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품절’ 치솟는 계란값 민낯

한판 7000원 진실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계란값이 다시 오름세를 보이며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매년 계란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업계에서는 가격 상승 원인으로 유통 과정에서의 거래 관행과 구조적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특란 30개 기준 연평균 소비자가격을 보면 2021년 6949원에서 2022년 6629원으로 320원(약 4.6%) 하락했고, 2023년에는 6491원으로 다시 138원(약 2.1%) 떨어졌다. 이후 2024년에는 6560원으로 69원(약 1.1%) 상승하며 반등했고, 2025년에는 6787원으로 227원(약 3.5%) 올랐다. 이처럼 계란 한 판 가격은 최근 몇 년간 6000원대 중후반 수준에서 움직이며 등락을 반복해 왔다.

갈수록
오름세

다만 올해 들어 상승 폭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6년 현재 계란 소비자가격은 약 7045원 수준으로, 전년 평균 가격(6787원)과 비교해 약 258원(약 3.8%) 상승했다. 특히 1년 전 같은 시기(약 6041원)와 비교하면 1000원 이상 오른 수준으로, 상승률은 약 16%에 달한다.

계란은 대표적인 생활 필수 식품으로, 가정에서의 소비뿐 아니라 제과·제빵과 외식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만큼 가격 변동이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최근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계란값까지 오르며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현재 계란값 상승의 주요 원인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공급 감소다. 겨울철을 중심으로 AI가 확산되면서 산란계 살처분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해 계란 생산량이 감소했다. 계란은 생산과 소비가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신선식품 특성상 공급 변화에 따라 가격이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사료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 등 생산비 부담도 영향을 미쳤다. 산란계 농가의 비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산지 가격 역시 오름세를 보였고, 이는 소비자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

봄철을 앞두고 외식과 가공식품 수요가 증가하는 계절적 요인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계란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수급 요인만으로는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 사이의 격차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란값은 단순히 생산량과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실제 유통 과정에서는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가격이 형성된다. 일반적으로 계란은 ‘농가, 집하·선별업체, 도매상, 소매(마트·시장)’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유통된다.

이 과정에서 물류비와 선별·포장 비용, 파손 등에 따른 손실 비용이 더해지며 가격이 단계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이런 비용이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란은 신선식품 특성상 운송과 보관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파손이나 품질 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반영해 유통 단계에서 비용이 붙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평균 10% 이상 손실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손실 규모와 비용 반영 방식은 거래 주체 간 협의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가격 형성 과정을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후장기·DC 등 거래 관행이 원인?
판매가 두고 ‘네 탓’ 엇갈린 주장

계란 거래는 일반적인 상품 거래 방식과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후장기’로 불리는 사후정산 방식이다. 이는 농가가 계란을 먼저 유통업자에게 넘긴 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정산을 받는 방식으로, 거래 시점에 가격이 확정되지 않는 구조다.

후장기 거래에서는 유통업자가 도매나 소매 단계에서 판매를 마친 이후, 판매 가격과 손실 등을 반영해 농가에 지급할 금액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고시 가격이나 시세를 기준으로 일정 금액이 차감되며, 농가는 최종 정산 시점이 되어서야 실제 수취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거래 당시에는 수량과 품목만 기록되고 가격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에 ‘DC(Discount,할인)’ 방식이 함께 작용한다. 유통업자는 고시된 산지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를 진행한 뒤 유통비, 손실 비용 등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차감하고 농가에 지급한다.

이로 인해 고시 가격과 실제 농가 수취 가격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일부 현장에서는 고시 가격 대비 상당한 수준의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거래 방식은 가격 형성 과정에서 유통 단계의 영향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농가 입장에서는 납품 시점에 가격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협상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유통 단계에서 가격이 조정되는 구조가 굳어진다.

또 계란 가격은 오랜 기간 생산자단체가 발표하는 산지 가격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원래는 참고 지표 성격이었던 고시 가격이 실제 거래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가격 결정 구조가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유통 단계에서는 이 고시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이후 정산 과정에서 조정되는 방식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결국 계란값은 생산 단계에서 결정된 가격이 그대로 소비자 가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통 단계에서의 비용 반영과 거래 방식, 가격 기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형성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중간에
마진은?

계란값 상승의 원인을 둘러싸고 생산자와 유통업계 간 입장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가격이 오른 원인을 두고 각 주체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목하면서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산란계 농가 측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공급 감소를 계란값 상승의 원인으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동절기 동안 수백만마리에서 많게는 1000만마리에 이르는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생산 기반이 크게 약화됐고, 이로 인해 계란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하루 약 5000만개 수준이던 계란 공급량이 수백만개 단위로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농가는 살처분 이후 곧바로 생산이 재개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공급 감소 영향이 장기간 이어진다는 점도 강조했다.

병아리를 다시 입식해 계란을 생산하기까지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에 수급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농가들은 생산비 상승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료 가격이 국제 곡물가 상승과 환율 영향으로 크게 오른 데다 인건비와 전기료 등 운영 비용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면서 생산단가 자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조사에서는 계란 1개당 생산원가가 170원대 후반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산지 가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때문에 농가 측에서는 현재 가격 수준을 두고 ‘폭등’이 아니라 ‘정상화 과정’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과거에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고, 최근 가격 상승은 최소한의 비용을 반영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연평균 수익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적자를 기록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가격 상승을 단순히 이익 확대와 연결 짓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상화 과정?
진짜 이유는?

또 생산자단체의 가격 고시와 관련해서도 농가 측은 이를 강제성이 없는 참고 지표로 보고 있다. 실제 거래 가격은 개별 농가와 유통업자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만큼, 최근 가격 상승 역시 인위적인 조정이 아니라 공급 감소에 따른 시장 반응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유통업계는 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일부 농가가 공급 부족을 이유로 기존 거래 가격에 더해 웃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통 단계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 기준가격에 더해 개당 10~20원 수준의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매입 단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비용 상승이 곧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강조했다.

대형마트와 식자재마트 등 주요 판매처는 납품 단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데 제한이 있어, 상승한 매입 가격을 유통업체가 그대로 전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준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유통 단계에서 일정 부분 비용을 떠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계란이 소매 유통 과정에서 ‘미끼 상품’처럼 활용되는 점도 유통업체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식자재마트의 경우 소비자 유인을 위해 계란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서 납품업체에 원가 수준 또는 그 이하의 가격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관행이 지속되면서 정상적인 계란 가격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계란이 갖는 특성상 발생하는 손실 비용도 유통업계가 떠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계란은 운송과 보관 과정에서 파손이나 품질 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손실과 선별·포장 비용, 물류비 등을 고려하면 실제 마진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는 결국 이 과정에서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커지는 업계 담합 의혹
정부 가격 체계 대수술

정부와 공정거래 당국은 생산자단체가 발표한 산지 가격이 시장에서 사실상 기준 가격이 되면서 경쟁을 제한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가격 고시 이후 일정 수준 이하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을 키웠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대한산란계협회가 지역별 산지 가격을 고시하고, 이 가격이 거래 기준처럼 활용되면서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사안과 관련해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검토 중이다.

특히 가격 상승 시점과 관련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이전부터 가격이 상승한 점도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 단순한 수급 변화 외에 가격 형성 과정에서 인위적인 요인이 작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도 계란 유통 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 작업에 나선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산지 가격을 공공기관이 조사·발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가격 검증을 위한 별도의 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처럼 민간 단체가 가격을 고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가격 형성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거래 방식 역시 손질할 예정이다. 농가와 유통업자 간 거래에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가격, 규격, 손실 반영 기준 등을 사전에 명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동안 사후정산 방식으로 이뤄지던 거래 관행을 개선해 가격 결정 시점을 앞당기고 분쟁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목적에서다.

수급 안정 대책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산란계 사육 기반을 확대하고, 계란 가공품을 비축했다가 가격이 상승할 경우 시장에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급이 줄어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계란뿐 아니라 돼지고기 등 다른 축산물 유통 구조에 대해서도 가격 담합과 재고 관리 문제를 점검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가격 형성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불투명한
유통 구조

한 유통업계 관계자 A씨는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단계별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구조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이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다 보니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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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