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②아빠의 멈춰버린 6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6:59: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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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의대생은 전역하지 못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고는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비보’를 전해 듣기 하루 전 발생했다. 10시간 이상 방치돼 사망한 아들. 국방부와 아들의 동료는 끝내 아들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았다. “당신 아들이 개인 실수로 사망했다”고 버틸 뿐이다. 아빠의 시간은 2017년 1월에 멈춰있다.

“아들 용민이가 군에서 죽은 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벌써 6년이 지났는데, 비통한 마음은 매일 커집니다. 의사로서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채 떠난 아들이 너무 불쌍해, 마지막이라도 의사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라고 장기기증했습니다.” 군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이득희씨의 말이다. 이씨의 아들 이용민 중위는 2017년 1월3일 포천의 한 군부대서 군의관으로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 부대선
무슨 일이…

<일요시사>가 이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중위의 방은 깔끔하게 정리된 의과대학 학생의 방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중위가 학교서 돌아올 것 같았다. 돌아와서는 가방을 풀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은 뒤, 바로 공부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군에서 사망한 아들은 돌아올 길이 없다. 

이 중위는 유난히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특목고를 다녔고 수능은 전부 1등급을 받아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공부가 힘든 와중에, 이 중위는 어머니와 새벽 4시까지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도 해외에 나가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 중위가 사망한 뒤, 이씨의 가정은 파괴됐다. 어머니는 아예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이 이씨를 더 큰 충격에 빠트렸다.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이 중위의 사망은 ‘순직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장례가 끝났지만, 이 중위는 순직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군 임시 봉안소에 안치됐다. 지금도 이씨와 이씨의 아내는 아들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아들이 떠난 지 6년이 지나자 매일 가던 봉안소를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갔다. 그러나 비통한 마음은 나날이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

이 중위의 사망 경위는 단순하지 않았다. 사고는 이 중위가 사망하기 21일 전인 2016년 12월14일에 발생했다. 그 날 저녁 이 중위는 군의관 입대동기 A 중위, B 대위와 함께 저녁 회식 후 노래방에 갔다. 

군의관은 일반 의무병과 달리 장교 신분으로 복무 기간도 33개월로 긴 편이다. 장교라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이 중위와 입대 동기는 모두 군 인근 관사에서 10분 떨어진 부대로 출퇴근했다.

노래방은 부대 인근의 지하에 있었고, 화장실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위치했다. 노래방 주인 C씨에 따르면, 당일 오후 10시40분경 노래방 입구인 계단 하단에서 ‘쾅’하는 큰 소리가 났다. 놀라서 나가보니 사람이 넘어져 얼굴은 지하 출입구 바닥에 닿아 있었고, 다리는 계단에 걸쳐져 쓰러져 있었다.

놀란 C씨는 황급히 119에 출동을 요청했다. 노래방과 700m 떨어진 소방서에서 소방차, 소방관 2명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10㎞ 떨어진 곳에서 구급차와 전문 구급요원이 오고 있었다. 

군의관 동기들과 부대 인근 회식자리 사고
긴급구호 없이 관사에서 10시간 방치 사망


B 대위는 출동한 소방관에게 “우리가 의사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소방관은 무전으로 오고 있던 구급차를 돌려보냈다. 해당 사건은 2017년 10월31일 국방부 보통검찰부 공소장에 기록돼있다.

그 길로 A 중위와 B 대위는 이 중위를 부축해 군 관사로 데려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B 대위는 새벽 4시30분에, A 중위는 아침 7시에 관사를 나섰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이 중위가 출근을 하지 않자, A 중위는 관사 관리병에게 이 중위를 깨워달라고 요청했다.

관리병이 관사를 방문했을 때 이 중위는 의식이 없었고 침대 등에 구토물이 있다며 상사에게 보고했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 이 중위의 병명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이었다. 국군수도병원서 뇌수술을 시행하고 서울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위는 중환자실서 입원 치료했지만 2017년 1월3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최종 병명은 ‘외상성 경막상 출혈’이었다.

“사실 군에서 연락온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부대에선 연락도 없었으니까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병원서 연락 와서 갔더니, 아들 옷은 다 벗겨져 팬티만 입고 누워있었습니다. 아들 얼굴을 보자 마자 ‘늦었구나’하는 감이 왔습니다.”

이 중위는 동료 군의관 두 명이 긴급 구호조치 없이 관사에 10시간가량 방치돼 사망했다. 만약 사고 즉시 긴급 구호를 실시했다면 어땠을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결정문(이하 결정문)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자세히 기재돼있다.

결정문에는 ‘망인은 외상성 경막상 출혈 진단을 받고 두개감압술 수술을 시행했으나 사망했다. 경막상 출혈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 사망률은 0% 또는 0.8%에 해당한다’고 기록돼있다. 즉, 동료 군의관이 후송 거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 이 중위가 생존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유가족이 
직접 증명

“아들이 119 구급차를 통해 병원에 바로 갔었으면 100% 살았겠죠. 이런 상황인데도 국방부는 순직을 기각시켰죠. 이게 상식적으로 맞습니까? 24시간을 의무병으로 일했던 아들입니다.”

국방부는 이 중위의 순직을 찬성 4명, 반대 5명으로 1차 기각(보류)했다. 기각 사유는 중앙전공사상심사 회의록과 결정문에 나오는데 아래와 같다. 

▲술을 마시고 발생한 사고 ▲개인 친목 회식이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이 없음 ▲이 중위 사망 장소는 군 관사로 영외에 있는 점 ▲동료 군의관의 ‘군의관’ 업무과실이 아닌 ‘의료인’으로서의 업무과실이기 때문 등이다.

이씨는 국방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씨는 이 중위가 군의관으로서 어떻게 근무했는지, 아들의 사망 원인이 개인 과실이 아니라는 것, 동료 군의관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했다. ‘직무 연관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먼저 군의관의 업무시간이다. 통상 근무시간은 존재하지만, 이 중위는 24시간 근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씨가 이 중위 관사에 방문했을 때, 밤중에도 아픈 장병이 있으면 부대로 나가곤 했다. 

이씨는 이 중위 장례식장서 오열하던 한 장병을 기억해 수소문했다. 당시 의무병이었던 그는 휴가 중이었다.

이씨가 연락하니 “우리 군의관님이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니다.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해당 의무병은 이씨에게 “이 중위는 퇴근 후에도 환자가 발생하면 유선을 통해 처방을 요구하거나 진료를 했다. 의무실은 의료진이 군의관 한 명이기 때문에, 군의관이 퇴근을 한 후 발생한 환자는 유선을 통해 문의하고 처방을 따른다”고 의견서를 작성해줬다.

영내냐
영외냐

이 중위 선임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선임은 “이 중위는 간부 및 용사 이름과 치료 병명을 다 기억했다. 주말 및 새벽에도 환자가 발생하면 전화로 진료해 처방했고 응급하다고 판단되면 당직계통으로 조치가 되도록 행동했다”며 “전입 신병 적응이 어려울 때 의무실을 찾아 상담받고 호전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고가 발생한 날 대대 전 간부 회식이 있었는데 속이 불편한 간부에게 약을 처방해줬다. 회식 종료 후 동료와 간단히 식사한다고 보고도 했다”고 24시간 근무를 시사했다.

다음은 이 중위에게 긴급구호하지 않은 두 명의 군의관이다.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3항에는 ‘군인 등의 상급자 및 군보건의료인은 군인 등으로부터 진료를 요청받거나, 진료가 필요한 군인 등이 있는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면 안 된다’고 기재돼있다. 


결국 동료 군의관 2명이 군보건의료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한 이씨는 두 사람을 상대로 민·형사 재판을 진행했다. 이씨가 변호사 없이 참석했던 재판만 30번이 넘었다. 

재판 과정 중 A 중위와 B 대위는 “이미 퇴근한 시간이기 때문에 군보건의료법에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군보건의료법은 적용 시점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간, 장소, 환자 등 지휘관계 성립 여부에 관계없이 폭넓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

결국 군보건의료법이 적용되면 ‘퇴근했기 때문에 군보건의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 범위 내에서는 퇴근이 아닌 셈’이 된다.

“1심 판결 때 판사가 군의관 두 사람에게 ‘피해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다쳐 119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소속 부대에 알려질 경우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받을 것을 우려해 성급히 119 구급대원들을 돌려보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죠. 그전까지는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아서….”

1차 순직 기각 ‘찬성 4명 VS 반대 5명’
“복무 관련 죽음” 판결에도 묵묵부답 

결국 두 명의 군의관 범죄 사실이 군 복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래방 건물에 대한 소송도 진행됐다. 이씨는 건축 전문가와 함께 포천의 노래방을 방문했고, 해당 전문가는 “이 건물 계단은 불법 개량된 것”이라고 했다. 해당 노래방은 ‘24시 노래방’으로 술을 마신 후 방문하는 손님이 많았다.

노래방 주인은 ‘계단의 유효 너비를 줄이고, 난간이나 손잡이를 제거했음’의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이 중위가 계단서 넘어진 것은 ‘개인 과실’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A 중위와 B 대위가 군 관사에서 잘못한 점도 지적했다. 이 중위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2016년 12월17일 육군 본부 감식반 7~8명이 현장 감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 중위의 혈흔이 숙소 여러 곳에 발견됐다. 당연히 혈흔은 노래방 계단 바닥에도 흥건했다.

이런 상황서 두 사람은 이 중위를 두고 출근을 한 것이다. B 대위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새벽 4시30분 자대 출근을 위해 숙소를 나갔다는 사실 ▲노래방서 나와 이 중위를 양쪽서 부축하고 걸어간 A중위와 B대위의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었던 점 등을 보면, 만취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CCTV상 이 중위는 고개를 떨군 상태서 허리가 굽혀져 부축 이동했다. 누가 봐도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당시 관사에 누워 있는 이 중위는 누가 보더라도 ‘과음으로 잠에서 깨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상처와 멍 자국, 그리고 핏자국이 있고 심각하게 부어 있다. 당시 모습은 사진으로 도 남아 있다.

군 복지시설은 투숙한 현역 군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관리관이 이 중위를 봤지만, 그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으로, 3시간의 공백이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국방부는 군 관사를 ‘영외’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정문에는 “군 장교 숙박이 허용된 독신자 숙소·관사·군 복지회관 등 군 복지시설이 영외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발생한 사고는 순직대상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교는 
어렵다”

가족의 시간이 멈춘 지 6년째. 아들은 이씨가 명예퇴직했던 그해 떠났다. 이씨는 자동차 연구직이었지만,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상을 모두 버렸다. 그는 결국 아들의 죽음이 ‘아들의 과실이 아닌 것’을 밝혔다.

반면, 국방부는 여전히 묵묵부답 중이다. 이 중위가 술을 마셨으며 영외에 거주했고, 직무와 연관이 없다는 이유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순직 재심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장교라 순직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군의관도 의무복무병이죠. 국방부가 이를 모를 리도 없구요. 아들이 순직이 된다고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최소한의 위로입니다. 유가족이 ‘내 아들이 자신의 실수로 죽은 게 아니다’를 증명해야 하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나라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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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