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한겨울 쫓겨나는 판자촌 사람들

“대책이라…얼어 죽을 수밖에요”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철준 기자 =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과 달동네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위해 개발하려 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삶의 터전을 갑자기 빼앗긴 주민들의 원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축물이라 낮은 보상금에 개발 이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 주민들은 눈물 흘리고 있지만 서울시는 물러나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17년 서울에 있는 모든 판자촌 개발계획을 세운 후 첫 삽 뜨기를 앞두고 있다.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의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계획이 수립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거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최고 25층, 3520세대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 곳은 2011년 서울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개발 방식을 놓고 갈등이 이어지다 2016년에서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최근 가구 수를 늘린 변경안을 확정했다.

시는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작업을 마치고 내년 착공에 돌입할 계획이다.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도 최고 20층 1600세대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한다. 성뒤마을은 당초 최고 7층에 813세대 아파트 단지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서울시는 토지 활용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용적률을 높였다. 시는 내년 착공에 돌입해 2028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은 최고 20층, 2437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일대 서울 도심 개발 여파로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형성된 주거지다.

백사마을은 2008년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고 이듬해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손을 떼며 사업이 멈춰 섰다. 그러던 중 SH공사가 사업시행자로 변경되며 사업은 다시 본궤도에 올랐고, 내년 착공 및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북구 정릉동 정릉골은 1411세대 규모 고급형 테라스 하우스로 재탄생할 계획으로 내년 하반기 착공에 돌입한다. 아울러 서대문구는 홍제동에 있는 낙후지역인 ‘개미마을’ ‘홍제4재개발 해제구역’ ‘문화마을’ 일대를 묶어 신속통합기획 재개발로 추진하기로 했다.

개발계획은 수립됐지만 지자체 및 정부와 거주민들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구룡마을, 성뒤마을, 개미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6일 성북구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성뒤마을을 찾았다. 도로변에 있는 고물상을 지나치고서야 도착한 윗성뒤마을은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막함 속에 비 내리는 날씨와 더불어 각목 등으로 막힌 대문과 찢어진 현수막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2017년 개발계획 따라 첫 삽 임박
끝나지 않은 갈등…낮은 보상금 고수

가벽으로 이뤄진 집들은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문에는 “기존 거주자의 이주에 의해 공가 폐쇄된 주택으로서 무단침입, 점유, 사용 또는 훼손 시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및 제366조(재물손괴)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는 서울주택공사의 안내문만이 붙어있었다.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아랫성뒤마을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가구는 이주를 마쳐 윗성뒤마을과 마찬가지로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 뿐이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주민은 “이주해야 한다는 안내는 서울주택공사에서 2년 전부터 받아왔다”며 “하지만 그들이 지급한다는 이주비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정년이 지난 사람들로 폐지를 줍거나 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갖고 있는 목돈도 없어 주택단지가 건설된 이후에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준다고 해도 다시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인데도 서울주택공사는 내년 초부터 공사를 시작해야 하니 여기(성뒤마을)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서울주택공사의 보상금 대부분은 토지주에게 몰렸다”며 “실제로 성뒤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적은 보상을 받았다. 때문에 적은 보상금에 60년 넘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지방으로 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성뒤마을 입구 대로변부터 이어져있는 고물상 단지는 성뒤마을 재개발에 더욱 격노하고 있다. 사당역 1번 출구서 지도를 따라 성뒤마을주택단지로 향하면서 볼 수 있는 현수막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성뒤마을상인연합회는 남부순환로(8차로)를 따라 설치한 펜스에 ‘SH는 들어라! 현실적 보상 안 하면 죽어도 이주 못한다!’ ‘서울시와 SH는 우리 소상공인들을 다 불태워 죽일 셈이냐!’라고 적힌 새빨간 현수막을 내걸고 서울주택공사의 제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상인연합회 소속 업주들은 서울주택공사가 토지주들에게는 보상을 제대로 해줬지만 20~30년 넘게 땅을 임차해 장사하던 상인들에게는 최소 수천만원서 최대 2억원 정도의 헐값 보상안을 내밀었다고 토로한다. 서울주택공사가 지장물 조사를 마친 후 이들이 생업에 활용하던 기계 등 물품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금액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고물상
부지는?

이들은 낮은 보상금을 받기보다 인근에 고물상·석재상 등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운영할 부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고물상 업주는 “1960~1970년대 강남 개발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땅을 임차해 고물상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쭉 해오던 사업을 그만두라고 나가라면서 정원형 주택단지가 들어온다는 부지 주변에 벤츠 사업장, 버스 및 택시 회사에 넘기며 기만하고 있다”며 “택시·버스가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 부지를 마련해줬다고 하는데 벤츠와 가스충전소도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고 판단해 부지를 마련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격분했다.

이어 “서초구와 강남권서 하루에만 280~320톤가량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는 우리도 공익성을 띈 환경미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대체 부지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성뒤마을 고물상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업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다. 게다가 현행법에 따라 고물상들에게 이전비와 영업손실 명목의 배상안을 충분히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성뒤마을은 자진 이주 기간이다. 상인회와 서울주택공사는 명도소송도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명도소송 기간이 6개월서 8개월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성뒤마을 주민과 상인들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을을 비울 수밖에 없다. 60년가량 살던 집터와 생업에 대한 마땅한 대책도 없이 쫓겨나게 되는 셈이다.

명도소송은 부동산 인도명령 신청 기간이 지나거나 채무자·소유자 또는 점유자 등 인도명령을 받는 사람 이외의 사람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그 부동산을 점유하기 위해 넘겨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명도소송 판결이 나고 집행문이 발효되면 강제집행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할 수 있다.

강남 최대 규모의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지자체, 서울주택공사의 갈등은 더 심하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10m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분양권용
농성 아냐”

지난달 23일 강남구청서 거주 사실 확인서 발급을 거절하자 구룡마을 주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그 위에 올라 농성을 펼치다가 6명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의 농성은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획득하기 위한 과열된 투기꾼들의 모습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일요시사>가 지난달 26일 직접 가본 구룡마을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구룡마을은 단순히 분양권 등 돈이 목적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사투 직전의 모습 같았다.


<일요시사>는 마을 망루 앞에서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인 유귀범씨를 만났다. 유씨는 “구룡마을은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생겨나기 시작해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주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며 “36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정부도 주민들을 30년 넘게 방치해 왔다”고 일침했다.

이어 “방관만 일삼던 정부가 도시개발법에 의해서 땅을 강제 수용하고 개발한다고 하며 우리를 거주민으로 취급도 안 하고 있다”며 “지금 강남구청에서는 구룡마을이 주거지가 아니라 간이공작물로 사람이 아닌 가축 등을 키우는 곳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양재대로 478(개포동)’이라는 주소에 등록됐고 주민세도 내고 있는데 갑자기 주민으로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법(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무허가 판잣집 건축물 거주자는 토지보상을 못 받지만 예외적으로 1989년 1월24일 이전부터 실거주가 확인되면 토지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분양권을 원한다고 보고 있지만 이들은 그저 간이공작물에 사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 대우를 받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구룡마을 단지에 주민 주택타운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씨는 “사람들은 거주민들이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분양권을 받게 되더라도 주변 부동산 시세를 고려하면 개발이 완료된 이후 다시 구룡마을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현대화된 구룡마을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간이공작물은 거주 인정 안 돼”
“편법 아닌 현행법 따라 해달라”

2020년도 국토부 훈령을 보면 도시개발지구에 사는 거주민에게는 토지를 조성 원가로 매매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해당 훈령은 지난 5월에 법제화됐다. 유씨는 “간이공작물로 거주 사실 자체를 인정 못 받고 있으니 거주 사실을 인정받은 후 법에 따라 개발지구의 땅을 사는 것이 지금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건설사와 협의를 통해 땅을 살 수 있게 되면 건설사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은 후 해당 건물을 담보로 건설사에 공사대금을 납부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평균 10평의 집을 생각했을 때 지금 구룡마을 개발계획에 있는 용적률(250%)로는 약 8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주민 주택타운 건립이 가능하다”며 “평수를 낮추거나 용적률을 올리면 지금 거주하는 약 1000세대 모두 수용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유씨는 이제야 노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주니 더욱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는 “6개월 동안 강남구청에 시위를 해도 관심이 없다가 망루를 설치하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등 취재하러 왔다”며 “우리가 편법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 현재 행정상 거주가 등록돼있고 현행법상 토지를 조성 원가에 사겠다는 게 우리 행동의 핵심임이 널리 알려지고 지자체서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갈등의 또 다른 불씨도 존재한다. 다수의 주민들은 위원회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분양권 획득을 추진하고 있다. 한 구룡마을 주민은 “분양권을 위해 수년 전부터 협상을 해왔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주민들(위원회)이 생겨났다”며 “지금 시위에 참석하는 주민들은 거주 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람들 때문에 거주 사실이 인정된 사람도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룡마을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위원회 소속 한 주민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곳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위원회 외 주민들도 힙을 합쳐 서울시에 우리 요구를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는 판자촌과 달동네를 비교하기 위해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개미마을도 찾았다. 앞서 방문한 판자촌들과 달리 개미마을은 패널과 나무, 가벽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벽돌로 지어졌지만 무허가인 건물들이 언덕에 줄지어 있었다. 

달동네
사정은?

한 개미마을 주민은 “1950년대 6·25전쟁 후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이곳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거주하기 시작한 이 마을은 토지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토지 소유권도 불분명하다”며 “지난 2010년대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고, 서대문구청장이 개미마을 내 들어설 공동전원주택인 타운하우스에 원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입주에 필요한 돈이 없어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일요시사>가 만난 주민들 모두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삶의 터전서 강제로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개발 속도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 적게는 20년, 많게는 4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오랜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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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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