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키우는 헌법재판소 늑장 내막

뻔히 보이는 장고 끝 악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전 국민이 묻고 있지만 답을 듣지 못한 채 한 달이 흘렀다. 이미 예측은 무의미한 수준에 이르렀다. 일정도, 결과도 모두 안갯속이다. 초반 기세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에 이제는 음모론까지 퍼질 기세다. 엉켜버린 타임라인에 사건을 뒤흔든 ‘트리거’가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탄핵 심판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반면 세 번째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은 최종변론 이후 한 달 넘게 공전 중이다.

최장 심리
어디서 삐끗?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헌재의 시간’이 시작됐다. 24일 기준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이 100일째에 접어들었다. 역대 최장 심리 기간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4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탄핵 심판 절차가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이 예상 외로 장기화하자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답답함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마지막 변론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3월 초중순 선고를 점치는 의견이 많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례, 헌재가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언급한 점 등이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최종변론 이후 96일(20일 기준)이 지나도록 헌재는 침묵하고 있다. 판결 방향은커녕 선고기일조차 나오지 않았다. 수시로 평의를 진행한다는 말만 나올 뿐이다. 정치권 등은 통상 선고 2~3일 전에 기일을 공지한다는 선례에 비춰 일정을 예측하는 상황이다. 유력한 날짜로 점쳐졌던 지난 14일은 이미 넘겼고 21일도 지났다.


법조계에서는 4월 선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다음 달 18일을 마지노선으로 두고 그사이에 선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탄핵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은 6월경에 치러진다. 애초 예상됐던 5월에서 한 달가량 늦어지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헌재의 타임라인이 꼬인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서 변수가 하나둘 튀어나오면서 예상 일정이 흐트러졌다는 설명이다. 국민 여론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있다. 탄핵 심판 선고일에 최악의 경우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변론 끝났는데 선고 무소식
노 64일, 박 91일 이미 넘겨

전문가들은 모든 국민을 이해시킬 수는 없어도 헌재가 내놓은 판결에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헌재는 탄핵 심판 심리 과정서 나온 변수를 가능한 한 정리하고 쟁점별로 윤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탄핵 정국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부터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남발, 국가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계엄군이 투입됐고 포고령이 나왔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로 상황은 6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후폭풍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야권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는 두 번의 표결 끝에 가결됐다.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서 접수 이후 사건번호 ‘2024헌나8’를 부여했다. 이후 사흘 뒤인 12월16일 첫 재판관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정형식 재판관이 주심으로 지명됐다. 주심재판관은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헌재 재판관은 6명이었다. 국회 지명 몫의 조한창·정계선·마은혁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탄핵소추됐다. 뒤이어 ‘권한대행의 대행’으로 나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지금의 진용을 갖추게 됐다.


1월14일 탄핵 심판 1차 변론이 시작됐다. 다음날인 15일에는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체포됐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 사건과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가 본격적으로 맞물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사·재판
얽히고설켜

이후 16일 탄핵 심판 2차 변론이 열렸다. 윤 대통령은 1~2차 변론에는 불참했다. 사흘 뒤인 19일 서울서부지법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데 이어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면서 초유의 법원 공격 사태도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 변론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3차 변론 때부터 최종 변론일까지 모습을 보였다. 국회의 탄핵소추 배경인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11차까지 이어진 변론은 쟁점에 대한 윤 대통령 측과 국회 측의 공방으로 채워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쟁점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포고령 1호의 위헌성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선거관리위원회 군대 투입 ▲정치인·법조인 체포조 운용 지시 등 총 5가지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했다.

윤 대통령은 최종 변론기일에 67분간 비상계엄 선포 배경과 직무 복귀 시 정국 구상에 대해 밝혔다. 지난 1월13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42일 동안 총 11차례 변론을 끝으로 헌재는 평의에 들어갔다. 55일간 17차례 변론을 진행한 박 전 대통령 때보다 기간과 횟수가 짧았다.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실제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상당한 속도를 냈다. 당시 헌재에 계류된 탄핵 심판 사건은 윤 대통령 사건을 비롯해 총 9건이었다. 헌재는 다른 사건보다 윤 대통령 사건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재판장에 시계를 가져다 놓고 증인 1명당 90분으로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등 일각에서는 ‘무리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판을 서둘렀다.

하지만 최종변론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지난 14일 선고가 무산된 이후 20~21일 선고가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헌재는 지난 20일 “이번주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공지는 없다”고 밝혔다.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사건을 오는 24일 오전 10시에 선고한다고 발표했다. 한 총리 탄핵 심판의 변론은 지난달 19일에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의 선고기일이 늘어지는 상황을 두고 각종 추측이 분분한 상황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오는 26일로 잡혀 있는 상황이라 정치적인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헌재가 이 대표의 항소심 결과를 보고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잡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향후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이 대표의 발목이 묶이는 셈이다.


법원 구속 취소 이후 신중론?
각종 추측·음모론 난무하는데…

일각에서는 헌재의 기류 변화의 원인으로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들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가 법원서 인용되면서 빠르게 진행되던 재판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했다. 검찰이 즉시항고 등의 방식으로 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석방됐다. 구속 41일 만이다.

법원이 구속 취소의 사유로 언급한 것은 구속 기간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여부다. 서울중앙지법은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통상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해 왔는데 이를 현행법에 명시된 대로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공수처서 검찰로 사건을 넘기면서 신병 인치를 거치지 않았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언급하며 “이와 관련해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기 때문에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므로 구속 취소 결정을 하는 게 상당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피의자)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을 인용했다.


재판부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배경으로 내란죄 수사권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찰, 검찰, 공수처는 경쟁적으로 내란죄 수사에 뛰어들었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에게만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내란죄는 검찰의 수사 개시 대상서 제외됐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실제 법원서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서 “이런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법원 제동
어떤 영향?

사실 현행법상으로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헌재의 선고는 180일 이내 이뤄지면 된다. 윤 대통령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6월11일 전에만 선고하면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의무 조항이 아니라 훈시 규정인 만큼 시한을 넘긴다고 해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실제로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 검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등은 각각 252일, 272일 만에 ‘기각’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 대표의 항소심 선고 날짜가 잡혔고 한 총리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도 정해졌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한 변수가 하나씩 해소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기일은 헌재 앞에 놓인 마지막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장고 끝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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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