하면서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다.

추석 전
끝낸다?

번복되는 진술에도 검찰이 이 대표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는 게 일부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이 이 전 부지사의 진술만으로 범죄 혐의를 단정짓지 않았으며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법조계는 검찰이 쌍방울 사건에 백현동 의혹을 병합해 이 대표를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예측했다. 백현동 사건서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던 2014∼2015년 당시 분당구 백현동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서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줘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조사를 마친 일주일 뒤인 18일 오전 이 대표를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현동 200억원 백임과 대북송금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예상보다 날짜가 앞당겨지면서 민주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정기국회 일정상 국정감사 등으로 10월에는 본회의가 잡혀 있지 않다는 점 역시 추석 전 체포동의안 표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9월을 넘기면 다음 본회의인 11월에 표결하게 되는데 이때는 시기상 너무 늦어진다는 설명이다.

생각보다 빨라진 시기에 민주당은 윤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단번에 높였다. 윤정부를 ‘검찰 독재’로 규정하고 ‘야당 탄압’ 프레임을 구축하는 등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한 스크럼 짜기에 나섰다.

이 대표가 ‘증거불충분’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검찰의 ‘부당한 수사’ 여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해석 역시 힘이 실린다. 앞서 이 대표가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당은 지난 7월 의원총회를 통해 “국민 눈높이에 특별히 부당한 영장 청구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부당한 영장 청구’라는 꼬리표가 붙은 만큼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들 때를 대비해 돌파구를 남겨놓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주장과 궤를 함께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박범계 의원은 지난 12일 의원총회서 “간밤에 깊은 고민 끝에 절대로 이 대표를 저들의 ‘아가리’에 내줄 수 없다는 결론을 안고 무겁게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처분은 무효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시사했다.

얄팍한
방탄복


조정식 사무총장도 “역대 야당 대표를 단식 중에 소환한 것도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서 또다시 추가 소환했다”며 “윤석열 정치검찰의 악랄한 사법만행”이라고도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표결에 관한 당론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당이 이 대표의 소명을 믿지 않고 기소를 전제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국 체포동의안 표결 가능성을 놓고 민주당 의원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당 대표가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에 나선 만큼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부결을 위한 보이콧 조짐까지 가세하면서 이 대표의 단식 전략이 톡톡히 효과를 누렸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이 비회기가 아닌 정기국회를 앞둔 시점서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두고 “당을 분열시키기 위한 공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의 수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합심해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체포동의안이 오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정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민 의원은 “지금 (한동훈)법무부 장관이 300명 국회의원에 대고 투표하라고 한다”며 “이는 투표 강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프레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투표를 거부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며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검찰의 행위 자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의 단식을 필두로 동정론이 일면서 체포동의안 부결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방탄 프레임에 갇힐 것을 염려하는 비명(비 이재명)계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지면서 분열의 조짐마저 보인다. 방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이 대표가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숨 건 대표에 보답?
한 편에선 ‘동정론’도

같은 당의 대표가 몸을 혹사하면서 투쟁하는 형국에 체포동의안 가결 표를 던지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서 국민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고개를 들었다.

다만 이 대표가 나서서 가결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민주당이 ‘부당한 영장 청구’만을 반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따라서 이번 영장에 동의하는 것은 ‘정당한 영장 청구’는 물론 이 대표의 혐의를 인정하는 셈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비명계가 다시 입을 열자 이 대표가 단식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붙여둔 당심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는 의견이 나온다.

단식이라는 최후의 패까지 꺼내든 이 대표의 다음 움직임이 주목된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해 당의 화합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져달라는 여론을 우회해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월 비슷한 전략을 내세웠다.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다.

당시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관련 국회 본회의 보고를 하루 앞둔 지난 2월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 모두에 대해 반박했다. 검찰의 부당함을 공식적인 자리서 호소하며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의 1박2일 워크숍 만찬에 참석하는 등 내부 결집에 나서는가 하면, 비명계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계파색이 옅은 의원뿐 아니라 비명계서도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 2월24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다. 다만 완벽한 부결을 자신한 것과 달리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이미 한차례 방탄이 얇아진 만큼 이번 표결 역시 근소한 차이로 이 대표의 운명이 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뼈를 주고
살도 줬다

18일 오전 이 대표는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단식 19일에 접어든 이 대표는 이송 당시 간단한 의사 소통조차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단식은 10일~14일을 넘기면 의학적으로 신체에 손상이 가해지는 만큼 한계에 온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은 이 대표를 향한 동정의 여론이 우세하다. 이 대표 퇴진론과 비대위설도 당분간은 잠잠할 전망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게 비명계 의원 측의 설명이다. 이 대표가 감춰둔 또 다른 패가 있을지, 꺼낸다면 그 시점은 언제일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김기현 언제 만나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을 에둘러 거부했다.

지난 13일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서 한국의희망 양향자 공동대표의 예방을 받던 도중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양 공동대표는 “당장 이재명 대표를 만나주시기 바란다. 이 대표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 대표는 “단식하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근본적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를 찾아갈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야의 협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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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