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이재명 정해진 운명

‘출구 없다’ 감방 말고 병원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검찰이 또다시 마주 앉았다. 이 대표의 앞길에는 헤쳐나갈 난관이 까마득하다. 단식투쟁이라는 최후의 패는 이미 써버렸다. 앞으로 여론과 민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게 될지 민주당의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2일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18일에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민주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에 따른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역시 조만간 국면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구속 시기는?
단식 한계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요청으로 2019년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 사업비’ 500만달러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의 방북비 30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를 북측에 대신 건넸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제3자뇌물 혐의로 입건됐다.

이 사건을 두고 지난 2년 동안 검찰과 이 대표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긴 시간 끝에 검찰 측은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막바지 단계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이 대표가 돌연 단식투쟁을 선언하면서 시나리오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단식 중단 조건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을 비롯한 국정 쇄신 및 개각 등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방탄 단식’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 조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단식을 시작하는 것은 동정 여론을 끌어내겠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당 대표가 식음을 전폐하고 투쟁하고 있는데 검찰이 끌고 가서 무리한 조사를 했다’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지 의심할만하다”며 “당의 내부 갈등을 반짝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법 리스크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대표가 취임한 이후 검찰에 소환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6번째다. 지난 9일, 수원지검서 진행된 1차 조사는 8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 대표 측이 건강상 이유로 조사가 어렵다고 밝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날 이 대표는 스마트팜이나 대북사업에 아는 바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기도가 북한에 물품을 지원하기로 한 공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에 서명을 거부한 채 귀가했다. 조사 당사자의 서명이 없는 피의자 신문 조서는 재판 과정서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 이 대표 측은 진술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서명날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힘 받는 체포영장 가능성
방탄 스크럼 짜는 친명계


반면 검찰은 “이 대표가 조서 열람 도중 자신의 진술이 누락됐다고 억지를 부렸다”며 “정작 어느 부분이 누락됐는지는 답하지 않은 채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퇴실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재출석을 통보했다.

두 번째 조사는 사흘 뒤인 12일 이뤄졌다. 이날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는 “두 번째 검찰 출석인데 오늘은 대북송금과 제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검찰이 제시하는지 한 번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2년 동안 변호사비 대납, 스마트팜 대납, 방북비 대납 등 주제를 바꿔가면서 검사 수십명, 수사관 수백명을 동원했다”며 “증거라고는 단 한 개도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사는 약 1시간50분 만에 종료됐다. 조사를 마친 직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형식적인 질문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소환해서 신문하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검찰이 짜놓은 범죄 프레임에 민주당 대표를 끼워 맞추기 위한 시나리오일 뿐,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방북비 대납과 관련한 의혹을 줄곧 부인해왔다. 이 대표는 “북한에 방문해서 사진 한 장 찍겠다고 생면부지 모르는 조폭 불법 사채업자 출신의 부패 기업가에게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북한에 내주라고 하는 중대 범죄를 저지를 만큼 제가 어리석지 않다”고 일축했다.

제3자뇌물 혐의에 관해서는 “아무 관계없는 혐의를 엮으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뒤집을 핵심 중 하나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다. 그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연일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 6월 검찰 조사에서 쌍방울과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던 기존 입장을 일부 번복했다. 쌍방울에 경기도지사 방북 추진을 요청했으며, 쌍방울의 대납 사실을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해당 진술을 이 대표와 쌍방울 대북송금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가 “검찰의 압박에 따른 허위진술”이라고 전면 부인하면서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다.

추석 전
끝낸다?

번복되는 진술에도 검찰이 이 대표의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는 게 일부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이 이 전 부지사의 진술만으로 범죄 혐의를 단정짓지 않았으며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법조계는 검찰이 쌍방울 사건에 백현동 의혹을 병합해 이 대표를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예측했다. 백현동 사건서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던 2014∼2015년 당시 분당구 백현동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서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줘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조사를 마친 일주일 뒤인 18일 오전 이 대표를 대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현동 200억원 백임과 대북송금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예상보다 날짜가 앞당겨지면서 민주당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정기국회 일정상 국정감사 등으로 10월에는 본회의가 잡혀 있지 않다는 점 역시 추석 전 체포동의안 표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9월을 넘기면 다음 본회의인 11월에 표결하게 되는데 이때는 시기상 너무 늦어진다는 설명이다.

생각보다 빨라진 시기에 민주당은 윤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단번에 높였다. 윤정부를 ‘검찰 독재’로 규정하고 ‘야당 탄압’ 프레임을 구축하는 등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한 스크럼 짜기에 나섰다.

이 대표가 ‘증거불충분’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검찰의 ‘부당한 수사’ 여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해석 역시 힘이 실린다. 앞서 이 대표가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당은 지난 7월 의원총회를 통해 “국민 눈높이에 특별히 부당한 영장 청구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부당한 영장 청구’라는 꼬리표가 붙은 만큼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날아들 때를 대비해 돌파구를 남겨놓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주장과 궤를 함께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박범계 의원은 지난 12일 의원총회서 “간밤에 깊은 고민 끝에 절대로 이 대표를 저들의 ‘아가리’에 내줄 수 없다는 결론을 안고 무겁게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처분은 무효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체포동의안 부결을 시사했다.

얄팍한
방탄복


조정식 사무총장도 “역대 야당 대표를 단식 중에 소환한 것도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서 또다시 추가 소환했다”며 “윤석열 정치검찰의 악랄한 사법만행”이라고도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체포동의안 표결에 관한 당론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당이 이 대표의 소명을 믿지 않고 기소를 전제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국 체포동의안 표결 가능성을 놓고 민주당 의원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당 대표가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에 나선 만큼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부결을 위한 보이콧 조짐까지 가세하면서 이 대표의 단식 전략이 톡톡히 효과를 누렸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이 비회기가 아닌 정기국회를 앞둔 시점서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두고 “당을 분열시키기 위한 공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의 수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합심해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체포동의안이 오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정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민 의원은 “지금 (한동훈)법무부 장관이 300명 국회의원에 대고 투표하라고 한다”며 “이는 투표 강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프레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투표를 거부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며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검찰의 행위 자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의 단식을 필두로 동정론이 일면서 체포동의안 부결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방탄 프레임에 갇힐 것을 염려하는 비명(비 이재명)계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지면서 분열의 조짐마저 보인다. 방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이 대표가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숨 건 대표에 보답?
한 편에선 ‘동정론’도

같은 당의 대표가 몸을 혹사하면서 투쟁하는 형국에 체포동의안 가결 표를 던지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서 국민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고개를 들었다.

다만 이 대표가 나서서 가결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서 민주당이 ‘부당한 영장 청구’만을 반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따라서 이번 영장에 동의하는 것은 ‘정당한 영장 청구’는 물론 이 대표의 혐의를 인정하는 셈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비명계가 다시 입을 열자 이 대표가 단식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붙여둔 당심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는 의견이 나온다.

단식이라는 최후의 패까지 꺼내든 이 대표의 다음 움직임이 주목된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해 당의 화합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져달라는 여론을 우회해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월 비슷한 전략을 내세웠다.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다.

당시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관련 국회 본회의 보고를 하루 앞둔 지난 2월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 모두에 대해 반박했다. 검찰의 부당함을 공식적인 자리서 호소하며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의 1박2일 워크숍 만찬에 참석하는 등 내부 결집에 나서는가 하면, 비명계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계파색이 옅은 의원뿐 아니라 비명계서도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 2월24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다. 다만 완벽한 부결을 자신한 것과 달리 무더기 이탈표가 나오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이미 한차례 방탄이 얇아진 만큼 이번 표결 역시 근소한 차이로 이 대표의 운명이 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뼈를 주고
살도 줬다

18일 오전 이 대표는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단식 19일에 접어든 이 대표는 이송 당시 간단한 의사 소통조차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단식은 10일~14일을 넘기면 의학적으로 신체에 손상이 가해지는 만큼 한계에 온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은 이 대표를 향한 동정의 여론이 우세하다. 이 대표 퇴진론과 비대위설도 당분간은 잠잠할 전망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게 비명계 의원 측의 설명이다. 이 대표가 감춰둔 또 다른 패가 있을지, 꺼낸다면 그 시점은 언제일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김기현 언제 만나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을 에둘러 거부했다.

지난 13일 김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서 한국의희망 양향자 공동대표의 예방을 받던 도중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양 공동대표는 “당장 이재명 대표를 만나주시기 바란다. 이 대표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 대표는 “단식하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근본적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를 찾아갈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야의 협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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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