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은 지금…

1967년부터 버려진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 정겹던 마을 풍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주민들의 십수년 숙원인 재개발사업에 시동이 걸리면서다. 하지만 지금 허물어지고 있는 건 낡은 집들이 아니다.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이다. <일요시사>는 백사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살피고,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으러 백사마을로 향했다.

백사마을이라는 이름은 ‘중계동 산 104번지’라는 옛 주소에서 따왔다. 그동안 서울시 성북구·도봉구·노원구로 속한 행정구역은 여러번 바뀌어왔지만, 매번 끝 주소는 같아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강제 이주
개발 제한

백사마을은 서울 동북쪽 끝에 있다. 지하철 7호선 하계역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느 달동네가 그렇듯,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려면 오르막길을 1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서울 도심에서 찾아오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하지만 백사마을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았다. ‘사진 명소’라는 입소문을 꾸준히 타면서다.

백사마을에는 서울에서 이제 찾아보기 힘든 정겨움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과 아기자기한 집들, 연탄과 빨랫줄까지. 지난 2017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에 젊은 사람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나이 든 사람은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5년이 지나 마을을 다시 찾았다. 예전의 그 어떤 풍경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주민 10명 중 9명이 마을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1200가구 중 100가구가 채 남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어진 마을에는 폐허로 변한 건물들만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집마다 둘러진 테이프와 빨간 스프레이로 그려진 동그라미가 눈에 띄었다. 이주가 끝나 철거 예정이라는 의미였다.

곳곳에는 일부가 무너진 채 뼈대만 남은 건물들도 보였다. 안쪽이 모두 타버린 채 남겨진 집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들도 곳곳이 벗겨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다시 드러낸 담장을 보면서, 이 마을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다시 떠올렸다.

백사마을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도, 지금까지 모습을 간직해온 것도 어느 하나 주민들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간 봐왔던 백사마을의 정겨운 풍경은 한국 도시 개발사의 어두운 단면, 그 자체다.

백사마을은 1967년 만들어진 마을이다. 개발을 이유로 정부가 용산, 청계천, 안암동 등 서울 각지의 판자촌 사람들을 백사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판자촌을 나온 사람들 앞에는 천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30평짜리 천막을 치고 분필로 네 등분했다. 8평도 안 되는 공간에 한 가구씩 구겨 넣었다.

세월이 흐른 뒤 주민들은 이사 간 집을 합치고, 남는 땅에 집을 지으며 20평 남짓의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개발은 허락되지 않았다. 200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개발제한구역, 즉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민들이 ‘재개발’과 ‘아파트’를 꿈꾸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안전 문제로 주민 90% 조기 이주
폐허 된 마을…누전에 불탄 집도 


그간 주민들이 겪은 애환은 비로소 이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끊긴 후에야 바로 보이게 됐다.

마을을 두 바퀴나 돌고서야 아직 마을에 남은 주민 한 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언덕을 오르시던 할머니와 잠시 함께 걸었다.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하니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사신 지 올해로 53년째라고 했다. 

‘다들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개발한다고 해서 다들 나가서 전세 살면서 기다리지. 나간 지 2~3년은 됐어”라고 답했다.

이어 “개발은 4번인가 한다 만다 하더니, 아직도 잘 안됐어. 그래도 이렇게 마을이 텅 빈 걸 보니 이제 뭐가 되긴 하나 봐”라고 덧붙였다.

‘오래 산 동네가 사라지는 게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아쉬워도 50년이 넘은 동네가 없어져야지.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살 수가 없어”라며 “진작 없어졌을 동네인데, 이제까지 질질 끌린 거야”라고 말했다.

마을 입구로 내려오는 길에 백사마을 주민대표회의(이하 주민대표회의)와 연락이 닿았다. 마을 입구 상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백사마을 재개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주민대표회의 측 설명에 따르면 백사마을은 1990년대 말부터 서울시와 여러 논의를 주고받았다. ‘개발제한구역 내 집단취락지’로 분류된 백사마을에게 서울시와의 논의는 필수였다.

그러던 중 서울시가 2008년 백사마을 구역 면적 80%가량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했다. 대신 재개발사업으로 하되, 공공사업시행자로 건립 세대수의 50%를 건설하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대책 없는 
조치만 남발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됐다. 2009년 구역을 반으로 나눠 각각 분양아파트 1461세대와 임대아파트 1297세대를 건설하는 정비계획이 수립됐고, 구역 지정도 고시됐다.

주민들은 “그때만 해도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2011년 하반기 들어 사업이 돌연 보류됐다. 서울시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달동네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선회한 탓이다.


그러는 사이 서울시장은 오세훈 시장에서 고 박원순 전 시장으로 바뀌었고, 서울시는 2012년 6월 들어 새로운 정비계획을 내놨다. 직접 임대주택 부지를 매입해 주거지 보전사업을 자체 시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정비계획에 임대주택 세부계획은 들어가지 않았다. 

바뀐 법에 따라 충족해야 하는 17%의 임대주택 비율은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해 확보하고, 나머지 세부계획은 서울시가 알아서 수립‧시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서울시는 임대주택부지에 임대 아파트 대신 저층 주거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 세부계획을 수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업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사업 방향을 논의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멈췄던 개발 시계가 다시 움직인 때는 2017년 7월. 서울시 중재로 시행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로 바뀐 게 신호탄이 됐다. 주민들은 비로소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 역시 잠시뿐이었다.

서울시가 “임대주택부지에서 사업을 직접 시행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으면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주민대표회의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주거지 보전사업의 임대주택도 재개발구역이므로, 우리가 사업시행자가 될 수 없다”며 “(기존에 빼놨던)임대주택 세부계획을 정비계획에 반영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당초 약속받았던 ‘서울시 직접 시행’은 2011년 사업계획 변경 때 주민들이 부담 가중을 우려하자, 이를 달래기 위해 서울시가 내건 ‘협상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센 반발이 뒤따른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서울시는 “사업 시행은 SH가 해도 당초 약속한 대로 주민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시 설득에 나섰다. 주민들은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 의견을 받아들였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17년 12월, 다시 변경 방침을 수립했다. 주민 부담을 없애기 위해 관련 조례를 개정한다는 내용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 방침은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쳐 2019년 10월 고시됐다. 변경된 정비계획에 따르면 주거지 보전사업 부지에는 총 698세대가 들어서게 됐다.

같은 시각 백사마을은 주민들의 거주가 어려울 정도로 주거환경이 악화됐다. 서울시는 안전사고 예방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조기 이주를 권고했다. 주민들은 몇 년 안에 재개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서울 도처로 전셋집을 구해 나갔다.

주민들의 바람대로, 최근까지도 사업은 차근차근 진행돼왔다. 지난해 3월 사업시행인가가 나왔고, 12월에는 GS건설로 시공자 선정을 마쳤다.

주민들은 분양신청·관리처분 등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시에 “임대주택 매입비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2017년 12월 방침이 잘못됐다”며 “주거지 보전사업의 임대주택 매입비를 추가로 줄 수 없다”고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

주민대표회의 측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들에게 “공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매입비를 결정하는 대신 주거지 보전사업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는 “원래 임대주택을 짓기로 한 땅에 주거지 보전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 서울시”라며 “본인들이 제안한 것이고, 공사비가 더 많이 들어갈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주민들 설득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또다시 정비계획 변경안을 수립하고 결정하면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게 뻔한데, 그때까지 폐허가 된 마을을 그냥 두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용을 이유로 주거지 보전사업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만약 해당 부지에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면, 이는 2009년에 추진하던 계획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의 ‘10년 공염불’에 시간만 날린 셈이다.

10년 표류 사업 본궤도 올랐지만… 
시 ‘공염불’에 또다시 지연 위기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울시가 ‘딴지’만 걸지 않았어도 이미 그 자리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고 남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주민들의 주장 일부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서울시의 매입비 전액 부담 약속’을 두고 “2012년 관련 조례가 변경된 건 맞다”면서도 “다만 서면에는 ‘협의해서 한다’고 표현돼있을 뿐, ‘전부 부담한다’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조례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구두상으로 어떤 합의가 오고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그동안 ‘가급적 계획에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은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시가 공사비 부담을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그와 관련해 최종 입장을 결정한 바 없고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며 “며칠 전에 SH가 자료를 넘겨줘서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공염불 논란’에 대해 묻자 “임대 아파트를 건설하는 방안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했을 뿐, 그렇게 하기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이에 연관된 지적들에는 아직 답변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곤경에 처하는 것은 주민들이다. 주민대표회의 측은 “이미 사업 진행을 위해 돈을 미리 당겨 쓴 게 있다”며 사업이 지체될수록 주민들이 져야 할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을 밖으로 나가 있는 주민들의 전세 재계약 날짜가 돌아오고 있다”면서 “집값이 오르면서 전세금 부담도 점점 커져가는데, 사업이 지지부진해서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행사 SH는 내년에 착공을 시작해 오는 2026년 10월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대로 사업 진행이 늦춰지면 정해진 시간 안에 사업을 마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주민들은 “서울시 결정만 떨어지면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민 대다수가 빠른 재개발을 원하고 있고, 이주도 마무리 단계라 기존 건물 철거도 금방 끝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초 GS건설과 시공 계약도 끝냈다.

55년 흘러도
발만 ‘동동’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단체 행동도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로 인해 개발이 계속 늦어지면 서울시를 상대로 집회나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5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주민들은 먼 옛날 좁은 천막으로 내몰렸던 그때처럼, 대책 없는 조치만 남발하는 공권력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신세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울 달동네 재개발 현주소

백사마을과 함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성북구 정릉골·강남구 구룡마을·서초구 성뒤마을 역시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다만 진행 상황은 제각각이다. 정릉골 사업은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으며 순항하고 있는 반면, 구룡마을과 성뒤마을 사업은 토지보상에 얽힌 갈등을 풀어내지 못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정릉골구역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해 지난달 11일 현장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는 GS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 등 대형 건설사 8곳이 참여했다. 조합은 오는 26일 입찰을 마감할 계획이다.

구룡마을은 2020년 실시계획을 인가받고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토지보상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무허가 주택 원주민과 토지주 등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충돌도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올해 착공, 2025년 완공’이라는 기존 사업계획 이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모양새다.

성뒤마을도 토지보상 절차가 걸림돌이다. 2019년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짓겠다던 계획이 3년째 미뤄지고 있다. 마을이 백사마을만큼 오래돼 매년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철거‧착공 일정도 토지보상 절차와 맞물려 계속 미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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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