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뜨는 ‘○세권’

얼마 전까지 ○세권 아파트는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왜일까?

한동안 높은 인기를 끌었던 ‘반세권(반도체+역세권)’ 일대 집값이 맥을 못 추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 확대로 한때 실수요와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지역 집값이 뛰었지만, 부동산시장 침체 속 반도체 기업의 업황 부진, 공급 과잉 등으로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갭투자
몰리다…

최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호반써밋고덕신도시’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6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같은 해 4월에는 7억4000만원까지 집값이 뛰었던 면적대로, 8개월 만에 1억4000만원이 빠진 셈이다.

일대 집값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같은 동에 있는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 전용면적 71㎡는 지난달 5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6억2400만원까지 거래됐지만, 1년 사이 4000만원이 낮아졌다. ‘고덕국제신도시제일풍경채’ 전용 84㎡도 지난달 6억1000만원에 팔려 지난해 최고가 6억5000만원(5월)보다 4000만원 낮은 수준에 거래가 성사됐다.

경기도 이천시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가 있는 부발읍 일대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에 있는 ‘현대성우오스타2단지’ 전용 84㎡는 지난해 11월 4억700만원까지 내려 3억원대를 눈앞에 뒀다. 바로 옆에 있는 ‘현대성우오스타1단지’ 전용 84㎡도 지난해 8월 4억원에 거래됐는데 직전 연도 12월 4억2000만원보다 집값이 더 내려갔다.


SK하이닉스와 맞닿아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이천 시내 집값도 맥을 못추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흥동에 있는 ‘설봉2차푸르지오’ 전용 84㎡는 지난해 8월 4억7000만원에 거래돼 집값이 4억원대로 내려왔다.

새로 분양한 아파트 가격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평택시 장당동 ‘지제역반도체밸리제일풍경채(2BL)’ 전용 84㎡ 분양권에는 웃돈(프리미엄)이 붙어있는 매물도 있지만, 여전히 무피(웃돈이 없는) 매물과 마피(가격이 분양가를 밑도는) 매물도 꽤 있다.

2026년 입주 예정인 이천시 증포동 ‘이천자이더리체’ 전용 84㎡ 분양권 역시 무피 혹은 마피 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도체 업황 부진, 공급 과잉…
인기 끌던 ‘반세권’ 수요 급감

이는 경기도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수준이다. 경기도청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평택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2497가구 있다. 이천시도 1600가구에 달하고, 오산시 역시 1360가구로 1000가구 이상이다.

집값이 부진하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것은 반도체 업황 악화와 시장 침체 때문이다. 평택, 이천 등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9년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이 나오면서 수혜를 입은 곳이다. 2021년엔 집값 급등기와 맞물려 가격이 치솟으면서 갭투자가 활성화돼 외지인 매매 비중도 높았다.

하지만 이후 잇달아 분양이 이뤄지는 등 공급 물량이 급격하게 늘었고 반도체 업황 악화로 삼성전자 등의 공장 투자 계획 등이 틀어지자 부동산시장 수요도 함께 사라졌다.


평택시 고덕동의 경우 삼성전자가 잘되면 집값이 살아나고, 그렇지 못하면 집값도 빠진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지역으로, 그나마 고덕동은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평택 이외 지역의 경우 수요가 더 없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천시 부발읍은 반도체 벨트 얘기가 나온 이후로 ‘반세권’을 앞세워 집값이 큰 폭으로 올랐고 분양도 꽤 많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전반이 침체됐고 대통령 탄핵 얘기도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당분간 가격이 회복하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궁궐 인근에 위치해 ‘궁 이름’을 단 아파트를 칭하는 ‘궁세권’과 호수공원을 품은 단지인 ‘호세권’은 최근 뜨고 있다. 역사적 가치와 쾌적한 자연환경을 모두 갖춘 희소성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주거 편의성이 맞물리면서 프리미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집값 정체
미분양↑

먼저 궁궐과 가까운 입지는 단순한 공원이 아닌 궁궐의 역사 정원과 자연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어 상징성이 크다. 여기에 궁궐 인근 아파트는 서울 도심서도 중심 입지를 자랑하는 만큼 주거 편의성도 우수하다.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뛰어나 우수한 교통 접근성을 제공하고, 직주근접성도 좋으며 업무지구와 상업지구와의 접근성도 탁월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경희궁 자이’는 지난해 10월 3단지 전용면적 84㎡가 2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동일 면적의 입주 초기 가격(2017년 4월, 10억2000만원) 대비 10억원 이상이 오른 가격이다.

‘덕수궁 롯데캐슬’도 지난해 6월 전용면적 82㎡가 15억6900만원에 거래되며, 입주 초기(2016년 9월, 5억6400만원) 대비 10억원 이상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희궁 롯데캐슬’ 역시 전용면적 84㎡가 지난해 7월 16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분양가(7억원 후반대)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분양시장서도 궁궐 인근 아파트에 수요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분양한 경희궁 인근 ‘경희궁 유보라’는 1순위 청약서 57가구 모집에 7089건이 접수되며 평균 경쟁률 124.4 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전용 59㎡ 타입은 164.2대 1의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호수공원이 인접한 ‘레이크 프론트’ 아파트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수요자들의 소득수준 증가와 그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맞물려 보다 품격 있고 쾌적한 주거공간에 대한 니즈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성성호수공원이 인접한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소재의 ‘천안푸르지오레이크사이드’(2023년 5월 입주)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6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2020년 7월 분양 당시 책정된 분양가(4억1000만원)와 비교하면 4년여 만에 2억원 이상 급등한 셈이다.

궁궐 인근 위치 ‘궁세권’
호수공원 품은 ‘호세권’

옥정호수공원이 가까운 양주 옥정신도시 일원의 ‘양주옥정신도시제일풍경채레이크시티1단지(2023년 4월 입주)’ 전용 84㎡ 역시 지난해 말 분양가(3억7640만원) 대비 1억원 이상 오른 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호수공원 인근 아파트는 지역 부동산시장도 앞에서 이끌고 있다. 광교호수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광교중흥S클래스’ 전용 84㎡는 지난해 8월 16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해 국민평형 기준 수원시 영통구 최고가에 해당한다.

세병호를 품은 세병공원이 인접한 ‘포레나전주에코시티’ 전용 84㎡ 역시 지난해 11월 6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전주시 덕진구 아파트 최고가 1위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청약시장서도 호수공원 인근 단지로의 수요 쏠림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청약홈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서 분양한 ‘에코시티 더샵 4차’는 특별공급을 제외한 354가구 모집에 6만7687명이 몰려 1순위 평균 191.2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지방서 분양한 단지 중 가장 높은 경쟁률로, 세병호를 품은 세병공원 바로 앞에 위치해 호수 조망(일부 가구)이 가능한 점이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다.

역사 정원
일상서 경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궁궐 인근 아파트는 역사적 상징성과 도심 속 자연환경, 그리고 우수한 교통망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수요가 예상된다”며 “서울 도심 특성상 공급이 많지가 않고, 그에 따라 희소성은 더 부각되고 있어 앞으로도 부동산시장서 높은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수공원 주변에 위치한 아파트는 쾌적한 주거환경이 구현되는 것은 물론 수변을 따라 조성돼있는 각종 생활편의시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정주환경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라며 “호수 조망이 확보된 경우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데다, 대외적으로는 고급 아파트라는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도 유리한 만큼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분양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궁세권·호세권 아파트.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 롯데건설이 서울시 성북구 삼선5구역 재개발을 통해 선보이는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가 무순위 청약을 실시한다. 이번 무순위 청약은 부적격 세대 또는 중복청약 등의 사유로 발생한 84㎡ 타입 잔여 45가구다.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 통장 없이 청약이 가능하다. 단, 청약 신청은 1인 1건만 가능해 2건 이상 청약 시 모두 무효 처리된다. 입주는 2027년 4월 예정.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에 지하 4층~지상 18층, 19개 동, 총 1223가구의 대단지로 조성된다. 우선 롯데건설의 차별화된 설계가 돋보인다. 남향 위주의 배치와 판상형 맞통풍(일부 타입 제외) 설계를 적용해 개방감과 채광, 통풍을 극대화했다. 드레스룸, 다용도실, 파우더룸 등 공간 활용도를 높인 설계도 특징이다.

또 피트니스클럽, 실내골프클럽, 스크린골프, 스터디룸, 키즈룸, 북카페, 1인 독서실, 게스트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될 예정이다.

단지는 중심업무지구로의 뛰어난 직주근접성을 갖춘 입지로 평가받는다. 3~4인 가구 가족단위 수요층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84㎡ 타입의 물량이 나오면서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여기에 정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를 빠르면 2월부터 무주택자나 해당지역 거주자만 청약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법안을 발표하기로 밝히면서, 유주택자의 경우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도보권에 4호선 한성대입구역과 6호선·우이신설선 환승역인 보문역이 자리해 트리플 역세권이란 평가를 받는다. 창경궁, 종묘, 창덕궁, 성북천 분수광장, 삼선공원, 마로니에공원 등이 인근에 있다. 단지 옆에는 낙산공원, 한양도성길 등 다수의 녹지 공간이 있어 도심 속에서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도보로 통학 가능한 삼선초, 한성여중, 한성여고, 경동고 외에도 반경 1㎞ 이내 다수의 초·중·고교가 자리해 우수한 교육 환경도 갖췄다.

▲e편한세상 성성호수공원= DL이앤씨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업성도시개발(업성동 일원)에서 호수 조망이 가능한 ‘e편한세상 성성호수공원’을 분양한다. 단지 바로 남측으로 성성호수공원이 위치해 있어 호수공원 조망이 탁월하다. 여기에 단지와 호수 사이에 약 3만여㎡ 규모의 근린공원이, 단지 동측으로는 녹지축이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단지 서측으로는 4만여㎡ 성성호수공원 방문자센터가 있는 것을 비롯해 성성호수공원 방문자센터 주변으로도 공원 면적이 확장될 계획이 있어, 단지 동측·서측·남측 삼면으로 약 8만여㎡의 녹지공원 속에서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

품격 있고
쾌적한 주거

성성호수공원은 52만8000여㎡ 규모로 기존 업성저수지 수질개선 작업과 수변생태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2022년 개장했다. 4.1㎞에 달하는 생태탐방로를 비롯해 자연관찰교량인 성성물빛누리교, 생태체험숲 등 휴식과 문화체험이 가능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천안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입지 여건도 우수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가 도보거리에 신설 예정이다.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와 성성지구 내 기 조성돼있는 다양한 생활 인프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단지 인근 준주거지역에 근린생활시설이 조성된다. 단지 내에도 근린생활시설이 함께 조성돼 입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일 전망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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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