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 숟가락 든 민주당 복잡한 속내

뜸 들이다 죽도 밥도 안 될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요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동시에 윤석열정부를 견제해야 한다. 권한대행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면서도 차기 대권주자로서 국정 안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고지가 눈앞이지만 딜레마의 연속인 민주당이 연일 진땀을 빼고 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정치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곳곳서 잠룡들이 꿈틀대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대 야당을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4·10 총선 압승 이후 대권가도에 파란불이 들어오나 싶었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질질 늘어나는
두 사람의 시간

가장 큰 문제는 이 대표를 늘 따라다니는 사법 리스크다.

지난달 법원은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1심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무죄 더하기 유죄는 유죄”라는 국민의힘 측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검찰은 위증교사 혐의 무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서 시간을 끄는 이유도 이 대표의 최종 판결을 변수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내년 상반기 중 이 대표의 실형이 확정되면 그대로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내란 동조범’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따가워도 참고 견디면 호시절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모양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침대 축구에 끌려갈 생각이 없다”며 “개의치 않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석인 국회 추천 몫인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를 위해 신속하게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완성형인 9인 체제로 심판을 치르겠단 복안이다.

현재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연일 부딪치고 있다. 대통령 궐위 상태가 아닌 만큼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주장이 탄핵 심판 절차를 지연하는 꼼수라고 날을 세웠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겸 권한대행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침대 재판’을 하고 있다며 오히려 맞불을 놨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즉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임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에 따른 것”이라며 “진짜 재판 지연 전략을 쓴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은 언론서 왜 안 다루르냐”고 반발했다.

앞서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은 이 대표가 1심 선고 후 즉각 항소심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것을 두고 “변호인 선임을 핑계로 재판을 연기하려는 것은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윤석열·이재명, 같이 달리는 법의 시간
침대 탄핵 VS 침대 심판 “서두르면 끝”

결국 서울고법 형사6-2부는 지난 24일 이 대표 측에 “국선 변호인을 선정했다”고 통지했다.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더라도 이 대표가 사선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면 취소되는 만큼 법원서 최후통첩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난 23일부터 대부분의 법원이 겨울 휴가철을 맞아 2주간 휴정기에 돌입해 이 대표의 법원 시계는 다음 달 7일부터 다시 돌아가게 된다.

민주당에 있어 최악의 상황은 이 대표의 실형 판결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다. 지금까지 이 대표를 선두로 재집권 계획을 짜왔던 만큼 노력의 결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보수 최대의 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자신이 작성한 글을 재인용해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땅의 보수세력은 아직도 건재하고 상대가 범죄자, 난동범 이재명 대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정권 재창출은 어려워진다. 윤정부와 차별화 시점은 4년 차 때부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일찍 와 버렸다”면서도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이 대표를 겨냥했다.

이 같은 여론에 대해 정치 원로로 꼽히는 국민의힘 김성태 전 의원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만약 이 대표 피선거권이 박탈되면 다음 대선서 국민의힘이 대선을 이기나? 턱도 없는 소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오판과 패착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아무리 이 대표가 온갖 범죄의 중심이고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재판은 법원에, 수사는 검찰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올곧이 국정을 국민들과 함께 잘 펴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날려버리는 데 마치 국정운영의 모든 게 다 걸린 것처럼 한 그 판단”이 패착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이 대표가 여당의 핵심 타깃이 된 점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흔들기’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모든 리스크를 당이 막아내면서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 대표의 지지율을 놓고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사람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명의 주자
하나의 타깃

한국갤럽이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진행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37%로 1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각각 5%,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3%로 집계됐다. 뒤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이 각각 2%로 나타났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우원식 국회의장 등도 각각 1%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을 통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5.5%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가 민주당 내 차기 대권주자로 굳히기에 나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만큼 여당에서는 이 대표를 공공의 적으로 보고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현수막까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란 공범’이라고 적힌 야당 측 현수막은 허용한 반면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은 불허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온 동네 현수막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죄의 공범이 돼있다”며 “내란죄는 수사 중인 사건이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핵 표결과 관련해 공범으로 처벌되지 않음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이 현수막 문구는 정치적 표현이라고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무죄 추정에 반해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 확정 판결을 받은 형국이 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범이 됐다”며 “이는 야당이 틈만 나면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내란죄 공범이라는 부당한 정치 공세를 정당화해주는 것 아닌가. 이러니까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심을 받는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결국 선관위는 전체위원회의를 열고 ‘이재명은 안 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사용을 허용했다. 해당 문구가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한 사전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다시 판단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 대표 한 명만을 흔들고 있어 언뜻 보면 ‘이재명 1극 체제’처럼 보이지만 비토 여론과 중도층 확장도 민주당의 오랜 고민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것도 싫다”는 논리가 보수·중도층 곳곳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이 나온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오늘은 아군
내일은 적?

결국 대선은 중도층을 얼마나 포섭하는지를 겨루는 싸움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중도층 확보를 위해 민생에 집중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민주당은 ‘월급방위대’를 띄우고 월급 생활자들에게 적용되는 불리한 조세 제도를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자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3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부양가족 기본공제에 적용되는 ‘자녀’의 기준 연령을 현행 20세서 25세로 높이는 소득세법 개정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도 한때 ‘개미 투자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상법개정 정책 토론회에 직접 사회자로 나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발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이 대표는 계엄보다 더한 짓도 할 사람이라는 건 상식이 있는 국민이면 동의할 것”이라며 “‘이재명정부’를 떠올리면 캄보디아의 흑역사 ‘킬링필드(캄보디아서 일어난 대학살)’가 겹쳐진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력 대선주자를 흔드는 행위는 매번 선거철마다 볼수 있지만 실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다면 곧바로 위기로 이어진다. 선고 결과를 떠나 만에 하나 다음 대선서 이 대표의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당, 더 나아가 진보 진영은 플랜 B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졌지만 군소 정당과의 관계도 풀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윤정부라는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둔 지금 야당은 모두 우군이지만,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적군으로 돌아설 수 있다. ‘교섭단체 조건 완화’를 둘러싼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은 상태다.

지난 총선서부터 교섭단체 조건 완화에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를 낸 건 혁신당이었다. 혁신당은 현재 20석인 국회 교섭단체 의석수를 10석으로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민심 그대로 정치혁신 4법’을 발의했지만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다. 이후 12·3 내란 사태가 터지면서 교섭단체 논의는 기약 없이 뒤로 밀렸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교섭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2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충족돼야 한다. 혁신당은 8석이 모자란 12명으로 의사 일정 조정을 비롯한 국무위원 출석 요구와 본회의·각종 위원회 발언 시간 조정 등에서 배제됐다.

“이는 안 돼” 사정없이 흔드는 여
계엄 전 군소정당과 앙금도 그대로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다른 군소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정당의 참여를 통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민의 수용 등 시대 변화상에 맞춰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게 혁신당의 주장이다.

비교섭단체인 혁신당을 비롯해 ▲개혁신당 ▲새로운미래(현 새미래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12·3 내란 사태 전 두어 차례 만남을 가져 논의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지난 8월 요건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섭단체들이 (협의해)해결해야 한다”고 공을 넘겼다.

결국 10·16 재보궐선거서 호남 텃밭을 놓고 민주당과 혁신당이 날 선 비난을 주고받으면서 갈등이 터졌다. 교섭단체 논의에 착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두 당을 끈끈하게 연결해주었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도 이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듯했다.

민주당이 조기 대선서 승리하고 정권이 바뀐다는 가정 하에 진보 세력이 주축인 군소 정당과 마찰이 생긴다면 계파 문제는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초 공천 심사가 한창이던 때 당을 찢을 듯 뒤흔들었던 친명(친 이재명)-친문(친 문재인) 구도가 재연된다면 어부지리로 국민의힘이 득을 보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 모양새다.

12·3 내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자연스레 시선은 차기 대권주자에게 쏠리게 돼있다. 친문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뒤 언론인 소통 단체방을 개설했다.

김동연 경기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대권 잠룡도 물망에 올랐지만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와 맞붙었던 김두관 전 의원은 돌연 부정선거 의혹과 개헌 이야기를 띄우면서 독자적 행보를 걷고 있다.

비록 비명계, 초일회 등은 찻잔 속 미풍처럼 보이는 반명(반 이재명) 연합이지만 2026년 치러질 지방선거가 목전에 닥친다면 구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게 야당 쪽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대선, 총선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얽히고설킨
야권 실타래

그러면서 “그때는 당에 있는 친문이 굳이 나서서 이 대표를 호위할 필요가 없다. 2028년 총선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너무 먼 얘기”라며 “만일 민주당이 여당이 된다면 차기 선거 때 (반명 세력이)독자적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친문이 강하게 결집한 혁신당이 몸집을 키운다면 민주당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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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