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협박 전화’ 돌리는 노량진 재개발 현장, 왜?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4.10 14:40:09
  • 호수 1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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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도 아니고···설치는 알박기 세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량진 본동 재개발사업이 철거 반대 시위와 협박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개발사업 구역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A씨는 평소 ‘재개발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상가와 주택 대부분은 철거됐지만, 알박기 조직에 의해 폐허로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A씨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A씨에게 “그 동네서 설치고 다니지 말라”는 등 경고와 협박을 한 뒤 끊었다고 한다. 앞서 A씨는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대화에서 “개발한다고 주민들 내보냈으니 장사도 안 되고 죽겠다. 빨리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A씨가 손님들 앞에서 재개발사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직후 협박 전화를 받은 것이다.

시달리는
원주민들

노량진 본동 개발 현장이 슬럼화로 고통받는 이유는 개발 시행사와 과거 지역주택조합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지역주택사업으로 시작한 노량진 본동은 PF 대출금 2700억원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이후 일반 개발 사업지로 변경되면서 각각 2~3억원가량의 지주택 분담금(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조합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당 9억원의 보상을 요구했다. 시행사와의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합원들은 ‘재산보호연대(이하 재보연)’라는 단체를 조성했다.

재보연은 사업지 내 빌라 3곳에 매매 예약 가등기를 설정한 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재보연이 가등기 말소 조건으로 시행사인 ‘로쿠스’ 측에 요구한 합의금은 총 1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시행사와의 합의를 거부한 일부 지주택 조합원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합의금과 시행 권한을 되찾기 위해 재보연을 결성한 것이다.


로쿠스 측은 개발 현장에 살던 원주민들과 합의를 받아들인 지주택 투자자들에게 각각 수억원에 달하는 보상을 마친 상태다. 개발 현장 내에 연립주택을 소유했던 김모씨의 경우, 지난 2023년 11월28일 시행사와 매매 합의를 마쳐 지난해 3월 시행사에 건물 관리를 맡겼다.

누나가 사망하면서 주택을 상속받은 김씨는 상속세 등에 따른 부담을 느꼈고, 다주택 중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철거 계약을 진행했다. 철거업체는 주관부서인 동작구청 도시정비2과에 해체계획서를 접수하러 갔다. 

정비과에서는 ‘해당 건물이 옹벽 위에 있는 건물로 심의를 거쳐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철거업체는 구조 기술사 및 건축사를 대동해 옹벽의 안정성에 관한 구조 계산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구조 기술사, 건축사가 김씨의 건물에 방문하자 재보연 회원들이 출입을 막아섰다. 재보연 회원 55명이 가등기를 설정한 ‘에이스빌라’가 김씨의 건물과 붙어 있어 철거 과정에서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재보연 회원들의 방해로 철거해야 할 김씨의 건물은 옹벽 안정성에 대한 점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동작구청은 “전문가들의 옹벽 안전 점검을 위한 절차 진행은 건축주(김씨)와 에이스빌라 점유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라고 안내했다. 이에 김씨는 재보연 측과 협의를 위해 연락했지만, 이들은 소통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스빌라의 8세대 중 7세대는 시행사의 소유물로 이미 폐가 처리된 가운데, 502호 한 채에 재보연 회원들이 가등기를 설정해놓고 김씨 주택의 철거마저 방해하는 상황이다.

1000억원 토해내라는 ‘페라리’ 주인
슬럼 가속화 온상
조폭이 따로 없어

김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내 건물을 내가 철거하겠다고 하는데, 관련 없는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라며 “살지도 못하는 집에 세금만 내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세금을 대신 내줄 것도 아닌 재보연은 협의조차 거부하면서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경찰은 노량진 본동 주택개발 현장에 ‘떼거리 알박기’로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재보연 회장이자 부동산 업자인 김모씨 등을 압수수색했다. 시행사와 합의를 거부한 재보연은 행동강령을 만들고 회원들에게 총 50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걷었다. 문제는 ‘회비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회원을 탈퇴시켰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김 회장이 재보연 회비로 아들의 페라리, 포르셰 등 고급 외제차를 구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재보연이 가등기한 에이스빌라 주차장에는 김 회장 측의 페라리와 포르쉐가 세워져 있었다. 지난해 김 회장은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대우건설 때문에 재산을 다 잃게 생겼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등기 설정은 미래에 구입할 예정일 때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걸어두는 계약이다. 다만, 재개발사업 등을 방해할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가등기를 풀지 못한 건물은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량진 본동 주택개발 사업은 재보연 관계자 등 약 70명의 가등기권자들로 인해 정체된 상태다.

도심 속 흉물이 된 현장은 우범지대로 전락해 안전 요원이 투입되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가등기 빌라
고급 외제차

재보연 회원 중에는 대통령실 경호본부 관계자 B씨도 있었다. B씨는 사업 구역 내 위치한 ‘영본빌라 202호’ 등기에 ‘가등기권자’로 확인됐다. 공직자 신분으로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B씨는 지난 2010년 지주택 사업이 한창일 때 총 2억7600만원의 분담금을 입금하고 지주택 조합원 자격을 취했다.

당시만 해도 노량진 본동 아파트를 5억원 정도에 분양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B씨가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주택자만 해당되는 지주택 조합원의 자격을 잃었다고 한다. 지주택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60㎡ 이하의 유주택자들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한 뒤 집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다.

B씨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오피스텔 소유로 인해 조합에서 제명됐기에 시행사 합의 대상서 제외됐고, 분담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는데, 이자까지는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나. 변호사가 조언하길 영본빌라 202호에 가등기를 설정하고 버티면 시행사에서 협상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B씨는 가등기를 설정하기 위해 재보연 측에 4000만원을 입금했다. 4000만원을 입금해 지분을 확보한 이유에 대해 B씨는 “(영본빌라 202호 공유지분)매매 금액이 대략 1700만원인데 그냥 2000만원으로 하는 것보다는 4000만원으로 올려놓는 게 좋지 않겠나”라며 “어차피 2000만원 받으려고 제한 행위를 한 건 아니다”라고 당연하다는 듯 언급했다.

이처럼 B씨는 가등기 설정 이유에 대해 개발사업의 주체를 방해하고 합의금을 더 받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 영본빌라 202호의 감정평가액은 약 5억7000만원이기에 공유자 30여명을 기준으로 나누면 공유지분 금액은 1인당 1700만~2000만원으로 계산된다.

17평도 안 되는 빌라 한 채에 공유자는 33명, 가등기권자가 11명이다. 김씨의 주택과 맞닿는 에이스빌라 역시 재보연 소속 55명의 ‘떼거리 가등기’가 설정돼있다. 가등기 목적이 단순 구입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실제로 A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가등기는 시행사와 협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재보연은 개발사업에서 이권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먼저 시행사의 미매입 부지 중 빌라 2채를 매입했다. 빌라 2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조합장이 매도인과 협의를 본 금액보다 높게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행사로부터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해 시세를 조종한 것이다.

나 몰라
배 째라

지주택으로 출발한 노량진 본동 개발 사업지는 지난 2007년 441번지 일대에 368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토지 매입비 목적으로 총 1400억원을 모아 조합을 결성했다. 이후 사업 진행 과정서 약 800여세대로 확대됐다.

당시 시공사로 선정된 대우건설의 보증으로 금융권의 자금을 빌려 사업을 진행했다. 이듬해인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2010년 서울시 건축 심의를 통과했으나, 서울시와 동작구가 재개발사업 기준을 강화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그러면서 현 시행사로 소유권이전 등기되는 동시에 하나자산신탁으로 신탁등기(공매 대금 2100억원, 신탁등기비 100억원)가 이뤄져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매로 나온 부지의 사업주체가 바뀐 것이다.

부지 공매와 내분 사태를 겪은 지주택은 대외적으로 로쿠스와 대우건설 및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기(2017년 동작구청 중재로 시행사와 합의까지 약 670여회)했다. 내적으로는 공매 직전 공증서류를 통해 채권자 지위를 확보한 일부 조합원 및 투자자 158명 등에게 “서로 힘을 합해 시행사와 시공사에 맞서 싸우자”고 3차례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 중 36명을 제외한 122명은 끝내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를 고수해 조합원 자격서 제명당하고 말았다. 현재는 최종 388명이 유효한 조합원이고, 김 회장 등을 포함한 122명은 이미 파탄 난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에 있을 뿐 시행, 시공사에 대한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 조합 측은 대우건설이 사업 승인과 착공에서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우건설은 지급보증으로 빚을 대신 갚았기에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남의 집 철거도 반대 ‘재보연’ 실체
연락 차단한 유령 조합원 ‘으름장’

대우건설 측은 언론과 인터뷰서 “PF 대출을 갚지 못해 대위변제로 2700억원의 빚을 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은 “토지 소유권을 얻는다고 해도 6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주택 전 조합장 최모씨는 조합 분담금 가운데 100억원 이상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10월1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전 조합장 최씨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서울 영등포구 소재 재단법인 사무실과 지방 거주지 등 2~3곳을 압수수색 했다.

이 과정서 검찰은 최씨가 수백억원을 횡령한 단서를 잡았다. 지난 2013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용현)는 최씨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10억원, 추징금 10억15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만기 출소한 최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은 없지만, 10년이 지났음에도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현장을 보고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최씨는 “당시 토지 매입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고, 내가 횡령한 조합비로 인해 사업이 무산될 현장은 아니었다”며 “재산보호연대가 시행 권한을 갖기 위해 악의적으로 가등기를 설정하고 사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수십년째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사업지의 땅을 사서 되파는 등 방식으로 수십억원대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에 관해 “재보연 소속 회원들이 과거 조합원일 때 동참한 행위를 조합장인 내가 짊어지게 된 것”이라며 “내가 구속됐다고 사업이 재개된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인 문제는 재보연에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재보연은 대우건설의 합의를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0년 대우건설과 합의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들은 1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요구하고 “대우건설은 공매가만 돌려받고 빠져야 한다”며 거절했다. 이보다 앞선 2016년 동작구청의 중재 협의안에 따라 일부 지주택 조합원은 합의했으나, 재보연은 일체 합의에 반대하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검찰 송치 단계를 앞둔 재보연은 고초를 겪은 노량진 지주택 조합과 엄연히 다르다. 일부는 조합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재보연의 머릿수를 채워주면서 금전적 이득을 위해 뒤늦게 합류한 구성원도 포함됐다.

집단행동
분양가↑

재보연 김 회장은 지난 2012년 4월 노량진 본동 개발사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집단적 위세와 단합된 행동을 위해 운영규정(행동강령) 및 개별 서약서(운영 규정 위반 시 제재 등)까지 만들었다. 재보연의 일부 회원들은 김 회장의 자금 사용처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현재 유효한 노량진 본동 지주택 조합원 중 상당수인 388명은 시행사 측과 합의를 완료했고, 보상금액을 협상 중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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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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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