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직 끝나지 않은 인천 전세사기 피해담

보증금 떼먹고 입주자 고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인천 전세사기 가해자가 점점 더 뻔뻔해지고 있다. 법원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지만 보증금 반환도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자신을 고발한 피해자들을 오히려 역고소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돈이 없다. 마음대로 해봐라”며 철저히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지역에 구축 빌라 247채를 보유하면서 전세사기를 벌인 정씨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고발해 봐라”며 피해자들에게 말하던 정씨는 법적 제재를 받은 이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되돌려 주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피해자들과 또 다른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법적 공방

앞서 <일요시사>는 ‘나쁜 집주인과 중개사 ‘임대 깡패’ 커넥션 추적’이라는 정씨의 전세사기 행보에 대해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당시 <일요시사>는 정씨가 소유한 주택을 다수 관리하는 A 중개사무소를 찾아가 정씨가 내놓은 매물 상태와 전세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 피해담 등을 다뤘다.

현재 정씨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중 일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반환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씨는 남은 보증금 처리에 ‘나 몰라라’로 일관 중이다. 게다가 이미 경매로 넘어간 건물을 단기 월세로 내놓으며 계속해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정씨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정씨는 지난해 전세사기 혐의로 3개의 재판에 기소됐다. 정씨는 지난 1월16일 세 재판 중 한 재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남은 재판은 아직 변론준비기일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구축 빌라 250여채를 가지고 사기 행각을 벌였지만, 형량이 너무 낮게 나왔다고 토로했다.

법조계서도 정씨의 형량은 터무니없이 낮다고 말한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이번 선고는 전세사기로 고소한 사람이 한 명이라 형량이 낮게 나온 거 같다”면서도 “정씨가 전세사기로 고소된 사건이 남은 만큼 추후에 사건이 병합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피해자가 한 명이라고 해도 현재 전세사기와 관련해 법정 최고형을 내리는 것을 고려할 때 이해가 안 되는 선고이긴 하다”면서도 “최근 건축왕 사건이 2심서 감형된 후 대법원서 형량이 확정된 후 추가 기소건서 법정 최고형을 받은 바 있다. 정씨 사건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사기 혐의 1건으로 징역형 집행유예
남은 재판으로 형량 증가 가능성 ↑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건축왕 사건을 언급하며 “다수 피해자를 상대로 한 범죄의 경우에도 피해자별 이익액이 5억원 미만의 경우 특정경제범죄법이 아니라 일반사기 경합범으로 의율하게 돼있다”며 “그 법정형이 징역 15년에 불과하다는 실정법의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고는 피해자가 한 명이고 이익액도 1억원대라는 점이 낮은 형량의 이유로 보인다. 다만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낙인이 찍혀있는 점 등을 볼 때 추가 기소 사건서 법정 최고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검찰도 지난 1월20일 정씨의 형량이 낮다고 판단하고 항소를 제기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전세사기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는 기조를 띄고 있다. 현행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경합범 가중을 통해 징역 15년까지 처벌할 수 있다. 이는 2011년 설정·시행됐는데, 이후 권고 형량 범위가 수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이하 양형위)는 범죄 양상이나 국민 인식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점, 전세사기와 보이스피싱 사기 등 조직적 사기 유형에 대한 처벌 강화 요구가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지난해 4월 사기 범죄 양형 기준 수정안 마련에 돌입했다.

양형위는 수정안에서 이득액 300억원 이상 일반 사기와 이득액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의 조직적 사기 가중영역 상한을 징역 17년으로 상향하면서 죄질이 무거운 경우 특별 조정을 통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조직적 사기도 징역 11년 이상이었던 가중영역을 무기징역으로 높였다.

양형위는 또 감경 요소 중 ‘공탁 포함’ 문구를 삭제해 실질적 피해 회복이 이뤄진 경우 등만 감경 사유로 참작하기로 했다.

형량 증가
가능성은?

수정안에 따르면 정씨는 추가 기소건으로 징역 17년형이 나올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전세사기로 가장 많은 형량을 받은 일당은 이른바 ‘건축왕’ 일당이다. 건축왕은 처음 기소된 사건서 7년형을 확정받았으며 추가 기소된 사건에선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손승범) 20일 열린 선고공판서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왕 남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공범 30명 중 15명에게는 무죄를, 나머지 15명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결심공판서 남씨에게 무기징역을, 공범 30명에게는 징역 2∼1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남씨의 사기 혐의 액수 305억원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남씨가 2021년 3월 1일부터 피해자들의 임대차보증금을 적시에 반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이 시점을 기준으로 신규 임대차 계약금, 임대차 계약금의 증액분만 편취 금액(총 174억원)으로 인정했다.

범죄단체조직과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전세사기를 위해 범죄단체를 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건축왕 일당은 지난 2021년 3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372채의 전세 보증금 305억 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건축왕은 2018년 1월 동해 망상지구 사업 부지를 확보하려고 건설사의 신축 아파트 공사 대금 40억원을 빼돌리는 등 회사 대금 총 117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적반하장
표리부동

건축왕은 처음 기소된 사건(191채·148억원) 1심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지난해 8월 진행된 항소심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된 후 대법원서 형량이 확정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씨는 피해자들과 법적 공방을 진행 중이다. 피해자 A씨는 정씨를 강제집행면탈죄로 신고했다. 정씨가 돈이 없다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으면서도 부동산을 통해 불법적인 단기월세 이익을 취득하고 있다는 것이 고발의 주요 골자였다.

A씨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현재 단기월세를 살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 B씨의 월세 계약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강제집행면탈죄는 형법 제327조에 명시돼있다. 강제집행면탈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해 채권자를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전세금 반환 소송서 승소하면 집주인이 가진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강제로 처분해 전세금을 변제받을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집주인이 전세사기라는 점이 인정되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니, 정씨의 채무 상태에 따라 그가 소유한 주택을 부동산 경매로 강제로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피해자가 강제집행면탈 고소하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맞고소

이어 “정씨가 해당 건물의 권리를 명목상으로라도 부동산에 일임하고 뒤에서 단기월세를 현금으로 받았다면 강제집행면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이를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했다. 경찰이 불송치하자 정씨는 기다렸다는 듯 A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무고죄로, 월세 계약서를 유출한 B씨를 개인정보유출죄로 고소했다.

경찰은 현재 A씨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무고죄는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B씨의 개인정보유출은 혐의가 있다며 송치할 계획이다. A씨에 따르면 당시 수사하던 경찰은 “공익을 위해서 제보한 것은 맞지만 개인정보유출은 유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공익 목적의 내부 고발이더라도 피고발인 동의 없이 다른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해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유죄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도 있다.

앞서 부산지법 형사12단독 지현경 판사는 지난해 11월7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법원이 인정한 범죄사실을 보면 A씨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 B씨가 근무수당을 부정 수급했다며 B씨 주민등록번호, 주소, 휴대전화번호를 기재한 고발장을 경찰서에 제출했다.

A씨는 회사에서 특정 목적으로 발송한 공문에 나온 B씨 개인정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해당 판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공익 목적으로 고발을 진행했지만 결국 개인정보유출로 벌금형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여주기식
합의 요청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정씨는 남은 전세사기 재판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합의를 통해서 형량을 낮추려고 수사기관에 피해자들의 연락처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피해자들이 정씨에게 연락하자 “줄 돈이 없다” “너 앞길이나 잘살아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사기관에는 반성하는 듯 합의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 감형을 노린 것이라고 분석된다.

정씨의 이 같은 행보에 관해 <일요시사>가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정씨의 모습에 엄벌탄원서를 받고 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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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