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꾸기 바쁜’ 싱크홀 공포 진단

사람 죽어도 덮기에 급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자고 나면 도시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도심 속 안전을 위협하는 싱크홀 이야기다. 싱크홀이 연달아 발생하고 이에 사망 혹은 실종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야 정부와 지자체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장에 투입한 인력과 장비가 심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시민들은 갑자기 발이 꺼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전국 곳곳서 지반침하, 이른바 싱크홀이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발생하는 싱크홀에 정부는 추가 점검 대책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발밑의
시한폭탄

싱크홀 관리를 담당하는 국토안전관리원서 발간한 ‘2024 지하안전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 2023까지 총 957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2019년 193건 ▲2020년 284건 ▲2021년 142건 ▲2022년 177건 ▲2023년 161건이 발생했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지역별로 분석하면 서울에선 13건·15건·11건·20건·23건, 부산은 15건·29건·17건·8건·16건, 대구 3건·2건·1건·2건·4건, 인천 8건·20건·2건·1건·2건, 광주 20건·55건·13건·6건·28건, 대전 20건·20건·8건·9건·9건, 울산 1건·2건·5건·3건·0건이 나타났다.

지역 중 가장 많은 싱크홀이 발생한 곳은 경기도로, ▲2019년 53건 ▲2020년 47건 ▲2021년 35건 ▲2022년 36건 ▲2023년 26건이 발생했다. 이는 전체 싱크홀 발생 수의 약 16~30%의 비율이다.


올해는 더 빈번하게 싱크홀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전국적으로 총 12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그중 서울서만 5곳에서 싱크홀이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서울서 발생했던 16건의 약 30%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서울 시내에 더 많은 싱크홀이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서 대형 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지나가던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사망했다. 이후 지난 14일에는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지점으로부터 2.5km 떨어진 강동구 천호동 인근 횡단보도서 다시 소규모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달 들어서는 지난 13일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서 지름 40cm, 깊이 1.3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해 차량 통행이 통제됐으며, 서울 성동구 옥수역 7번 출구 인근 1차선 도로에서는 가로·세로 약 60cm, 깊이 깊이 10cm 크기의 작은 포트홀이 발생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 중랑구 신내동 중랑구청 사거리 인근 도로서 가로 40㎝,세로 30㎝,깊이 90㎝가량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같은 날 3곳에서 싱크홀이 발견된 셈이다.

부산에서는 같은 공사 현장 근처서 연달아 싱크홀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산 사상구에서는 지난 13일 지름 5m, 깊이 5m의 싱크홀이 발생했고, 다음 날 불과 200m 떨어진 지점서 지름 3m, 깊이 2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인천서도 지난 15일 경인전철 1호선과 인천도시철도 1호선 환승역인 부평역 앞 건널목서 가로 5m, 깊이 10c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5년간 약 1000건 발생
“올해 들어 더욱 빈번해”


지난 11일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에서는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상부 도로가 무너지는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지하 35~40m 지점서 작업하던 50대 노동자 1명이 실종됐다가 124시간 만인 지난 16일, 결국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사고는 단순히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시민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며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싱크홀은 자연현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 기반 시설의 노후화, 무리한 지하 개발, 부실 시공 등 인간이 만든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노후 하수관로의 파손, 상수도 누수, 무분별한 지하 굴착공사 등은 도로 밑의 지반을 약화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싱크홀은 도시가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라며 “지하 인프라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조기 경보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예고 없이 나타나 인명까지 위협하는 싱크홀은 이제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싱크홀 위험 지역에 대한 정밀 탐사를 확대하고, 지반 정보 지도를 제작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이다. 예산 부족과 관련 부서 간 협업 부족으로 인해 일부 지역은 여전히 위험에 방치돼있는 상황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싱크홀 관련 민원은 415건에 달했다.

권익위 측 관계자는 “최근 싱크홀로 인한 인명사고가 발생한 뒤 싱크홀 관련 민원이 급증했다”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며 도로 균열 및 지반침식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최근 전국적으로 계속된 싱크홀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오인 신고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서울시는 관악구 삼성동 재개발구역에 땅이 꺼진 것처럼 보인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그러나 해당 구역은 싱크홀과 무관하게 도로 일부가 깨진 상태였다.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서도 싱크홀 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오인 신고였다.

서울시 측 관계자는 “최근 싱크홀 오인 신고가 많아졌다”며 “도로가 파손된 것을 싱크홀로 착각하는 등 오인 신고가 하루 최소 2~3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각지대
위험 방치

사람들의 불안이 커진 상황에 지자체들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인공지능(AI) 도입과 지표투과레이더(GPR)를 통한 안전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GPR 탐사 확대와 노후 관로 교체를 포함한 ‘지반침하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했고 ‘우선 정비구역도’와 ‘안전 지도’를 제작해 대응에 나섰다.


서울 시내 지자체들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정비 사업과 향후 진행될 안전 대책 등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는 173억원을 투입해 관내 10.3km에 달하는 노후 하수관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구는 지난 1월 전 지역의 노후 하수관로 7.1km에 대한 공사에 들어갔다. 오는 10월 준공을 목표로 하수관로 상황에 맞춰 굴착 개량, 보수·보강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방학1동, 도봉1동 지역의 노후 하수관로 3.2㎞ 구간 정비를 시작해 현재 공정률이 81%에 달한다고 전했다.

용산구는 지난달 ‘2025년 관내 노면 하부 공동조사’를 발주했고, 성동구도 오는 5월 용역 발주를 앞두고 있다. 두 지역은 공사장 주변과 노후 하수관 매설 도로 등의 내부 상황을 살펴볼 예정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공사장 인근의 주변 도로 함몰 징후 여부와 지반 균열 상태, 버팀대 상태 등도 점검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마포구도 30년 이상 장기 사용한 하수관이 매설된 연남동 구간의 배급수관 정비 공사를 이달 내 완료하고, 2027년까지 구도 377km에 대한 탐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영등포구는 신안산선 붕괴사고 등 도로 침하 현상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4일, 7호선 신풍역 인근 공사 현장을 찾아 합동 점검을 실시했다.


지난달 24일 거대 싱크홀이 발생한 강동구에선 해당 사고 이후 불안을 호소하는 민원이 잇따르자 인근 지역에 대한 공동 탐사를 진행, 하수관 접합부의 노후로 소규모 공동이 발견된 1개소에 대해 정비를 마쳤다. 다만, 사고가 발생한 지점의 조사 및 씽크홀 발생원인 등에 대한 분석은 정부 합동조사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강동구는 상반기 중 9호선 연장사업 공사 구간 일대 구 관리 도로에 대한 공동 탐사 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포트홀 중심으로 AI 탐지 장비를 도입해 선제 대응 중이고, 울산은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GPR 탐사와 천공 내시경을 통한 정밀 점검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부산시도 GPR 탐사 차량을 확충하고, 지하 굴착 공사 때 자동 계측을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부실한 차수 공법이 시행된 사상∼하단선 구간 1100곳에는 물 침투를 막고 지반을 보강하는 그라우팅 공법을 실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지자체들은 인공지능(AI) 장비 도입이나 지반탐사 확대 등으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GPR은 탐지 깊이가 2m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서 깊이 2.5m 싱크홀이 발생하기 3개월 전 이뤄진 GPR 탐사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문가들도 GPR은 도로 유지보수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규모 싱크홀 조사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GPR로
예방 불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땅의 밀도를 추정하는 GPR은 2m 지반 아래까지만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 유지보수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예측 불가한 대규모 싱크홀 조사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고성능 GPR 장비 도입을 통해 현재의 탐사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2m 깊이까지만 탐사 가능한 장비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최소 5~6m 깊이까지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 GPR 장비 도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투자와 장기적인 탐사 발주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싱크홀이 처음 문제 제기됐을 당시에도 지적됐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4년 국비 38억원과 연구진 211명을 투입해 ‘한국형 땅 꺼짐 예방 가이드라인’과 예측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연이은 땅 꺼짐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그해 12월 ‘지반침하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이듬해 1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대전대 산학협력단 등이 합작해 땅 꺼짐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GSR(Ground Subsidence Risk·한국형 싱크홀 위험 예측 기술) 기법’을 개발했다.

해당 기법이 실제로 개발됐지만 현장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2020년 4월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지반함몰 위험성 예측 및 평가기술 개발 1세부 최종보고서’에 지반 변형 및 지반 함몰을 예측할 수 있는 신기법 GSR이 현장서 적용 가능한 형태로 수록됐다. 해당 용역 연구는 국토부의 의뢰로 2015년 12월28일부터 2020년 1월31일까지 진행됐다.

GSR은 공사 현장의 지반을 분석해 0~100점 사이의 GSR 점수(안전점수)를 산출, 땅 꺼짐 위험도를 5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땅 꺼짐 위험이 적은 양호한 지반을 뜻한다. 땅 꺼짐에 영향을 주는 흙의 재질, 공동의 유무, 암반의 특징을 조사한 뒤 인자마다 할당된 점수를 정해진 도식에 대입하는 방식이다.

GSR 개발을 주도한 임명혁 대전대 재난안전공학과 교수는 “한국 지질 특성에 맞는 인자 40개를 추리고 점수화하는 도식을 4년에 걸쳐 개발했다”며 “인공지능(AI)을 적용해 인자별 입력값만 넣으면 안전점수가 곧바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시민 불안 커지자 안전 점검
5년 전 개발하고 도입 무산

GSR 기법은 한국 지질 특성에 최적화된 땅 꺼짐 예측·평가 도구로, 위험도 예측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존 기법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GPR로 관내 5개 도시·광역철도 건설공사 구간을 집중 탐사해 땅 꺼짐을 방지하겠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GPR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대형 땅 꺼짐은 최소 10m 아래서 발생하지만, GPR은 탐지 깊이가 2m 남짓에 불과하다”며 “서울시가 GPR 장비를 갖춘 지 10년이 됐는데 이 장비로 대형 싱크홀을 사전에 발견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에 그치지 않고 굴착공사 시공 단계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4개 등급(관심·주의·경계·심각)으로 구분하고, 사건마다 대응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미 개발이 끝난 GSR 기법과 매뉴얼은 막상 현장서 활용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GSR 기법은 사례가 부족하고 추가 연구가 필요해 검증된 기술인 GPR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면서도 “지하 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향후 5년간 기술개발·장비 성능 검증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GSR 기법 활용 여부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만시지탄’이란 반응이다. 임 교수는 “신기술인 만큼 일찍이 현장서 적용해보고 보완했으면 많은 사례를 확보해 지금의 땅 꺼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국토안전관리원은 GSR의 도입이 아니더라도 장심도 도로지반조사 장비 도입을 매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장심도 장비는 투과 범위가 2~20m에 달해 보다 깊은 땅 속 공간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다. 해당 장비를 도입하면 기존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깊이의 싱크홀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게 된다.

국토안전관리원은 해마다 싱크홀 사고가 발생하자 지하공간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서 이 장비의 도입을 검토했다.

그러나 국토안전관리원이 계획한 장심도 장비 도입은 계속 무산됐다. 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올해 초 분석 결과 장심도 장비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장심도 장비가 어렵게 된 이유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국토안전관리원의 이 같은 결정은 장심도 장비 자체의 성능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답이 없다
땜빵만 고민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장심도 장비 자체가 성능 검증이 안 된 상태로 알고 있다”며 “장비 도입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게 우선이지만, 기술적으로도 검토할 부분이 많아 (장비 도입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싱크홀을 미리 발견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고도 도입이 계속 무산되며 시민들은 발 딛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의 불안이 절정에 닿은 만큼 정부의 대처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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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