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협박 전화’ 돌리는 노량진 재개발 현장, 왜?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4.10 14:40:09
  • 호수 1526호
  • 댓글 4개

쌍팔년도도 아니고···설치는 알박기 세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량진 본동 재개발사업이 철거 반대 시위와 협박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개발사업 구역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A씨는 평소 ‘재개발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상가와 주택 대부분은 철거됐지만, 알박기 조직에 의해 폐허로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A씨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A씨에게 “그 동네서 설치고 다니지 말라”는 등 경고와 협박을 한 뒤 끊었다고 한다. 앞서 A씨는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대화에서 “개발한다고 주민들 내보냈으니 장사도 안 되고 죽겠다. 빨리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A씨가 손님들 앞에서 재개발사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직후 협박 전화를 받은 것이다.

시달리는
원주민들

노량진 본동 개발 현장이 슬럼화로 고통받는 이유는 개발 시행사와 과거 지역주택조합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지역주택사업으로 시작한 노량진 본동은 PF 대출금 2700억원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이후 일반 개발 사업지로 변경되면서 각각 2~3억원가량의 지주택 분담금(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조합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당 9억원의 보상을 요구했다. 시행사와의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합원들은 ‘재산보호연대(이하 재보연)’라는 단체를 조성했다.

재보연은 사업지 내 빌라 3곳에 매매 예약 가등기를 설정한 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재보연이 가등기 말소 조건으로 시행사인 ‘로쿠스’ 측에 요구한 합의금은 총 1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시행사와의 합의를 거부한 일부 지주택 조합원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합의금과 시행 권한을 되찾기 위해 재보연을 결성한 것이다.


로쿠스 측은 개발 현장에 살던 원주민들과 합의를 받아들인 지주택 투자자들에게 각각 수억원에 달하는 보상을 마친 상태다. 개발 현장 내에 연립주택을 소유했던 김모씨의 경우, 지난 2023년 11월28일 시행사와 매매 합의를 마쳐 지난해 3월 시행사에 건물 관리를 맡겼다.

누나가 사망하면서 주택을 상속받은 김씨는 상속세 등에 따른 부담을 느꼈고, 다주택 중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철거 계약을 진행했다. 철거업체는 주관부서인 동작구청 도시정비2과에 해체계획서를 접수하러 갔다. 

정비과에서는 ‘해당 건물이 옹벽 위에 있는 건물로 심의를 거쳐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철거업체는 구조 기술사 및 건축사를 대동해 옹벽의 안정성에 관한 구조 계산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구조 기술사, 건축사가 김씨의 건물에 방문하자 재보연 회원들이 출입을 막아섰다. 재보연 회원 55명이 가등기를 설정한 ‘에이스빌라’가 김씨의 건물과 붙어 있어 철거 과정에서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재보연 회원들의 방해로 철거해야 할 김씨의 건물은 옹벽 안정성에 대한 점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동작구청은 “전문가들의 옹벽 안전 점검을 위한 절차 진행은 건축주(김씨)와 에이스빌라 점유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라고 안내했다. 이에 김씨는 재보연 측과 협의를 위해 연락했지만, 이들은 소통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스빌라의 8세대 중 7세대는 시행사의 소유물로 이미 폐가 처리된 가운데, 502호 한 채에 재보연 회원들이 가등기를 설정해놓고 김씨 주택의 철거마저 방해하는 상황이다.

1000억원 토해내라는 ‘페라리’ 주인
슬럼 가속화 온상
조폭이 따로 없어

김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내 건물을 내가 철거하겠다고 하는데, 관련 없는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라며 “살지도 못하는 집에 세금만 내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세금을 대신 내줄 것도 아닌 재보연은 협의조차 거부하면서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경찰은 노량진 본동 주택개발 현장에 ‘떼거리 알박기’로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재보연 회장이자 부동산 업자인 김모씨 등을 압수수색했다. 시행사와 합의를 거부한 재보연은 행동강령을 만들고 회원들에게 총 50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걷었다. 문제는 ‘회비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회원을 탈퇴시켰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김 회장이 재보연 회비로 아들의 페라리, 포르셰 등 고급 외제차를 구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재보연이 가등기한 에이스빌라 주차장에는 김 회장 측의 페라리와 포르쉐가 세워져 있었다. 지난해 김 회장은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대우건설 때문에 재산을 다 잃게 생겼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등기 설정은 미래에 구입할 예정일 때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걸어두는 계약이다. 다만, 재개발사업 등을 방해할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가등기를 풀지 못한 건물은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량진 본동 주택개발 사업은 재보연 관계자 등 약 70명의 가등기권자들로 인해 정체된 상태다.

도심 속 흉물이 된 현장은 우범지대로 전락해 안전 요원이 투입되는 등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가등기 빌라
고급 외제차

재보연 회원 중에는 대통령실 경호본부 관계자 B씨도 있었다. B씨는 사업 구역 내 위치한 ‘영본빌라 202호’ 등기에 ‘가등기권자’로 확인됐다. 공직자 신분으로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B씨는 지난 2010년 지주택 사업이 한창일 때 총 2억7600만원의 분담금을 입금하고 지주택 조합원 자격을 취했다.

당시만 해도 노량진 본동 아파트를 5억원 정도에 분양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B씨가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주택자만 해당되는 지주택 조합원의 자격을 잃었다고 한다. 지주택은 무주택자 또는 전용면적 60㎡ 이하의 유주택자들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한 뒤 집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다.

B씨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오피스텔 소유로 인해 조합에서 제명됐기에 시행사 합의 대상서 제외됐고, 분담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는데, 이자까지는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나. 변호사가 조언하길 영본빌라 202호에 가등기를 설정하고 버티면 시행사에서 협상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B씨는 가등기를 설정하기 위해 재보연 측에 4000만원을 입금했다. 4000만원을 입금해 지분을 확보한 이유에 대해 B씨는 “(영본빌라 202호 공유지분)매매 금액이 대략 1700만원인데 그냥 2000만원으로 하는 것보다는 4000만원으로 올려놓는 게 좋지 않겠나”라며 “어차피 2000만원 받으려고 제한 행위를 한 건 아니다”라고 당연하다는 듯 언급했다.

이처럼 B씨는 가등기 설정 이유에 대해 개발사업의 주체를 방해하고 합의금을 더 받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 영본빌라 202호의 감정평가액은 약 5억7000만원이기에 공유자 30여명을 기준으로 나누면 공유지분 금액은 1인당 1700만~2000만원으로 계산된다.

17평도 안 되는 빌라 한 채에 공유자는 33명, 가등기권자가 11명이다. 김씨의 주택과 맞닿는 에이스빌라 역시 재보연 소속 55명의 ‘떼거리 가등기’가 설정돼있다. 가등기 목적이 단순 구입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실제로 A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가등기는 시행사와 협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재보연은 개발사업에서 이권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먼저 시행사의 미매입 부지 중 빌라 2채를 매입했다. 빌라 2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조합장이 매도인과 협의를 본 금액보다 높게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행사로부터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해 시세를 조종한 것이다.

나 몰라
배 째라

지주택으로 출발한 노량진 본동 개발 사업지는 지난 2007년 441번지 일대에 368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토지 매입비 목적으로 총 1400억원을 모아 조합을 결성했다. 이후 사업 진행 과정서 약 800여세대로 확대됐다.

당시 시공사로 선정된 대우건설의 보증으로 금융권의 자금을 빌려 사업을 진행했다. 이듬해인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2010년 서울시 건축 심의를 통과했으나, 서울시와 동작구가 재개발사업 기준을 강화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그러면서 현 시행사로 소유권이전 등기되는 동시에 하나자산신탁으로 신탁등기(공매 대금 2100억원, 신탁등기비 100억원)가 이뤄져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공매로 나온 부지의 사업주체가 바뀐 것이다.

부지 공매와 내분 사태를 겪은 지주택은 대외적으로 로쿠스와 대우건설 및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기(2017년 동작구청 중재로 시행사와 합의까지 약 670여회)했다. 내적으로는 공매 직전 공증서류를 통해 채권자 지위를 확보한 일부 조합원 및 투자자 158명 등에게 “서로 힘을 합해 시행사와 시공사에 맞서 싸우자”고 3차례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 중 36명을 제외한 122명은 끝내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를 고수해 조합원 자격서 제명당하고 말았다. 현재는 최종 388명이 유효한 조합원이고, 김 회장 등을 포함한 122명은 이미 파탄 난 조합에 대한 채권자 지위에 있을 뿐 시행, 시공사에 대한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 조합 측은 대우건설이 사업 승인과 착공에서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우건설은 지급보증으로 빚을 대신 갚았기에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남의 집 철거도 반대 ‘재보연’ 실체
연락 차단한 유령 조합원 ‘으름장’

대우건설 측은 언론과 인터뷰서 “PF 대출을 갚지 못해 대위변제로 2700억원의 빚을 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은 “토지 소유권을 얻는다고 해도 6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주택 전 조합장 최모씨는 조합 분담금 가운데 100억원 이상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10월1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전 조합장 최씨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서울 영등포구 소재 재단법인 사무실과 지방 거주지 등 2~3곳을 압수수색 했다.

이 과정서 검찰은 최씨가 수백억원을 횡령한 단서를 잡았다. 지난 2013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용현)는 최씨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10억원, 추징금 10억15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만기 출소한 최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은 없지만, 10년이 지났음에도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현장을 보고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최씨는 “당시 토지 매입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고, 내가 횡령한 조합비로 인해 사업이 무산될 현장은 아니었다”며 “재산보호연대가 시행 권한을 갖기 위해 악의적으로 가등기를 설정하고 사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수십년째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사업지의 땅을 사서 되파는 등 방식으로 수십억원대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에 관해 “재보연 소속 회원들이 과거 조합원일 때 동참한 행위를 조합장인 내가 짊어지게 된 것”이라며 “내가 구속됐다고 사업이 재개된 것이 아니라면 근본적인 문제는 재보연에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재보연은 대우건설의 합의를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0년 대우건설과 합의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들은 1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요구하고 “대우건설은 공매가만 돌려받고 빠져야 한다”며 거절했다. 이보다 앞선 2016년 동작구청의 중재 협의안에 따라 일부 지주택 조합원은 합의했으나, 재보연은 일체 합의에 반대하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검찰 송치 단계를 앞둔 재보연은 고초를 겪은 노량진 지주택 조합과 엄연히 다르다. 일부는 조합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재보연의 머릿수를 채워주면서 금전적 이득을 위해 뒤늦게 합류한 구성원도 포함됐다.

집단행동
분양가↑

재보연 김 회장은 지난 2012년 4월 노량진 본동 개발사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집단적 위세와 단합된 행동을 위해 운영규정(행동강령) 및 개별 서약서(운영 규정 위반 시 제재 등)까지 만들었다. 재보연의 일부 회원들은 김 회장의 자금 사용처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현재 유효한 노량진 본동 지주택 조합원 중 상당수인 388명은 시행사 측과 합의를 완료했고, 보상금액을 협상 중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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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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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