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아리셀 공장 화재 참담하게 지켜본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화성 사고, 우연 아닌 필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불과 31초 사이에 4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종자 명단을 보고 ‘살아만 있으라’고 가슴 졸이던 가족은 신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만큼 훼손된 시신과 마주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필연적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담합니다. 참담합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탄식했다. 취재진은 지난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곤제역 인근서 김 대표를 만났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김 대표는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상 가장 큰 참사”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폭발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날 화재로 사망한 23명은 신원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했다. DNA 대조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다.

남성은 6명, 여성은 17명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지난 26일 아리셀 공장과 인력공급 업체인 메이셀, 한신다이아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 자택 등 회사 관계자의 주거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박 대표 등 아리셀 관계자 3명과 인력공급 업체 관계자 2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 전원 출국금지 조치된 상태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사업주를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서 노동자 사망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22년 1월27일 시행됐고 지난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일단 회사 관계자 일부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지만 처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업주 처벌이 이뤄진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업활동 위축 등을 우려한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법에 규정된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 수행’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동시에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외국인 노동자로 확인되면서 ‘불법파견’ 의혹도 불거졌다.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32개 업종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며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업무’는 파견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파견이 금지된 업종이다.

사망자 23명, 18명 외국인 노동자
“죽을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환경”

하지만 이번에 희생된 외국인 노동자가 맡았던 군용 일차전지 검수와 포장 업무는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업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셀 측은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도급 인력으로 이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 것은 인력공급 업체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업체 메이셀 측은 언론 인터뷰서 “우리는 아리셀에 직접 갈 수도 없다”며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받았으면서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 파견을 두고 아리셀과 메이셀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 유족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타국서 사망한 가족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사람’이 들어온다는 생각을 못하고 ‘인력’으로만 여기는 듯하다”며 “일회용품 쓰듯이 노동력만 쏙 빼먹고 부품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이번 아리셀 사고 같은 일은 또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진행 중인 현실,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구조, 특히 경제구조를 ‘착취 공장형 재벌왕국’이라고 명명하면서 10%의 기업이 나라 전체 기업 이익의 90%를 싹쓸이하는 구조가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하자 정부는 인구감소를 명분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데리고 오고 있다”며 “그들을 착취 공장형 재벌왕국의 먹이사슬 끄트머리에 법과 제도로 고정해 놓고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높은 일을 집중적으로 몰아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리셀 사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리튬 배터리 제조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사업장이나 국가는 작업장을 반드시 1층에 놓는다고 한다.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아리셀 사고의 경우 2층 작업장서 불이 시작됐고 이 때문에 인명피해도 컸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산재보상

실제 경고음은 분명히 있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지난 4월17일, 도내 소방서에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제3류 자연발화성 물질 및 금수성 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화재 예방 컨설팅을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5일 화성소방서 남양119안전센터가 아리셀 공장을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당시 남양119안전센터장을 비롯해 4명이 아리셀 공장 안전관리 담당 직원 3명을 대상으로 대피 등 비상대응 방법을 설명하고 3류 위험물의 특성 설명, 위험물 사고 사례 등을 소개했다. 

또 남양119안전센터는 지난 3월28일에도 아리셀 공장의 소방 여건을 조사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이 화성소방서로부터 확보해 공개한 ‘소방 활동 자료조사서’를 보면 ‘연소 확대 요인’ 항목에 ‘사업장 내 11개 동 건물 위치, 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연소 확대 우려 있음’이라고 기재돼있다. 

인명 피해를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조사서에 따르면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 항목에 ‘3동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있음’이라고 돼있다. 이번 화재는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시작됐다. 업체의 안전불감증과 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이번 사고서 외국인 노동자는 파견을 통해 공장에 배치됐다. 그들이 작업장 구조나 대피로에 익숙할 리가 없다”며 “아리셀 공장서 일한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분이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1980년대 10여년 동안 노동자와 부대끼며 선교활동을 해온 김 대표는 7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일단 경기북부 지역서 외국인 노동자 산재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김 대표가 나선다. 대표로 있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비롯해 시민단체가 합심해 사건을 공론화하고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내가 만난 산재 피해자를 보면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며 “기업은 이익 극대화에만 골몰해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투자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있는 안전장치도 빼버리고 일을 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1년에 프레스 기계로 절단된 외국인 노동자의 손가락이 열두 가마니라는 말이 있다”고 씁쓸해했다. 그 정도로 원시적인 산재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산재보상도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높은 산’이다. 실제 아리셀 사건의 경우도 다치고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보상 가능성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경고음
있었지만…


현행법상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미등록(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모든 근로자는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모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언어장벽, 고용불안 등으로 보상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연장은 사업주에 달려 있다.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도 고용주의 사인이 필요하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는 하루라도 더 우리나라에 체류해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입국한다. 이런 상황서 산재 피해를 언급하고 보상까지 받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약하나마 법과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열려 있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사고 현황을 볼 때 ‘산재 은폐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재 은폐율은 산재 사고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않는 비율을 뜻한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80%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배경으로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이 발간한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게재된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 해당 연구서 산재 은폐율은 66.6%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 대표는 “해당 연구는 노동자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서 일한다. 내국인 노동자의 경우도 66.6%보다 산재 은폐율이 높을 텐데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표면상 드러나는 산재 비율을 20%로 봐도 산재 사망자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많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에 따르면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매년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가 135명까지 늘어났는데 이는 정말 최소한의 수치”라며 “돌연사 등으로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돌연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일부는 ‘과로사’로 인한 사망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지 중요한데 윤 정권은…
‘속헹씨 사건’처럼 관심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캄보디아 절에서 일단 화장을 하고 약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김 대표는 “해당 절에서 장례를 집행하는 캄보디아 스님이 있는데 그분이 2022년 집례한 돌연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장례만 20건이 넘었다. 그해 우리나라에 일하던 캄보디아인 노동자는 2만5000명 정도다. 그중 2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인을 알지 못한 채 사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고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도 적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들 중 일부가 과로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나 통계는 없다.

김 대표는 변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하면서도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입국시킬 수 있는 근거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그 내용을 좋지 않은 쪽으로 개악하는 등 윤정권의 노동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고용허가제를 ‘개악’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는 먼저 사업장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사업장 이동의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또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유와 이력에 대한 정보를 고용노동부가 수집해 사업주에게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거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개악안이라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데리고 오면서 법과 제도는 그들을 더 옥죄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밝은 전망을 할 수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서 사업주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상황서 정부가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며 “윤정권의 경우는 지나치게 사업주 쪽으로 치우쳐 있다. 중대재해법을 확대하는 일에 정부가 소극적인 것도, 고용허가제를 개악한 것도 전부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국가의 시선을 드러내는 단면”이라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한 줄기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노력, 국민의 관심, 언론과의 연대 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 주거권 운동으로 발전한 ‘속헹씨 사건’을 언급했다. 2020년 12월 포천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서 잠을 자다가 동사한 사건이다. 

김 대표의 추적으로 속헹씨 사건이 처음 세상에 드러났고 시민단체 등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산재로 인정받았다. 속헹씨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지자체 차원의 조사가 이뤄졌고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를 짓는 등 산재 사망사고가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깨어있는 시민
마중물 역할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개선 운동을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법과 제도가 그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있다. 그러니 깨어 있는 시민과 단체, 언론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속헹씨 사건이 있기 전에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권 운동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이 속헹씨 사건에 응집되면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런 불씨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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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