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더불어민주당 분당 시나리오

당 대표 리스크 “이러다 다 죽는다”

[일요시사 정치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같은 당 의원들조차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실금 같던 틈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급하게 한쪽 입을 틀어막아도 다른 쪽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민주당 분당설’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당내엔 긴장감마저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분당설이 고개를 들었다. 이전부터 민주당은 친명(친 이재명)계, 친낙(친 이낙연)계, 친문( 친문재인)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계파가 형성됐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이 발을 딛는 곳마다 유독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긴장감은 벌써 최고조에 달했다.

민주당의 분열 조짐은 지난 2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압도적 부결을 자신한 것과 달리 30표가량의 무더기 이탈표가 쏟아졌다. 당시 이 대표에겐 “정치적 사망이 선고됐다”는 평가도 오르내렸다. 이후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두고 ‘방탄’ 논란이 일면서 이 대표의 리더십이 치명타를 입었다.

가동되는
시한폭탄

그러던 이 대표가 지난달 19일 국회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날 이 대표의 선언은 자신과 당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는 차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것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극명한 반응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당이 차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이들은 의원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당당히 포기함으로써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의미가 있다고도 부연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 대표에게 한정된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불체포특권이 없으면 입법부가 어떻게 검찰 독재정권과 싸울 수가 있겠냐는 입장이다. 현재 윤석열정부의 ‘검찰 독재’ ‘정치탄압’이 만연한 만큼 민주당 모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으로 오히려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가 나섰다. 혁신위는 지난달 23일 불체포특권 포기를 1호 혁신안으로 제시했지만 의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지난 12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을 받지 않으면 민주당은 망한다”며 압박도 가했다. 혁신위가 민주당을 따끔하게 질책한 다음 날인 지난 13일 불체포특권 포기를 의제로 두고 의원총회가 열렸지만 결국 불발됐다.

이날 의원총회서 지도부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결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윤리성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혁신안을 추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혁신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1호 혁신안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검찰이 영장 청구를 판단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는 말에 묻히는 듯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비명(비 이재명)계와 친낙계로 구성된 31명의 민주당 의원이 돌연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습니다’란 입장문을 내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이 ‘제 식구 감싸기’와 계파 다툼이 난무하는 정당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탈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이하 더미래)도 이날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끝까지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지 못한 의원에게 있어 이들의 결의는 탐탁지 못한 선택으로 비춰졌다. 친명계 위주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민주당의 내홍이 깊어졌다. 체포동의안에 관해 당론을 정한 적이 없을뿐더러 수사 과정에 따라 각자 판단할 일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발 빠른 비명·친낙
민주당 지도부 통수?

불체포특권이 헌법에 규정된 만큼 결의만으로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두고 당심에 조금씩 균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던 중 불현듯 ‘유쾌한 결별’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면서 민주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같은 당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지난 3일 한 라디오를 통해 “도저히 뜻이 안 맞고 방향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유쾌한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이 구성원들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균열이 생길 것이란 뜻이다.

이를 두고 유쾌한 결별이 반드시 분당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위와 당 지도부는 이 의원의 발언을 강하게 질타했다. 하나로 똘똘 뭉쳐 윤정부와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당을 ‘갈라치기’ 하는 발언이 오히려 분당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지도부에서는 이 의원의 발언이 도를 지나치게 넘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를 당의 분열을 조장하는 해당 행위로 간주하고 엄중히 경고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반응에 이 의원은 “어디까지나 유쾌한 결별까지 ‘각오’하면서 당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반박에 나섰다. 

하지만 이 이원의 ‘유쾌한 결별’ 발언을 시작으로 민주당 분당을 둘러싼 말이 겹겹이 얹어졌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심리적 분당’에 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이 갈라설 가능성은 적지만 계파 싸움이 격해질 경우 심리적으로 분당할 것이란 우려를 표한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귀국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이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앞서 이 대표는 이 전 총리에게 “백지장도 맞들어야 할 시국인 만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함께 윤정부를 견제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재명
살리기

이를 두고 추 전 장관은 “백지장을 맞들어도 방향이 다르면 찢어진다”고 일갈했다. 백지장을 맞대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조차 모른 채 섣불리 함께하는 것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분당설에 연기가 피어오르자 민주당은 초기 진압에 나섰다. 특히 혁신위는 ‘유쾌한 결별’ 발언을 두고 개혁과 혁신이 절박하다는 것을 다소 거칠게 표현했을 뿐, 분당의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죽어’라는 뜻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친명계에서는 “민주당의 분당은 곧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길”이라고 소리 높였다. 현 시점서 민주당이 갈라서게 된다면 내년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까지 줄줄이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유쾌한 결별’에 ‘공천 룰’이라는 또 다른 불씨가 피어올랐다. 내년 총선을 두고 예고된 치열한 공천권 싸움에 권력이 개입할 가능성이 제시되면서다.

지난 19일, 혁신위는 공천에 대한 국민의 의견이 여럿 있었다며 공천 룰 변경을 시사했다. 민주당에는 또다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불체포특권 포기로 한차례 당을 뒤흔든 혁신위가 이전보다 민감한 소재에 과감히 손을 댄 것이다.

민주당의 공천 룰은 이미 지난 5월 확정됐다. 민주당은 앞서 이해찬 전 대표 시절인 2019년 7월에 만들어진 시스템 공천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혁신위는 해당 틀에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제 혁파’와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는 ‘투명한 시스템’을 추가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대표가 총선을 치르고 대선까지 가기 위해 공천권을 휘두를 것이란 예측이 나오면서다. ‘이재명 호신위’이라는 의혹을 떠안은 혁신위가 공천룰을 어떻게 손볼지에 따라 내년 총선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가 대선을 목표로 한다면 공천룰 손질이 불가피한 만큼 혁신위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칠 것이란 비판을 제기했다. 비명계서도 기존에 확정됐던 공천 룰을 손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공천 룰을 건드릴 경우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이 대표와 친명 의원에게 유리하도록 공천의 판이 짜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천 룰이 어떻게 변경되느냐에 따라 계파 간 유불리뿐 아니라, 의원들이 총선 전략마저 달라질 수 있다.

정치생명의 호흡기와도 같은 공천권을 권력의 입맛대로 주무르게 된다면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서도 불체포특권 포기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통과시키는 데도 갈등이 있었던 만큼, 혁신위가 공천 룰을 일방적으로 손댈 경우 민주당 분당설에 또다시 불꽃이 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얼기설기
미봉책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분당이라는 건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일 공천이라는 변수가 생긴다면 가능성은 배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천권에 이 대표가 입김을 불어넣으면 비명계 의원이 대거 컷오프되고 이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의원을 중심으로 신당이 창당된다면 민주당의 분당설은 단순이 ‘설’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혁신위가 이 대표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목적성이 뚜렷하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만큼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복경 혁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원회가 아니냐’는 질문에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혁신위가 공천 룰 손질을 예고한 이튿날 친명계 성향의 단체도 ‘공천혁신’을 주장했다. 비명계 의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렸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서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민주혁신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10대 공천혁신안’을 발표했다. 공천혁신은 ‘물갈이의 제도화’인 만큼 민주당이 민심의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586세대를 겨냥한 퇴진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민 의원은 다음 총선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역 의원 중 적어도 50%는 물갈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3선 이상 다선 의원은 4분의 3 이상인 만큼 39명 중 30명은 물갈이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혁신회는 같은 지역구서 3선 이상을 지낸 의원에게 경선 득표율 50%를 감산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선 공천 컷오프 비율을 현행 20%서 3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같은 민심을 거부한다면 배가 뒤집힐 수밖에 없다며 압박했다. 만일 공천 룰이 퇴진론의 방향으로 틀어진다면 중진 현역 의원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불체포특권에 공천까지
건드는 족족 ‘와르르’

혁신위도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인적 쇄신 차원서 공천 룰을 이해하고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당 공천 과정서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을 혁파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가 혁신위의 세 번째 혁신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되자 비명계 의원은 자신을 마녀사냥식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냐고 반발했다. 의원의 역량이 아닌 선수만 놓고 따지는 것 역시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천권 문제만으로는 민주당의 분당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이 대표가 자신의 입맛대로 공천권을 휘두르기에는 각종 사법 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력 대권주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분당할 가능성이 작다는 평이다.

신당이 생기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지도부가 나서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변수는 총선을 9개월 앞둔 지금 호남 지역을 공격적으로 노리는 제3지대다. 표심이 어디로 흘러 들어갈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 수도 있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내년 총선서 이길 것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표심이 이전 같지 않은 데다가 무당층을 겨냥한 신당까지 생기면서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 화합하지 못하니 윤정부와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서도 승리가 확실치 않다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의 시선이다.

긴장감
최고조

악조건인 상황서 계파 간 갈등을 잠재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 대표와 이 전 총리의 회동마저 취소됐다. 벌써 두 번째 불발이다. 차일피일 미뤄진 만남에 민주당은 폭우를 이유로 들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론’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실금이 그어진 셈이다. ‘유쾌한 결별’과 ‘불쾌한 동거’ 사이서 혁신위만 진땀을 빼고 있다. 168명의 민주당 의원을 어르고 달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내려놓은 불체포특권 득일까? 실일까?

긴 진통 끝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소속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당이 회복해야 할 도덕적 정당이란 위치를 고려했다고 전해졌지만 혁신안 부결이 몰고 올 파장을 염려해 결의를 추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하면서도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 흠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반쪽짜리’ 결의라는 비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당한 영장인지 아닌지를 판사가 아닌 정당이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결과적으로 비명계는 이 대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게 됐다.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리스크 돌파를 위한 승부수 아닌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예상되는 이유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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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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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