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허송세월' 불광5구역 재개발의 민낯

믿고 맡겨놨더니 뒤죽박죽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서울 은평구 불광동 238번지 일대 불광5구역이 뒤늦게 지난 9월23일 반쪽짜리 사업시행 인가를 받는 등 16년째 표류하면서 조합을 성토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광5구역은 2005년 2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8년 12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2010년 12월19일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합설립 인가 후 편법과 비상식적인 업무진행으로 인해 현재까지 ‘조합 설립 무효 소송’과 업무 미숙 등으로 사업 진행이 정체되고 있다.

2005년 승인
장기 표류 중

최근 정비구역 지정을 변경해 초기 계획됐던 중학교 용지를 제외하고 해당 부지에 공공청사와 청소년 복합시설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9월6일 사업시행 인가를 위한 조합원 총회를 개최했고 같은 달 18일에 은평구청에 사업시행 인가 신청을 완료했다. 

조합은 오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구역 내 교회와 갈등을 빚으며 사업 진행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 교회와 재개발조합의 갈등으로 인해 제척안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광5구역 정상화를 촉구하는 조합원 모임인 ‘불광5구역정상화추진위원회(이하 정상위)’는 “사업 지체로 인해 조합원들의 재산적 손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했다. 정상위 관계자는 “전체 조합원 1507명 중 현재 20% 이상이 정상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응암4구역 재건축사업은 이미 입주까지 끝났고, 대조1구역 재개발사업은 현재 조합장이 없어 중지돼있지만, 이주 및 철거까지 진행된 것을 감안할 때 불광5구역은 심각하게 늦다”고 성토했다.

이어 “우리가 조합원이라고 느끼는 건 총회 때 말고는 없다. 조합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하나도 알 수 없다”며 “미리 통보해주는 것 없이 모든 진행이 끝난 후에나 연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총회 이후로는 클린업시스템에도 제대로 기록돼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상위, 소통 없는 조합장 “더는 못 참아”
조합원들 손해 막심…빠른 사업 진행 촉구

정상위에 따르면 현 조합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직무가 정지된 전 조합장의 후원 속에 2016년 3대 조합장을 맡게 됐다. 문제는 전 조합장에게 모든 부분을 승계받으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재개발 업무능력이 없는 설계사를 떠안으며 1년 이상 사업이 지연된데다 지난해 9월 사업시행 인가 신청서류 미비로 또다시 1년이 지연되는 등 재산적 손실액만 약 18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정상위는 조합장을 포함한 집행부의 편법 연임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조합장과 감사, 이사 4명은 지난 4월15일 이전에 선출 선거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배후세력에 의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7월 총회에서 연임 찬반 선거에 OS 70명을 투입해 강행한 결과 조합장과 감사 1명은 근소한 표차로 연임에 성공했으나 이사 4명은 부결됐다. 

정상위는 조합이 새로운 이사를 선출하지 않은 채 후임 이사 선출 시까지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초법적인 정관을 악용해 조합원들로부터 불신임된 이사들과 함께 시공사 선정총회까지 밀어붙이려고 한다고 했다. 

정상위 관계자는 “집행부는 연임을 위해 조합 운영의 기본법인 정관을 변경했고 이것은 엄연한 편법 연임”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위 발족
“소통 부재”

정상위는 사업 진행이 늦은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소통과 투명성 부재’라고 강조하면서 “조합장이 은광교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 측 대표단들이 2년 전 부터 조합에 협상을 요구했지만 조합장은 전화통화를 거절하는 등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교회 측은 지난 2월부터 은평구청을 찾아가 시위를 시작했고 3월에는 은평구청 건설국장이 조합장을 불러 합의를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8일 조합장은 긴급이사회를 개최해 은광교회 제척을 논의했다. 이사회에서는 기존안을 유지하느냐 제척안을 밀어붙이느냐 등을 논의하며 2~3개의 추가 의견도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합장은 3월17일 독단적인 판단으로 제척안의 협상안을 교회 측에 내용증명으로 발송해 협상 자체를 단절시켰다.

이로 인해 타 인근 부지 등의 제척 요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최소 아파트 40개호 이상 및 도보 입구, 근생시설, 어린이집 등의 시설이 사라져 설계변경은 기본이고 정비계획변경 및 사업시행변경 인가 등으로 약 1년 이상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는 또 다시 약 900억원의 손실로 이어져 1507명의 조합원에게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상위 관계자는 “제척이 아니라, 교회가 원하는 부분과 조합이 원하는 부분을 조율과 협상을 통해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위10구역과
같은 길 걷나?

이 관계자는 “그렇게 하려면 조합장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조합장을 선출해 문제가 되고 있는 은광교회와의 협상을 새롭게 진행해야 하고, 잘못된 정관도 변경해야 한다”며 “조합도 사업 진행이 늦어진 만큼 함께 노력해서 빨리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례는 지난달 <일요시사> 지령 1340호를 통해 보도됐던 ‘장위10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위10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의 경우 ‘사랑제일교회’와의 협상이 조합장으로 인해 결렬돼 난항을 겪고 있다. 

장위10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의 경우 사랑제일교회와 최초 협의 때 보상액 156억원으로 이야기됐지만 조합장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약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주 및 철거를 못하고 있다. 현재 사랑제일교회 측은 500억원을 요구하고 있어 막대한 손실은 물론, 사업 일정 지체 등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상위 관계자는 “2018년 총회 이후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행하지 않아 클린업시스템에 들어가서 보지 않으면 상황을 알 수가 없다”면서 “어른들을 위해 최소한 보여주기식 문자라도 전달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도시정비법 및 서울시 조례에 의하면 클린업시스템에 우편 투표용지를 포함한 서면결의서는 총회 의사록을 등록할 때 스캔본을 올리게 돼있다. 하지만 조합에서 스캔본을 올리지 않아 개개인이 제출한 서면결의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공정 입찰? 조합장·시공사 유착 의혹
정상위 해임안 발의…조합원 동참 호소

정상위는 건설사와 조합의 유착 의혹도 제기했다. 정상위에 따르면 조합장과 A 건설사가 유착해 타 건설사에서는 들어와 봐야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려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다른 한 건설사가 참여해 적극성을 보이면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거 및 지장물·정비업체 등 계약돼있는 대부분이 A 건설사 협력사임을 알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는 판단에 철수를 결정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시점에선 A 건설사의 단독 수의계약 형태로 진행이 예상된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건설사 간의 경쟁이 이뤄져야 혁신 설계와 이주비, 분담금 유예 등 유리한 선택권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불광5구역에 ‘조합과 건설사의 검은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전단지가 배포되는 등 A사의 조합 배후 개입설에 대한 불만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정상위 관계자는 “조합장은 사업이 빨리 진행되기를 갈망하는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악용하고 있다”며 “이를 믿고 계속 기다리느냐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집행부를 교체 후 잘못된 부분을 재검토 보완해 대조1구역처럼 관리처분 이후 더욱 큰 피해가 유발될 수 있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느냐 조합원들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올바른 선택을 통해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합장 해임
과반수 필요

아울러 “현 조합장 및 임원들을 해임하고 새 조합장을 선출해야 한다”며 “순수 조합원들끼리 해임 총회를 열고자 한다.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누가 선출될지 모르겠지만 능력 있는 임원들을 선출해 우리의 재산을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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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