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준연대’ 몸값 올리는 막후 세력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낙연 전 총리의 신창 창당이 가시권에 돌입했다. 한발 앞서 창당을 선언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나란히 언급되면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낳았다. ‘내부 저격수’ 외에 교집합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그려나갈 그림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겠다며 큰 목소리를 치는 건 결국 몸값을 올리기 위한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창당설이 우후죽순 솟아나면서 폭풍전야 기운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내 창당 선발주자는 이준석 전 대표다.

최근 이 전 대표가 신당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탈당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됐다. 이 전 대표가 선언한 마지노선은 오는 27일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당정관계에 변화가 없을 경우 국민의힘을 떠나 새로운 당을 꾸리겠다고 줄곧 예고해왔다.

힘 받는
창당설

이 전 대표는 지난달부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 연락망 구축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세 모집에 나서는 동시에 함께할 인사를 모으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총선 출마 희망자도 모집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야당의 신당 창당 후발주자로 뛰어들면서 단숨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굵직한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움직이자 자연스레 이목이 쏠린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이달 초 민주당 강성 지지자의 출당 요구를 받으면서다. 지난 3일, 민주당 청원 홈페이지인 국민응답센터에는 이 전 총리를 ‘당내 통합 장애물’로 칭하며 “더는 민주당에 둘 수 없다”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77.7% 당원이 뽑은 이재명 대표를 통해 민주당 당원은 총선을 치르길 원한다”며 “이낙연은 민주당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원글에 따르면 올해 3월에 7만명이 넘는 당원들이 이 전 총리에 관한 영구 제명 청원을 넣었지만, 이 대표가 통합의 차원으로 이를 무마시켰다. 그런데도 연일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풀이된다.

작성자는 “이제 당내 통합을 저해하는 이낙연 당신을 향한 당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더 이상 민주당에 둘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당원들의 민주당인데 당신이 무엇인데 선출로 뽑은 당 대표의 거취를 결정하는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해당 청원은 이틀 만에 약 1만5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법원에 출석하는 이 대표를 향해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당연히 함 직하다”며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한 라디오에서는 “민주당이 상당히 많이 변했고 많이 낯설어졌다”며 참담함을 느낄 지경이라고 직격했다. 당내 민주주의가 시들어가고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을 꼬집은 셈이다.

이낙연·이준석 저격수끼리 뭉친다?
기상천외한 조합…가능성은 ‘글쎄’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의 조짐이 보이자 이 대표가 진압에 나섰다. 문제의 소지가 된 탈당 청원글을 삭제하도록 직접 지시했으며 이 전 총리와의 만남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발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과 이 대표가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 응하겠지만, 단순한 사진 촬영을 위해서라면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당을 창당할 계획이 있는지’에 관한 언론의 질문에는 “머지않아 결정될 것”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던 이 전 총리가 최근 마음을 굳히면서 본격적으로 내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내년 총선서 원내 제1당을 목표로 연대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실제로 신당을 창당할 것인지에 관한 진행자의 질문에 “예”라고 짧게 답한 뒤 “절망하는 국민께 작은 희망이나마 드리고 말동무라도 돼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창당 진행 단계에 관해 “아주 실무 작업의 초기 단계”라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애를 많이 쓰고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해 초에 새 희망과 함께 말씀드리겠다”며 이전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물꼬를 튼 셈이다. 두 물줄기가 하나로 이어질지가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전 대표는 이 전 총리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의견을 비쳤다. 이른바 ‘낙준연대’에 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서 활동하신 이력 등을 볼 때 이재명 대표보다 더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큰 틀을 벗어나는 것에 많은 고민이 있으실 거고, 큰 정치인이 움직일 때는 명분을 아주 크게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연대
나비효과

이 전 총리는 대선주자로 나섰던 인물인 만큼 향후 거취를 정하는 데 있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만일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각각 TK(대구·경북)와 호남을 기반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 비율이 30%에 달하는 만큼 중도 세력을 ‘쌍끌이’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문제는 두 사람의 정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친낙(친 이낙연)계로 알려진 이병훈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오히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광주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대선서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은 ‘대장동 사건’을 이 전 총리가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의혹 역시 떨쳐내야 할 과제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서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만큼 호남서 긍정적인 시그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의 경우 TK서 ‘비호감’으로 낙인이 찍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대구는 특히 다른 지역보다 의리가 강한 면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 번 배신자로 찍히면 얼굴 들고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물며 당에서 ‘내부총질’ 소리를 들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 이쪽을 노린다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의견을 보탰다.

이낙연·이준석 조합이 뚱딴지같다는 평도 적지 않다. 둘은 각각 여야의 대표를 지내는 등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한때 당을 대표했던 만큼 정치 이념서 엇갈리는 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의 지지자가 다른 한쪽의 이념을 지지할 가능성 역시 미지수다.


신당을 창당하는 목적과 방향성도 사뭇 다르다. 이 전 대표는 윤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 전 총리는 민주당의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중도 세력을 흡수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제외한다면 이들의 교집합이 확장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나서서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성급했나?
흐릿한 노선

낙준연대는 이 전 대표만의 희망 사항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전 총리의 뉘앙스가 여러 번 바뀌면서다.

당초 이 전 총리는 창당이 가시화되기 이전부터는 이 전 대표와의 만남에는 선을 그었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때가 되면 만날 것”이라며 초반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긍정적인 메시지에 이 전 대표 역시 “만날 준비가 됐다”며 화답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또다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서 낙준연대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최근에는 이 전 총리가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와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를 향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면서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가 이 전 대표를 벗어났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에는 총선을 앞두고 제 몸값을 불리기 위해 서로의 유명세를 빌리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지금, 넘어갈 듯 말 듯 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당 지도부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원로’에 가까운 만큼 어떤 선택을 하든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과거 꾸준히 언급됐던 제3지대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속도감 있는 행보를 두고 당내 친·비명을 막론하고 민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도부를 대신하듯 이 전 총리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이들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윤정부와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날아가 버리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 내 다른 목소리가 수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많이들 지적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잘못됐다”며 이 전 총리의 개혁 방식을 꼬집고 나섰다. 그는 “당의 원로이고 당 대표도 지내셨다. 문재인정부의 총리까지 지셨던 분인데 당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주당을 떠나려는 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총리까지 하신 분이 굳이 왜?”
서서히 붙는 ‘배신자’ 꼬리표

이 전 총리를 향해 연일 날을 세우고 있는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정치인 이낙연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내일도 신당 얘기를 할 거면 오늘 당장 나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덕으로 평생 꽃길을 걸은 분이 왜 당을 찌르고 흔드냐”며 “신당을 할 거면 안에서 흔들지 말고 나가서 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식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 독재의 협조자로 기록되실 거냐. 이 전 대표는 ‘사쿠라’ 노선을 포기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쿠라는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로 정치권에선 ‘배신자’를 뜻한다.

혁신계 모임 ‘원칙과상식’을 이끄는 이원욱 의원조차 “매우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숨 고르기가 좀 필요한데 갑자기 링에 뛰어들어서 100m 질주를 하고 계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이 대표 체제와 결을 달리하는 이들조차 선뜻 민주당을 떠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적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양두구육’이라고 일침을 가했지만, 지금의 이 전 대표 역시 “창당을 위해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전 총리가 “큰 줄거리를 함께하겠다”고 밝힌 새로운선택 측 역시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선택 관계자는 “금 대표는 양당의 문제점과 문제의식을 느낀 분이라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이 전 총리가 연대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실제로 어떤 생각이고, 또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낙준연대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중도 세력을 끌어오는 데 실패한다면 미미한 성과에 그치는 것은 물론 ‘명분도 실리도 없는 신당’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낙장불입’
그 결과는?

지금까지는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양당의 지도부가 안심하기엔 이르다. 다음 해 총선까지 채 반년도 남지 않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여의도의 판을 뒤집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두 사람은 연일 신당 창당에 힘을 실으며 스스로 퇴로를 끊어내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자충수로 전락할지 양쪽의 귀추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색한 삼자대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낙연 전 총리 이외에도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와의 회동 추진에 나섰다.

‘이낙연 신당’ 파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문재인 3총리’의 연대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에 따른 당내 갈등을 사전에 수습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 전 총리는 이 대표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김 전 총리와는 오는 18일 예정된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를 계기로 삼자대면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전 총리가 연일 선을 긋고 있는 만큼 3총리와의 회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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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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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