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 숟가락 든 민주당 복잡한 속내

뜸 들이다 죽도 밥도 안 될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요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동시에 윤석열정부를 견제해야 한다. 권한대행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면서도 차기 대권주자로서 국정 안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고지가 눈앞이지만 딜레마의 연속인 민주당이 연일 진땀을 빼고 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정치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곳곳서 잠룡들이 꿈틀대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대 야당을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4·10 총선 압승 이후 대권가도에 파란불이 들어오나 싶었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질질 늘어나는
두 사람의 시간

가장 큰 문제는 이 대표를 늘 따라다니는 사법 리스크다.

지난달 법원은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1심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무죄 더하기 유죄는 유죄”라는 국민의힘 측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검찰은 위증교사 혐의 무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서 시간을 끄는 이유도 이 대표의 최종 판결을 변수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내년 상반기 중 이 대표의 실형이 확정되면 그대로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내란 동조범’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따가워도 참고 견디면 호시절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모양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침대 축구에 끌려갈 생각이 없다”며 “개의치 않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석인 국회 추천 몫인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를 위해 신속하게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완성형인 9인 체제로 심판을 치르겠단 복안이다.

현재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연일 부딪치고 있다. 대통령 궐위 상태가 아닌 만큼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주장이 탄핵 심판 절차를 지연하는 꼼수라고 날을 세웠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겸 권한대행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침대 재판’을 하고 있다며 오히려 맞불을 놨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즉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임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에 따른 것”이라며 “진짜 재판 지연 전략을 쓴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은 언론서 왜 안 다루르냐”고 반발했다.

앞서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은 이 대표가 1심 선고 후 즉각 항소심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것을 두고 “변호인 선임을 핑계로 재판을 연기하려는 것은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윤석열·이재명, 같이 달리는 법의 시간
침대 탄핵 VS 침대 심판 “서두르면 끝”


결국 서울고법 형사6-2부는 지난 24일 이 대표 측에 “국선 변호인을 선정했다”고 통지했다.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더라도 이 대표가 사선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면 취소되는 만큼 법원서 최후통첩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난 23일부터 대부분의 법원이 겨울 휴가철을 맞아 2주간 휴정기에 돌입해 이 대표의 법원 시계는 다음 달 7일부터 다시 돌아가게 된다.

민주당에 있어 최악의 상황은 이 대표의 실형 판결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보다 먼저 나오는 경우다. 지금까지 이 대표를 선두로 재집권 계획을 짜왔던 만큼 노력의 결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보수 최대의 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자신이 작성한 글을 재인용해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땅의 보수세력은 아직도 건재하고 상대가 범죄자, 난동범 이재명 대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정권 재창출은 어려워진다. 윤정부와 차별화 시점은 4년 차 때부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일찍 와 버렸다”면서도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이 대표를 겨냥했다.

이 같은 여론에 대해 정치 원로로 꼽히는 국민의힘 김성태 전 의원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만약 이 대표 피선거권이 박탈되면 다음 대선서 국민의힘이 대선을 이기나? 턱도 없는 소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오판과 패착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아무리 이 대표가 온갖 범죄의 중심이고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재판은 법원에, 수사는 검찰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올곧이 국정을 국민들과 함께 잘 펴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날려버리는 데 마치 국정운영의 모든 게 다 걸린 것처럼 한 그 판단”이 패착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이 대표가 여당의 핵심 타깃이 된 점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흔들기’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모든 리스크를 당이 막아내면서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 대표의 지지율을 놓고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사람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명의 주자
하나의 타깃

한국갤럽이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진행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37%로 1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각각 5%,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3%로 집계됐다. 뒤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이 각각 2%로 나타났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우원식 국회의장 등도 각각 1%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을 통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5.5%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가 민주당 내 차기 대권주자로 굳히기에 나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만큼 여당에서는 이 대표를 공공의 적으로 보고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현수막까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란 공범’이라고 적힌 야당 측 현수막은 허용한 반면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은 불허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온 동네 현수막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죄의 공범이 돼있다”며 “내란죄는 수사 중인 사건이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탄핵 표결과 관련해 공범으로 처벌되지 않음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이 현수막 문구는 정치적 표현이라고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무죄 추정에 반해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 확정 판결을 받은 형국이 됐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범이 됐다”며 “이는 야당이 틈만 나면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내란죄 공범이라는 부당한 정치 공세를 정당화해주는 것 아닌가. 이러니까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심을 받는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결국 선관위는 전체위원회의를 열고 ‘이재명은 안 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사용을 허용했다. 해당 문구가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한 사전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다시 판단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 대표 한 명만을 흔들고 있어 언뜻 보면 ‘이재명 1극 체제’처럼 보이지만 비토 여론과 중도층 확장도 민주당의 오랜 고민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것도 싫다”는 논리가 보수·중도층 곳곳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이 나온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오늘은 아군
내일은 적?


결국 대선은 중도층을 얼마나 포섭하는지를 겨루는 싸움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중도층 확보를 위해 민생에 집중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민주당은 ‘월급방위대’를 띄우고 월급 생활자들에게 적용되는 불리한 조세 제도를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자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3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부양가족 기본공제에 적용되는 ‘자녀’의 기준 연령을 현행 20세서 25세로 높이는 소득세법 개정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도 한때 ‘개미 투자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상법개정 정책 토론회에 직접 사회자로 나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발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이 대표는 계엄보다 더한 짓도 할 사람이라는 건 상식이 있는 국민이면 동의할 것”이라며 “‘이재명정부’를 떠올리면 캄보디아의 흑역사 ‘킬링필드(캄보디아서 일어난 대학살)’가 겹쳐진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력 대선주자를 흔드는 행위는 매번 선거철마다 볼수 있지만 실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다면 곧바로 위기로 이어진다. 선고 결과를 떠나 만에 하나 다음 대선서 이 대표의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당, 더 나아가 진보 진영은 플랜 B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졌지만 군소 정당과의 관계도 풀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윤정부라는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둔 지금 야당은 모두 우군이지만,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적군으로 돌아설 수 있다. ‘교섭단체 조건 완화’를 둘러싼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은 상태다.

지난 총선서부터 교섭단체 조건 완화에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를 낸 건 혁신당이었다. 혁신당은 현재 20석인 국회 교섭단체 의석수를 10석으로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민심 그대로 정치혁신 4법’을 발의했지만 좀처럼 힘을 받지 못했다. 이후 12·3 내란 사태가 터지면서 교섭단체 논의는 기약 없이 뒤로 밀렸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교섭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2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충족돼야 한다. 혁신당은 8석이 모자란 12명으로 의사 일정 조정을 비롯한 국무위원 출석 요구와 본회의·각종 위원회 발언 시간 조정 등에서 배제됐다.

“이는 안 돼” 사정없이 흔드는 여
계엄 전 군소정당과 앙금도 그대로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다른 군소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정당의 참여를 통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민의 수용 등 시대 변화상에 맞춰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게 혁신당의 주장이다.

비교섭단체인 혁신당을 비롯해 ▲개혁신당 ▲새로운미래(현 새미래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12·3 내란 사태 전 두어 차례 만남을 가져 논의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역시 지난 8월 요건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섭단체들이 (협의해)해결해야 한다”고 공을 넘겼다.

결국 10·16 재보궐선거서 호남 텃밭을 놓고 민주당과 혁신당이 날 선 비난을 주고받으면서 갈등이 터졌다. 교섭단체 논의에 착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두 당을 끈끈하게 연결해주었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도 이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듯했다.

민주당이 조기 대선서 승리하고 정권이 바뀐다는 가정 하에 진보 세력이 주축인 군소 정당과 마찰이 생긴다면 계파 문제는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초 공천 심사가 한창이던 때 당을 찢을 듯 뒤흔들었던 친명(친 이재명)-친문(친 문재인) 구도가 재연된다면 어부지리로 국민의힘이 득을 보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 모양새다.

12·3 내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자연스레 시선은 차기 대권주자에게 쏠리게 돼있다. 친문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뒤 언론인 소통 단체방을 개설했다.

김동연 경기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대권 잠룡도 물망에 올랐지만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와 맞붙었던 김두관 전 의원은 돌연 부정선거 의혹과 개헌 이야기를 띄우면서 독자적 행보를 걷고 있다.

비록 비명계, 초일회 등은 찻잔 속 미풍처럼 보이는 반명(반 이재명) 연합이지만 2026년 치러질 지방선거가 목전에 닥친다면 구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게 야당 쪽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대선, 총선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얽히고설킨
야권 실타래

그러면서 “그때는 당에 있는 친문이 굳이 나서서 이 대표를 호위할 필요가 없다. 2028년 총선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너무 먼 얘기”라며 “만일 민주당이 여당이 된다면 차기 선거 때 (반명 세력이)독자적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친문이 강하게 결집한 혁신당이 몸집을 키운다면 민주당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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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