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합의 어때요?” 뜻밖의 포르쉐 차주의 수리비 흥정

바로 사과했는데도 “잘못 시 사과는 매너고 인성”
글 작성자 “불법 정차, 경찰 허위 진술” 의혹 제기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전동킥보드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포르쉐 차량에 흠집이 생기자 수리비로 4000만원을 요구했던 포르쉐 차주가 갑자기 100만원으로 합의를 원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포르쉐 차주가 나흘 만인 지난 7일, 갑작스레 3000~4000만원의 수리비를 요구했던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 100만원에 합의가 어떠냐고 연락해온 것.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킥보드 툭 쓰러졌는데 4000만원을 말하네요’ 원글 작성자 A씨는 지난 8일 “많이들 관심 가져 주시고 궁금하실 텐데 일을 다니고 있어 바빴고, CCTV 확보하느라 조금 늦은 부분이 있어 양해 부탁드린다”고 운을 뗐다.

A씨는 “이번 글에는 생략됐던 (포르쉐 차주와의)전체 문자메시지 내역과 업데이트된 내용을 말하고자 한다”며 “사건 시작부터 모든 내용을 말하려 하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어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지난 2일 새벽 1시 반경, 술집 앞에서 친구들과 대화하러 나갔다가 고정돼있던 전동킥보드에 올랐다. 이때 킥보드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 포르쉐 박스터 차량 앞휀더에 흠집을 냈다.

사고 후 A씨는 포르쉐 차주에게 사과하자 그는 “범퍼 다 갈아야 하는 거 아시죠?”라고 물었다. A씨는 흠집이 생긴 부분이 범퍼도 아니었고 당시에도 ‘교체할 정도는 아니겠다’고 생각됐다고 했다.


그는 “당시 포르쉐 차주는 출동한 경찰에게 ‘킥보드를 타고 와서 차에 갖다 던졌다’고 허위 진술했다”며 “절대 갖다 던지지 않았다. 해당 어플(킥고잉)도 없다고 말씀드렸고 경찰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분들이 진술이 다르다고 말했으나 차주와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아 그냥 돌아갔다. 이후로 차주 측 보험사 불러 다시 진술했는데 이 과정서 현장에 없던 차주 측 지인이 와서 사고와 관계 없는 다른 차 부위를 가리키며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A씨는 포르쉐 차주에게 재차 사과와 함께 원만한 합의를 원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미 고소장을 접수했다는 사진과 함께 경찰서로 오라는 답을 받았다. 합의를 위해 경찰에 출석했지만 차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진술을 들은 경찰은 고의성이 없는 데다 킥보드를 운행한 상황이 아니라 형사는 힘들 것 같고 합의나 민사로 진행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경찰 출석 후 포르쉐 차주에게 전화했지만 거절하자 “경찰서 진술 후 먼저 귀가하셨다고 해서 연락드린다. 다시 한번 제 부주의로 사고를 일으킨 점 정말 죄송하다”며 “사고 당시 더 이야기해봤어야 했는데 저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찌할 줄 몰랐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이어 “평생 운동만 해오다가 이제 사회에 나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제 상황도 많이 어려운 편이라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정말 죄송하다. 연락 기다리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포르쉐 차주는 “운동하셨으면 아시겠지만 반칙하고 잘못하면 사과하시는 게 매너고 인성”이라며 “그걸 지금 제 시간과 돈을 써서 정성껏 알려드리는 것이다. 변호사가 연락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A씨가 “사고 직후 죄송하다고 사과드렸었고 지금도 죄송한 마음 갖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 제가 사과를 안했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며 “합의할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라고 재차 묻자 “어떻게 합의보실 예정이냐? 정리해서 보내주시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A씨는 “킥보드에 부딪혀 난 흠집에 3000~4000만원을 얘기하며 병원비도 청구하겠다는 차주분의 말을 듣고 무서운 마음에 많은 분들게 의견을 여쭙고자 ‘보배드림’에 글을 썼다”며 “댓글 반응이 엄청났고 기자분들이 기사화해 이슈가 되니 차주분에게 ‘왜 피해자 코스프레하느냐? 본인 차에 그렇게 재물손괴당하셨어도 그렇게 하실 거냐?’고 연락이 왔다”고 소개했다.

“저는 의견을 구하고자 글을 올렸고 차주분이 정당하게 요구한 게 맞다면 이렇게 이슈화가 되겠느냐?”는 A씨 물음에 포르쉐 차주는 “감정이 격해져 그랬던(과다비용 청구) 부분 인정한다. 센터 입고하면 200만원 넘게 나오는데 기사, 보배글 내리는 조건으로 100만원에 합의하시는 게 어떤가요?”라고 제안했다.

차주는 “정식 센터에 입고했고 수리는 한 달 걸린다고 한다. 오늘까지 연락 없으면 합의 안 하시는 것으로 알겠다. 동급차 렌트 포르쉐 박스터 하루 최소 30~50만원x30일 대차했다”며 “2일, 6일 이후로 차량 타지도 못하고 탁송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량 대차 비용만 900만원이다. 감당 가능하냐? 합의 수용 가능한 금액을 달라. 현재 수중 현금이나 가용 금액이 얼마냐?”라고 묻기도 했다.

A씨는 여러개의 문자 대화 내역 캡처 사진과 함께 본인이 알아낸 점들과 문제가 될만한 사안을 정리했다며 ▲차주 보험사와의 통화 ▲포르쉐 서비스센터 전화 통화 ▲CCTV 확인 등 7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대인 보험사분 말로는 저를 배제하고 본인 및 동승자 보험만 접수했다고 한다. 현재 동승자만 대인 접수됐고 실제로 병원에 다녀와 청구한 상태라고 한다”며 “차주는 보험계약상의 문제로 대인 접수가 불가한 상태라고 하는데 대물 보험사분 말로는 차주분이 보험 접수했다가 개인이 해결한다면서 취소한 상황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포르쉐 차주분은 지난 5일에 문자상으로 센터 입고 대기 중이라고 해서 견적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7일에 센터에 전화해보니 사고 차량은 입고 대기가 없으며, 포르쉐 차주분이 이날 입고됐다고 한다”며 “현재 분당 지점으로 이관 기다리고 있어 차 점검이 안 된 상태고 센터에선 대략적인 수리 기간을 한 달 정도로 알려드린 것 같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제가 킥보드를 운행하지 않은 점,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고가 난 점, 사건 발생 10분 전부터 차량을 인도와 차도 사이의 황색 점선에 정차하고 있어 차주의 불법 정차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킥보드가 차량에 부딪혀 기스 난 일로 3000~4000만원이 나올 수 있고 대인 접수해 병원비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는 무리한 요구로 생각된다”며 “차를 내놓은 상태라며 감가도 언급했는데 사실일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정확한 견적서 등 근거자료 없이 30일 동안 수리 시간이니 최소 900만원 대차 비용이 발생한다고 문자를 받았다. 이 문자들을 받고 큰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건 발생 후 최초로 현장에 오신 OOO파출소 경찰분들에게 ‘킥보드를 타다 내 차에 갖다 던졌다’는 진술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다만 ‘던졌다’인지 ‘박았다’인지는 제가 현장서 들었기 때문에 OO경찰서에 가서 민원접수 후 압구정파출소에 남아있는 진술서를 인계받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마무리했다. 


렌터카 비용에 대해 한 회원은 “차량이 운행 불가해야 수리 기간 동안 렌트비가 인정된다. 법원 소송 가도 당일 수리될 수 있는 수준이면 실질적으로 수리에 필요한 일수만 인정된다”며 “저 정도면 하루치에 대한 렌트비나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비만 인정돼 차주 렌트 시 렌트 비용을 다 물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회원은 “옛날에나 그랬지. 포르쉐 사고 나면 포르쉐 대차해주느냐? 동급 배기량의 국산 차량으로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회원은 “4000만원? 휀더 판금하는 데 무슨 금 발랐느냐? 나도 수입차 타는데 1급 정비소 가도 저것보다 크게 깨졌는데 50만원에 감쪽같이 수리해주더라”며 “결정적으로 사진 보니 킥보드로 인한 상처로 안 보인다. 왜 두 줄의 상처가 생기냐? 서 있던 킥보드가 저렇게 큰 관성 에너지가 생기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실제로 쓰러졌던 킥보드 손잡이는 고무 재질로 돼있어 차량 표면에 흠집을 낸 게 아닌 원래 이전부터 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재경 소재의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보험 대차 서비스 시 외제차들은 동종의 외제 차량으로 대차가 나오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센터에 동종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경우 다른 급의 외제 차량으로 지급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면 수리 차량이 볼보 차라면 같은 모델의 볼보 차량이, 벤츠라면 동종의 벤츠 차량이 대차되는 식”이라며 “해당 차량이 나가서 없을 경우 같은 배기량의 BMW나 아우디 차량이 지급되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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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