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이 밝힌 인천 지하주차장 차량 화재 진압의 진실

“소방관 아닌 입주민 세 영웅이 불 껐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이날 (인천 지하주차장서 발생했던)불을 끈 건 정확하게는 출동했던 소방관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진실 속 우리 아파트 세 영웅들 모습입니다.”

지난 2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8/31 인천 지하주차장 차량 화재의 또다른 진실: 많이 알려달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이라고 밝힌 글 작성자 A씨는 “저희 아파트 이야기다. 기사는 간단하게 났지만 꼭 알리고 싶은 진실이 하나 더 있어 글을 올린다”며 운을 뗐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7시30분쯤 아파트 주민 단체대화방(단톡방)에 화재를 목격한 주민분의 긴급한 톡이 올라왔다. 단톡방에는 이날 오후 7시34분에 찍힌 “2, 3동 지하주차장에 불났어요. 차 빼세요. 불났어요”라는 다급한 입주민의 메시지가 찍혔다.

다시 한번 “2, 3동 지하주차장에 불났어요”라는 메시지가 전달됐고 단톡방에 있던 입주민들도 “차가 타는 중인 듯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A씨는 단톡방에 공유된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해당 사진엔 지하주차장 구석에 주차돼있는 한 차량의 보닛 부분이 화염을 내뿜으면서 타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올해 침수로 인해 보링을 한번 했던 차량이라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차량서 발화가 시작됐고, 발화 전 차주가 주차 후 한참을 쳐다보다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차주가 사라지자마자 차 아래로 불똥이 떨어졌는데 아마 그 시점부터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차주 말로는 엔진 소리가 이상해서 쳐다보다가 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다행히 초기 대응이 잘돼서 해당 차량 외에는 복구 불가 수준의 피해 차량이나 시설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바로 옆 차량은 새카맣게 그을었고 주변 차량들은 그을음이 묻어 후속조치가 필요한 정도”라고 부연했다.

“지하 2층서 발생한 차량 화재치고는 정말 경미하게 끝난 사고라고 다들 안도하고 있다”는 그는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은 진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이날은 아파트 임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잡혀 있던 날이라 오후 7시 초반쯤 입대의 회의실에 회장 및 동대표 몇 분이 모여 계셨다”며 “오후 7시 반경 회의를 시작하려는데 단톡방 내용을 확인한 참관 입주민분이 지하주차장 2층에 차량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화재 소식을 접한 이날 입대의 참석자들 중 가장 젊은 남성 입주민 셋은 득달같이 지하주차장 2층으로 내려갔다. 이들 모두 어린 자녀를 둔 가장이었지만, 물불 가리지 않고 화재 현장을 찾아간 것이다.


해당 아파트는 28년 가까이 된 구축 아파트로 구조상 환기가 잘되지 않으며 화재 발생 장소도 진출입로로부터 가장 먼 안쪽 구석이었던 터라 유독가스 발생 시 누구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지하주차장 내 촬영된 CCTV에는 소화기를 들고 화재 장소 쪽으로 접근하는 입대의 입주민들의 모습, 이들이 주차장 내 소화기를 찾아낸 후 불타고 있는 차량의 초기 진압 모습이 담겼다.

A씨는 “소식 듣고서 워낙 빨리 저분들이 달려가 불을 끄면서 연기가 자욱할 즈음에 소방서가 도착한 상황이었다”며 “결국 가장 중요한 초기의 빠른 진압은 저 세 분이 다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랬는데도 저 세 분이 불끈 건 나오지도 않고 소방서가 26분 만에 진압했고 30대 남성이 연기를 마셔서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병원에 이송되지 않았다고 가볍게 기사가 떴다”며 “기사 올린 기자님 중 한 분께도 메일은 보내놨는데 부디 상황이 정확하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연기 마신 30대가 바로 사진의 맨 안쪽에 있는 검은 옷 입은 주민이고 불을 껐던 세 분 중 한 분”이라며 “세 분 중 두 분은 주말 동안 호흡에 어려움이 있고 목에 이물감도 있어 병원서 진료받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우리 아파트는 1000세대가 넘는 꽤 큰 단지인데 초기에 잡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주차 후 올라오는 걸 귀찮아해서 부득부득 지상에 겹겹이 주차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내려가지 않는 곳이 바로 지하 2층주차장”이라며 “몸사리지 않고 불을 껐던 세 분의 희생은 일언반구도 없고 소방서가 다한 것처럼 올라오니 매우 당황스럽고 억울하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른 해당 아파트 입주민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서에 해당 내용에 대해 강력하게 알렸으며, 소방서에서도 포상을 준비 중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3일 오후,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A씨는 “세 분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상태고, 두 분은 지난 2일 병원서 검진받고 폐 사진도 찍으셨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아직 기침은 상당히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 초기 진압은 동대표이자 입대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40대 중반 및 동대표 및 감사를 맡고 있다는 30대 중반, 입대의 회의에 참관했던 입주민(선관위원) 남성으로 확인됐다. 한때 아파트 동대표를 맡았었다는 A씨는 “동대표 두분과는 꽤 친분이 있는 편”이라며 “세 분께서 동대표를 맡고 계시기에 포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제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 분에 대한)아직 아파트 선에서 포상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일 진화에 잠시 동참했던 직원분은 (포상을)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해당 글에는 134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1657명의 추천을 받아 ‘커뮤니티 인기글’ 3위에 올라 있다(3일 오후 2시 기준).

회원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에는 “이런 분들이 영웅이다. 추천드리고 간다” “추천드린다” “진정한 영웅이 따로 계셨다” 등이 올랐다.


이 외에도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잘한 일은 칭찬해드려야죠. 천만 다행이다” “사고가 크게 번지지 않도록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좋은 이웃을 두셨다” “동대표들이 든든하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 회원은 “저도 화재 기사 보고서 의아했는데 초기 진화는 세 분이 다 하셨다고 들었다. 청라 화재 때문인가 소방차 엄청 와서 놀랐다”며 “이런 분들이 영웅이다. 고맙다”고 적었다. 다른 회원도 “초기 진화하신 분들도 멋지지만 지체없이 신고와 함께 톡방에 알리신 분도 멋지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카톡…”이라고 추켜세웠다.

화재가 발생했던 차종은 연료가 가솔린이 아닌 디젤이나 가스가 들어가는 내연기관 차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31일, 다수의 매체들은 ‘인천 계양구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차량 화재…1명 연기 흡입’이라는 제목으로 화재 사건을 보도했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인천시 계양구 오류동이 한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에 있던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30대 남성이 연기에 흡입돼 현장서 응급조치를 받았고, 차량 일부가 불에 탔다. 소방당국은 장비 20대와 인력 50여명을 현장에 투입해 20여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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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