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만나다> 더 배우는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

“내가 반도체에 빠진 이유는…”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미국으로 떠났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인 박 전 장관은 17~2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문재인정부 시절 제2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반도체 주권국가>라는 책을 펴냈다. 반도체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그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어젠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제3지대가 생겨난 건 당연한 현상이에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장관이 짚은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제3의 선택지가 간절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이 같은 대한민국 정치를 일으키는 데 기여하길 희망한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나 윤정부를 향해 미래 먹거리 사업에 관한 조언을 아낌없이 건넸다. 다음은 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2021년 미국으로 간 뒤 오랜만에 소식을 접한다.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한데?

▲하버드 케네디스쿨서 선임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반도체의 무기화와 패권 국가의 전략’이라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서강대학교 특강과 출판, 그리고 남편의 전시회가 있어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많은 국민이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국민의 삶과 반도체는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

▲핸드폰, 냉장고, 자동차 모든 곳에 반도체가 들어간다. 21세기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제는 반도체의 중심에 서는 게 21세기 패권 국가의 조건 중 하나로 제시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현실을 냉정하게 짚는다면?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있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세계 최고의 강자다. 그런데 중국이 한국을 거의 따라잡으면서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우리는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향해야 한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예시로 들어보자. HBM은 메모리 반도체를 빌딩처럼 쌓아서 구멍을 뚫고 그 사이로 정보가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내리는 형태다. 메모리 반도체 하나에서 돌던 계산능력이 전체로 돌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HBM은 챗GPT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싸서 경제성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챗GPT가 활성화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이에 어울리는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반도체도 대전환기를 맞은 만큼 빠르게 발맞춰야 한다.

-‘국가반도체 위원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위원회가 꾸려진다면 함께할 의향이 있는지?

▲그런 뜻은 아니었다. 반도체 성장은 정부 혼자서 계획을 세운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정부 부처가 협동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등을 비롯해 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모여야 한다. 학계 학자도 필요하다. 반도체는 다 같이 모여서 논의를 해나가는 ‘팀 스포츠’ 성격을 띠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미래 10년 반도체가 좌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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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원팀’을 꾸리지 못하는지? 한계점이 있다면?

▲정부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다. 또 삼성 이건희 회장과 같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인사이트도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그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정부에도 없고 기업에도 없다. 학자들은 자기 연구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민주주의’ ‘디지털 시대 리더십’도 자주 언급하신다. 어떤 의미인지?

▲수직적 리더십서 수평적 리더십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과 유연성이다.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유연성을 어떻게 발휘하는지가 상품의 경쟁력이면서 국가의 경쟁력이다. 지금 정치권을 떠올려보면 반대 양상을 띤다.

MZ세대부터 586세대까지 스펙트럼이 넓은데 정치의 양극화만 극대화되고 있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으면 디지털 시대는 성공하기 힘들다. 이게 반복되면 낙후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정치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햄프셔 예비선거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승리했다. 살기 힘들어지니까 불만을 가진 계층과 집단이 과격한 발언을 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표를 준다. 팬덤이 형성되니까 그 속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제3지대의 출현도 정치 양극화의 영향을 받은 건가?

▲그렇다. 정치권 스스로 가져온 일이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 제3지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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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제3지대가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두 번째 자기 의견만 고집하지 않는 태도다. 결국 앞서 말한 다양성과 유연성이 보장돼야 한다. 세 번째는 타이밍이다. 적어도 설 전까지는 어떤 윤곽이 나와야 한다.


국민은 새로운 선택지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얘네도 안 되나 봐”라는 생각을 하고 표심이 꺾이게 된다. 정점서 변신하지 않으면 쇠락한다. 폭넓게 본다면 대통령도 당선된 순간이 정점이다. 거기서 변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윤석열정부의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소중한 1년을 허비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윤 대통령은 빚진 곳이 없는 분이다. 그래서 통합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당선 후 국민통합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는데 보수의 집결에만 신경을 쓰는 듯한 모양새다. 이 점이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좀 그런 양상을 띠고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이번 4·10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 있는지?

▲미국으로 돌아가서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시기상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해 불출마를 각오하면서까지 목소리 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래 어젠다 세팅’이 없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도대체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잘 모르겠다. 미래를 설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서 바라본 한국은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다. 추락하는 속도를 늦추거나 다시 일으키는 데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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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