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구린’ 파타야 살인사건 전모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20 13:21:00
  • 호수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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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이고 협박 “정말 나쁜 놈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인 관광객이 살해된 이른바 ‘파타야 살인사건’과 관련해 현지 교민들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앞서 유가족은 지난 7일에 실종 신고했지만, 끝내 파타야의 한 저수지서 드럼통 안에 담긴 노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시신은 사망한 지 3~4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달 30일, 관광차 태국에 입국한 노씨의 행방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묘연해졌다. 노씨는 지난 3일(현지시각) 오전 2시경 방콕에 위치한 클럽 ‘루트66’ 앞에서 2명의 한국인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파타야로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납치라고 보기에 어려운 행동이었다. 

수면제 투약 후···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범행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앞서 용의자들은 이날 오후 방콕의 유흥지 RCA의 한 술집에 노씨를 불러 약을 먹인 것으로 추정된다. 의식이 흐려진 노씨를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옮겼는데 이 과정서 노씨가 정신을 차리면서 몸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일행은 노씨의 재산을 노리고 수면제를 먹여 납치했다. 경찰은 이후 노씨가 일행 A씨, B씨, C씨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숨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이 지난 7일, 노씨의 모친에게 “당신 아들이 마약을 버려 손해를 입혔으니 300만밧(태국 화폐 단위·약 1억1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아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마약, 불법 도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죄 동기를 수사 중이다.


일각에선 용의자들이 유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 전인 지난 3일과 4일 사이 노씨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3일 용의자들은 파타야 수쿰윗 지역에 콘도서 짐을 챙겼고 이때 용의자 A씨는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다. 남은 2명은 시신을 담을 드럼통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경찰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4일 용의자들은 클럽서 노씨와 탔던 렌터카를 버리고 다른 픽업트럭으로 갈아타는 모습도 포착됐다. 새 차량의 트렁크에는 노씨의 시신이 발견된 검은색 플라스틱 드럼통이 실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해당 트럭은 시신이 발견된 저수지 인근 한 숙박시설로 향했다. 

이어 용의자들은 지난 7일 유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냈고, 이를 받은 유가족은 주태국 대한민국대사관에 곧바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담한 용의자들은 8일 노씨의 계좌서 두 차례에 걸쳐 170만원과 200만원을 이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경찰은 용의자들이 노씨의 돈을 뺏을 목적으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강요하다가 집단폭행이 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저수지서 드럼통 속 시신 발견
사인은 폭력으로 인한 호흡부전

이들은 지난 9일 오후 9시께 짐칸에 검은 물체를 싣고 숙박업소를 빠져나갔고, 저수지 근처에 약 1시간 주차했다가 숙박업소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태국 경찰은 지난 11일 파타야의 마프라찬 호수에 잠수부를 투입해 시멘트가 가득 찬 200L짜리 드럼통을 건져 올렸고, 그 안에서 노씨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노씨의 시신은 크게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3일(현지시각) 태국 공영방송 TPBS는 노씨의 시신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TPBS는 “피해자의 손가락이 어떻게 잘렸는지는 법의학적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며 “만약 사망 전에 손가락이 절단됐다면 고문의 일환, 사망 후라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태국 경찰은 노씨 시신 훼손은 증거인멸을 위해 자행된 것으로 봤다. 태국 경찰은 “차 안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피해자 손가락에 피의자들의 DNA 등이 묻은 것을 감추면서 시신 신원 확인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씨의 시신을 1차 부검한 결과 양쪽 갈비뼈 등에서 골절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먼저 붙잡힌 A씨로부터 “주먹과 무릎으로 상복부 등을 때렸다”는 진술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노씨의 사인은 폭력으로 인한 호흡부전이라는 게 태국 경찰의 주장이다.

시신을 발견한 태국 클롱탄 경찰은 지난 14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방콕 형사법원에 제출했다. 이어 용의자 3명에 대해 살인과 불법 구금, 시신 은닉 등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방콕 남부형사법원은 한국인 용의자들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증거가 있다고 봤다.

특히, 현지 언론은 용의자들의 여권 사진과 현지 가게서 드럼통을 구입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캄보디아 경찰에 붙잡혀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모자이크 없이 내보냈다. 국내에선 아직 이들에 대한 신상 정보공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태국 현지 언론은 이날 한국 경찰이 용의자 3명 중 2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보도하며,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범행 과정서 먼저 귀국한 A씨는 지난 12일 한국의 전북 정읍 자택서, B씨는 14일 캄보디아서 체포됐으며 C씨는 태국서 미얀마로 도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먼저 붙잡힌 A씨는 지난 15일 구속됐다. 창원지법 형사4단독 김성진 부장판사는 이날 살인 방조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A씨가 도주 우려 및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일당 2명과 노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범행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체포된 2명이 지목한 주범
바로 미얀마 도주 후 잠적

경남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당초 A씨에게 살인·사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A씨가 지난 9일 태국서 입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소재를 추적해 붙잡았다. 하지만 A씨가 “아무것도 몰랐고 내가 죽인 게 아니다”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범행에 직접 가담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자 경찰은 살인 방조로 혐의를 변경했다.

이어 경찰은 A씨의 공범 2명을 쫓던 중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숙소서 20대 피의자 B씨를 추가로 붙잡았다. 한국 경찰은 B씨의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공범 C씨는 태국 주변국과 미얀마 등으로 밀입국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C씨를 추적 중이다.

일각에선 추적 중인 C씨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태국 교민들 사이에선 C씨가 범죄 조직 또는 청부 살해업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C씨는 한국서 차량을 털고 현금을 훔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으며, 폭력 사건으로 처벌받은 전과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체포된 2명은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C씨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 용의자들은 불법 도박 관련 전과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지난 3월부터 태국에 장기간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불법 도박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발생한 돈 문제가 사건 범행 동기인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미얀마로 도주했다고 추정되는 C씨를 잡아야 범행의 동기, 목적, 배경, 구체적인 경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알고 지낸 사이

한편, 지난 16일 수사당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현재 C씨가 미얀마로 도주했다는 것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 C씨를 체포하기 어렵게 하려는 조력자들의 허위 제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인이 생전 마약, 불법안마시술소에 연루됐다는 등의 억측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가족의 신고로 지난 7일부터 대응하면서 용의자 3명 중 2명을 신속하게 체포할 수 있었고, 태국 경찰의 수사권을 보장하는 차원서 시신이 발견된 지난 11일부터 본격적인 공조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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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