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4월 총선 ‘동네북’ 선관위 잔혹사

‘헌법기관’ 방패로 60년 고인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년 4월, 여야 양 진영의 명운을 건 경기가 열린다. 경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은 쪽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자리는 총 300개. 무승부는 없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진다. 문제는 심판이다. 초대형 경기를 6개월 앞두고 심판의 자질이 문제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승자의 이득은 곧 패자의 손실이 된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다시 말해 승부서 밀리면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사활을 걸고 덤벼드는 이유다. 

심판 역할
자질 부족

선거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이기고 지는 결과만 있기 때문에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심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패자의 승복은 바랄 수 없다. 이긴 자 역시 찝찝한 승리를 누릴 뿐이다. 심판을 맡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 전반을 관리한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대형 정치 이벤트를 비롯해 협동조합의 이사장 선거까지 투표를 통해 당락이 갈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선관위가 있다.

최근 선관위가 끊임없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60년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취약한 보안 상태도 드러났다. 특히 보안 문제가 언급된 부분은 ‘혹시?’라는 의구심을 국민에게 심어줬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중앙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함께 지난 7월17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합동보안점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앙선관위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은 북한 등이 언제든 침투할 수 있는 상태로 드러났다. 선관위의 사이버 보안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국정원은 기술적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 침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서 투표 시스템, 개표 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된 것.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선관위가 보유한)전체 장비 6400여대 가운데 약 5%인 317대만 점검했다”고 말했다. 백 3차장은 “선거의 제도적 통제장치는 고려하지 않고 기술적 측면서 해커의 관점으로 취약점 여부를 확인한 것”이라며 “과거의 선거 결과 의혹과 결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안 부분서 취약점이 발견된 것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 현황과 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선관위의 ‘통합 선거인 명부 시스템’은 인터넷을 통해 침투할 수 있고 해킹도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사전투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시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을 투표한 사람으로 표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유권자를 정상 유권자로도 등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점검으로 해킹 가능성
투·개표 시스템부터 전산망까지

사전투표 용지에 날인되는 청인(선관위 도장)과 사인(투표관리관의 도장) 파일을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훔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 테스트용 사전투표 용지 출력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사전투표 용지와 QR코드가 같은 투표용지를 무단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에는 인가를 받지 않은 외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어 내부 선거망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개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특히 투표용지 분류기에서는 USB 등 외부 장비의 접속을 통제해야 하는데도 비인가 USB를 무단 연결하면 해킹 프로그램 설치가 가능했고 이를 통해 투표 분류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선관위 전산망 역시 해킹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선관위 전산망은 홈페이지 등이 연결된 인터넷망, 선거사무 관리를 위한 업무시스템을 운영하는 업무망, 투·개표 관련 주요 선거 시스템을 포괄하는 선거망 등으로 구분된다.

중요 정보를 처리하는 업무망과 선거망 등 내부 전산망은 인터넷과 분리해야 하는데 선관위의 경우 망 분리 보안 정책이 미흡해 전산망 간 통신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인터넷서 업무망·선거망으로 침입할 수 있는 것. 

또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재외공관의 재외선거망까지 침투가 가능했다. 재외선거관리시스템서 재외국민선거인명부를 탈취하고 재외 공간의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보안에 대한 선관위의 안일한 인식이다. 선관위 시스템 비밀번호는 ‘12345’ 등 초기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커한테
다 뚫린다

심지어 해킹에 대한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선관위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국정원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선관위에 관련한 해킹 8건을 통보했다. 선관위는 국정원 통보 전까지 해킹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처는 더 최악이었다. 해킹 원인을 조사하지 않았고 피해자 보안조치 역시 실시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 과정서 2021년 4월 선관위의 인터넷 컴퓨터가 북한 ‘김수키’ 조직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상용 메일함에 저장됐던 대외비 문건 등 업무 자료와 저장 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자체 평가서 스스로를 100점이라고 진단했지만 국정원의 평가는 3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보호대책 이행 여부 점검’을 자체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이었다고 국정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이번 점검서 같은 기준으로 재평가했더니 31.5점에 불과했다. 

국정원은 “선관위는 그동안 국정원의 현장 점검을 거부하고 자체 점검 결과를 서면으로만 제출했다”면서 “31.5점은 지난해 102개 기관 중 최하점에도 미치지 못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선관위가 100점 만점을 통보했을 때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선관위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관위는 국정원 점검 이후 내년 총선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앙선관위는 총선 사전투표함과 우편투표 보관 과정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전국 사전·우편투표함 보관장소에 설치한 CCTV 화면 전부를 실시간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대처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앞서 선관위가 채용 문제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것도 불신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선관위는 그동안 외부의 관리·감독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타이틀로 철옹성 같은 방어막을 구축했다.

반쪽 조사
문제 많아

그 결과 내부가 완전히 ‘고인물’화되면서 신뢰도가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지난 7년간의 선관위 공무원 경력채용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선관위가 권익위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핵심인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채용 비리 정황이 드러났다. 권익위는 353건을 적발, 이 중 312건을 수사 의뢰했다.

반쪽 조사였지만 특혜 채용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조사 결과 ▲법적 근거 없이 임기제 공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채용공고 게재 ▲경력증명서 미제출에도 채용 ▲나이 등 자격요건 미달자의 합격 등이 적발됐다. 특혜 채용 의혹 합격자와 선관위 직원 간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향후 검찰 수사 단계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선관위에 수차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인사기록 카드, 인사시스템 접속 권한, 채용 관련자 인사 발령 대장, 비공무원 채용 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전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 주민등록번호 제공에 동의한 게 41%에 불과했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위임 규정에 따른 정례적 인사 감사도 전혀 실시하지 않아 불공정 채용이 반복됐다고 보고 있다. 

특혜 채용으로 도덕성 타격
‘노태악 사퇴론’ 다시 불거져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선관위는 ‘규정 미비’ ‘당사자의 실수’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난 7월에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과 관련해 정당성을 따져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이서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선관위는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후 감사원이 직무감찰 계획을 밝히자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거부했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부분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선관위 측은 “이번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경력 채용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명확히 정리돼 국가기관 간 불필요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에 이어 지난 12일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선관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채용 비리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중앙선관위 해킹 의혹 관련 대응 TF를 구성하는 등 선관위 압박에 나섰다.

선관위는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선거 불복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신이냐
회복이냐

선관위를 둘러싼 잦은 논란에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론도 불거지고 있다. 노 위원장은 지난 5월,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사과하면서도 사퇴 계획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이 선관위 관련 의혹에 책임을 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판의 자질이 부족하면 경기를 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람객까지 피해를 입는다. 결국 선관위의 문제는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 감사원, 권익위, 국정원 등 선관위는 현재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선관위에 대한 평가가 갈릴 듯하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열 3위와 6위 차이?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탄 승용차가 대법원장 일행인 것처럼 버스전용차로로 달렸다가 적발돼 과태료를 문 사실이 드러났다.

노 위원장이 탄 선관위 관용차는 지난해 10월1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다 단속카메라에 찍혔다. 

국가의전 서열 3위인 대법원장 관용차는 경찰 호위 대상으로 버스전용차로로 통행이 가능하지만, 서열 6위인 선관위원장은 버스전용차로로 다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0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위해 선관위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노 위원장은 이번 일과 관련해 “앞으로 좀 더 세심히 주의하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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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