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도촬에 조롱까지 당했는데…” 20대 여대생의 한숨

현장 출동 경찰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최근 지하철서 도촬에 조롱까지 당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여대생의 하소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글 작성자 A씨는 7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지하철서 도촬당하고 조롱당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자신을 20대 중반의 대학생이라고 밝힌 여성 A씨는 “너무 억울해서 글을 쓴다. 투잡 중이라 과제할 시간이 많지 않고, 오늘은 학교 행사가 늦게 끝나 집에서 밤샘 과제를 할 생각으로 지하철서 자료를 읽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하철 좌석에 앉아 아이패드로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 중 여성 B씨가 옆자리의 승객이 하차하면서 앉았다”며 “앉자마자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앞에 서 있는 남성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며 웃었다”고 주장했다.

몰카(불법 촬영)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에 A씨는 B씨에게 다가가 ‘촬영했느냐?’고 묻자 ‘친구와 카톡했다’며 발뺌을 했다. A씨는 추궁 과정서 B씨 휴대폰의 사용 앱 목록 중 SNS 업로드용 카메라를 발견했고 도촬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에 따르면, 휴대폰에 촬영된 동영상에는 A씨의 옆모습이 담겼으며 인스타그램 스토리 카메라의 우스꽝스러운 필터가 적용돼있었다. 그는 즉시 커플에게 하차를 요구하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촬영물 삭제가 염려됐던 A씨가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B씨의 휴대폰을 소지하려 하자 이들은 “핸드폰을 주지 않으면 점유물이탈죄로 신고하겠다”고 오히려 A씨를 신고했다고 한다.


A씨는 “이들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이패드를 촬영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왜 아이패드를 촬영했냐고 물으니 ‘장난으로 촬영했다’ ‘조롱하려고 촬영했다’고 했다”며 “제가 녹음기를 켜고 다시 한번 말하라고 했더니 이번엔 ‘조롱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 피곤하니 일을 키우지 마라’ ‘경찰서 가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기서 그만하자’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A씨는 절대로 봐줄 생각이 없었고 경찰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현장 도착한 4~6명의 경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촬영된 동영상까지 보여줬지만 A씨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촬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영상을 지우고, 그들이 나눴던 ‘저 헤드셋 낀 X, 왜 안 일어나냐’ ‘개X끼’ ‘저 X끼 소설 본다 ㅋㅋㅋ’ ‘이렇게 촬영해도 되냐’ ‘괜찮다, 어차피 저 X은 모른다’ 등 모욕적인 말로 조롱하는 카톡 내용을 확인했다”고 억울해했다.

이어 “남성은 카톡 내용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오히려 ‘우리끼리 한 얘기니 네가 알바 아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경찰이 옆에 있는데도 낄낄거리며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며 “여성은 계속 ‘죄송한데~’ 라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상황을 끝낼 생각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사처벌은 어려우니 민사소송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제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부모님도 X 밟았다고 생각하고 저보고 참으라고 했다”며 “그저 지하철 타고 가면서 조용히 과제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도촬당하고 온갖 모욕까지 듣고도 정신적 피해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저”라고 억울해했다.

아울러 “도대체 왜 피해자가 참아야 하고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걸까요? 정말 너무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에는 “성적 수치심은 내가 느끼는 거지, 경찰이 판단하는 게 아니잖아요? 발가락만 찍혀 있어도 성적 수치심 느낀다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일 없이 묻히면)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날지…법적으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정식으로 고소하면 경찰도 어쩔 수 없이 수사 진행해야 한다. 죄가 없다면 그냥 끝날 것이고 있다면 처벌받을 것” 등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특정성, 공연성이 성립되는 상황서 욕설했으니 충분히 모욕죄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 가능할 것 같다. 당시 카톡방서 글쓴이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 및 사진이 올라간 이후 그런 대화가 나왔다면 더더욱 가능하다”는 댓글이 베스트 1위에 올랐다.

해당 조언에 대해 A씨는 “영상은 업로드 전에 발견해서 업로드 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 자리서 서로 사과하고 끝내라고 했다”면서도 “왜 제가 사과해야 되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카톡 내용까지 확인한 경찰에게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민사소송하면 유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지난 9일,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A씨는 “이번 도촬 사건으로 심한 충격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전히 그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사건 발생 다음 날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내내 울기만 했다”고 호소했다.

어이없는 부분은 상대방도 A씨에 대해 점유이탈물횡령죄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날 A씨는 평범하게 긴팔 상의에 바지 차림이었다고 했다.

A씨가 억울한 부분은 또 있다. 상대방이 조롱하고 욕했던 대화 내용을 촬영하려고 했으나 출동했던 경찰이 제지하는 바람에 촬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경찰은 증거를 수집하려는 저를 막았고 그 때문에 아무런 증거도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촬 영상을 확인한 뒤 제 핸드폰으로 저를 촬영한 영상을 녹화했는데, 경찰은 사건을 대충 마무리 지으려고 가해자 여성에게 ‘영상을 삭제하고 서로 사과하고 끝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촬당하고 온갖 조롱과 험담을 당했는데 이보다 가해자를 감싸주는 경찰 태도에 더 큰 상처를 받아 나라에 버림받은 기분”이라며 “대한민국 사람을 도촬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모든 일은 피해자가 다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원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B씨가 켜져 있던 인스타그램 앱을 종료시키면서 촬영된 동영상은 바로 삭제됐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카메라는 저장이나 업로드를 하지 않을 경우는 저장되지 않고 자동으로 삭제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재경 소재 변호사는 “과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법)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했을 경우’에만 처벌됐으나 지난 2018년 12월18일 개정된 현행법에 따르면 촬영 대상에 ’사람의 신체‘로만 돼있어 본인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면 죄가 성립된다”고 제언했다.

다른 변호사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이라는 부분은 유발 정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관의 해석에 맡겨져 왔던 게 사실”이라며 “판례상 판단 기준을 ‘피해자’가 아닌 객관적 시선에 따라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기준도 일관성이 없다 보니 재판 결과가 들쭉날쭉하게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폭법 제14조1항에 따르면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2항에는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 또는,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대상자 의사에 반해 반포 등을 한 자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즉, 유무죄의 기준은 촬영 시 당사자의 허락 여부이며, 반포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부분은 불법 촬영죄는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가 성립하지 않아 도촬 피해자나 제3자가 고발하거나 현행범 체포로 입건된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의사와 관계없이 형사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본인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했을 경우 ‘초상권 침해’ 위반의 소지도 존재한다. 통상 초상권이란 타인에 의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한 얼굴 부분이 동의 없이 촬영되거나 공표되는 등 알려지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법적으로 타인의 촬영에 찍히는 것은 물론, 유포까지도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SNS의 발달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흔해졌고 개인방송이 늘어나는 만큼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포함하므로 모자이크 처리가 됐더라도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할 경우 초상권 침해에 해당된다. 또 공익적인 목적이나 보도 활동을 위한 예외적인 경우 외엔 타인을 함부로 촬영해선 안 된다.

위반 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A씨는 “성폭법이나 명예훼손 성립이 가능하다면 고소를 고려하겠으나, 그 시간 동안 제가 겪는 정신적 고통과 비용을 쏟아부으며 그들을 개과천선하게 하고 싶지 않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고소 과정서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며 법적 대응은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