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튤립축제서 분식 바가지 논란? “불법 노점상이 판 것”

관계자 “지난해 6월까지 계약…곧 철거 예정”
진해군항제·춘천막국수 등 매해마다 되풀이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10일부터 내달 7일까지 충남 태안 소재의 꽃지해안공원 내 코리아플라워파크의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태안튤립축제)’장을 찾았다가 음식 바가지를 썼다는 하소연이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태안튤립축제장을 방문했던 것으로 사료되는 한 누리꾼 A씨는 24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태안튤립축제 바가지, 다신 안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밀가루만 95%인 파전 1만5000원, 주먹보다 작은 그릇에 담긴 떡볶이는 6000원(만든지 2박3일 전인 듯)”이라며 “먹을 수가 없어 번데기 5000원어치를 시켰는데 그냥 물에 번데기를 풀어서 준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이어 “언제쯤이면 한 철 장사들이 없어질까? 호객행위 구경하러 한 번쯤은 더 갈 것 같다”며 “연세 많은 부모님들 상대로 이렇게 장사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태안튤립축제장에선 작은 사이즈의 캔맥주도 개당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A씨가 첨부한 사진에는 성인 남성 주먹보다도 작은 사이즈의 종이컵 안에 떢복이가 담겨있다. 종이컵의 면적이나 크기를 감안하더라도 6000원이라는 가격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의 양이다.


보배 회원들은 “안 사먹어야 하는데 사람이 매년 사먹는 게 문제다. 그러니 없어지지 않는 것” “어떤 축제든 가서 먹는 사람들이 호구” “저게 6000원이라고?” “태안튤립눈탱이축제” 등 어이없다는 반응 일색이다.

“문제는 떠돌이 상인들”이라는 한 회원의 지적에 그는 “떠돌이들에게 당하시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사주시니까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다른 회원의 댓글엔 “처음이라서 몰랐다. 죄송하다”고 대댓글을 달았다.

이 같은 일부 회원들의 지적에 회원 ‘호갱끼OOO’는 “놀러간 사람이 무슨 죄냐? 지역축제 지자체서 제대로만 관리해도 없어질 일”이라고 A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회원 ‘가을걷이’는 “가서 꽃구경만 하고 먹거리는 어차피 차로 이동하니 다른 곳에서 먹는 게 정석일 듯”이라며 “축제장 먹거리는 장사꾼들이 전국 돌아다니면서 하는 것 같던데 보통 바가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행사 진행도 쉽지 않겠지만, 지역주민 위주로 장사하게 하고 주최 측이나 지자체서 좀 더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7~8년 전에 해당 축제를 찾았다는 한 회원은 “일단 도로 입구부터 주차장이라 태안 읍내서 들어가는 데만 5시간은 걸렸다. 입구서 매표하려는데 나오시는 분들이 볼 거 없다는 사인을 받고 그 뒤로 두 번 다시 안 간다”며 “지역축제서 먹거리는 먹어본 적도 없다”고 거들었다.

다른 회원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오래된 의미없는 말이 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 축제는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셔야 한다”고 훈수했다.

반면, 정보 제공 차원서 감사하다는 댓글도 눈에 띈다. 회원 ‘이OO’는 “뻔하고 흔한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또 “에이, 형님 주먹이 큰 거 아니냐. 말이 안 된다”며 믿을 수 없다는 댓글도 달렸다.


25일,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A씨는 “지난 23일 오후 1시경에 동행자가 예약했던 축제장을 찾았는데, 서비스는 엉망이었고 (음식점들이)호객행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며 “축제장 바로 앞의 호객행위가 가장 불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일이라 그런지 축제장 및 교통 상황은 혼잡하지 않았으나 튤립축제장은 별다른 메리트는 느끼지 못했고, 관리가 조금 안된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A씨 일행은 파전 1인분, 떡볶이 1인분, 번데기 1인분과 소주 2병 및 맥주 2캔을 주문해 총 4만6000원을 결제했다.

하지만, 태안튤립축제 행사장의 바가지 요금 주장은 사실관계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태안튤립축제 주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해당 음식점은 지난해 6월 말까지가 계약기간으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철거 예정인 불법 노점상”이라고 반박했다.

즉, 태안튤립축제 행사 측과 정식으로 계약돼다거나 관리하는 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축제장 정문에서 불법 운영 중인 노점상까지의 거리는 200여m 떨어져 있고, 축제장은 충남도 토지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행사장 내 입점 업체들은 정식 계약을 하고 불법 노점상들과는 달리 정찰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요시사>는 행사 주최 측으로부터 문제의 떡볶이를 판매했던 해당 음식점 사진과 예금주가 동일하게 표기돼있는 음식점 메뉴판 사진 등을 입수했다. 

해당 축제츨 주관하고 있는 코리아플라워파크는 지난 2012년부터 매해마다 튤립축제를 이어오고 있으며, 2015년과 2017년에 미국 스캐짓밸리, 인도 스리나가르, 터키 이스탄불과 함께 세계 5대 튤립도시로 선정됐던 바 있다.

사실 지역축제나 전통시장의 바가지 음식장사 논란은 더 이상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특정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언론 보도를 통한 지적이 보도되고 있지만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앞서 진해 군항제서 판매됐던 5만원짜리 돼지 바비큐(지난해 3월), 전북 남원춘향제서 4만원짜리 통돼지 바비큐 및 1만8000원짜리 부실한 해물파전(지난해 5월), 춘천막국수닭갈비 축제서 3장에 2만5000원짜리 감자전과 1인분에 1만4000원에 판매됐던 닭갈비(지난해 6월), 영양 전통시장서 판매됐던 한 봉지에 7만원짜리 전통과자(지난해 6월), ‘홍천강꽁꽁축제’의 2만원에 달하는 순대 가격(지난 1월)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엔 진해 군항제 먹거리 시장서 꼬치 어묵 2개가 1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다시 바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메뉴판에는 6개로 적었으나 실제 판매되는 꼬치 어묵은 2개였다.

취재진이 “어묵 꼬치 6개가 아니냐”는 물음에 해당 상인은 “저것(메뉴판)과는 다르다. 꼬치 하나에 길게 끼워진 게 아니라 우리는 비싼 어묵으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당초 군항제 주최 측과는 6개에 1만원에 팔기로 합의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매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각 지자체나 주최 측에선 “철저한 사전교육을 통해 같은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왔지만, 모두 공허한 말뿐이었다.

휴양지나 유명 관광지는 물론, 계절마다 열리는 지역축제장서 음식 가격을 높여 받는 이른바 ‘바가지 요금 상술’은 왜 매년마다 반복되는 걸까?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한 철 장사를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전문 장사꾼들이 많은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 상인들의 욕심”이라면서도 “관공서나 지자체의 부실관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전국의 지역축제를 각 지자체서 주최하지만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주관사를 따로 두고 운영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통 규모가 큰 대형 축제라고 해도 담당 공무원 한 명이 업체들을 다 관리할 수 없는 만큼 문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축제장에 입점 업체로 들어가는 상인들도 불만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지역축제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다는 한 업계 관계자는 “지역축제라는 게 특정 계절에만 열리다 보니 ‘한 철 장사’인 데다가 물가 상승으로 인해 판매가격을 포기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성상 단기간 입점에 따른 고가의 ‘자릿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축제 공간 중 일부를 사전에 돈을 지불하고 확보한 뒤 외부 상인들에게 파는 ‘축제 브로커’들에게 자릿세, 천막 및, 전기요금 등 야시장 운영비용과 중계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브로커는 “인기 축제장의 경우 자릿세만 수백만원서 수천만원까지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행법상 숙박업이나 음식업의 경우, 자율가격제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자정 노력 없이는 계도 조치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지역축제장을 찾았다가 바가지 요금을 당한 후 재방문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데다, 외국인 방문객의 경우는 국가 이미지에 먹칠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