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아리셀 공장 화재 참담하게 지켜본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화성 사고, 우연 아닌 필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불과 31초 사이에 4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종자 명단을 보고 ‘살아만 있으라’고 가슴 졸이던 가족은 신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만큼 훼손된 시신과 마주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필연적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담합니다. 참담합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탄식했다. 취재진은 지난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곤제역 인근서 김 대표를 만났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김 대표는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상 가장 큰 참사”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폭발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날 화재로 사망한 23명은 신원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했다. DNA 대조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다.

남성은 6명, 여성은 17명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지난 26일 아리셀 공장과 인력공급 업체인 메이셀, 한신다이아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 자택 등 회사 관계자의 주거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박 대표 등 아리셀 관계자 3명과 인력공급 업체 관계자 2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 전원 출국금지 조치된 상태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사업주를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다. 중대재해법은 기업서 노동자 사망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22년 1월27일 시행됐고 지난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일단 회사 관계자 일부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지만 처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업주 처벌이 이뤄진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업활동 위축 등을 우려한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법에 규정된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 수행’ 의무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동시에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외국인 노동자로 확인되면서 ‘불법파견’ 의혹도 불거졌다. 파견법은 원칙적으로 32개 업종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며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업무’는 파견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파견이 금지된 업종이다.

사망자 23명, 18명 외국인 노동자
“죽을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환경”

하지만 이번에 희생된 외국인 노동자가 맡았던 군용 일차전지 검수와 포장 업무는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업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셀 측은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도급 인력으로 이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린 것은 인력공급 업체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업체 메이셀 측은 언론 인터뷰서 “우리는 아리셀에 직접 갈 수도 없다”며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받았으면서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 파견을 두고 아리셀과 메이셀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 유족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타국서 사망한 가족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사람’이 들어온다는 생각을 못하고 ‘인력’으로만 여기는 듯하다”며 “일회용품 쓰듯이 노동력만 쏙 빼먹고 부품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이번 아리셀 사고 같은 일은 또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진행 중인 현실,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구조, 특히 경제구조를 ‘착취 공장형 재벌왕국’이라고 명명하면서 10%의 기업이 나라 전체 기업 이익의 90%를 싹쓸이하는 구조가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하자 정부는 인구감소를 명분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데리고 오고 있다”며 “그들을 착취 공장형 재벌왕국의 먹이사슬 끄트머리에 법과 제도로 고정해 놓고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높은 일을 집중적으로 몰아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리셀 사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리튬 배터리 제조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사업장이나 국가는 작업장을 반드시 1층에 놓는다고 한다.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번 아리셀 사고의 경우 2층 작업장서 불이 시작됐고 이 때문에 인명피해도 컸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산재보상

실제 경고음은 분명히 있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지난 4월17일, 도내 소방서에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제3류 자연발화성 물질 및 금수성 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화재 예방 컨설팅을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5일 화성소방서 남양119안전센터가 아리셀 공장을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당시 남양119안전센터장을 비롯해 4명이 아리셀 공장 안전관리 담당 직원 3명을 대상으로 대피 등 비상대응 방법을 설명하고 3류 위험물의 특성 설명, 위험물 사고 사례 등을 소개했다. 

또 남양119안전센터는 지난 3월28일에도 아리셀 공장의 소방 여건을 조사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이 화성소방서로부터 확보해 공개한 ‘소방 활동 자료조사서’를 보면 ‘연소 확대 요인’ 항목에 ‘사업장 내 11개 동 건물 위치, 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연소 확대 우려 있음’이라고 기재돼있다. 

인명 피해를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조사서에 따르면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 항목에 ‘3동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있음’이라고 돼있다. 이번 화재는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시작됐다. 업체의 안전불감증과 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이번 사고서 외국인 노동자는 파견을 통해 공장에 배치됐다. 그들이 작업장 구조나 대피로에 익숙할 리가 없다”며 “아리셀 공장서 일한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분이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1980년대 10여년 동안 노동자와 부대끼며 선교활동을 해온 김 대표는 7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일단 경기북부 지역서 외국인 노동자 산재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김 대표가 나선다. 대표로 있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비롯해 시민단체가 합심해 사건을 공론화하고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내가 만난 산재 피해자를 보면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며 “기업은 이익 극대화에만 골몰해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투자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있는 안전장치도 빼버리고 일을 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1년에 프레스 기계로 절단된 외국인 노동자의 손가락이 열두 가마니라는 말이 있다”고 씁쓸해했다. 그 정도로 원시적인 산재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산재보상도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높은 산’이다. 실제 아리셀 사건의 경우도 다치고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보상 가능성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경고음
있었지만…


현행법상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미등록(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모든 근로자는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모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언어장벽, 고용불안 등으로 보상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연장은 사업주에 달려 있다.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도 고용주의 사인이 필요하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는 하루라도 더 우리나라에 체류해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입국한다. 이런 상황서 산재 피해를 언급하고 보상까지 받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약하나마 법과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열려 있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사고 현황을 볼 때 ‘산재 은폐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재 은폐율은 산재 사고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않는 비율을 뜻한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80%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배경으로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이 발간한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게재된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 해당 연구서 산재 은폐율은 66.6%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 대표는 “해당 연구는 노동자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서 일한다. 내국인 노동자의 경우도 66.6%보다 산재 은폐율이 높을 텐데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표면상 드러나는 산재 비율을 20%로 봐도 산재 사망자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많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에 따르면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매년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가 135명까지 늘어났는데 이는 정말 최소한의 수치”라며 “돌연사 등으로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돌연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일부는 ‘과로사’로 인한 사망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지 중요한데 윤 정권은…
‘속헹씨 사건’처럼 관심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캄보디아 절에서 일단 화장을 하고 약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김 대표는 “해당 절에서 장례를 집행하는 캄보디아 스님이 있는데 그분이 2022년 집례한 돌연사한 외국인 노동자의 장례만 20건이 넘었다. 그해 우리나라에 일하던 캄보디아인 노동자는 2만5000명 정도다. 그중 2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인을 알지 못한 채 사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고 사망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도 적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들 중 일부가 과로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나 통계는 없다.

김 대표는 변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하면서도 윤석열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입국시킬 수 있는 근거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그 내용을 좋지 않은 쪽으로 개악하는 등 윤정권의 노동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고용허가제를 ‘개악’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는 먼저 사업장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사업장 이동의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또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유와 이력에 대한 정보를 고용노동부가 수집해 사업주에게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거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개악안이라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데리고 오면서 법과 제도는 그들을 더 옥죄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밝은 전망을 할 수 없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서 사업주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상황서 정부가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며 “윤정권의 경우는 지나치게 사업주 쪽으로 치우쳐 있다. 중대재해법을 확대하는 일에 정부가 소극적인 것도, 고용허가제를 개악한 것도 전부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국가의 시선을 드러내는 단면”이라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한 줄기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노력, 국민의 관심, 언론과의 연대 등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 주거권 운동으로 발전한 ‘속헹씨 사건’을 언급했다. 2020년 12월 포천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서 잠을 자다가 동사한 사건이다. 

김 대표의 추적으로 속헹씨 사건이 처음 세상에 드러났고 시민단체 등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산재로 인정받았다. 속헹씨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지자체 차원의 조사가 이뤄졌고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를 짓는 등 산재 사망사고가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깨어있는 시민
마중물 역할

김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개선 운동을 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법과 제도가 그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있다. 그러니 깨어 있는 시민과 단체, 언론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속헹씨 사건이 있기 전에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권 운동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이 속헹씨 사건에 응집되면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런 불씨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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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