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잡는 이재명 더 유리한 이유

족쇄 차고 칼춤 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정치권의 분위기는 조기 대선으로 넘어갔다. 아직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독무대인 가운데 야권 잠룡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록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지만 그럼에도 이 대표가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기한 구속 취소 청구를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 52일 만에 석방됐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야당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비명(비 이재명)계 잠룡들은 잠시 총구를 거두고 하나의 목소리로 탄핵을 촉구했다.

풀려난 윤
뭉치는 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 9일,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김 전 지사는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모든 것을 걸고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탄핵 찬성 여론이다.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김 지사는 “정치 불확실성이 더 길어진다면 심각한 경제 쇼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즉각 탄핵만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수원역 로데오거리서 시위를 하던 중 한 남성이 맥주캔을 던지는 등 한때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지사는 지난 12일, 단식농성 중인 김 전 지사를 만나 “힘을 합쳐 조기 탄핵, 100% 탄핵을 이루자”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조기 탄핵과 탄핵 100%를 주장하는 분들과 뜻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지금의 이 정치적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서는 빠르게 탄핵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같이 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야5당 합동 집회가 열린 광화문을 찾아 목소리를 높였다. 김두관 전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내란 수괴가 활보하는 대한민국이라니 생각도 못했다. 이제 내란 세력을 응징하는 것은 파면 후 조기 대선서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하는 길밖에 없다”고 탄핵 여론에 군불을 땠다.

박용진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검찰총장 출신 내란 수괴와 한통속으로 대놓고 봐주기 하는 것 아니냐”며 “9시간 45분이 문제가 아니라 94년 5개월을 감옥에 있어도 모자랄 내란 수괴의 석방은 국민의 불안을 가중하는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임 전 실장은 지난 4일, 공개 특강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문재인정부 초기를 준비했던 분들의 경험을 경청해주길 바란다”며 “제가 주선해서라도 그때 준비한 내용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속 취소에 커지는 광장 목소리
정권교체론 발판 삼아 “윤 파면”

합심해 이 대표를 압박했던 비명계가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계기로 다시 뭉치는 분위기다. 이 대표 역시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를 겨냥해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통합 기조를 내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오후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민주당 천막 농성장을 찾아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박용진 전 의원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만나 시국 간담회를 가졌다. 김동연 지사도 이 대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기존 일정으로 불참했다.

이 대표는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을 군인으로 통치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같은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불안과 공포감을 준다”며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우리 경제도 추락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일부 국민의힘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탄핵이 기각돼 대통령이 다시 직무에 복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공식적으로 헌재의 이름으로 앞으로 대통령은 아무 이유도 없이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아무 때나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취미활동 삼아서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것인데 가당키나 한가”라고 지적했다.

정권교체론과 비상계엄의 위법성이 두드러질수록 차기 대선은 계엄 해제의 공을 다투는 선거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관점서 봤을 때 이 대표는 ‘계엄 해제’와 ‘탄핵 찬성’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유산을 모두 갖고 있다. 야권 잠룡들이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데 그쳤다면 이 대표에게는 계엄을 해제한 1등 공신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야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탄핵 목소리를 키우는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 정국에 얼마나 많이 기여했는지가 추후 열릴 수 있는 경선, 또는 조기 대선에 가산점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은 50.4%,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은 44.0%로 집계됐다. 2주째 오차범위인 ±2.5%p 밖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앞선 것이다.

정권교체
신경전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이 각각 정권 연장론과 교체론에 힘을 실었다. 무당층에서는 정권 연장이 31.6%, 정권교체가 45.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을 통해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5%p, 응답률은 6.4%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비상계엄 심판론’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파면 사유가 될 이번 계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동조한 이들을 반헌법 수호 세력으로 규정해 정권교체 프레임을 굳히겠단 것이다.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계엄 해제에 앞장선 이 대표를 내세울 수 있다. 이 대표는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난해 12월4일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셔도 된다” “끝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겠다” “우리 민주당은 대통령의 계엄해제 선언 전까지 국회서 자리를 지키겠다” 등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고, 탄핵 정국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비상계엄이 ‘불법 내란’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통해 헌재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11일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 소속인 민주당 박수현·민형배·김준혁, 진보당 윤종오 의원 등은 이날 서울 광화문 농성장서 “윤 대통령 파면 시까지 단식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한 심우정 검찰총장이 즉각 사퇴할 것과 법원의 윤 대통령 직권 재구속 및 국민의힘 정당 해산 등 요구안도 발표했다.

이들은 연대 이름으로 낸 성명서를 통해 “오늘로 12·3 내란이 98일째를 맞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며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는 헌재의 신속하고 단호한 윤석열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에는 민주당 초선 박홍배·김문수·전진숙 의원이 국회 본청 앞 계단서 윤 대통령 조기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 500여명이 국회의사당서 광화문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는 대신 조용한 행보를 택했다.

너도나도
때리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국회의 본령인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장외 정치 투쟁에 몰두하는 데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며 “지도부는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의원님들께서 양해해주셨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개인적으로 탄핵 각하 릴레이 집회를 이어가는 등 엇박자를 보이면서 여당은 여당대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급해진 여권 잠룡들은 일제히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집중 공격에 나섰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당선무효형을 선고했고 오는 26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만일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 결과가 비록 유죄일지라도 조기 대선에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 대표의 판결이 6월26일까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2심 선고서 유죄가 나오면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심과 3심 대법원 판결 사이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도 모르는 상태서 유권자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맞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근 민주당이 심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 가능성을 언급하자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검찰을 희생양 삼아 ‘사법 리스크 물타기’를 하면서 이 대표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것 아닌가”라고도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대표를 콕 집어 “위험하고 불안한 후보”라며 “유리한 위치가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12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M+에서 열린 ‘제1회 서울 바이오 혁신 포럼’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리 당도 혹시 열릴지도 모르는 조기 대선에 여러 가지 사전적인 준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라고 밝혔다.

때릴수록 커지는 이…보이지 않는 대항마
정책 과제 발표에 시동 걸리는 조기 대선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대표를 겨냥해 “위험한 사람이 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겠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뭉친다면 이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저마다 ‘이재명 때리기’ 전략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려 하지만 그럴수록 이 대표의 주목도만 높아지는 꼴이다. 게다가 대권주자들의 차별화가 눈에 띄지 않아 결국 이 대표 대세론만 인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는 노동, 경제, 민생 등에 관해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락가락 행보’ ‘우클릭 좌회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야당 대표’를 벗어나 ‘집권여당’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과정이라는 게 야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민주당은 당 대표를 공동의장으로 한 민생연석회의를 출범시키고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민생연석회의는 “국민과 함께 민생에서 미래를 찾겠습니다”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중소상공인·자영업위원회 ▲노동사회위원회 ▲금융·주거위원회 등 3개 분과위원회가 선정한 20개 민생의제와 60개의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이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정치를 하려면)왼쪽도 보다가 오른쪽도 봐야 한다. 시각이 한쪽에 쏠려 흑백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검은색 아니면 흰색(과 같은 식의) 바보 같은 생각이 어디 있나. 회색도 있고 빨강·노랑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라는 것은 편 나눠서 싸우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조기 대선 시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공약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안 생기면 좋겠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 논의해야 할 의제”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대표의 질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야 잠룡 모두 고심이 깊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으로 인해 보수 결집을 이뤄냈지만 중도층을 잃는 딜레마에 빠졌다. 야권 잠룡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총구를 밖으로 꺼냈지만 한편으로는 이 대표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 로드맵은커녕 개헌을 주장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차별점이 없는 것 역시 여야 잠룡들의 고민 중 하나다.

이대로
어대명?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 대표 경쟁 주자들은 계엄 해제가 아닌 개헌, 또는 윤석열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제기하는 등 조기 대선 주자 선택의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결국 차기 대선의 프레임을 계엄 해제와 내란 저지 구도로 유지해야 이 대표의 완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시 꺼낸 기본사회 카드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핵심 정책인 기본사회를 논의하는 기본사회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했다.

지난 12일 출범한 위원회 위원장은 이 대표가, 수석 부위원장은 박주민 의원이 맡았다.

이날 이 대표는 축사를 통해 “공정한 기회와 결과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회복과 성장을 바탕으로 국민 기본권을 든든히 해서 보장한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위원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정책을 구체화하고 입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민주당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등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경제기본위원회도 함께 출범했다.

민주당은 대선 공약과는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가시권에 접어든 조기 대선을 대비한 로드맵과 연결 짓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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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