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4월 총선 ‘동네북’ 선관위 잔혹사

‘헌법기관’ 방패로 60년 고인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년 4월, 여야 양 진영의 명운을 건 경기가 열린다. 경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은 쪽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자리는 총 300개. 무승부는 없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진다. 문제는 심판이다. 초대형 경기를 6개월 앞두고 심판의 자질이 문제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승자의 이득은 곧 패자의 손실이 된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다시 말해 승부서 밀리면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사활을 걸고 덤벼드는 이유다. 

심판 역할
자질 부족

선거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이기고 지는 결과만 있기 때문에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심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패자의 승복은 바랄 수 없다. 이긴 자 역시 찝찝한 승리를 누릴 뿐이다. 심판을 맡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 전반을 관리한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대형 정치 이벤트를 비롯해 협동조합의 이사장 선거까지 투표를 통해 당락이 갈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선관위가 있다.

최근 선관위가 끊임없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60년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취약한 보안 상태도 드러났다. 특히 보안 문제가 언급된 부분은 ‘혹시?’라는 의구심을 국민에게 심어줬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중앙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함께 지난 7월17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합동보안점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앙선관위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은 북한 등이 언제든 침투할 수 있는 상태로 드러났다. 선관위의 사이버 보안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국정원은 기술적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 침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서 투표 시스템, 개표 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된 것.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선관위가 보유한)전체 장비 6400여대 가운데 약 5%인 317대만 점검했다”고 말했다. 백 3차장은 “선거의 제도적 통제장치는 고려하지 않고 기술적 측면서 해커의 관점으로 취약점 여부를 확인한 것”이라며 “과거의 선거 결과 의혹과 결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안 부분서 취약점이 발견된 것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 현황과 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선관위의 ‘통합 선거인 명부 시스템’은 인터넷을 통해 침투할 수 있고 해킹도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사전투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시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을 투표한 사람으로 표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유권자를 정상 유권자로도 등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점검으로 해킹 가능성
투·개표 시스템부터 전산망까지

사전투표 용지에 날인되는 청인(선관위 도장)과 사인(투표관리관의 도장) 파일을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훔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 테스트용 사전투표 용지 출력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사전투표 용지와 QR코드가 같은 투표용지를 무단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에는 인가를 받지 않은 외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어 내부 선거망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개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특히 투표용지 분류기에서는 USB 등 외부 장비의 접속을 통제해야 하는데도 비인가 USB를 무단 연결하면 해킹 프로그램 설치가 가능했고 이를 통해 투표 분류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선관위 전산망 역시 해킹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선관위 전산망은 홈페이지 등이 연결된 인터넷망, 선거사무 관리를 위한 업무시스템을 운영하는 업무망, 투·개표 관련 주요 선거 시스템을 포괄하는 선거망 등으로 구분된다.

중요 정보를 처리하는 업무망과 선거망 등 내부 전산망은 인터넷과 분리해야 하는데 선관위의 경우 망 분리 보안 정책이 미흡해 전산망 간 통신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인터넷서 업무망·선거망으로 침입할 수 있는 것. 

또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재외공관의 재외선거망까지 침투가 가능했다. 재외선거관리시스템서 재외국민선거인명부를 탈취하고 재외 공간의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보안에 대한 선관위의 안일한 인식이다. 선관위 시스템 비밀번호는 ‘12345’ 등 초기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커한테
다 뚫린다

심지어 해킹에 대한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선관위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국정원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선관위에 관련한 해킹 8건을 통보했다. 선관위는 국정원 통보 전까지 해킹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처는 더 최악이었다. 해킹 원인을 조사하지 않았고 피해자 보안조치 역시 실시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 과정서 2021년 4월 선관위의 인터넷 컴퓨터가 북한 ‘김수키’ 조직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상용 메일함에 저장됐던 대외비 문건 등 업무 자료와 저장 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자체 평가서 스스로를 100점이라고 진단했지만 국정원의 평가는 3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보호대책 이행 여부 점검’을 자체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이었다고 국정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이번 점검서 같은 기준으로 재평가했더니 31.5점에 불과했다. 

국정원은 “선관위는 그동안 국정원의 현장 점검을 거부하고 자체 점검 결과를 서면으로만 제출했다”면서 “31.5점은 지난해 102개 기관 중 최하점에도 미치지 못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선관위가 100점 만점을 통보했을 때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선관위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관위는 국정원 점검 이후 내년 총선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앙선관위는 총선 사전투표함과 우편투표 보관 과정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전국 사전·우편투표함 보관장소에 설치한 CCTV 화면 전부를 실시간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대처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앞서 선관위가 채용 문제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것도 불신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선관위는 그동안 외부의 관리·감독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타이틀로 철옹성 같은 방어막을 구축했다.

반쪽 조사
문제 많아

그 결과 내부가 완전히 ‘고인물’화되면서 신뢰도가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지난 7년간의 선관위 공무원 경력채용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선관위가 권익위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핵심인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채용 비리 정황이 드러났다. 권익위는 353건을 적발, 이 중 312건을 수사 의뢰했다.

반쪽 조사였지만 특혜 채용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조사 결과 ▲법적 근거 없이 임기제 공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채용공고 게재 ▲경력증명서 미제출에도 채용 ▲나이 등 자격요건 미달자의 합격 등이 적발됐다. 특혜 채용 의혹 합격자와 선관위 직원 간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향후 검찰 수사 단계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선관위에 수차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인사기록 카드, 인사시스템 접속 권한, 채용 관련자 인사 발령 대장, 비공무원 채용 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전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 주민등록번호 제공에 동의한 게 41%에 불과했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위임 규정에 따른 정례적 인사 감사도 전혀 실시하지 않아 불공정 채용이 반복됐다고 보고 있다. 

특혜 채용으로 도덕성 타격
‘노태악 사퇴론’ 다시 불거져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선관위는 ‘규정 미비’ ‘당사자의 실수’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난 7월에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과 관련해 정당성을 따져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이서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선관위는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후 감사원이 직무감찰 계획을 밝히자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거부했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부분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선관위 측은 “이번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경력 채용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명확히 정리돼 국가기관 간 불필요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에 이어 지난 12일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선관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채용 비리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중앙선관위 해킹 의혹 관련 대응 TF를 구성하는 등 선관위 압박에 나섰다.

선관위는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선거 불복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신이냐
회복이냐

선관위를 둘러싼 잦은 논란에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론도 불거지고 있다. 노 위원장은 지난 5월,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사과하면서도 사퇴 계획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이 선관위 관련 의혹에 책임을 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판의 자질이 부족하면 경기를 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람객까지 피해를 입는다. 결국 선관위의 문제는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 감사원, 권익위, 국정원 등 선관위는 현재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선관위에 대한 평가가 갈릴 듯하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열 3위와 6위 차이?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탄 승용차가 대법원장 일행인 것처럼 버스전용차로로 달렸다가 적발돼 과태료를 문 사실이 드러났다.

노 위원장이 탄 선관위 관용차는 지난해 10월1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다 단속카메라에 찍혔다. 

국가의전 서열 3위인 대법원장 관용차는 경찰 호위 대상으로 버스전용차로로 통행이 가능하지만, 서열 6위인 선관위원장은 버스전용차로로 다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0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위해 선관위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노 위원장은 이번 일과 관련해 “앞으로 좀 더 세심히 주의하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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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메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