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⑨과거의 성공지상주의자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22 09:36:42
  • 호수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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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데 그럴 수도 있쥬, 뭘.”

“너무 지나치니까 그렇지. 자기가 이 세상 대한민국의 황제야 뭐야, 원… 외국 학자가 자기를 칭찬하면 또 얼마나 과대망상 싱크홀에 빠져 우쭐거리는지 꼴 사나울 지경이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우주적 행보, 남이 하면 정신빠진 보따리상 지식인 매판자라고 가래침 방울을 튀기니… 어찌 보면 허경영인지 허본좌인지 하는 자칭 신인(神人)과 유사한 점이 전혀 없진 않은 듯싶어.” 

허본좌

“흐흐, 어찌 그런 비교를….” 

“물론 똑같진 않으나마, 신흥 종교 교주의 독재성과 지나친 자기애를 맘속에 지닌 면은 꽤 유사하단 얘기야. 만약 그런 점만 극복한다면 두 분 다 불세출의 위대한 천재로서 역사에 남겠지만….” 


“길게 남으면 뭣 하겠수. 현재 세상만 한바탕 멋지게 살다 가면 되지.”

“아무튼, 자네 스승인지 뭔지 모를 도올 선생과 허본좌는 죽은 사람의 영혼까진 저주하지 않던데 자넨 왜 그리 경망스레 욕설을 지껄이나, 응? 자기 자신이 진실하지 못한 채 남을 욕하면 그건 곧 자기에게로 돌아갈 텐데, 무섭지도 않은가?” 

피에로씨는 물크러진 홍시 같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흐름을 잘못 보았수다. 그분들은 피래미 따윈 건드리지 않고 가물치나 상어 고래 같은 거물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거죠. 아, 이 세상에 나만큼 인생의 부조리를 뼈저리게 겪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흥, 허풍떨지 말고 그 같잖은 색안경을 벗어 버려.”

“죽은 사람을 비판하는 건 꼭 내 속의 울분을 토하려는 목적이 아니우. 현실의 추악을 반성하고 넘어서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자는 얘기지.” 

“과거를 용서하고 잊자는 건 싸그리 망각해 버리고 희희낙락하자는 취지는 아니야. 설령 추악할지언정 굳이 흙탕물을 휘저어 쓰레기 따윌 끄집어 올리지 말고 그걸 거름 삼아 더 풍요로운 미래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마인드라구. 현재 생활상의 괴로움이 설령 추한 과거로 인한 것일지언정 좀 참고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 성공한다면… 더러운 쓰레기 찌꺼기도 추억 속에선 혹시 아름답지 않을까?”


“공인 중개사를 지망하시는 분이 의외로 너무 감상적이시네요. 하하, 성공! 성공의 추억! 하하하….” 

과거의 성공 지상주의자 피에로씨는 발작적으로 웃어댔다.

“허파에 구멍 난 듯이 개지랄 떠는군.”

“흠, 내가 과거지사를 싹 잊어버리고 성공 향해 일로매진하다가 오히려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 아니겠수. 도대체 왜?… 그건 바로 과거를 내 맘 내 주관적으로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지. 잊을 수 없는 것을 망각하려 애써 본들 마치 소화되지 않은 똥덩어리처럼 변소 속에 남아 떠도는걸.”

“과민반응, 알레르기, 목표 없는 자의 공상 짓거리야.”

“그런 썩어빠진 똥덩이보다 못한 사고방식 땜에 여지껏 중개사 보조 후보로 남아 있는 거유. 흠, 아니 대체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랴. 배 속의 똥덩어리가 싹 빠져 내리면 훨씬 시원스러울 텐데, 뭔 죄악이 아까운 양 제 양심과 몸뚱이보다 더 꽉 껴안고 있으니….” 

“허헛, 무일푼 어릿광대와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동급으로 어림하다니… 멍청한 자의 과대망상은 신도 구원해 줄 수가 없어.” 

피에로씨의 ‘사생관’ 일장연설
끝없는 헛소리에 혀 차는 청중

“빈손으로 왔다가 맥 빠진 찬 손으로 가는 인생, 하지만 꽉 쥐고 가는 사람도 많을 거야요. 과연 그 허기진 손 속엔 뭣이 들어 있을까?”

“죽어 보면 알당가.”

“내 생각에… 그 손아귀 속엔 아집과 아견, 그것도 자기 자신보다 자식들을 위한 대대손손 부귀 욕망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잖나 싶어. 한국 사회 자체가 욕망의 도가니니까 말요. 자유라는 단어만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지 자율하는 에티켓은 없어. 사실상 자율이 훨씬 더 어렵거든. 주색잡기 즐기러 가는 내리막길은 유쾌하겠지만, 신을 향해 오르는 길은 고통스러우니까. 그런데 왜 가느냐? 꼭 신을 향한 길이 아닌 현실에서도 감미 속에선 더 이상 단맛을 느낄 수 없으나 고미(苦味) 속에선 진짜 감로수가 흘러나오거든, 하핫….”

“참 사설도 길군. 그래서 요점은?”


“돌고 도는 세상과 인생… 정치니 경제니 문화니 법률이니 뭐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섹스 욕망이 인간들의 성격대로 변질된 게 아니겠수?”

“나한테 묻지 말고 빨리 골자나 말하라니까.”

“흥, 죽은 자들의 죄악에 대한 망각은 참된 용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악에 대한 두리뭉실한 면죄부일 뿐이야. 그게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는 건 동서고금의 세계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는가? 시야를 좀 넓혀 봅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인간 아닌 범죄 로봇들을 일일이 색출해 그 전동 버튼을 눌러 꺼 버렸어. 아니, 지금까지도 샅샅이 찾아내 응징하고 있지. 그건 인간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추악한 과거를 바르게 넘어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이리라.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반민족 매국노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간 덕분에, 친일파 자식들은 화려 찬란한 거리를 활보하고, 독립지사의 자손들은… 음, 나도 포함될런지 몰라… 지하 골방이나 하숙에서 골골거리며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실정이거든. 살아가는 모습도 죽어가는 모양도 아마 퍽 다르겠지요. 흠, 내가 무식하긴 해도 동서양의 생사관(生死觀)이 다르다는 건 좀 알죠.” 

“사생관이라고 해야지.”

“비슷한걸 뭐.”

“좀 많이 다르겠지. 잘 모르지만….” 


거꾸로

“흠, 아무래도 사생관이라 하면 죽음을 삶보다 앞에 놓으니까, 지구가 거꾸로 돌아간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를테면 지구는 늘 제대로 돌고 있는데 사람의 의식이 반대로 돌리려고 애쓴달까. 반민족 범죄자들, 친일 친미파들, 금융 사기꾼 모리배, 돈 많은 오입쟁이들은 거꾸로 돌면 더 이익이기 땜에 한국 땅 위에 인조 바벨 궁전을 점점 더 지으려고 발광하죠 뭘.” 

“에잇,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구먼.”

중개업 지망생은 혀를 차며 슬슬 내려가 버렸다. 피에로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계속 지껄여댔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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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