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④군판사가 경험한 군사법원 무용론

“누가 뭐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휘계통이 있어 하지 말라면 못했다. 아예 사건을 들여다볼 수 없고 이미 그 사건은 끝났다.” 박지훈 변호사가 군판사로 복무하던 중 겪었던 경험이다. 의욕을 갖고 있어도 결국 윗선서 결재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군대서의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희생되고 나서야 군대는 뒤늦게 개선책을 내놨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특성상 개입 여지는 남아있다. <일요시사>는 전직 군판사 출신인 박지훈 변호사와 전직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를 만나 군사법원과 민간법원의 차이, 개선할 점 등을 물었다. 

국방부 장관이 
군판사 임명

박 변호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군법무관으로 의무복무 했다. 2001년 15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3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육군중앙수사단 검찰관, 법무참모, 육군군사법원서 군판사를 지냈다. 2004년부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고, 당시 신설된 국방부 인권담당 대책 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군 인권개선을 위한 법 개정 초안에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군판사는 법조인이 의무복무 하기 위해 군에 복무하는 방식 중 하나다. 보통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의 정해진 과정을 마친 사람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자격이 있는 이에게 군법무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임명된 군법무관은 역할에 따라 군검사, 군판사, 군변호사(국선변호장교), 징계 장교, 법무참모 등의 역할을 맡는다. 법무참모는 군대 내에서 법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장교다. 주요 업무는 국가소송과 행정소송의 수행, 군형사 사건의 사법적 업무, 법률적인 자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군판사는 군인과 관련된 재판에서 판결하는 역할을 맡은 군인 신분의 판사다. 주로 군인, 군무원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반 범죄라도 군인, 군무원 신분이면 군판사가 보통군사법원, 고등군사법원서 판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군사제도는 미국의 군사법원 제도서 착안했다.

과거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한국은 군사법원을 설치하도록 규정돼있다. 군사법원법은 지난해 6월 재차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군사법원이 각군 사단급에 설치돼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군단급으로 이상 부대서 통합 운영됐다.

그렇다 보니 일부 사무실과 업무시설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고, 이해관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개정 후엔 이 같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 아예 국방부 직할로 통합해 모두 국방부 소속으로 뒀다. 군사법원 시설 역시 건물과 지역을 분리해 업무를 맡고 있다.

군판사의 경우 군법무관으로 임명된 사람 중 일정 경력 이상을 가진 사람만 심사를 통해 선발하고, 선발된 인원은 5년 임기가 보장돼 5년마다 심의를 통해 임기를 연장하도록 한다. 보통 민간법원서 10년 주기로 재임용 여부를 심사받는 부분을 군사법원은 5년으로 정하고 있다. 

“손 떼라” 하면 그 즉시 멈춤
과거 관할관, 심판관 폐해 커

박모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개정법률에 따라 군판사는 국방부 소속으로 독립된 직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일정 기간 군법무관은 다른 순환보직인 군검사·징계장교·법무참모 등을 거친 후 군판사로 임용된다”며 “과거 알고 지냈던 관계 등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면 문제가 될 여지는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난해 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외형적으로 이해관계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법률안이 조금 더 정착된 후에야 이해관계 등에 관한 문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은 군인이 해외서 작전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할 때도, 포로와 관련된 사안서도 법무참모의 법리적 검토가 이뤄진다. 심지어 어느 정도 규모의 작전이 가능한지, 현지 주민하고는 어떤 대화를 할수 있는지까지 검토한다. 

미국의 법무참모는 중장까지 진급이 가능하다. 늘 작전 참모가 옆에서 법무적인 검토를 할 필요성이 있어 상당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고, 미국의 법무참모는 할 일이 많은 편이다. 군대 역시 제대로 된 법치가 작용해 법무 업무를 하는 군인이 다수 있다.

박 변호사는 “미국 군대는 계속 이동해 작전을 펼친다. 군인이 법을 위반하면 본국으로 송환해 재판하지 못해 이동하면서 재판하려고 만든 게 군사법이다. 한국도 과거 6·25전쟁을 겪어 미국과 비슷하게 제도가 꾸려졌다. 우리 군의 경우 군단마다 판사가 한 명씩 존재한다. 많은 숫자는 아닌데, 비교적 민간에 비해 사건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국내 군판사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2건 판결을 내리고, 1년으로 따지면 10건 정도다. 음주운전의 경우 약식기소하는 경우가 있어 재판 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중하다고 여겨지는 중대범죄일 경우 재판이 이뤄진다. 한국 법무참모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소위 말하는 장성급 군인 중에 법조인 자격을 가진 군인이 없는 탓이다.

우리와 다른
해외 사례들

박 변호사는 “딜레마다. 과거 같은 경우는 시험을 쳤다. 법조인 시험을 쳐 시험을 통해 합격했다. 법조인으로 양성된 다음에 해야 하는데 지금은 군인 계급에 맞추는 정도”라고 말했다. 

군단에 소속된 군판사는 통상적으로 3~4개 사단의 재판을 담당한다. 군판사 역시 민간의 양형기준을 대부분 따른다. 재판부의 관점은 법률(형사소송법, 군사법원법)에 기초해 형사사건을 진행하고 판단한다는 소리다. 다만 군대라는 특성상 군사비밀보호법 위반, 항명죄 같은 경우는 군에서 정한 양형이 기준이다.

그는 “통상 자신이 속한 군단서 재판이 열리면 해당 군판사는 주심 판사가 된다. 배석 판사는 소위 말해 옆 군단서 꿔오는 형식으로, 다른 군단서 재판이 열릴 경우 배석 판사로 참여하는 구조다. 내가 근무하던 2008년 당시에는 판사 외에도 해당 부대 장교가 나와 심판관을 맡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전직 군 법무관 출신의 변호사는 “군사법원서 주요하게 보는 내용은 군사법원서 주로 판단하는 군형법에 관한 내용이다. 군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 범죄구성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세부적으로 살핀다. 예를 들어 상관모욕죄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 피고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상관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이라고 언급했다.

심판관 제도는 해당 부대의 참모급 계급이 재판에 참여했던 제도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폐지 목소리가 있었고,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실제로 군판사가 판결내려도 부하라는 이유로, 형을 감형시키거나 죄가 있어도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군대의 특성상 윗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군판사는 군단장, 사단장의 지휘를 받는다. 군단장의 군대 내 서열은 6위다. 최대 8만명까지 지휘할 수 있고, 장군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계급이다. 대외적으로 따졌을 때도 대통령, 총리, 국방부 장관, 대장 7명, 국방부 차관 정도가 윗선이다. 실질적으로 군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계급인 셈이다.

수사냐
조사냐


박 변호사는 “사실상 심판관이 판사와 다름없었다. 가령 징역 2년 정도 하겠다고 의견을 내면 간혹 같은 부대서 일한다는 이유로 다른 판결이 내려진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관할관 제도의 폐해도 상당했다.

재판이 끝난 뒤 사단장 등 지휘자에게 결재를 받으면서 다시 또 판결이 뒤집혔다. 징역 1년의 판결을 내렸다고 해도 지휘관이 형량을 깎는 게 가능했다. 모든 게 군대 안에서만 이뤄져 사실상 팔이 안으로 굽었다. 결국 심판관이 형량을 반 이상 깎지 못하도록 한 차례 개선됐고, 관할관 역시 이런 병폐가 발생한 탓에 ‘개입’조차 못 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특히 2021년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이예람 중사의 성범죄 사망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파장이 일자, 이를 계기로 군사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3대 중대 범죄(성범죄·사망사건·입대 전 사건)에 관해 수사권을 민간 경찰에 이관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이 다급하게 개정돼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박 변호사는 “독립성을 가진 재판을 해야 하고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영장을 내러 갈 때도 다 결재를 맡아야 했다. 과거에는 체포영장이 나온다는 걸 미리 다 알고 있어야 대비가 가능했다”며 “이런 문제가 있어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지금은 그래도 좀 많이 나아진 편이다. 특히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한 박정훈 대령의 구속영장 기각을 보면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의하면 해병대 대원 사망사건은 처음부터 군사경찰서 사건을 수사해서는 안 됐다. 


개정법률에 따라 수사권이 있는 기관의 수사 지원이나 협조 요청이 있었을 경우 수사가 아닌 조사는 가능하다. 해병대 차원서 수사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것 역시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통상 수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 범죄사실의 조사, 범인의 발견과 확보 및 증거의 발견·수집·보전을 위한 수사기관의 활동이다. 

조직 입맛에 맞게 적절히 ‘만지작’
국민참여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조사는 주로 관계기관 등에 출석해 진술을 청취, 진술서 제출, 자료 제출, 현장 조사와 검증 등이 이뤄진다. 조사 결과에 따라 행정적 조치와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가 이뤄지는 절차를 거친다. 

박 대령 사태는 이미 수사인지, 조사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리는 상황이다. 이 부분은 향후 박 대령에 관한 수사나 재판 과정서 첨예하게 대립될 부분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사법활동은 지휘권과 분리돼야 한다. 결국 개입에 생긴 문제다. 누가 개입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입된 상황이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은 수사기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군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따졌을 때 박 대령이 수사한 것으로 판단되면 박 대령 역시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반면 조사를 한 것으로 판단되면 박 대령은 적법한 직무상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국방부 장관이 사단장을 빼도록 조치한 부분은 직무상의 권한행사(조사행위)에 개입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해 상부로부터의 압박은 줄었다. 다만 여전히 군의 구조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군판사가 여전히 군단장의 지휘를 받는 위치기 때문이다.

현재 군사법원을 없애는 방안까지 이야기가 나온다. 군 입장에서는 여전히 군사법원과 조직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고 싶어한다.

박 변호사는 “(군은 군사법원 체계를)지휘권의 하나로 봤다. 군 스스로 재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 판사를 군 조직 밑에 두고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데 군 조직 내, 굵직한 사건들이 터져 이제 군사법원이 거의 없어지는 단계로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군사법원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로 전시 상황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군법무관 역시 재판 전체를 1심으로 옮기는 게 답은 아닐 수 있다고 봤다. 

외부에선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법을 바꾸는 식으로 군사법원을 개혁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또 군사법원을 민간법원처럼 최대한 동등한 절차나 방식으로 운영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판사 1명당 맡는 사건 수는 민간법원이 군사법원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사건 판단 노하우는 민간법원이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간법원은 사건 수가 많은 만큼 재판 기간이 길어지거나 사건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군사법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에게
개방 필요

다만 전문가들은 군사법원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식도 개선안으로 본다. 군사법원은 아직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가 없다. 외압, 개입이 우려된다면 재판 자체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셈이다. 한 전직 군법무관은 “군사보안이나 기밀 등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시도해본다면 국민 입장서도 군사법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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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