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흑석2구역 재개발은 지금…

속도 못내는 이유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공공재개발 1호’ 현장인 흑석2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정 건설사 특혜 시비로 주민대표회의와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 간의 갈등까지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흑석2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99-3번지 일원 4만5229㎡에 지하 7층~지상 49층, 총 1216가구 규모의 아파트와 부대복리시설을 조성한다.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로부터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로 선정됐으며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행을 맡았다.

관심 받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

흑리단길이 위치한 흑석1구역을 제외하면 흑석2구역 주변은 대부분 개발이 완료됐다. 지역 재개발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흑석2구역 주민은 “2구역은 부지 자체는 넓지 않지만 한강변과 가깝고 상권도 잘 갖춰진 데다 9호선 흑석역까지 들어와 11구역과 함께 가장 사업성이 좋은 곳으로 꼽혔다”며 “하지만 뉴타운 지정 초기부터 상가 소유주들의 반대가 커 사업 진행을 위한 조합 설립조차 막혔고, 이런 저런 갈등이 심화돼 지역발전이 늦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비사업에서 조합을 설립하려면 주민 동의율 75%를 충족시켜야 한다. 흑석2구역의 경우 주민 동의율을 충족시키지 못해 주민대표회의가 조합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공공재개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훨씬 늦어진 만큼 민간사업보다 사업진행이 빠르고 안정적인 정부 주도 사업으로 아파트 준공 및 입주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주민도 있다. 또 다른 주민은 “민간 건설사가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공공 주도인 만큼 사업 수익성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변지역보다 개발 늦어…주민들 불만
공공재개발 찬반 의견 여전히 엇갈려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자신하는 주민대표회의와는 달리, 비대위는 공공재개발 반대를 위한 강도 높은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결국 비대위와의 갈등 해소 여부가 사업 추진의 ‘열쇠’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대위는 공공재개발 진행의 위법성을 포함해 ▲주택조합 동의자 수 산정 위법 ▲주택조합 동의서 징구 절차 위법 ▲추진위 협박 ▲주민대표회의 구성 위법 ▲추진위 동의서 무단 전용 등 잘못된 행동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형 건설사들의 과열 경쟁도 논란이다. 지난 4월 열린 흑석2구역 1차 입찰에선 10년 만에 재개발사업에 복귀한 삼성물산이 단독입찰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이달 3일 진행된 두 번째 현장설명회엔 삼성물산은 물론 DL이앤씨,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등 시공능력평가 10위 이내 5개 건설사가 참석하며 격전을 예고했다. 입찰마감은 오는 9월5일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별 홍보 논란이 불거졌고 일부 업체들은 사업 주체 측에 적발되기도 했다. 


대부분 찬성 입장
비대위 반대 투쟁

건설사별 적발 건수는 대우건설 4회, 롯데건설 1회, 삼성물산 1회, 지에스건설 1회다. 흑석2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주민들을 상대로 한 개별 홍보활동이 3회 이상 적발된 건설업자는 입찰을 무효로 하고 향후 입찰 참여 자격을 박탈한다.

현행법상 건설사는 시공자를 선정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홍보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국토교통부 행정규칙인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시공사를 선정하는 정비사업 현장에서 건설사에 허용된 홍보 공간은 입찰 참여사를 대상으로 두 차례 개최되는 ‘합동홍보설명회’와 1차 합동홍보설명회 이후 사업시행자가 별도로 지정한 공간뿐이다. 

건설사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조합원을 따로 접촉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이 같은 개별 홍보 행위가 3회 이상 적발된 건설사의 시공사 선정 입찰은 무효가 된다. 조합 등 사업시행자는 내부 의사결정 기구인 대의원회(주민대표회의) 의결로 시공사 선정 입찰이 무효화된 건설사의 향후 입찰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

흑석2구역에서 개별 홍보 활동이 4회 적발된 대우건설은 앞서 입찰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흑석2구역 사업시행자인 SH는 지난달 2일, 대우건설 홍보지침 위반과 관련한 제보와 회사 측 소명을 종합한 결과 “(대우건설의) 개별 홍보 행위가 4회 적발돼 입찰 참가 자격 박탈 대상에 해당한다”며 주민대표회의 측에 공문을 발송했다.

건설사 과열된 경쟁
불법 홍보로 박탈?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는 대우건설 입찰 참가 자격을 박탈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는 “주민대표회의에서 ‘3회 이상 불법 홍보 업체의 입찰 참가 자격 박탈’을 표결에 부쳤지만 찬반표 동수로 부결됐다.

건설사 측은 입찰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입찰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설명회에 참석했지만 불공정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무리하게 입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찰 과정의 문제점이 개선되고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돼야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H는 앞서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에 보낸 공문에서 “이러한 불법행위의 적발에도 해당 건설업자의 입찰 참가 자격 박탈이 이뤄지지 않고 사업이 진행된다면, 입찰안내서 또는 관련 법령 위반으로 주민대표회의와 우리 공사가 맺은 협약의 해지 사유가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형건설사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안정적 사업 진행’이 꼽힌다. 흑석2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지하철 9호선 흑석역 초역세권에 ‘공공재개발 1호’라는 상징성으로 꾸준히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10대 건설사 5곳 참여… 과열된 경쟁
입찰자격 두고 주민대표회의-SH 대립

공공재개발은 SH 등 공공이 사업 시행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용적률을 법정상한의 120%까지 올려준다. 특히 사업 속도가 민간사업보다 월등히 빠른 게 장점으로 통합심의를 적용해 10년 걸리는 사업을 절반 수준인 5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최근에는 ‘둔촌주공 사태’ 등 정비사업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공공재개발 방식의 장점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흑석2구역은 SH가 시행을 맡아 자금조달 및 사업 진행 업무를 맡고 있다.  

이와 달리 일반적인 조합방식 정비사업에선 시공사가 지급보증 등을 통해 조합에 자금을 조달해야 할 뿐 아니라 공사비, 자재 선정을 둘러싼 조합, 조합원과 갈등도 직접 겪어야 한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 역시 시공단이 사업비 7000억원을 지급보증하고 공사비용으로 1조7000억원가량을 투입한 상태에서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금리도 오르고 있는데 SH가 사업비를 조달한다는 측면에서 시공사들에겐 수익성이 좋은 게 아니겠느냐”면서 “흑석2구역 같은 공공재개발은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고층으로 지어져 공사비 규모도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독 들이는 이유
안정적 사업 진행

이에 대해 건설사 관계자는 “관이 주도하는 사업이라 민간사업보다 사업성이 좋지는 않다”면서도 “흑석2구역은 SH가 시행해 안정적인 수익확보가 가능한 점과 입지 및 국내 공공재개발 1호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참여를 검토하는 업체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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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