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흑석1구역 재개발 부정선거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7.21 13:35:13
  • 호수 1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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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서 위조? 조합장 고발 예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흑석1구역 재정비촉진구역(흑석1구역) 재개발 조합이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조합장이 부정선거를 통해 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흑석1구역 조합 관계자는 임시총회를 감사였던 차모씨가 독단적으로 진행하며 당선된 조합 임원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17일 조합원 발의를 통해 조합 임시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조합원들로부터 받은 소집청구서였다. 조합 정관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196명 가운데 5분의 1(39.6명), 즉 40명 이상이 임시총회 개최에 동의해야 한다.

임시총회
문제 투성이

흑석1구역 조합원 32명은 지난해 10월2일 즉시 조합원 발의 소집청구서 공개를 요청하고 같은 달 17일 일부 소집청구서에 사문서 위조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총회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가처분 신청자 측은 “피고인 전 조합장 A씨가 법원에 제출한 소집청구서를 받아본 결과 4명의 조합원 소집청구서에서 신분증을 부착하지 않거나 위치·크기를 조작하는 등 위·변조 증거를 확인했다”며 “앞서 지난해 10월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1구역 조합 사무실에서 A씨가 조합원 서면결의서가 들어있는 총회책자들을 무단 강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위·변조를 증명할 수 있는 고도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A씨는 지난해 11월21일 조합 임시총회를 열어 9개 안건을 상정해 투표를 진행했다. 임시총회 안건 가운데 8, 9호는 각각 조합 감사·이사 해임의 건, 조합 대의원 해임의 건으로, A씨와 갈등을 보이는 임원들의 해임과 관련된 것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흑석1구역 관할구청인 동작구청의 소극적인 행정지도에도 불만을 표현했다. 조합 측은 “A씨가 법원과 동작구청에 제출한 조합 임시총회 소집청구서 내용이 일부 달랐는데 동작구청 직원이 서류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장수만 파악한 뒤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구청은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명확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법원에서 조합 임시총회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임시총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됐으며 구청에서는 명확한 증거 없이 일부 조합원 주장만 가지고 제재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중앙대병원 인근 ‘노른자 땅’
한계 없는 욕심 끝 각종 논란

전 조합장 A씨는 조합 임시총회 소집청구서를 위·변조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서면결의서를 무단 강탈했다는 조합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송된 서류를 조합원들에게 일반 우편으로 빨리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전부터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이 이어지면서 임시총회가 계속 무산됐다”며 “조합장 임기 동안 예산안 계획도 제대로 못 세우는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조합원 40명 이상이 발의를 해서 총회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주민등록증을 복사하면서 크기가 작거나 클 수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검토한 뒤 기각한 사안인데 어떻게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등기로 보냈다가 반송된 서면동의서를 일반 우편으로 빨리 보내기 위해 가져가려고 한 것”이라며 “오히려 조합 임원들이 (A씨를) 사무실에 감금한 것이며 차후 서면결의서 위조 여부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흑석1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43-7 일대 약 2만6675㎡를 재개발해 약 500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는 프로젝트다. 지난 2022년 1월 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해 4월 조합을 설립했다. 현 조합장 차씨는 최근 설계업체와 도시계획변경업체를 선정해 계약했다.


앞서 해당 구역은 2020년 1월23일 자로 서울특별시 고시 제2020-35호에 의해 빗물 펌프장이 제외되면서 3만5303㎡에서 흑석동 43-75번지 일대 2만6675㎡로 변경됐다. 이에 서울시 고시 내용을 보면 흑석1구역의 구체적인 일부 건축계획은 “향후 조합 등 추진 주체 구성 시 용도지역 조정 등이 포함된 촉진 계획을 수립(변경)할 수 있음”으로 변경됐으며 이후 계획은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허위 투표
“안 적었다”

특히,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선정 방식(재선정 또는 추인)에 대한 임원과 일부 대의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현재 조합장이자 과거 감사였던 차씨도 대의원인 박모씨와 함께 지난해 1월12일 조합장 해임 총회 개최 공고 후 OS요원을 동원해 총회를 방해했다.

결국, 총회는 무산됐고 2024년도 예산 안건 및 설계자 계약 안건은 처리되지 않았다. 이후 앞서 언급했던 임시총회가 조합원 5분의 1 이상의 소집 요청에 의해 지난해 11월20일 개최됐다. 임원 및 일부 대의원이 포함된 32인의 조합원이 총회 개최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기각돼 총회는 정상적으로 개최됐다.

그러나 해임 안건에 포함된 임원과 대의원들의 방해로 결국 총회가 또 연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한 달 여 만인 지난해 12월3일 조합원 이모씨 외 49인 총회 발의 및 소집 요구가 조합장 선거 및 임원에 대한 연임의 건으로 개최됐다. 이후 지난 4월, 감사였던 차씨가 소집 공고한 임시총회가 열렸는데, 당시 조합장 후보로 차씨가 단독 출마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회 결과, 조합원 196명 중 100명(현장 참석 1인, 서면결의 99인) 찬성으로 차씨가 조합장 당선되며 기존 이사 및 임원은 연임됐다.

이에 조합원 14명은 총회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및 본안소송을 지난 5월12일 제기했다. 절차적 흠결과 서면결의서의 유효성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밀어주기
고의 훼손?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10일 한 조합원은 고발장에 첨부할 사실확인서에 ‘본인은 조합의 감사였던 차씨가 소집한 2025년 4월12일 조합장 선임 및 임원 연임을 다룬 총회와 관련해 서면결의서와 투표용지를 작성한 적이 없고, 이를 제출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차씨가 개최한 총회에서 제출됐다고 하는 본인 명의의 서면결의서는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임을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본인은 일몰제에 의해 조합 설립 인가가 취소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에 대한 연장동의서만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부정선거 위혹에 휩싸인 차 조합장은 대의원회 이후 정비업체, 설계업체, 재정비촉진계획업체 등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업체를 선정해 계약했고, 자금을 차입했다. 현재 해당 조합 관계자들은 차씨 등 총회 주최 측을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이 같은 재건축사업 조합장 선거는 다른 지역에서도 만연하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대형 아파트 재건축사업 조합장 선거가 부정하게 치러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개포1동주공아파트(현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재건축정비사업조합 전 선거관리위원장을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지난달 10일 밝혔다. 해당 단지는 조합원만 5100여명에 달하는 강남권 대표 재건축 ‘블루칩’ 아파트로 꼽힌다.

여의도 정치판 저리 가라···공작 의심
표 조작에 서면결의서 위조 그림자도

경찰에 접수된 고발장과 녹취록 등에 따르면, 위원장 B씨는 2021년 6월 치러진 조합장 및 임원 선거에서 조합장 후보로 나선 C씨의 당선을 돕기 위해 조합원들이 제출한 서면결의서 일부를 고의로 훼손한 의혹을 받는다. 강남우체국에서 조합으로 배달될 예정이던 결의서를 B씨가 선관위원장 신분을 내세워 직접 수령했고, 차량 안에서 내용을 확인한 뒤 C씨를 찍지 않은 결의서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고발인 측은 B씨가 아파트 관계자에게 “많이 찢었어요. 14개 이상” “다 찢어버리는건데”라고 말하는 등 스스로 행위를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고 주장했다.

고발인 측은 결선투표에서도 B씨가 부정행위를 묵인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과반 득표자가 없어 재투표가 진행됐는데, 선거를 담당한 외주 업체 직원들이 투표용지에 C씨의 이름을 적어넣었음을 B씨가 인지하고도 방치했다고 고발인 측은 지적했다.


B씨는 이런 사실을 일부 주민들에게 직접 언급한 정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발인 윤길용씨는 “공정한 선거를 책임져야 할 위원이 오히려 부정을 저질렀다”며 “주민의 선거권 보호를 위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B씨는 “사실무근으로, 우체국을 조사해보면 나올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정비사업의 고질병이다. 국토교통부는 전자식 투표·동의를 활성화해 정비사업 속도와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지자체
나서야

국토부가 지난달 21일 입법 예고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조합은 총회 소집 시 전자 의결권 행사법과 행사 기간을 조합원에게 통보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조합의 전자서명동의서 위·변조 방지책을 확인하도록 한 규정도 시행한다. 

다만 정부가 조합에 전자투표·동의 활용을 강제할 수는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합이 정관을 고치면 대의원 선거도 전자식으로 가능하다”면서도 “부정선거는 사법적 문제라 제도적 대책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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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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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