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한겨울 쫓겨나는 판자촌 사람들

“대책이라…얼어 죽을 수밖에요”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철준 기자 =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과 달동네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위해 개발하려 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삶의 터전을 갑자기 빼앗긴 주민들의 원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축물이라 낮은 보상금에 개발 이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 주민들은 눈물 흘리고 있지만 서울시는 물러나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17년 서울에 있는 모든 판자촌 개발계획을 세운 후 첫 삽 뜨기를 앞두고 있다.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의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계획이 수립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거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최고 25층, 3520세대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 곳은 2011년 서울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개발 방식을 놓고 갈등이 이어지다 2016년에서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최근 가구 수를 늘린 변경안을 확정했다.

시는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작업을 마치고 내년 착공에 돌입할 계획이다.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도 최고 20층 1600세대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한다. 성뒤마을은 당초 최고 7층에 813세대 아파트 단지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서울시는 토지 활용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용적률을 높였다. 시는 내년 착공에 돌입해 2028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은 최고 20층, 2437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일대 서울 도심 개발 여파로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형성된 주거지다.

백사마을은 2008년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고 이듬해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손을 떼며 사업이 멈춰 섰다. 그러던 중 SH공사가 사업시행자로 변경되며 사업은 다시 본궤도에 올랐고, 내년 착공 및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북구 정릉동 정릉골은 1411세대 규모 고급형 테라스 하우스로 재탄생할 계획으로 내년 하반기 착공에 돌입한다. 아울러 서대문구는 홍제동에 있는 낙후지역인 ‘개미마을’ ‘홍제4재개발 해제구역’ ‘문화마을’ 일대를 묶어 신속통합기획 재개발로 추진하기로 했다.

개발계획은 수립됐지만 지자체 및 정부와 거주민들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구룡마을, 성뒤마을, 개미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6일 성북구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성뒤마을을 찾았다. 도로변에 있는 고물상을 지나치고서야 도착한 윗성뒤마을은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막함 속에 비 내리는 날씨와 더불어 각목 등으로 막힌 대문과 찢어진 현수막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2017년 개발계획 따라 첫 삽 임박
끝나지 않은 갈등…낮은 보상금 고수

가벽으로 이뤄진 집들은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문에는 “기존 거주자의 이주에 의해 공가 폐쇄된 주택으로서 무단침입, 점유, 사용 또는 훼손 시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및 제366조(재물손괴)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는 서울주택공사의 안내문만이 붙어있었다.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아랫성뒤마을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가구는 이주를 마쳐 윗성뒤마을과 마찬가지로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 뿐이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주민은 “이주해야 한다는 안내는 서울주택공사에서 2년 전부터 받아왔다”며 “하지만 그들이 지급한다는 이주비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정년이 지난 사람들로 폐지를 줍거나 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갖고 있는 목돈도 없어 주택단지가 건설된 이후에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준다고 해도 다시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인데도 서울주택공사는 내년 초부터 공사를 시작해야 하니 여기(성뒤마을)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서울주택공사의 보상금 대부분은 토지주에게 몰렸다”며 “실제로 성뒤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적은 보상을 받았다. 때문에 적은 보상금에 60년 넘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지방으로 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성뒤마을 입구 대로변부터 이어져있는 고물상 단지는 성뒤마을 재개발에 더욱 격노하고 있다. 사당역 1번 출구서 지도를 따라 성뒤마을주택단지로 향하면서 볼 수 있는 현수막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성뒤마을상인연합회는 남부순환로(8차로)를 따라 설치한 펜스에 ‘SH는 들어라! 현실적 보상 안 하면 죽어도 이주 못한다!’ ‘서울시와 SH는 우리 소상공인들을 다 불태워 죽일 셈이냐!’라고 적힌 새빨간 현수막을 내걸고 서울주택공사의 제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상인연합회 소속 업주들은 서울주택공사가 토지주들에게는 보상을 제대로 해줬지만 20~30년 넘게 땅을 임차해 장사하던 상인들에게는 최소 수천만원서 최대 2억원 정도의 헐값 보상안을 내밀었다고 토로한다. 서울주택공사가 지장물 조사를 마친 후 이들이 생업에 활용하던 기계 등 물품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금액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고물상
부지는?

이들은 낮은 보상금을 받기보다 인근에 고물상·석재상 등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운영할 부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고물상 업주는 “1960~1970년대 강남 개발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땅을 임차해 고물상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쭉 해오던 사업을 그만두라고 나가라면서 정원형 주택단지가 들어온다는 부지 주변에 벤츠 사업장, 버스 및 택시 회사에 넘기며 기만하고 있다”며 “택시·버스가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 부지를 마련해줬다고 하는데 벤츠와 가스충전소도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고 판단해 부지를 마련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격분했다.

이어 “서초구와 강남권서 하루에만 280~320톤가량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는 우리도 공익성을 띈 환경미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대체 부지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성뒤마을 고물상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업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다. 게다가 현행법에 따라 고물상들에게 이전비와 영업손실 명목의 배상안을 충분히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성뒤마을은 자진 이주 기간이다. 상인회와 서울주택공사는 명도소송도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명도소송 기간이 6개월서 8개월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성뒤마을 주민과 상인들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을을 비울 수밖에 없다. 60년가량 살던 집터와 생업에 대한 마땅한 대책도 없이 쫓겨나게 되는 셈이다.

명도소송은 부동산 인도명령 신청 기간이 지나거나 채무자·소유자 또는 점유자 등 인도명령을 받는 사람 이외의 사람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그 부동산을 점유하기 위해 넘겨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명도소송 판결이 나고 집행문이 발효되면 강제집행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할 수 있다.

강남 최대 규모의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지자체, 서울주택공사의 갈등은 더 심하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10m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분양권용
농성 아냐”

지난달 23일 강남구청서 거주 사실 확인서 발급을 거절하자 구룡마을 주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그 위에 올라 농성을 펼치다가 6명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의 농성은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획득하기 위한 과열된 투기꾼들의 모습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일요시사>가 지난달 26일 직접 가본 구룡마을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구룡마을은 단순히 분양권 등 돈이 목적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사투 직전의 모습 같았다.


<일요시사>는 마을 망루 앞에서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인 유귀범씨를 만났다. 유씨는 “구룡마을은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생겨나기 시작해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주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며 “36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정부도 주민들을 30년 넘게 방치해 왔다”고 일침했다.

이어 “방관만 일삼던 정부가 도시개발법에 의해서 땅을 강제 수용하고 개발한다고 하며 우리를 거주민으로 취급도 안 하고 있다”며 “지금 강남구청에서는 구룡마을이 주거지가 아니라 간이공작물로 사람이 아닌 가축 등을 키우는 곳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양재대로 478(개포동)’이라는 주소에 등록됐고 주민세도 내고 있는데 갑자기 주민으로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법(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무허가 판잣집 건축물 거주자는 토지보상을 못 받지만 예외적으로 1989년 1월24일 이전부터 실거주가 확인되면 토지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분양권을 원한다고 보고 있지만 이들은 그저 간이공작물에 사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 대우를 받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구룡마을 단지에 주민 주택타운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씨는 “사람들은 거주민들이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분양권을 받게 되더라도 주변 부동산 시세를 고려하면 개발이 완료된 이후 다시 구룡마을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현대화된 구룡마을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간이공작물은 거주 인정 안 돼”
“편법 아닌 현행법 따라 해달라”

2020년도 국토부 훈령을 보면 도시개발지구에 사는 거주민에게는 토지를 조성 원가로 매매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해당 훈령은 지난 5월에 법제화됐다. 유씨는 “간이공작물로 거주 사실 자체를 인정 못 받고 있으니 거주 사실을 인정받은 후 법에 따라 개발지구의 땅을 사는 것이 지금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건설사와 협의를 통해 땅을 살 수 있게 되면 건설사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은 후 해당 건물을 담보로 건설사에 공사대금을 납부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평균 10평의 집을 생각했을 때 지금 구룡마을 개발계획에 있는 용적률(250%)로는 약 8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주민 주택타운 건립이 가능하다”며 “평수를 낮추거나 용적률을 올리면 지금 거주하는 약 1000세대 모두 수용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유씨는 이제야 노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주니 더욱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는 “6개월 동안 강남구청에 시위를 해도 관심이 없다가 망루를 설치하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등 취재하러 왔다”며 “우리가 편법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 현재 행정상 거주가 등록돼있고 현행법상 토지를 조성 원가에 사겠다는 게 우리 행동의 핵심임이 널리 알려지고 지자체서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갈등의 또 다른 불씨도 존재한다. 다수의 주민들은 위원회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분양권 획득을 추진하고 있다. 한 구룡마을 주민은 “분양권을 위해 수년 전부터 협상을 해왔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주민들(위원회)이 생겨났다”며 “지금 시위에 참석하는 주민들은 거주 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람들 때문에 거주 사실이 인정된 사람도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룡마을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위원회 소속 한 주민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곳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위원회 외 주민들도 힙을 합쳐 서울시에 우리 요구를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는 판자촌과 달동네를 비교하기 위해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개미마을도 찾았다. 앞서 방문한 판자촌들과 달리 개미마을은 패널과 나무, 가벽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벽돌로 지어졌지만 무허가인 건물들이 언덕에 줄지어 있었다. 

달동네
사정은?

한 개미마을 주민은 “1950년대 6·25전쟁 후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이곳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거주하기 시작한 이 마을은 토지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토지 소유권도 불분명하다”며 “지난 2010년대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고, 서대문구청장이 개미마을 내 들어설 공동전원주택인 타운하우스에 원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입주에 필요한 돈이 없어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일요시사>가 만난 주민들 모두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삶의 터전서 강제로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개발 속도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 적게는 20년, 많게는 4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오랜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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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