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⑧사생관 놓고 입씨름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1.15 08:29:28
  • 호수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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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사리사욕을 위해 광분하다가 남의 집안과 가족을 풍비박산낸 자라도 일단 죽으면 면죄부를 받는다. 

반면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피해자가 자살한다면 바보 멍청이로 조롱받고 마는 세상이다. 아름다운 허장성세 대한민국의 속살 속모습이리라.

허장성세
 
피에로씨는 단순한 증오심으로 인해 죽은 이에게 욕설을 뇌까렸는지 모르되, 급기야 한국 사람의 사생관(死生觀)에 불을 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사실상 대부분의 하숙생은 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 또한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를 살벌한 세상에 처해 있긴 하나, 일단 생존경쟁에서 이겨 죽음보단 삶과 손잡고 싶지 않았을까.

혹은 이미 사물화(死物化)되어 곧 지수화풍으로 변해 사라질 텐데 뭐 그리 미워할 이유나 시간이 있으랴 싶었는지 몰랐다. 살아내기도 바쁜 판에….


그런데 개중엔 피에로씨에게 반박하며 비아냥거리는 하숙생도 있었다. 

“굳이 그런 쌍욕까지 할 건 없잖아요? 이미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귀신을 탓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구. 흥, 좀 사람답게 너그러워져 보세요. 당신이나 나나 누구든 언젠간 죽고 말 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계속 악이 판을 치는 거여! 반성이 없는데 어떤 개선이 있으랴? 사람이 죽을 땐 본성으로 돌아간다지만… 과연 몇 명이나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칠까. 대부분 아집 아견을 벗어나지 못한 채 중음계를 떠돌며 흐느끼다가 만만한 사람 속에 들어가 귀신 짓을 벌이는 거지. 그러니만큼 우리가 죽은 자를 비판하는 건 사리분별을 깨달아 천당으로 가라는 축복 기원과도 같은 셈이지.”

피에로씨는 강한 어조로 지껄였다. 

“그런 건 천진무구한 아기나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잖아요. 아저씨는 죄가 없나요?”

명문대를 지망하는 삼수생이 물었다. 

“흐흐, 죄악이 많으니깐 천국으로 떠오르지 못한 채 뚜쟁이 노릇이나 슬슬 하는 거지 뭘.”


“뚜쟁이라니, 그게 여기서 무슨 필요 있어요?” 

순수한 청년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피에로 씨는 능글스레 웃었다. 

“뚜쟁이는 이 세상에 잔뜩 퍼져 있는걸. 대학 들어가기 전에 이것 하나만 잘 터득해도 여기서 하숙한 보람이 있을 거야.”

“네?”

“일단 죽고 난 후 혼령이 사라져 버리는지 남아서 허공을 떠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의상 살아 떠돈다고 가정해 보자구. 온갖 욕망(물질욕, 성욕, 명예욕 등등)으로 가득 찼던 육신을 벗어 둔 채 하늘로 떠오른 혼백은 아마 혹 안타까움 때문에 울부짖을지도 몰라. 아아, 여기서 내려다보니 그토록 애면글면 중요시했던 것들이 다 거품처럼 부질없구나. 아, 모조리 버릴 수 있으련만 내가 직접 저지른 악업은 화인(火印)인 양 뇌리에 박혀 도저히 어쩔 수가 없구나! 아, 이 무거움을 어찌할꼬… 그런 절박스러운 순간, 지상에서 과거의 죄악을 밝혀 욕설로나마 단죄해 준다면 혼백은 문득 깨달아 쇠사슬 몽치를 벗어낼 수도 있잖을까? 흠, 이게 내 철학이자 사상이지.” 

피에로씨와 하숙생 말싸움
도올에 관한 엇갈린 평가

피에로씨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따, 그 개똥철학 참 유치 찬란하군. 이봐, 학생은 괜히 잡소리에 물들지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구. 쯧쯧,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과 이삼류 잡대에 들어가는 건 천지 차이니까 말야.” 

부동산 중개업을 지망하는, 늙수그레한 중늙은이인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생이 혀를 차며 주절거렸다. 

“작작하지 그랴. 그게 뭔 철학이니 사상이라구. 중뿔나게스리… 죽은 사람 탓하기보다 제 앞가림이나 잘할 노릇이지.”

“흐흐, 나 원 참… 도올 선생 같은 괴짜 양반도 철학 사상가라고 자칭하는데… 그건 바로 누구라도 이 시대를 진실하게 산다면 사상가로서 나설 수 있단 얘기지 뭐유, 응? 하다못해 동경대도 모자라 하바드 대학까지 나오신 분도 겸허한데… 만년 중개사 수험생님께서 중개하려기보다 파토를 만드시면 안 되죠. 흐흐….”

“파토는 뭔 개파토 같은 소리야! 당신 같은 어릿광대가 없다면 아마 이 세상은 훨씬 더 잘 굴러갈 텐데.” 


피에로씨는 넓은 미간을 찌푸리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 숨이 막히는구먼.” 

“쳇, 그리구 도올인지 뭔지 하는 양반이 겸허하긴 뭐가 겸허해? 하늘 꼭지까지 찌를 듯 오만 독선으로 가득 찬 인간인걸. 일종의 광대 삐에로랄까. 제 잘난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 고려대를 깔보는 척하면서도 입만 열면 고대 고대 은근스레 자랑이야.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학벌주의자 같아. 동경대, 대만대, 하버드대… 그 자의 말에 허풍이 얼마나 섞여 있을까. 최소한 50%는 섞여 있지 않을까? 만일 다른 석학이 그 따위로 학벌 자랑을 했다간 곧장 매장됐을 텐데… 아마 삐에로 같아서 웃어 넘기는지도 몰라.”

“흠, 그래도 펄떡펄떡 뛰는 생선 같은 활기는 느낄 수가 있잖아요. 침이 튀는 노가리 속에 재미와 진실성을 버무려 넣는 게 쉬운 노릇은 결코 아니니깐 말유.”

“흥, 진실은 뭔 놈의 진실! 그 양반이 청산유수인 건 인정하지만, 강의든 책이든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류의 허장성세 속에 알맹이는 별로 없는걸.” 

“자기 스타일로 일가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런 말을 하슈. 만년 중개사 지망생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도 어려울 텐데.” 


“흥! 자기류란 일반 보편성의 토지 위에 건축되어야만 구경꾼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과 개성미가 생겨나 유지되는 거야. 헌데 그 양반은 정말 유치스러운 허방이 하나 있어. 뭔지 알아?”

“…….” 

“알 턱이 있나. 무애 양주동 선생의 소위 국보론을 빌어 자칭 우주보라고 떠벌이는 사람이 때론 어린애보다 무지해져 싱크홀 같은 허방 속에 빠져 버리는 거야.”

“응…?” 

“만일 어떤 사람이 도올 양반을 칭송하면 설령 그 자가 바보 멍청이더라도 수재로 가공해 버려. 반면 자기를 비판하거나 대접이 좀 소홀하면 아무리 천재 진인일지언정 꺼병이 소인배로 침 튀기며 깔아뭉개 버리더군. 헛 참….”

대석학 사상가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슈. 너무 그리 티잡지 마슈.”

“작은 잡티일 수도 있겠으나 대석학 사상가님껜 치명적일 만한 흑점이지. 그러한 순간엔 이성도 지성도 모두 아집 아견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 내려가 버리니까.”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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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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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